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최고의 역경승을 꼽자면 단연 구마라집 삼장(343-413)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가 번역한 유려한 문체의 경전들은 이후 동아시아 불교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의 수많은 역경 불사는 대부분 장안에서 이루어졌다. 현재 시안에는 장구한 세월을 거쳐 그의 숨결을 유유히 전하는 사찰이 남아있으니, 바로 초당사(草堂寺)이다. 초당사는 시 중심에서 서남으로 약 35km 떨어진 후이취(鄠邑區)의 읍내에 자리한다. 산문(山門) 앞에 세워진 비석에는 “삼론종조정(三論宗祖庭)”이란 비문이 새겨져 있어, 이곳이 구마라집을 비조로 하는 삼론종
1930년 2월 4일자 ‘조선일보’는 잘생긴 석조귀부의 사진과 함께 ‘唯一한 新羅古蹟인 石彫刻의 龜首發見’이란 기사를 싣고 있다. 기사에는 “경성 교외에서 단 하나인 신라시대의 고적을 총독부촉탁 加等灌覺(가토 간카쿠), 경성부사 편찬주임 岡田貢(오카다 미츠구) 양 씨가 발견하였다. 창의문 밖에서 세검정을 지나 북한산을 향하여 약 10정(약 1km) 되는 구기리 80번지에서…비면이 없어 누구의 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신라시대의 큰 절이었던 장의사의 유적과 가깝고…”라고 쓰여있다. 석조귀부가 있었다는 구기동 80번지에는 현재 개인주택이
의상의 관음신앙 자료로는 ‘삼국유사 낙산이성 관음정취조신’조와 승 익장(益莊)이 찬술한 ‘낙산사기문’(신증동국여지승람 양양도호부조), 그리고 의상의 찬술로 전해져 온 ‘백화도량발원문’이 일찍부터 주목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기본적인 사료로 활용되어 온 이들 자료 가운데 ‘백화도량발원문’이 문헌학적인 검토를 통해 의상의 진찬일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됨으로써 의상의 관음신앙에 대한 이해는 원천적으로 재검토를 요구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백화도량발원문’은 고려 충숙~충혜왕대(1313~1344)에 활약한 체원(體元)이 충숙왕 15년(
태고종 신년하례법회에 교계의 이목이 쏠렸다. 총무원, 중앙종회, 호법원 등의 주요 종무기관이 한목소리로 한국불교 제2종단으로의 재도약을 천명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각 지방 종무원을 방문하며 화합을 당부했던 총무원장 상진 스님은 “태고종도가 하나 된 마음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우리가 바라던 종단의 모습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중앙종회 의장 시각 스님은 “종단 현실을 올곧이 살펴 새로운 태고종을 위한 여건과 환경이 조성되도록 적극 협력할 것”이라고 했고, 호법원장 혜일 스님도 “종단발전을 이루는 갑진
제19교구 본사 지리산 화엄사가 1월 6일 화엄사 화엄원에서 ‘신년하례 및 화엄법회’를 봉행했다.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을 비롯해 부주지 우석 스님 등 사부대중 400여명이 동참했다. 화엄사 신도들은 스님들에게 3배를 올리며 건강한 해를 보내길 발원했다.덕문 스님은 법문에서 “올해에도 부처님 법을 올바른 믿음을 바탕으로 바르게 이해해서 실천하는 신·해·행(信·解·行)을 늘 습관화 되어 있을 때 우리는 어제보다 오늘이 더 행복하고 이것이 계속 반복돼서 항상 행복해질 것(증, 證)”이라며 “‘신해행증(信解行證)’ 4가지를 바탕으로 부처
안식국(安息國·Parthia, BC 240~AD 226)의 왕위를 버리고 출가한 안세고는 득도 후 여러 나라를 유행하며 홍법에 힘썼다. 그가 언제 중국 땅을 밟았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출삼장기집’의 기록은 후한 환제(147~167년 재위) 초에 장안에 입성하였다고 전한다. 안세고는 그로부터 약 20여 년간 장안에 머물며 35부 41권의 경전을 번역하였다. 후한 명제(57~75년 재위)가 꿈에서 부처님의 상호를 뵌 후 가섭마등과 축법란을 낙양에서 맞이하여 백마사를 세우고 ‘42장경’을 번역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그 진위는
승보종찰 송광사 서울 분원인 법련사(法蓮寺)가 창건 50주년을 맞았다. 서울 불자들의 신심을 고양해 온 법련사가 교계 안팎으로 미친 영향력은 지중하고도 지대했다. 사찰서점의 효시인 불일서점(1984), 교계 최초의 전문 미술관으로 기록된 불일미술관(1995)과 전통찻집인 연다원(蓮茶院) 등은 불교 생활 속에 우리의 전통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시민들에게 각인시켰다. 불일출판사(1984)와 불일회보(1980)는 부처님의 지혜를 올곧게 전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도심 포교의 새 지평을 연 법련사는 불교사에서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
