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 스님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어디서 오는가?”“응천사에서 옵니다.”“뱀장어(鰻魚)를 보았는가?”“보지 못했습니다.”“그대가 뱀장어를 보지 못했는가, 뱀장어가 그대를 보지 못했는가?”“그런 것 모두가 아닙니다.”“그대는 첫머리는 잘 지키더니, 마지막은 삼갈 줄 모르는구나.” ※‘뱀장어’는 응천사 주인을 이른다.당나라 당시 응천사 희원의 성이 장씨였는데 그가 살던 작은 방은 낭야산 정수리였다고 한다.정수리 복판에 우물이 있고 우물에는 뱀장어가 있었는데 물의 줄고 늘어남이 바다의 간만시각과 맞았으며 이 밖에도 신령스럽고 이상한 일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호국 선사에게 한 스님이 물었다.“마음과 법을 둘 다 잊을 때 어떠합니까?”“세수를 않느니라.”“달이 싸늘한 못에 잠길 때가 어떠합니까?”“세수를 않느니라.”“빛과 경계를 모두 잊은 때 어떠합니까?”“얼굴을 씻지 않느니라.” ※ ‘마음과 법’은 안의 마음과 밖의 법인데 “마음과 법을 둘 다 잊는다”는 것은 중간구(中間句)절이다. ※ ‘달이…’는 용구(用句)이며 ‘빛과 경계…’는 체구(體句)이다. ※ ‘얼굴을 씻지 않는다’: 여읜 듯이, 일단 이렇게 세월을 보내리라 한 경지.
운문 스님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오늘 장작을 나르는가?”“그렇습니다.”“옛 사람이 말하기를 ‘한 법도 보지 않는 것이 그대의 눈동자라”했느니라. 그리고 나서 나무 나르는 곳으로 장작 한 쪽을 던지면서 말했다.“일대장교(一大藏敎)가 오직 이것을 이야기 했을 뿐이니라.” ※ 한 법도 보지 않는 것이…: “한 법도 보지 않는 것이 곧 여래이니 관자재(觀自在) 하리라”하는 뜻.※ 한 쪽을 던지면서…: 일대장교가 다만 이 한 조각의 장작을 설했다는 의미.
운문 스님이 시중해 말했다.“눈에 띄는 것마다 걸림이 없게 되어서 명신(名身)과 구신(句身) 등의 모든 법이 공한 줄을 알더라도, 산하대지가 명칭이요, 명칭 또한 얻을 수 없으면 삼매라 부르는지라. 성품의 바다가 구비되더라도 역시 바람도 없는데 겹겹이 이는 파도니라. 당장에 각(覺) 위에서 지(知)를 잊으면 각이 곧 불성이니라. 이를 일러 일 없는 사람이라 부르거니와 다시 모름지기 위로 향하는 한 구멍이 있음을 알아야 하느니라.” ※명신·구신: 명사(名詞)에 속하는 단어. 단어와 단어를 연결한 문구.「능가경」에 “명신과 구신과 문신(文身)의 차별은 범부들이 헤아리고 생각하는 것이니, 마치 코끼리가 깊은 진흙에 들어간 것 같다”는 말이 있다.『조원통록』에 “앙산이 이르기를 성품의 바다를 총괄해 지니고 삼매를
현사 선사에게 설봉 스님이 말했다.“남제라는 장로가 있는데, 물으면 무엇하나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없더라.”며칠 뒤에 남제가 설봉에 이르니, 설봉이 현사에게 보냈다. 이에 현사 선사가 남제에게 물었다.“옛 사람이 말하기를 ‘이 일은 오직 나만이 알 수 있다’했는데, 장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알려고 하지 않는 이도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이에 현사 선사가 말했다.“산두(山頭)노장이 그렇게 많은 헛수고를 해서 무엇 하려는가?” ※‘이 일은 오직…’: 『법화경』에 ‘나와 시방세계의 부처님만이 이 일을 알고, 성문이나 벽지불이나 불퇴 보살은 모두 알지 못한다’고 한 것.※‘있는 줄 알아야 한다’: 지해(知解)를 세우지 않는 뜻.※‘산두노장…’: 지해(知解)를 세우지 않는다는 말도 역시 지해를 상대해서 세운
