1만 배 올리고 받은 좌우명‘속이지 말라’ 참뜻 알고 출가본지풍광·선문정로 법문 11권선림고경총서 37권 산파 역 물 닦으려 휴지 몇 조각 쓰니‘니 애비 만석꾼이제?’ 질책인재양성 직언에 뺨 두 대‘곰 새끼만 우글, 어쩌라고?’ 선양 불사가 오히려 먹칠?‘자기를 바로 보라’ 가르침올곧게 전하고 싶을 뿐 ▲원택 스님 “니 중 안 될래? 고만 중 되라.” “불교에 대해 알고 싶지만 출가할 생각은 겨자씨만큼도 없습니다.” “나이 서른 다 돼서 세상에서 뭐 할 거고. 나는 함부로 남보고 중 되라고 안 한데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원택 스님이 성철 스님을 처음 친견한 건 1971년 3월. 첫 만남에
독실했던 모친 유언따라천태종본산 구인사 출가유년·청년 겪었던 고독회피않고 직면하며 극복 다문화·남북교류·나눔사회활동 쉼 없이 매진‘힐링광장’ 삼광사 주 동력현대인 적합 프로그램 개발 둘이 아닌 하나의 세상이부처님 말씀하신 불국토 ▲무원 스님 초하루 법회에만도 1만 5000여명이 운집하는 삼광사의 신도는 36만명. 1982년 부산 백양산 기슭에 첫 삽을 뜬 이후 30여년 만에 이룬 쾌거다. 신도 수에만 초점을 맞춰 사찰의 위상을 논할 수는 없지만 36만이란 숫자는 결코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삼광사를 일궈가는 사람은 사부대중이지만, 가야할 길을 제시하고 선두에 서서 대중을 이끌며 수많은 고난을 헤쳐 가야 할 사람은 주지다
효봉 모신 대보살 모친포교원력 주지 소임 맡자‘생사 해결 못한 스님이누구 인생 길 열어주나’ 선원 개원 3개월 만에신도 300여명 대 운집 ▲설우 스님 “농부가 독수리 알을 주워 와 암탉에게 품게 했습니다. 거기서 뭐가 나왔겠어요? 어느 날 황금 독수리가 병아리 노니는 마당 위를 날았습니다. 한 병아리가 독수리한테 걸리면 제삿날이니 서둘러 닭장으로 피하자 외칩니다. 독수리 새끼도 병아리 무리를 따라 닭장 안으로 숨습니다. 만약, 농부가 독수리 새끼한테 ‘너는 암탉이 품긴 했지만 본래 황금독수리 새끼’라는 사실을 일러줬다면 어땠을까요? 어미 독수리를 보자마자 창공으로 날아올랐겠지요.” 최근 설우 스님이 펴낸 ‘행복한 금강경
10대중반 중병앓아 목숨위태살아나면 출가 부처님전 기도 대강백 대은스님 상좌로 입도범패 최고봉 송암스님 사사지월스님 ‘속지말라’에 참선 무념무상 선정 극치의 소리계행·법력 수반되어야 가능염불도 정성 다해야 ‘가피’한글의식 체계·보급에도 혼신 ▲“선정의 극치에서 나오는 소리가 범패”라는 동주 스님은 “입으로는 경문을 외우지만 그 뜻을 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울 가양동에 자리한 홍원사는 목조 건물은 아니지만 운치 있으면서도 장엄하게 서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환희심을 불러일으킨다. 여느 사찰과 마찬가지로 각종 법회가 열리는 도량이지만 이곳엔 아주 특별한 인재양성 기구가 설치되어 있다. 다름 아닌 한국불교전
미국 흑백 인종차별 직시어린 시절부터 ‘고통’ 화두 11살 때 본 일본 대불에자비·평화 온 몸으로 느껴예일대 숭산 스님 강연서‘집착’ 따른 심성 이해 고통은 내가 만드는 것수행했다면 보살행 하라 한국·해외 수행가교 역할무상사 본연 의무 다할 터 ▲대봉 스님은 스승인 숭산 스님이 미국에서 처음 문을 연 프라비던스 선원에 들어가 행자생활을 시작했다. 1984년 서울 화계사로 출가한 스님은 1999년 여름 숭산 스님으로부터 인가를 받고 대봉(大峰)이라는 법호를 받았다. 해외와 한국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는 대봉 스님은 “내가 고통을 만들지 않으면 타인에게 줄 고통도 없다. 수행을 하고 부처님 법을 이해했다면 보살행을 실천해야 한다. 그렇지