각황전 법당 안에 계셔야 할 부처님이 마당으로 나오셨다. 혹여 법신에 생채기라도 생길까 정성껏 천으로 감싼 부처님을 이운하는데 한 줌이라도 힘을 보태고자 모여든 사부대중의 질서정연한 모습이 꽤나 엄숙한 분위기임을 말해준다.사진은 일제강점기 때인 1937년 진행된 구례 화엄사의 각황전 보수공사 시기에 촬영된 것이다. 보수공사로 인해 각황전의 불상을 모두 대웅전으로 이운했는데, 이 사진은 각황전 보수공사를 마친 후 임시로 대웅전에 모셔져 있던 불상을 다시 각황전으로 이운하는 순간의 기록이다. 각황전의 불상은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과 사보살
2007년 서울 은평뉴타운 예정지에 대한 문화유적 발굴조사 과정에서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대형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그리고 그 유적에서 ‘三角山靑潭寺三宝草’(삼각산청담사삼보초)라 적힌 암키와가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 모았다. 청담사는 통일신라시대 최치원이 선정한 10대 화엄사찰 가운데 한 곳이었기 때문이다.최치원이 만년에 해인사에 은거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895년부터 10여년 이상을 해인사에 은거하면서 많은 화엄관계 기록을 남겼다. 즉 의상 스님에 관한 ‘부석존자전’, 당나라 고승 법장(法藏)의 전기 ‘법
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소장 고승학)가 1월 12일 9시 30분부터 화상회의 줌(Zoom)으로 ‘제3회 온라인 국제학술세미나’를 개최한다. 주제는 ‘동아시아 불교의 시대정신-동체대비와 불교공동체(Great Compassion without Differentiation: Heart of Buddhist Communities)’이다.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는 ‘동아시아 불교의 시대정신’을 대주제로 천태종의 3대 지표인 ‘애국불교, 생활불교, 대중불교’에 대해 논구하는 온라인 국제학술세미나를 기획했다. 이번 온라인 학술세미나는 2021년 12
서사 장르의 대중예술은 소설에서 영화로, 영화에서 웹툰으로 옮겨온 지 오래되었다. 1980년대에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적지 않았던 반면, 2020년대에는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적지 않은 것이 이러한 대중문화 현상의 방증이다. 웹툰은 2010년대 이후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중예술로 자리 잡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한해 한국 만화산업 매출액이 총 1조원에 달하고 있다. 다행이 웹툰의 인기에 발맞춰 불교적인 제재의 웹툰이 창작돼 발표됨으로써 포교의 호기를 맞고 있다. 잘 만들어진 불교소재의 웹툰이야말로 최고의 포
“종교는 과거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다양화된 시대에는 종교가 인간의 고민과 문제들에 대답을 줄 수 없다. 이제 종교를 초월한 삶의 방식과 행복을 찾아야 한다.” 달라이라마는 언제나 종교를 넘어 보편적 도덕과 현실인식, 개인의 내적 각성을 당부한다. 그렇기에 가난, 기아, 전쟁, 환경문제 등 누적된 지구적 고통에 관한 지혜를 전한다. 세계에서 영향력있는 정치인·종교지도자·유명인은 달라이라마를 어떻게 바라볼까.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그는 나의 좋은 벗(good friend)입니다. 말 그대로 자비를
달라이라마의 한국 방문이 ‘다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33·34대 총무원장을 역임한 자승 스님(1954~2023)이 입적하기 한 달 전 중앙종회 종책모임 ‘불교광장’에서 달라이라마 방한 법회를 제안하면서부터다. 자승 스님은 “달라이라마 방한 추진을 계기로 불교계 종단이 화합하고 청년불교가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2027년 8월 서울에서 열릴 세계 가톨릭 청년대회에 교황 참석이 확실시되는 점, 달라이라마 세수가 여든아홉인 점도 방한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로 꼽혔다. 법보신문은 ‘달라이라마 톺아보기’를 주제로 새해 특집을 마련
2024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갑진년(甲辰年)으로 푸른 용의 해다. 푸른색의 ‘갑’과 용을 의미하는 ‘진’이 만났다. 청룡은 동쪽 방위를 지키는 수호신이자 만물의 근원인 물을 관장하는 수신의 성격이 강하다. 십이지신 중 유일한 상상의 동물이자 변화무쌍한 초자연적 존재이다. 수신과 풍요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갑진년에 기대가 부푼다. 용은 예로부터 기린, 봉황, 거북과 함께 신성한 동물인 사령(四靈)으로 여겨져 왔으며 많은 설화 속에서 최상의 무기를 가지고 다양한 능력을 보유한 수호신으로 묘사된다. 중국 고대의 책 ‘관자(管子)
