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때 건달 짓은 생존 투쟁여자 친구 덕에 야쿠자 안돼 ▲히로나카 스님은 학창 시절 여자친구였던 부인 마치코씨 덕에 야쿠자가 아닌 스님이 되었다. 우리 집에는 ‘꿈’이라고 쓴 쪽자가 있는데 바로 우리 아버지가 쓰신 것이다. 서예에 능숙하신 아버지는 절에서나 학교에 나가서 아이들에게 서예를 가르치셨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0 여년이 지난 지금도 아버지의 제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올 정도다. 아마도 내가 진짜 ‘야쿠자’가 되지 않았던 이유는 아버지가 흰 쌀밥을 먹는 아이들의 스승이라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 점심시간 마다 보리밥뿐인 도시락 뚜껑을 열기가 쑥스러웠던 나지만 그래도 위축되지 않게 살았던 것은
임의대로 ‘학생보호회’ 조직임신한 중·고생 낙태 지원도 ▲히로나카 스님이 비행청소년 쉼터 사이코인에서 입소 청소년과 환하게 웃고 있다. 일본 열도 중심부인 아이치현 오카자키시(愛知縣岡崎市)에 있는 사이쿄인(西居院). 나는 이 자그마한 절의 주지이다. 동네 사람들이 나를 보고 ‘악동 스님’이라 부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아무도 못 말리는 진짜 악동이었기 때문이다. 그 경험이 오늘날 나를 만들었고, 바로 우리 절 사이쿄인(西居院)의 생활에도 반영되어있다. 우리 절에서 소위 말하는 ‘후레자식’을 받아드리기 시작한지 올해로 15년째이다. 학교불등교(不登校, 학교에 못가는 아이들), 비행(非行), 거식증(拒
▲때로는 반달눈으로 껄껄 웃으며 때로는 호통을 치고 야단을 치며 히로나카 스님은 15년 째 방황하는 아이들의 지킴이가 되고 있다. 동네 불량배에서 청소년 희망으로 밤늦은 시간 번화가를 다니면 거리를 방황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들의 거친 말투와 반항적인 시선은 곁을 지나가는 어른들을 위협하기도 한다. 술, 담배, 약물까지 복용하며 몸도 정신도 망가져가는 아이들 앞을 지나가며, 어른들은 마치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것처럼 빠른 걸음을 재촉한다. 그러면서 마음속에서 같은 생각을 한다. “우리 애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저 아이들의 부모 마음은 어떨까?” 다들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고 싶어 하는 이 현실 앞에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