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신문은 정론과 직설을 중시하는 불교계의 중요한 언론이지요. 그렇기에 위기의 순간에 더욱 빛이 났습니다. 종단이 위기에 처했을 때 사부대중의 의견을 수렴하고, 불자들이 가야 할 바른길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왔지요. 1994년 개혁종단이 탄생할 때나 최근 가톨릭 교단에서 광화문 일대를 성지화하려는 계획을 저지하고 있는 모습에서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있습니다.”김순석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이 최근 법보신문을 교도소·군법당·병원법당·공공기관 등에 보내는 법보시 캠페인에 동참했다. 김 위원은 법보신문과의 인연도 깊다. 2006년 5월
불교는 1700여년간 이 땅의 사람들과 함께 해오며 수많은 얘기를 만들어 냈다. 그 얘기들이 설화가 되고 문학이 되고 우리의 정서가 됐다. 불교문학으로 인해 우리 문학사는 한결 풍성해지고 다채로운 색채를 지닐 수 있었다. 그런데 불교문학에 대한 시선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불교문학이란 교리 해설이나 포교를 위한 기능적 담론에 불과하다는 편견 때문이다.이때 불교문학에 뛰어든 이가 김승호 동국대 명예교수다. 저자는 우연히 접한 승전(僧傳) 연구를 계기로 불교문학에 힘을 보태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30여년간 연구를 이어오며 숱한 논
선원빈 국장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가 인간적으로는 더없이 너그럽지만 언론인으로서는 칼날처럼 매서웠다고 기억한다. 선 국장이 왕생한 다음해인 1994년 12월 출간된 ‘솔바람 소리를 듣던 사람 선원빈’(불지사)에서 지인들은 그를 이렇게 추억했다.“일생을 불교에 대한 애정으로 불교의 장래를 걱정했던 선원빈 거사는 천년 고찰을 지켜온 소나무처럼 열정과 냉철한 비판과 정확한 논리, 웅대한 안목으로 불교 언론을 이끌어온 수장이었다.”(전 직지사 주지 법등 스님) “내가 인연을 가졌던 인물을 회고해 보는 일이 가끔 있다. 그러면 경전(耕田, 선
‘이제 돌이켜보건대 23년 동안 오직 한 길만의 불교언론에의 길이 당신의 생애를 다한 길이었습니다. 어찌 그렇게도 심심산천에서 금방 내려온 순정입니까? 어찌 그렇게도 깊은 땅속에서 솟아난 단단한 뿌리를 가진 마을의 당산 나무였습니까? 그런 당신의 넉넉한 시절 인연을 어디 가서 찾아야 합니까? 나도 그렇고 우리 불교언론의 젊은 식구들 모두, 당신의 큰 눈동자 하나씩 받들어 눈물 가득히 서천의 여래 곁에 노니는 당신을 오래도록 추모할 따름입니다. 부디 잘 가소서. 선 국장 영가이시여!’(고은 시인의 추도사 중)1993년 10월29일 서
‘…법보신문은 부처님의 깨달음으로 삼천대천세계의 눈이 되고 귀가 되고 입이 되고자 태어났다. 저 해와 같은 광명을 빌어 무량의 소리를 담은 목탁을 깎았다. 잠들지 않고 쉬지 않고 게으르지 않으며 굽힘이 없고 쓰러짐이 없고 부서짐이 없는 목탁을 만들었다. 둥그나 모나지 않고 곧으나 삐뚤어짐이 없으며 아무리 써도 닳지 않는 샘물처럼 넘치는 목탁을 빚었다.…’(월산 스님 창간사 일부)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한 불국사 조실 월산 스님은 법보신문 초대 발행인으로 명확한 불교언론의 방향을 제시했다. 스님이 직접 쓴 창간사는 원고지 7매 분량으로
김강유 (주)김영사 회장이 10월1일 왕생했다. 향년 76세.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35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0월3일 오전 8시다.1947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고인은 성균관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를 수료했다. 특히 1970년 가을 동국대 총장을 지낸 백성욱 박사를 찾아뵙고 사사한 것을 계기로 일생 불자의 길을 걸어왔다. 1976년 도서출판 김영사를 설립했으며, ‘행복한 공부’ ‘행복한 마음’ 등을 비롯해 2021년에는 백성욱 박사 전집(전 6권)을 펴내기도 했다.지난해 5월 재단법인 여시관을
성림당 월산 스님(聖林月山, 1913~1997)은 한국불교의 중흥을 이끈 고승이다. 금오태전 선사(金烏太田, 1896~1968)의 법을 이어 간화선을 진작시키고 선원과 강원을 개원해 많은 제자를 양성했다. 법주사, 신흥사, 동화사, 불국사 등 교구본사 주지를 맡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혼탁해진 사찰을 일신해나갔다. 총무원장·종회의장·원로회의 의장 등 조계종 주요 직책을 역임하며 종단의 기틀을 세웠고 한국불교 위상을 높이는 데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이와 함께 스님의 뚜렷한 업적의 하나가 법보신문 창간이다.스님은 화두를 깨친 선의 종장이
