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만약 전세에 심은 종자를 알고자 한다면 금생에 받는 것이 그것이다. 만약 미래생의 열매를 알고자 한다면 금생에 짓는 것이 그것이다”라고 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지능과 재주와 기술을 믿으면서 공명과 부귀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고 있으니, 공명과 부귀는 재주와 지능으로 가져올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농부가 좋은밭 골라 갈고때에 맞춰 씨를 뿌린 후에가을에 하나의 씨앗에서백배 수확하는 것과 같아내가 전생에 선정을 닦은 것이 금생의 재주와 지혜를 만나서 그렇게 되는 것이니 얻었다고 해서 기뻐하는 사람은
(법문은) 번뇌를 녹여내는 도구이다. 이른바 공법(空法)이라고 했을 때 공법은 부처님의 마음이니 이것으로 밝혀야 할 일은 부처님의 실천행이다.세상사람 중 어리석은 이는생사가 주야로 돌고 삼세의윤회가 어제가 있고 오늘이있는 것과 같음을 알지 못해부처님을 배우는 이는 우리 자신의 마음으로 부처님의 마음을 체득하여 일상생활에 벌어지는 일에서 부처님의 실천행을 하는 효과를 내야한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있는 부처님의 마음으로 자신의 마음에 있는 부처님의 실천행을 배우고 자신의 마음에 있는 번뇌를 끊고 자신의 마음에 있는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사홍서원 이야기사홍서원은 ‘중생이 가이 없지만 모두 제도하고자 서원을 세웁니다(衆生無邊誓願度)’ ‘번뇌가 끝이 없지만 모두 끊고자 서원을 세웁니다(煩惱無盡誓願斷)’ ‘법문이 한량없지만 모두 배우고자 서원을 세웁니다(法門無量誓願學)’ ‘불도가 위없지만 모두 이루고자 서원을 세웁니다(佛道無上誓願成)’라고 원을 세우는 것이다. 이 네 가지는 우리 불제자들이 보살행을 닦는 자로서 일으키는 것이다. 그런데 보살은 별다른 사람이 아니라 마음을 크게 낸 범부(大心凡夫)이니 번뇌의 티끌 속에서 자신을 업그레이드시켜 부처가 되고자 확고한 뜻을 세운
“만약 한 부처님만 혼자 갖추고 있는 것이라면 또 어떻게 ‘일체중생의 몸에서 정각을 이룬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또 ‘화엄경’에서 말하기를 ‘기이하도다, 기이하도다. 일체중생이 모두 여래의 지혜덕상을 갖추고 있구나’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래의 덕상은 법신 전체입니다. 중생들이 통째로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이니, 어찌 부분만 갖추고 있겠습니까.비늘·날개·털 달린 모두가색신삼매 나타냄을 알아마음 밖 다른 존재 없어도청산이 눈 가득히 들어와삼조 승찬 스님이 ‘신심명’에서 ‘완전하기가 태허공과 같아서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다’고 하였습니
“그런데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햇볕이 내리쬐는데 전등불을 켜는 것과 크게 같고 뱀을 그리면서 다리를 그리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장자께서는 잘 새겨들으십시오.”중생불성이 각각 나누어서갖추는 것이라면 일체중생모두가 각각 부처님 이룰 것이렇게 여러 부처님 있게 돼무정불성 이야기내가 광산에서 병 치료를 하면서 문을 닫아걸고 여러 인연을 거절하고 있었는데 공일자(空一子)가 문을 두드리면서 질문하였다.“저는 인간세계에서 걸식을 하고 있습니다. 들으니, 군자들이 불성의 의미를 담론하면서 어떤 사람은 무정설법을 믿지 않고, 어떤 사람은 중생
아, 어떤 사람이 진실로 양의의 마음을 활용해서 나라를 다스린다면 어느 나라인들 다스려지지 않겠으며,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는 마음을 지니고 만물을 다스린다면 어떤 것인들 수용하지 못하리오. 만물을 수용하면 다 함께 포용할 수 있고 나라를 다스리면 겸선(兼善)을 행하는 것이니, 이것이 성인이 공을 이루는 것이다.자백이 ‘차광’ 이름한 누각이 누각은 광명과 하나라만상 받아들여 일체 융섭광명 밖서 누각 찾지 말라대장부가 일을 행함이 이와 같다면 구사하는 테크닉은 다르더라도 이루는 공은 같은 것이며 이름은 달라도 실제의 알맹이는 똑같은 것