서천에서 성명(聲明) 삼장이 왕에게 왔다.왕이 현사 선사에게 시험해 주기를 청했다.현사 선사가 구리 부젓가락을 갖고 무쇠 화로를 두드리면서 물었다. “무슨 소리인가?” “구리와 무쇠 소리입니다.” “대왕께서는 외국 사람에게 속지 마십시오.” 이에 삼장은 아무 대답을 못했다. ※성명(聲明): 인도 고대철학 중의 하나인 베다를 말한다. 베다철학에서는 소리를 통해 진리에 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사 스님이 고산 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 원상 하나를 그려보이자 고산 스님이 말했다. “사람마다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더군요.”“나는 그대가 나귀 태와 말 뱃속에서 살림을 하는 줄로 예측했다.”“화상은 어떠하십니까?”“사람마다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느니라.”“화상의 그런 말은 되고 저의 그런 말은 어째서 안 됩니까?”“나는 되지만 그대는 안 된다.” ※ 원상을 그려 보이다 : 범부와 성인이 같은 근원이요, 묘한 본체는 아무 물질도 없기 때문이다. ※ 사람마다 그것을 벗어나지… :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된다 하여도 벗어날 수 없고, 육도윤회 하더라도 벗어날 수 없다는 내용.
현사 스님이 시중해 말했다.“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에게 정법안장이 있는데 마하가섭에게 전해 주노라’하셨다. 이는 마치 달을 이야기하는 것 같고, 조계(曹溪)가 불자를 세운 것은 마치 달을 가리킨 것과 같다.” 이에 고산 스님이 말했다.“달이여!” 현사 스님이 말했다.“저 중이 나에게서 달을 찾는구나!” 고산 스님이 긍정하지 않고 대중들에게 가서 말했다.“날더러 자기에게서 달을 구한다 하더라.” ※화월(話月) 지월(指月): 화(話)란 공안을 이야기로 전하는 것이므로 달과 멀고, 지(指)란 직접 그 공안을 가리키는 것인즉 달과 같다.
운문 스님이 말했다.“망상을 부리지 말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며, 중은 중이요 속인은 속인이니라.” 양구(良久)했다가 다시 말했다.“내게로 안산(安山)을 갖다 달라.”한 스님이 물었다.“학인이 산을 산으로 보고, 물은 물로 볼 때 어떠합니까?” 운문 스님이 말했다.“삼문(三門)이 어째서 이리로 지나가느냐?”“그러면 망상을 짓지 않겠습니다.”“내 말을 돌려 달라.” ※‘삼문이 어째서....’: 산은 산, 물은 물은 한 도리인데 혹, 두 구절로 보는지를 가늠하고 있다.※‘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자신의 말을 돌려 달라는 뜻.
운문 스님에게 한 스님이 물었다. “불법이 마치 물 속의 달과 같다 하는데 사실입니까?” “맑은 파도에 통하는 길이 없다.” “화상은 어디서 얻으셨습니까?” 이에 운문 스님이 도리어 다시 물었다.“다시 물음이 어디서왔는가?” “그렇게 할 때 어떠합니까?” “겹겹이 싸인 관산로(關山路)이니라.” ※ 맑은 파도에 통하는 길이 없다(淸波無透路): 물이 맑아도 달이 나타나지 않는 경지. 중생 마음의 물이 본래 맑고 고요한데 ‘달은 찾아서 무엇하겠는가?’라는 의미.
구봉(九峯) 스님이 시중했다.“상주법신은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한 스님이 물었다.“이미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다면 어째서 여섯 갈래 길에서 헤매입니까?”“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방편으로 법신을 증득하겠습니까?” “허공의 마음으로 허공의 이치에 부합한다.” “증득한 뒤에는 어떠합니까?” “마음대로 삼계의 윤전에 따르고 사생(四生)의 분주함을 따른다.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절을 하라.”