지월스님 ‘인연법’ 한마디심금 울려 20대 출가결심 일본 교토대서 석박사 학위경주 동국대 강단서 25년한국 화엄학 대가로 칭송 ▲도업 스님 20대 청년이 용탑에서 해인사로 건너오는 외나무 다리에서 지월 스님을 만났다. 지월 스님이라면 지난 7월 입적한 조계종 원로의원 도견 스님의 은사 아닌가. 당돌하게도 ‘불교란 무엇이냐’고 여쭈었다. 어느 순간, 지월 스님의 혜안이 번뜩였다. 한 번 보면 그릇의 크기를 단번에 가늠했던 선지식의 선기가 발현된 것임에 분명하다. “깨달으면 못 하는 게 없습니다.” 이쯤이면 ‘정말 못 하는 게 없습니까?’라 다시 묻는 게 보통일 터. 청년은 의외의 질문을 던졌다. “무학대사는
삶 의미 불교서 찾겠다고성철 스님 은사로 출가 참회원 확대해 정인사 중건명실상부 복지 ‘금강’설립 국수마다 김 한 장 넣었다가 성철 스님으로부터 불호령 ▲ 원행 스님은 ‘입보리행론’의 말을 인용해 “모든 행복은 남을 위한데서 오고, 모든 불행은 자기를 위한데서 온다”고 강조했다. 창원 팔용산 아래에 자리한 정인사(正印寺)! 도심 사찰로서는 제격으로 앉아 있다. 그런데 절 이름이 낯설다. 정인! 아마도 ‘부처님 지혜로 우주 만물을 통찰한다’는 해인(海印) 의미와 일맥상통할 터. 그러니 정(正)은 곧 법(法), 부처님 말씀이요 가르침일 것이다. 기존의 참회원을 정인사로 중건한 장본인이 원행 스님이다. 정인사와
▲월명암 사성선원장 일오 스님. 월인 스님 은사 상연대 출가 후근 50년‘이뭣고’화두 정진일로 거울, 암명·대상 관계없이 비추듯청정 자성·불성도 여여하게 작용 분별시비 떨친 부설거사 열반송무심·무상·무주 관통했기에 가능 번뇌망상 당장 끊을 수 없다면집착하지 않는 마음부터 내 보라 산길은 있어도 찻길은 없는 월명암. 약 2Km의 산행을 해야만 다다를 수 있는 월명암을 일러 산상무쟁처(山上無諍處)라 한다.‘ 다툼이 없는 곳’이니 적정처(寂靜處)다. 호남정맥의 첩첩산중과 운해(雲海)가 빚어내는 풍광은 말 그대로 절경이라 한다. 하지만 월명암을 오르는 동안 산은 자신의 자태를 내보이지 않았다. 비 개인 직후 일어나
전통 쪽 천연염색·감지 재현옻칠불화로 미술계 새 지평 도예 관심 직후 연구 매진하며도자 16만대장경·3000불 봉안 ▲ 성파 스님 ‘연화좌(蓮華坐)를 한/ 장독대 항아리 안에서/ 간장이 선(禪)에 들었다.// 숯과 고추는 하늘에 동동/ 금줄은 풍신한 항아리에/ 햇살은 들숨날숨 넘나들었다. ……’ 김점숙 시인의 ‘장독대’ 일부 중 첫 대목이다. 소금과 메주가 만나도 시절인연이 닿아야 간장이 된다는 사실을 직시한 옹기가 자연을 벗 삼아 가부좌를 틀고 선정에 들었다니 한편의 선시를 보는 듯하다. 이제는 아련한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가고 있는 애틋한 정서 하나를 이 세상에 새겨넣고 싶어 이 시를 썼을 터. 통도사 서
생사문제 고민하다 선운사 출가수행일로 걷다 사중 뜻에 소임 만세루 개방이 소통 첫 신호탄지역주민-지자체 신망 두터워뉴타운 내 불교회관도 건립 추진 스님 노후복지 수행마을 순항 중선운사 연계해 미당문학관도 ‘빛’명실상부 ‘석전 기념관’ 건립 희망 ▲법만 스님 선운사 초입 길가. 서정주 시인의 ‘선운사 동구’ 육필원고를 그대로 새긴 ‘미당 시비’가 길손들을 맞이하고 있다. ‘선운산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니다’ 4월말, 5월 초면 유독 선운사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