1년 전, 조계종 제37대 총무원장에 취임한 진우 스님은 “진심(盡心)으로 소통하고, 신심(信心)으로 포교하며, 공심(公心)으로 불교중흥의 새 역사를 열겠다”며 “부처님의 제자로서 깨달음의 길을 가는 수행자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대중들에게 약속했다.이후 매일 새벽 조계사에서 108배로 하루를 시작한 스님은 대통령에서 소외이웃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들의 말을 경청하고 조언했으며 진심어린 위로를 건넸다. 스님은 권위를 내려놓되 위의를 잃지 않았고, 진중함을 고집하지 않되 평생 가슴에 담고 살아도 좋을 삶의 지혜를 들려
백중을 일주일 앞둔 8월23일, 경기도 용인에 사는 장윤정(대일황·50) 불자는 그날도 ‘법화경’을 사경하고 있었다. 사경을 할 때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불보살님이 곁에서 지켜주는 것 같았다. 직접 사업체를 운영하고, 집안일에 횡성 성덕사 총무 업무까지 담당하고 있어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들이지만 어떻게든 1년 안에 ‘법화경’ 사경을 회향하겠다고 다짐했었다. 일정한 시간을 내기 어려웠기에 직장과 집에서 짬짬이 대학 노트에 정성껏 경전을 썼다.그렇게 1년여 만에 ‘법화경’ 사경을 회향할 수 있었고 남은 대학 노트 뒷부분에 옴마니
조주종심(趙州從諗, 778~897) 스님은 1500여년 중국 선종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임제 스님이 고함[喝]으로, 덕산 스님이 몽둥이[棒]로 사람들의 무명을 타파했다면 조주 스님은 언구로 죽이고 살리는 살활자재(殺活自在)의 묘용을 발휘한 선사로 유명하다.‘고불(古佛)’로 불렸던 조주 스님은 “원래의 부처(元古佛)도 진짜 부처(眞古佛)인 조주 스님에게 고개 숙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선의 경지가 출중했다. 지금도 선방 수좌들의 바랑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공안집인 ‘벽암록’ 100칙 중 조주 스님 관련 공안이 12칙이 실려
박창환 금강대 불교학부 교수가 9월2일 별세했다. 향년 56세. 빈소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 연세대 강남장례식장 3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9월4일 오전 6시, 장지는 경남 함양 선영이다.박 교수는 아비달마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문헌학자였다. 불교원전 언어인 팔리어, 산스크리트어, 티베트어, 한문을 비롯해 영어, 일어, 독어, 불어에도 능한 그는 불교문헌 연구의 기본기를 탄탄히 갖춘 학자였다.1986년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한 박 교수가 처음부터 불교학을 택한 것은 아니었다. 동서양 철학을 두루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레 불교로 관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화가 나면 공격성을 보이고 말을 함부로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에요.”아이의 반항에 당황스러운 것은 이 엄마만은 아닐 것이다. 아이는 왜 그렇게 행동하고, 어떻게 대해야 할까. 법륜 스님은 그 원인이 부모노릇을 포기하고 학부모 노릇에 치중하는 엄마아빠에 있다고 직격한다. 아이가 공부 잘하고 모두 부러워하는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데 급급해 아이를 무한 경쟁으로 내몬 필연적인 결과라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식을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
‘체념(諦念)’은 흥미로운 단어다. ‘희망을 버리고 아주 단념함’이란 뜻으로만 흔히 알고 있으나 국어사전에는 ‘도리를 깨닫는 마음’도 체념이다. 특히 한자사전에는 ‘諦念(체념)’을 ‘1. 도리(道理)를 깨닫는 마음 2. 아주 단념함.’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는 ‘희망을 버린다’는 의미가 아예 없다. 이는 체념의 원래 의미가 집착하는 마음을 끊고 현실을 긍정하므로써 도를 깨닫는 것이었음을 시사한다. 그런데 사람들에게는 욕망을 끊은 모습이 ‘희망을 버리는 것’으로 여겨졌고, 욕구 실현이 미덕이 된 근현대기를 거치며 의미의 전이가
