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한 행위를 목격할 때 우리는 분노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화를 내는 것은 마치 자신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처럼 느끼기도 합니다. 분노가 치솟을 때 대담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분노는 없던 용기마저도 불어넣어 줍니다. 마치 분노가 우리를 보호해 주는 것 같은 착각마저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속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속는 것입니다.…”-달라이라마의 『입보리행론』 법문 중에서. 부당한 폭력이나 공격에 대해 분노하며 대항하지 않고 그것을 묵묵히 수용하는 이들을 가리켜 우리는 겁쟁이라고 손가락질하곤 한다. 적의 공격이나 폭력에 대항하지 않는 모습은 무력하거나 비굴하거나 용기가 없어 보인다. 설혹 그 내면에 어떤 이유가 있다하더라도 그 겉모습만큼은 비굴하거나 용기가 없는 이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보리야, 인욕바라밀을 여래는 인욕바라밀이 아니라고 하노니, 무슨 까닭이겠는가. 수보리야, 내가 옛날에 가리왕에게 몸을 갈기갈기 찢길 적에 아상도 없고 인상도 없고 수자상도 없었느니라. 그 까닭이 무엇인가. 내가 옛날에 몸을 찢길 적에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었더라면 성을 내어 원망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니라.…” 불자라면 누구나 한두 번 즈음은 읽어 보았을 『금강경』의 제14장 이상적멸분 가운데 한 대목이다. 나와 너라는 집착을 포함해 모든 상을 떠나야만 적멸에 들 수 있음을 설하신 부처님께서 수행자였던 전생에 겪었던 일을 말씀하시고 있다. 부처님께서 비유하고 계신 전생담의 내용은 이렇다. 부처님께서 전생에 수행자로서 나무 아래서 좌선 수행 중이셨는데 마침 그곳에 가리왕이 궁녀들과 함께 소풍을 나
달라이라마의 수행원으로 30여 년간 그 분을 곁에서 지켜본 중국인 빅터 챈은 2004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인상적인 이야기를 했다. “달라이라마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거의 반세기에 걸쳐 단 한 번의 휴식기도 없이 수행을 지속해 왔다. 그는 끊임없이 시기, 분노, 질투 등 부정적인 마음을 제거하고 친절, 자비 등 긍정적인 감정을 키워나가는 수행을 하고 있다.” 달라이라마는 “나에게 고통과 상처를 준 사람에게 조차 미움이나 나쁜 감정을 갖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행복을 지키는 길”이라하며 심지어 “자비야말로 가장 이기적인 행동”라고까지 말한다. 하지만 달라이라마가 반평생을 거쳐 타인에 대한 원망의 마음을 제거하는 인욕 수행을 계속해온 것이 오직 자신의 수행만을 위한 것이었을까. 만약 그
「불교대사전」에 나와 있는 ‘인욕(忍辱)’의 의미는 ‘참고 견디는 것’이다. 한문의 의미만을 해석하자면 모욕이나 박해를 참고 견딘다는 뜻이지만 인욕에는 보다 포괄적 의미의 ‘인’을 포함하고 있다. 인욕의 산스크리트어 표기를 살펴보면 ‘크샨티(ksanti)’로 ‘참다’는 뜻과 함께 ‘이해하다’라는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얼핏 보아서는 한 단어의 쓰임새가 무척이나 다르게 여겨지지만 이것은 잠시 생각해볼 대목이다. 인욕은 그 실천을 통해 일체중생 누구라도 성불할 수 있다는 육바라밀 수행 덕목 가운데 하나다. 사바세계란 뭇 생명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고 많은 생명이 어울려 살다보면 내 생각이나 형편과는 다른 이, 혹은 이해하거나 용납하기 어려운 대상과 마주쳐야할 일이 수 없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들과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