학승 시절 10.27 법난 목도항거 못한 교계현실에 절규불교 힘 법에서 나온다 인식도심포교 매진 전법 저변확대 재가참여 사찰운영은 당연재정투명 토대 위 신도결속신도 10명에서 현재 3천세대 ▲퇴휴 스님 ‘수행자들이여 이제 너희들도 세상으로 나가라. 그리하여 세간의 안락과 모든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여 설법하라.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게 논리정연하고 정확한 표현으로 법을 설하라. 그리고 진정으로 원만하고 청정한 행을 드러내 보여라. 세간으로 나갈 때는 두 사람이 한 길로 가지 말고 따로따로 다녀라. 세상에는 더러움이 적은 삶을 사는 사람도 있다. 그들도 설법을 듣지 않으면 타락할 것이다. 그러
언어 사유 속에서 길 잃고중학교 때 송광사로 출가서암 스님 시봉하며 정진 천지 무너지는 희유한 체험서암·경봉, “공부해라” 일침훗날 알고 보니 ‘식광’일 뿐 ▲일선 스님 ‘가난과 영화는 하늘에 달렸으니/ 어찌 뜻대로만 되리요/ 나는 내 멋대로 유유히 지내왔노라/ 고향 하늘 바라보니 천리길 아득하고/ 남녘을 떠도는 내 신세 허망한 물거품/ 술잔을 비삼아 쌓인 시름 쓸어버리고/ 달을 낚시삼아 시를 건져올리네/ 보림사와 용천사를 두루 돌아보니/ 속세 떠난 한가함이 비구와 한가지라’ 희대의 묵객 김병연. 스스로 하늘 보기가 부끄럽다며 삿갓 쓰고 길 떠난 지 30여년. 화순 땅에서 생을 마감하기 직전에 찾은 보림사에서 그는 ‘깨
외사촌 심장마비 죽음 직시 후‘무상’ 인식하며 통도사로 출가혼란 속에 조계사 주지로 부임참회기도 정진 속 불심 하나로 대중에 합장하며 ‘당신이 부처님’‘친절·행복한 조계사’ 키워드가 한국불교 1번지의 비약 원동력 채움 아닌 비움의 청정도량 지향승용차 없는 조계사 임기 내 희망성찰과 나눔의 전법도량 만들 것 ▲도문 스님. 만물을 소생시키는 3월의 빛이 한껏 들어서인지 도량 내 전각도 어느새 제 윤각을 확연히 드러내 보이고 있다. 대웅전 부처님을 찾는 불자들의 걸음도 차분하지만 힘차 보인다. 새소리까지 더하니 ‘기운생동 조계사’ 그 자체다. 조계사는 늘 그러했다. 한국불교 1번지답게, 조계종 제1교구본사의 위상에 걸맞
중고교 때 ‘죽음’에 천착쇼펜하우어-사르트르 철학탐독했지만 얻은 건 ‘허무’ ‘사랑을 일부러 만들지 말라’‘파격’적 일구에 출가 결심 휴지 두장 쓰다 은사에 ‘혼쭐’주지실 보일러도 함부로 안 써‘간장 한 방울도 시주인의 피’ 수행-교육-포교-복지에 전념노 스님 기거 수행관 건립 원력 ▲현조 스님 지난 해 부터 화제를 모았던 셀리 케이건 교수의 책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올해 들어서서도 회자되고 있다. 인간 내면에 잠재돼 있는 공포, ‘죽음’. 언젠가는 스스로 풀어야 할 화두임에 틀림없지만 우리는 죽음에 직면하기 보다는 외면하려 한다. 그런 우리들에게 셀리 케이건 교수는 용기를 갖고 맞닥트려 보라고 한다
새벽 4시 극락암 빗장 열어‘불연이 깊다’는 말에 출가 ‘이뭣고’ 화두 5년 증득없자관응 스님 문하서 3년 결사 ▲원산 스님 백련정사 은행나무가 한 겨울, 산내 짙은 안개 속에서도 의연하게 서 있다. 곱게 키워낸 샛노란 낙엽, 몇 해 동안이나 땅으로 내려놓았을까. 백련정사 옛 이름은 백련암. 근세 조선시대에는 선풍이 뛰어난 선원으로 유명했던 영축 산내 암자다. 환성, 경허, 만해, 운봉, 향곡, 구산, 성철 등 큰 스님들이 정진한 곳이고, 만해 용운 스님이 ‘불교대전’을 집필한 암자이기도 하다. 고려 공민왕 때 월하 스님이 창건했던 백련암을 1990년 중반 중창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게 한 스님이 현 영축총림 통도사