“이러한 때를 당해서 마음의 지혜가 곤궁해져 빠져 나가려해도 방법이 없고 탈출하려해도 수가 없게 됩니다. 구제해주길 바라도 사람이 없으니 소리를 질러본들 그 누가 친하게 다가오겠습니까. 이게 어찌 허둥지둥 할 일이겠습니까. 형색을 드러내어 끙끙 신음소리를 내면 깨어있는 사람이 어떻게 정상상태로 여길 수 있습니까. 호되게 소리를 지르면 벌떡 일어나게 됩니다. 한 번 깨달아 크게 깨어나 꿈속의 일을 돌아보면 어렴풋하게 벌어졌던 일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꿈속의 일을 찾아보아도 얻을 수 없고 말하려 해도 미치지 못합니다. 이것을 깨어있는
늪과 산 이야기들으니, 장생이 말하기를 “골짜기에 배를 감추고 산 전체를 늪 속에 감추고 나서 단단하게 감추었다고 여긴다. 그러나 힘이 센 자가 등에 짊어지고 달아나버리는데도 깜깜한 사람은 알아차리지 못한다”라고 하였다.[감산 스님은 천진의 상태를 유형의 존재에 감추는 것은 배를 골짜기에 감추는 것과 같고 유형의 존재를 천지에 감추는 것은 산을 늪 속에 감추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역자주]이 말은 감추는 것이 있으면 짊어지고 달아나버리는 자가 있지만 감추는 것이 없으면 짊어지고 달아나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감춤이 없는 것을 지극한
얼굴을 꾸며서 다른 이의 사랑을 받아야 하고 얼굴에 분을 바르면서 피부를 만지고 향내를 맡으니 흡사 정귀처럼 기괴할 뿐이다. 하는 일마다 다른 이를 위하는 것이고 내생의 부채덩어리를 만들고 있을 뿐이다. 슬프다! 예나 지금이나 그 누가 이를 알아차리고 놀라는 사람이 있겠는가. 오직 칠원 땅에 살았던 장생만이 깊은 뜻을 조금 알아차렸다고 하겠구나.자기 주장이 맞다 하는 것은모두 그림자와 메아리일 뿐그림자에 지배 당한 사람에고요함 뜻 말해주기 어려워부채 이야기내가 기축년 여름날 우연히 광사를 만나서 묵의 동곽에 머물게 되었다. 글씨가
그 때문에 장자에서 “천지가 나와 함께 생겨났고 만물이 나와 더불어 한 몸이다. 만물을 모아서 자기 몸으로 삼는 이는 오직 성인뿐일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아! 지극하고 극진하여라. 오묘함이 일심에서 극치를 이루어 빠트리는 일이 없구나. 그러므로 배우는 이들은 진실로 이 배움의 요체를 몰라서는 안 된다. 마음은 여여하고 평등한데경중 차별함 때문에 불평등마음은 모든 행동의 뿌리며고뇌는 전도몽상서 생겨나마음 다스리기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은 마음을 텅 비우는 데 달려있고, 마음을 유지시키는 것은 평정상태를 유지함에 달려있고, 마음을
‘가난함에도 편안하게 대처하기(安貧)’‘논어’에서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고 부자이면서도 교만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교만하면 부를 잃게 되고 아첨하면 가난이 더해진다. 그러므로 가난하면서도 도를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한 것이다. 가난하면서도 도를 즐길 수 있다면 즐겁지 않은 것이 없게 된다. [제자가 “가난하면서도 아첨하지 않고 부자이면서도 교만하지 않으면 경지가 어느 정도입니까”하고 질문하자 “그런대로 괜찮은 경지이지만 가난하면서도 도를 즐기고 부자이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했다. 역자주]말에는 핵심 종지가 있고
우리의 스승인 부처님은 성인(聖人)이신데 출가하여 도를 익히셨으니, 설산(雪山)에 머물면서 수행을 하여 정각을 이루었다. 그리고는 보리도량(菩提道場)에서 설법을 하셨으니 이곳은 설산의 청량한 곳이다.중생은 똑같은 법성 근원에있으면서도 동정과 미오의차별을 스스로 만들어내니경계에 흔들리지 않게 한 것그렇게 하신 뜻은 무엇이었을까. 중생들이 다함께 오욕(五欲)의 불길 속에서 모두가 번뇌에 불타면서 밤낮으로 지져지고 볶아지면서도 그 불길을 끄지 못하기 때문이리라.그런데 나는 홀로 벗어나고자 하고 있으니 모든 것이 끊어져버린 곳이 아니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