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되면 늘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줬던 다정다감한 언년이 할머니가 생각난다. 할머니는 위암으로 3년을 투병하고 74세에 정토마을에 왔다가 진달래가 만개하던 다음해 봄날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는 40대에 일찍 암으로 죽은 남편을 대신해 함양에서 홀로 농사지으며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모두 가르쳤다. 하지만 암이 온몸으로 전이돼 정토마을에 온 후에는 찾는 사람 없이 외롭고 쓸쓸한 시간을 보냈다. 자식들이 아무도 오지 않는 연유가 궁금했다. 딸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보니 고향집에 얼마 되지 않은 논 몇 마지기와 시골집, 그리고 밭을 큰아들에게 물려주자 다른 자식들이 모두 할머니를 외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큰아들밖에 모른다는 딸의 목소리에서 원망
봄 햇살 가득한 정토마을 뜰에 앉아 지난 기억들을 회상해보니 가슴 시리게 불러보고 싶은 스님이 있다. “스님, 저 능행입니다. 이제 정말 병원이 지어지려나 봅니다.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좀 늦어졌네요. 내생에서라도 돕겠다는 약속 꼭 지키셔야 합니다.” 1997년 여름, 평소 친분이 있던 의사선생님에게 연락을 받았다. 폐암 말기로 곧 임종을 해야 하는 환자가 있는데 스님인 것 같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덥수룩한 머리와 긴 손톱, 땀으로 찌든 환자복에서 나는 지독한 냄새까지,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주한 환자의 모습은 처참함 그 자체였다. 스님은 당시 오십대 중반으로 기침이 멈추지 않아 찾아간 병원에서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입원 중
마지막을 준비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오순도순 머물다가는 정토마을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상실’이다. 이곳에서 환자들은 사회와 가족, 자신의 삶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스스로를 발견하며 힘들어한다. 자신의 존재가 가족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헤아리며 상실감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자제병원 상량법회 하루 전이던 3월31일, 두 가지 상실을 만날 수 있었다. 먼저 암으로 투병하던 아내를 잃은 거사님이 정토마을을 찾아왔다. 아내의 임종을 돌봐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는 거사님에게서 술 냄새와 함께 외로움과 무기력함이 짙게 느껴졌다. 거사님은 직장에 나가겠다는 의욕도 없이 술로 상실감을 달래고 있었다. 이어 1년 전 딸을 백혈병으로 잃은 보살님의 전화를
봄비가 하루 종일 부슬거리며 땅을 적시던 날, 공사로 어수선한 마당에서 매화가 맑은 꽃망울 드러내며 향기를 흩뿌린다. 문득, 어머니 배에서 태어나 살아온 날들을 헤아려보니 50년이 넘는다. 그 세월 속에서 고통과 갈등, 번뇌는 쉼 없이 일어나고 사라져왔다. 하지만 언제나 파도처럼 일렁이는 죽음을 인식하고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은 그러한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이 돼주곤 한다. 며칠 전 정토마을 공동체 안에 있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학생들과 인도 다람살라에 다녀오는 길에 델리 근교 화장터에 들른 적이 있다.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냄새에 속이 울렁거렸다. 화장터에는 죽은 사람의 몸이 몇 개의 나뭇가지 위에서 타고 있었고 그 옆으로 사람들이 시신을
