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꾸며서 다른 이의 사랑을 받아야 하고 얼굴에 분을 바르면서 피부를 만지고 향내를 맡으니 흡사 정귀처럼 기괴할 뿐이다. 하는 일마다 다른 이를 위하는 것이고 내생의 부채덩어리를 만들고 있을 뿐이다. 슬프다! 예나 지금이나 그 누가 이를 알아차리고 놀라는 사람이 있겠는가. 오직 칠원 땅에 살았던 장생만이 깊은 뜻을 조금 알아차렸다고 하겠구나.자기 주장이 맞다 하는 것은모두 그림자와 메아리일 뿐그림자에 지배 당한 사람에고요함 뜻 말해주기 어려워부채 이야기내가 기축년 여름날 우연히 광사를 만나서 묵의 동곽에 머물게 되었다. 글씨가
그 때문에 장자에서 “천지가 나와 함께 생겨났고 만물이 나와 더불어 한 몸이다. 만물을 모아서 자기 몸으로 삼는 이는 오직 성인뿐일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아! 지극하고 극진하여라. 오묘함이 일심에서 극치를 이루어 빠트리는 일이 없구나. 그러므로 배우는 이들은 진실로 이 배움의 요체를 몰라서는 안 된다. 마음은 여여하고 평등한데경중 차별함 때문에 불평등마음은 모든 행동의 뿌리며고뇌는 전도몽상서 생겨나마음 다스리기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은 마음을 텅 비우는 데 달려있고, 마음을 유지시키는 것은 평정상태를 유지함에 달려있고, 마음을
‘가난함에도 편안하게 대처하기(安貧)’‘논어’에서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고 부자이면서도 교만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교만하면 부를 잃게 되고 아첨하면 가난이 더해진다. 그러므로 가난하면서도 도를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한 것이다. 가난하면서도 도를 즐길 수 있다면 즐겁지 않은 것이 없게 된다. [제자가 “가난하면서도 아첨하지 않고 부자이면서도 교만하지 않으면 경지가 어느 정도입니까”하고 질문하자 “그런대로 괜찮은 경지이지만 가난하면서도 도를 즐기고 부자이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했다. 역자주]말에는 핵심 종지가 있고
우리의 스승인 부처님은 성인(聖人)이신데 출가하여 도를 익히셨으니, 설산(雪山)에 머물면서 수행을 하여 정각을 이루었다. 그리고는 보리도량(菩提道場)에서 설법을 하셨으니 이곳은 설산의 청량한 곳이다.중생은 똑같은 법성 근원에있으면서도 동정과 미오의차별을 스스로 만들어내니경계에 흔들리지 않게 한 것그렇게 하신 뜻은 무엇이었을까. 중생들이 다함께 오욕(五欲)의 불길 속에서 모두가 번뇌에 불타면서 밤낮으로 지져지고 볶아지면서도 그 불길을 끄지 못하기 때문이리라.그런데 나는 홀로 벗어나고자 하고 있으니 모든 것이 끊어져버린 곳이 아니면 이
옛사람들이 시를 논하면서 모두 선(禪)으로 비유를 하였는데 이것은 시(詩)야말로 진짜 선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 것이다.구절을 시로만 보려 하면꼬마 아이가 어른 이야기뜻 모른채 읽는 것과 같아이태백 선 몰라도 도 경지도연명(陶淵明)은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꽃을 따 들고(采菊東籬下)/ 무심하게 남산을 바라보네(悠然見南山)/ 산 기운은 저녁 무렵에 더 아름답고(山氣日夕佳)/ 날던 새들이 둥우리로 함께 돌아오네(飛鳥相與還).이 시의 끝 부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이 가운데 참된 의미가 들어있건만(此中有意
진헐료선사가 병이 들어 드러눕게 되었을 때 시를 지어 마음을 표현했다.‘병이 덜컥 찾아온 후에야 비로소 이 몸이 고통 덩어리임을 알아차리나니(病後始知身是苦)/ 건강할 땐 대부분 다른 사람 위해서 바쁘게 미쳐 돌아간다네(健時多爲別人忙).’진·당 모든 서첩 애서 삼고도송 4대가 서첩엔 생각 못 미쳐유배지서 동파 필체 풍미 알고모른 결에 서법 가까이하게 돼진실하도다. 이 말씀이여!‘사람의 본성은 본래 물도 아니고 불도 아닌데(性本非水火)/ 저리도록 써늘한 느낌과 괴롭도록 뜨거운 느낌이 저절로 생겨나는구나(寒熱自然生).’이것은 내가 예전에
휘몰아치는 홍진 속 느려터질 때도 있는 세상길에서 수많은 영웅들이 다 잘못되고 말았다. 마음을 달래가면서 일을 즐기고 시 한수 읊조리고 술 한 잔 꺾으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하는데, 거문고 뜯고 독서하는 일이 비록 멋진 일이기는 하지만 즐거움은 오히려 투호 살 하나에 양보해야 한다.이 시대의 사람들은 깜깜하여오욕락 운동장서 악연만 지어윤회 벗어날길 구하지 않으면지져지고 볶아짐 면키 어려워잔치가 벌어졌던 금곡(金谷)과 난정(蘭亭)은 지금 황폐해졌으니 허허로운 명성이 있다 해도 사람과 더불어 함께 사라져버렸다. 대나무 숲 아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