‘숫따니빠따’는 ‘담마빠다’와 함께 가장 오래된 경전이다. 불자가 아니더라도 귀에 익숙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하늘이여, 비를 내릴 테면 내려라’는 유명한 구절의 출처도 이 경전이다.‘숫따니빠다’는 마지막 장의 이름에서 알수 있듯 ‘피안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경전이다. 문장 형식이 간결하고 내용이 쉽기에 남방불교권에서는 일찍부터 사랑받아왔다. 그러나 한역경전 중에는 이에 해당하는 경전이 없기 때문에 대승불교권에는 일본에서 19세기에 번역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정 스님
‘금강경’은 아무리 단단하고 뿌리 깊은 번뇌라도 단번에 잘라내는 반야의 검에 비유된다. 그렇기에 ‘금강경’의 공덕은 무작정 따라 읽는 데에 있지 않다. 그 뜻을 바르게 이해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이 책은 수행의 관점에서 ‘금강경’의 뜻을 풀이했다. 저자는 동국대 대학원과 연세대 교육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신행발원’ ‘백골관수행’ ‘신행의 공덕 및 가피’ ‘대승불교의 자력문과 타력문에 대한 연구’ 등을 집필한 법사다. 그는 ‘금강경’에 등장하는 사구게를 비롯한 용어를 상세히 설명한다. 또 무위심으로 행하는 수행이 참다운 수행이며,
임석규 수석연구관은 다양한 현장 경험을 갖춘 대표적인 문화재 전문가다.“전법은 부처님의 생애와 그분의 진리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일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깨달음에 다가가는 아주 좋은 방편이기도 하고요.”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 수석연구관이 최근 법보신문을 교도소, 군법당, 병원법당, 관공서 등에 보내는 법보시 캠페인에 동참했다. 그는 “법보신문은 어느 곳에도 치우침 없이 정론을 알려주는 신문이다. 사실보도에만 그치지 않고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연재물들은 법보신문의 가장 큰 장점이다”라며 “힘든 시기를 보내는 많은
유산기(遊山記)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산행했던 내용을 써내려간 기록 산문이다. 유산기에는 당대 사대부들이 다녀갔던 절에 대한 소상한 기록과 그들의 불교관도 확인할 수 있다. 산에 놀러가 스님에게 술을 요구하고 가마를 메게 하는 일이 잦았지만 스님을 존중하고 도를 주제로 환담을 나누는 모습도 나타난다.한국국학진흥원장인 저자는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건국대·서울대 법대 교수, 행정안전부 장관, 국회의원을 역임한 학자이며, 관료이고, 정치가다. 저자가 그간 자주 찾았던 11곳 사찰에 대한 다양한 얘기를 풀어내고 있는 이 책은 유산기를 많이
견진 스님은 계룡산 고왕암에서 꽃을 가꾸고, 나비와 산새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산승이다. 이 책은 산중에서 느끼고 발견하고 깨달은 일들을 5개 주제로 펼쳐낸 산문 시집이다.첫 주제인 ‘꽃’ 편에서는 산사 주변에 피는 부처꽃, 불두화, 산수국 등 35종의 각양각색 꽃을 촬영해 꽃의 아름다움을 칭송하고, 꽃말과 특징을 시어로 담아냈다. 이어 ‘나비’ 편에서는 대왕나비, 사향제비나비 등 22종의 나비 몸짓을 담았다. 동고동락하듯이 찾아오는 나비를 마치 손님 접대하듯 손등에 땀과 고귀한 꿀로 대하는 얘기. 거미줄에 걸린 나비를 사랑으로 방
새기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금방 날아가 버린다. 불교 경전에서 ‘서사수지독송(書寫受持讀誦)’의 공덕을 찬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좋은 글은 수시로 필사하고 외우고 소리 내 읽어야 몸과 마음에 스민다. 체화가 되고 자신의 지혜로 내면 깊숙이 자리 잡는다.용인 행복선원 선원장 연암 스님의 ‘고요한 소리’는 필사하고 외워도 좋을 책이다. 102개 아포리즘 형식의 짧은 글들은 읽고 새길수록 깊은 맛이 우러난다. 경전 공부 외에 위빠사나, 자비명상, 싱잉볼 명상 등 수행의 끈을 놓지 않았던 긴 세월을 거치며 무르익은 지혜의 언
한국불교태고종 인천교구종무원(종무원장 능해 스님, 인천 용궁사 주지)이 7월30일 오후 2시 인천 용궁사 대웅전에서 총무원장 상진 스님이 참석한 가운데 수재민 돕기 수해복구 의연금 모금 법회를 개최했다.이날 법회는 인천교구 총무국장 정수 스님의 사회로 삼귀의례, 반야심경 봉독, 종무원장 능해 스님 인사말, 총무원장 상진 스님과 범패박물관장 능화 스님의 격려사에 이어 수해의연성금 모금, 사홍서원 후 대웅전 앞 기념촬영 순으로 진행됐다.총무원장 상진 스님은 격려사에서 “종단 수해복구 성금 모금에 인천교구가 적극적인 협조를 해주신 데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