수많은 고승들은 청춘의 한복판에서 깨달음을 이뤘다. 2011년 본지가 조사한 43명 고승들의 평균 오도 나이는 32.4세였다. 그 가운데 30대가 절반이 넘는 22명으로 가장 많았고, 20대가 14명으로 뒤를 이었다. 조사 결과만 보더라도 승가공동체는 혈기 넘치는 청년이 모여있는 집단이었고, 불교는 활기넘치는 청춘의 종교였다. 깨달음을 얻기 위한 선사들의 목숨을 건 수행도 결국 굳건한 보리심과 맑은 식(識),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체력과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한국 선불교의 중흥조 경허 스님(1846~1912)도 젊음의 꽃이 만개
신라말 대표적인 고승 범일(810~889)국사는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당시 새롭게 유행하던 선불교를 배우고 귀국해 강릉 굴산사를 중심으로 구산산문 가운데 하나였던 사굴산문을 개창한 뛰어난 선승이었다. 동시에 민간 신앙에서 강릉을 비롯한 영동지역을 수호하는 신으로,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된 강릉단오제의 주신(主神)이기도 하다. 한국불교사에서 생불(生佛)이나 보살로 추앙되는 고승들이 더러 있지만, 민간 신앙에서 주신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책은 불교계 전방위 지식인으로 불리는 자현 스님이 선종에 뿌리를 둔
의상의 관음신앙 이해에서는 ‘삼국유사 낙산이성 관음정취조신’조가 일찍부터 기본사료로 활용되었다. ‘낙산이성 관음정취조신’조는 조목 이름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낙산사 창건과정에서 의상뿐 아니라 원효와 범일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고 있으며, 관음보살과 함께 정취보살이 같이 봉안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고려 후기 몽골 침략 과정에서 관음신앙이 새롭게 주목받게 된 사실도 전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의상의 관음 진신 친견 설화의 부분만 발취해 해석하는 종래의 편의적 접근방법으로는 의상의 관음신앙 진실과 이후의 변화 과정, 낙산사 연혁의
“여행이란 자신을 돌아보고 견해를 넓혀 마음을 치유하고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순례는 몸과 마음이 함께하는 여행이며, 그렇게 몸과 마음이 함께하는 순례를 할 때 각자 마음에 발원이 생기게 되고 그 발원을 성취하는 길을 스스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이상원 대표는 어느 날 이처럼 “우리가 여행하는 것은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실크로드여행사에 ‘마음여행’을 더했다. 실크로드여행사가 ‘마음여행 실크로드여행사’가 된 이유다. 그렇게 순례자들의 감명 깊은 여행을 위해 고심하면서 인도에서 시작한 성
‘생사가 없다하나 생사 없는 곳이 없구나. 더 이상 구할 것이 없으니 인연 또한 사라지는 구나.’(자승 스님 열반송)12월3일, 겨울바람 시린 서울 조계사 마당에서 봉행된 자승 스님의 영결식장엔 안타까움과 무거운 혼란이 교차했다. 자승 스님의 마지막 모습이 던진 충격이 세간과 출세간 모두에 컸기 때문이다. 11월29일 늦은 밤, 원적 소식이 알려지고 조계사에 분향소가 차려지는 동안 스님의 행적이 하나둘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안성 칠장사 CCTV에는 입적 당일 자승 스님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손수 차량을 운전해 오후 3
조계종 전 총무원장 자승 스님의 입적을 애도하는 해외 조문이 이어지고 있다. 조계종 사회부가 12월8일 인도 다람살라와 주한 미국대사관이 자승 스님의 입적을 애도하는 조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세계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의 비서 치메 R. 최캬파는 12월5일 조문을 통해 “조계종 전 총무원장인 자승스님의 입적을 알게 되어 매우 유감”이라며 “달라이라마 존자께서서도 위로의 말씀을 여러분 모두, 그리고 한국 불자들에게 전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이어 “자승 스님은 더이상 저희와 함께 있지 않지만 우리는 입적한 스님께서 의미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