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오란 본래 성품에는 번뇌가 없고 한량없는 지혜가 스스로 갖추고 있어 부처님과 털끝만큼도 차별이 없음을 말하며 점수란 본 성품이 부처와 더불어 다름이 없음을 깨달았지만 습기는 갑자기 없애기 어려우므로 깨달음에 의지해 닦아서 성인의 태를 기르는 것을 오래하여 부처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잔칫날 같이 걸고 푸짐했던 장날이 파하고 나니 항구는 다시 북적 거린다. 하루의 취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듯 붉은 해는 뱃머리에 걸려 있고 저 건너 피안의 섬으로 귀향하는 사람들이 서둘러 반야의 배에 오르고 있다. 섬으로 통하는 길은 금진과 신평 두 개의 배터가 있고 반야의 배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아무 것도 차별함이 없이 모든 것을 실어 나른다. 여기에는 돈오와 점수도 없고 더디고 빠름은 다만 사람에게 있을 뿐이다.
큰스님께서 말한 견성이 참으로 견성이라면 이는 곧 성인으로써 마땅히 신통변화를 나타내어 보통사람과는 다름이 있어야 할텐데 무엇 때문에 요즘 마음 닦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신통변화를 나투는 사람이 없습니까. 바람은 급하게 안개를 몰고 산꼭대기로 달음박질 쳐 오르고 마른하늘엔 천둥소리와 함께 번갯불이 지나간다. 숲속에 새들은 놀라 울음을 그치고 연밭에서는 청개구리가 일제히 합창을 시작한다. 연잎에는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저 건너 용두봉엔 벌써 소나기가 쏟아진다. 범부들은 보통 사람에게는 없는 특별한 능력인 신통변화를 부리는 것으로 공부를 삼고 또한 일념으로 화두를 참구해 나가는 학인들도 무시이래로 익혀온 습기인 밖으로 향하여 구하는 생각과 아는 마음이 일어나 화두를 놓치게 되면 마치 태양을 구름이
어떤 스님이 귀종화상에게 물었다. “부처가 무엇 입니까?” “내가 그대에게 일러주고 싶어도 그대가 믿지 않을까 두렵다.” “큰스님의 간절한 말씀을 어찌 감히 믿지 않겠습니까?” “바로 묻는 그대가 부처니라.” “어떻게 보림공부를 해야 합니까?” “한 티끌이 눈에 있으면 허공꽃이 어지러이 떨어진다.” 그 스님이 말끝에 몰록 깨달았다. 입정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는 밑 없는 배를 삼매의 바다에 띄우고 금당으로 서서히 침몰하는 장엄한 낙조의 후광에, 천리를 달려왔던 생각의 길이 문득 끊어지고 거금도는 어느덧 부처로 좌정하고 있다. 선지식의 간절한 한마디는 광겁장도(曠劫障道)의 치렁치렁한 무명을 걷어내고 본래 청정한 마음을 보게 한다. 다만 천년을 하루 같이 새벽을 알리는 닭처럼 진실한 믿음을 요구할 뿐이
만약 불성이 이 몸에 있다고 한다면 이미 몸 안에 있어서 범부를 떠나지 않았는데 무엇 때문에 저는 지금 불성을 보지 못합니까? 다시 분명하게 해석하여 깨닫게 해 주소서. 그대 몸에 있건만 그대 스스로 보지 못할 뿐이다. 네가 하루 동안에도 배고프고 목마른 줄 알며 춥고 더운 줄 알며 혹은 성내고 기뻐하는 것이 어떤 물건인가? 세상의 욕망과 부모 형제를 버리고 출가한 수행자는 연밭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과 같이 허허롭게 길을 떠나야 한다. 그러면 처처에서 깨달음의 기연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순백의 향기를 해풍에 실어 멀리 육지로 보내는 찔레꽃에서 그를 만나고 산모퉁이 돌아서면 티 없는 동심으로 빨갛게 익은 산딸기에 빙그레 미소 짓는 너를 만난다. 마음이 부처라는 사실에 더 이상 의혹이 사
과거의 모든 부처님도 다만 이 마음을 밝힌 분들이며 현재의 모든 성현들도 또한 이 마음을 닦는 사람이며 미래의 공부인들도 마땅히 이 법에 의지해야 한다. 원컨대 모든 수행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밖에서 찾지 말라. 심성은 물듦이 없어서 본래 스스로 원만하게 이루어진 것이니 다만 거짓 인연만 떠나면 곧 변함없는 부처이다. 수행이라는 것은 본래 청정한 마음을 회복하는 것일 뿐 그 밖에 특별한 견해를 구하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께서도 선정주의와 고행을 포기하고 다시 기력을 회복한 뒤 보리수 아래서 조용히 호흡을 살피고 마음의 관찰에 들어가 새벽별을 보고 정각을 성취 하였다. 별을 볼 줄 아는 이 마음을 깨친 것이다. 깨닫고 보니 이 마음은 깨달은 부처라고 해서 더한 것도 아니고 미혹한 범부라고 해서 덜함이 없는
삼계의 뜨거운 번뇌가 불타는 집과 같은데 어찌하여 그대로 머물러 긴 고통을 달게 받을 것인가. 윤회를 면하고자하면 부처를 찾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고, 부처는 곧 이 마음인데 마음을 어찌 멀리서 찾으랴. 마음은 이 몸을 떠나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몸은 거짓이라서 태어남이 있고 죽음이 있지만 참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없어지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온몸은 무너지고 흩어져 불로 돌아가고 바람으로 돌아가지만 한 물건은 언제나 신령스러워 하늘을 덮고 땅을 덮는다고 하였다. 『법화경』 「비유품」 삼계화택에서는 본래 청정한 마음이 경계를 따라 한없이 유전하다가 꼬일데로 꼬인 모습이 탐진치 삼독으로 인한 불타는 집과 같은 상황에 비유하고 있다. 세상은 끝없이 무상을 설하고 있다. 생사의 불길이 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