20년 전 관음사서 복지 시작노인요양·자활센터 등 운영 구족계 받으면 모두가 율사포교에 율사·선사 따로 없어 ▲ 지현 스님 ‘저는 진흙이 되겠습니다. 저를 만난 인연으로 모든 사람이 연꽃으로 피기를 바랍니다.’ 연꽃. 진흙 속에서 피는 꽃이기에 인내의 꽃이요 깨달음의 꽃으로 상징된다. 시인들도 노래했다. 이호연은 ‘세상 온갖 시름/ 황톳물 같은 아픔이라도/ 지긋이 누르고/ 꽃으로 피우면 저리 고운 것을’이라 하고, 구상은 ‘무어라 이름 할 수 없는 신선함에/ 먼지 하나 범할 수도 없고/ 숨소리도 죽여야 하느니,/ 이 청정한 고운 님의 경지에/ 해와 달이 함께 빚어낸 꽃이라’이라 했다. 연꽃인들 아픔이 없
‘반야심경’에 마음 끌려고교 졸업 직후 출가은사 천운 스님 모시며명실상부 본사로 ‘우뚝’ ▲무염지(無染池) 전경. ‘더러운 곳에 있어도 오염되지 말라’는 처염상정(處染常淨) 의미를 담고 있는 연못이다. 땅 끝 해남에도 동풍(冬風)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러나 대흥사 숲길에 접어 든 순간 겨울바람은 퉁소가 빚어내는 멋스러운 가락으로 바뀌었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저마다 제 자리를 지키며 자신의 가지를 한 없이 흔들어 낸 화음이다. 화려했던 단풍마저 거둬 간 숲은 이렇듯 찬바람마저 무상(無常)의 소리로 다듬어 다시 내어 보이고 있다. 무염지(無染池)가 청송 한 그루를 담고 있다. ‘더러운 곳에 있어도 물들지 말고
확철대오 자신에 중퇴 후 출가 7년 정진 속 진전없자 인도행 먹이 찾는 돼지새끼 몸부림에 ‘윤회’ 무서움 알고 교학 매진 ▲각묵 스님 화두가 끊이지 않았다. 자다가 깨어나면 화두부터 챙겨졌다. 남모를 믿음과 확신이 생겼다. ‘화두 하나만 타파하면 깨달음에 이른다 하지 않았는가!’ 선방에서 한 달만 밀어붙이면 생사는 곧바로 뛰어 넘을 것만 같은 충만감이 전해져 왔다. 대학교 3학년 1학기 때의 일이다. 송광사 여름수련대회 참가 후 화엄사 도광 스님을 은사로 삭발염의 했다. 부산대학교의 여정은 그걸로 끝이다. 화두타파 원력이 출가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지만 단초는 중학교 3학년 때
선원서 30여년 간 정진 소림초당에선 ‘장좌불와’ 중앙아시아 무슬림 땅에 홀로 계몽·전법 20년 째 ▲해제철이면 어김없이 이슬람국가인 키르기스스탄으로 달려가 그들과 대화를 나눈다는 법웅 스님. “내 안의 도량, 산사의 도량이 중생계로 이어지면 온 대지가 도량이다. 나눠야 한다. 오라고만 하지 말고 내가 가야한다”고 스님은 강조한다. 핏빛 같은 빨간 단풍과 푸른 소나무가 어우러진 덕숭산의 11월 아침. 고즈넉하다. 아직도 ‘무상’(無常)을 간파하지 못했다면, 이 산에 깃든 ‘가을’을 통해서라도 느껴보라는 듯 덕숭산은 소리 없이 모든 이를 품고 있었다. 수덕사에서 정혜사로 오르는 숲속 길.
존재 이유 고뇌하던 청년자유 찾아 마곡사로 출가 심지 않고 거둘 순 없어원한다면 당장 시작해야 ▲1966년 한 스님에게 “출가하면 물처럼 바람처럼 걸림 없이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대학생활을 접고 출가자의 길을 선택했다는 철웅 스님. 폐허가 되다시피 했던 광덕사와 인연이 닿은 스님은 곧 불사의 원력을 세웠고 온갖 비난과 음해를 극복하며 마침내 광덕사를 천안의 대표 사찰 중 하나로 재건했다. 천안 광덕산에도 가을이 찾아왔다. 시인이라면 이 풍광 앞에서 시 한 수 지으련만, 그런 내공 없으니 서산대사의 시 한수로 이 가을을 음미해 볼 뿐이다. ‘가을 풍광 멀리서나 가까이서나 하나같이 기이하니(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