나는 작은 언덕 오르면 망망한 바다가 끝없이 펼쳐지던 남녘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나이가 같았던 남자아이와 함께 7살까지 한 동네에서 어울리며 자랐다. 3년 전, 소꿉친구였던 그 거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40년만의 연락이어서 무척 반가웠다. 하지만 거사님은 아들이 완치가 어려운 병을 진단받았다며 힘들어했다. 당시 겨우 17살이던 거사님 아들은 폐로 전이된 암으로 인해 세 번의 큰 수술을 받는 등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그리고 3년의 시간이 흐른 며칠 전, 나는 거사님에게 문자 한통을 받았다. “스님, 갔습니다. 그 녀석이 가버렸습니다.” 거사님은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흐느끼고 있었다. 아들은 3년 동안 몸과 마음을 괴롭혔던 온갖 고통을 이승에 놓아두고
2월의 끝자락, 창밖에는 눈과 비가 나란히 내린다. 그 모습이 겨울과 봄의 징검다리 같기도 하고 삶과 죽음의 모습 같기도 하다. 며칠 전 나는 도반 아버님의 마지막 여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어느 늦은 시간, 언제나 정토마을과 함께했으며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도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는 자신의 아버님이 임종했으며 스님의 임종기도가 꼭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시골마을 어귀 느티나무 사이로 자리 잡은 집은 소박한 충만이 배어있었다. 작은방, 고즈넉이 내리는 고요 속에서 참으로 맑아 보이는 어르신을 만났다. 중풍으로 3년간 자리에 누워있던 아버님을 2남 1녀 자식들과 아내가 돌봤다고 했다. 돌아
▲능행 스님의 호스피스 병동에서 ‘태어나면 죽음이 있거늘 / 그 누가 죽지 않을 수 있겠느냐’ (‘법구유경’) 7년 전, 쑥이 파릇하게 돋아나던 이른 삼월의 어느 날 도반이 찾아왔다. 그는 참 강직하고 반듯해 대나무 향기를 느끼게 했다. 하지만 그날 창백한 얼굴에 억지로 웃음을 짓는 모습을 보며 불안한 느낌이 스쳐지나갔다. 한참을 서로 바라만보다 도반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말이 되지 않는 이 상황에 대해 말을 해야겠는데 도무지 말문이 열리지 않는다.” 나에게 찾아 올 무렵 그는 이미 3곳의 대학병원을 돌고 난 후였으며 암이 난소에서 복부로 전이돼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의사는 약 3개월정도의 생존기간을 예측했다. 그는 출가해 정진한지
▲능행 스님의 호스피스 병동에서 파세나디왕은 부처님을 찾아와서 왕으로서 해야 할 일과 세속적인 분주함을 이야기했다. 이에 부처님은 왕에게 물었다.“대왕님,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늙음과 죽음이 대왕님을 덮치고 있습니다. 늙음과 죽음이 덮치고 있는데 무엇을 해야 합니까?”“부처님, 늙음과 죽음이 덮칠 때에 해야 할 일은 담마에 따라 사는 것, 올바르게 사는 것, 착한 일을 하고 공덕을 쌓는 것 이외에 다른 무엇이 있겠습니까?” (쌍윳따 니까야: 3 꼬살라 쌍윳따 3:5) 충북 초정약수 근교에 자리 잡은 정토마을은 겨울이 되면 눈이 허리만큼 내리곤 했다. 올해도 불을 끌 수 없는 환자들의 아픔마음을 포근히 안아줄 하얀 눈을 기다려 본다. 몇 년
▲ 능행 스님의 호스피스 병동에서 바람이 심하고 유난히 추운 새해가 되면 아릿한 아픔과 함께 생각나는임종환자 한 분이 있다. 희미한 전등불 아래 스산한 바람이 숭숭 소리 내며 지나는 어느 병실에서 그의 마지막 삶에 동행하며 기억하게 된 ‘금강경 선현기청분.’ “세존이시여, 보리심을 발하여 보살의 길로 들어선 선남자(善男子)와 선여인(善女人)들은 그 마음을 어떻게 머물러야 하고 어떻게 수행해 나가야 하며 어떻게 다스려야 합니까?” 12년 전 이야기다. 어느 겨울날 나의 등 뒤에서 무뚝뚝한 목소리가 등을 쳤다. “스님. 제가 지금 어떻게 마음을 내야 할까예? 그리고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꺼?” 가던 걸음 멈추고 돌아보니 얼굴이 노랗게 물든 거사님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