대광거회(大光居誨) 선사에게 한 스님이 물었다. “달마가 조사이기는 합니까?” 선사가 말했다.“조사가 아니다.” 스님이 물었다.“조사가 아니면 무엇 하러 왔습니까?” 선사가 다시 답했다.“그대가 조사를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님이 다시 물었다.“알아본 뒤에는 어떠합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조사가 아닌 줄 비로소 보느니라.”
경청 스님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 “문 밖에 무슨 소리인가?” “빗방울 소리입니다.” “중생이 뒤바뀌어서 자기를 잃고 물건을 따르는구나.” “화상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기를 잃지 않을 뻔하였도다.” 스님이 다시 물었다. “겨우 자기를 잃지 않을 뻔했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이에 경청 스님이 다시 대답했다. “몸을 빼내기는 그래도 쉽지만 몸에서 벗어나는 일은 말하기 더욱 어려우니라.”
도부순덕 선사에게 한 스님이 물었다.“학인이 근원을 통달하지 못했으니, 스님께서 방편을 베풀어주십시오.”“그게 무슨 근원인가?”“바로 그 근원입니다.”“만일 그 근원이라면 어떻게 방편을 받아들이겠는가?” 그 스님이 떠난 뒤에 시자가 말했다.“선사께서는 그를 성취(成就)시켜준 것이 아닙니까?”“아니다.”“그를 성취시켜주지 않은 것이 아닙니까?”“아니다.”“필경 어떠합니까?”“한 방울의 먹물이 두 곳에 용을 이루느니라.” *成其源: 부처님과 중생들의 근원을 가리킨다.
북주의 장경혜릉 선사가 말했다“차라리 아라한에게 3독이 있다고 할 지언정 여래에게 두 가지 말이 있다고 하지 말 것이니, 여래에게 말이 없다고 하지 말라. 오직 두 가지 말이 없을 뿐이니라.” 보복 스님이 말했다.“어떤 것이 여래의 말인가?” 선사가 말했다.“귀먹은 사람이 어찌 들을 수 있으리요”보복 스님이 다시 말했다.“그대가 제2의 문턱에서 말하는 줄 짐작은 했었느니라.” 선사가 말했다.“어떤 것이 여래의 말인가?”보복 스님이 다시 말했다.“차나 마셔라.”
원(大原) 부상좌(孚上座)가 고산(鼓山)스님에게 물었다.“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에 콧구멍이 어디 있었는가?” 고산 스님이 말했다.“방금 태어났는데 콧구멍이 어디 있겠는가?” 부상좌가 긍정하지 않고 다시 말했다. “그대가 나에게 물어보라, 내가 대답하리라.” 이에 고산 스님이 물었다.“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에 콧구멍이 어디 있겠는가?”이에 부상좌는 부채만 흔들었다. ※ 콧구멍: 본분의 경지를 말함이다.※ 부채만 흔들었다.: 부모가 태어나기 전의 경지.
운문 스님이 어느 날 말했다.“등롱은 그대의 자기이나 발우를 잡고 밥을 먹을 때의 밥은 그대의 자기가 아니다.” 한 스님이 물었다.“밥이 자기일 때 어떠합니까?” 운문 스님이 말했다.“이 들여우 요정아, 집이 세 채뿐인 마을의 시골뜨기로구나. 이리 오너라. 그대가 밥이 자기라 말하지 않았는가?” “그렇습니다.”“집이 세 채뿐인 마을의 시골뜨기가 꿈엔들 보리요.” ※ 등롱은 그대의 자기: 일체 만법이 자기 아닌 것이 없다는 뜻을 갖고 있다.
운문 스님이 직세에게 물었다.“오늘 어디 갔다 왔는가?” 직세가 말했다.“띠를 베어 왔습니다.” 운문 선사가 다시 물었다.“몇 명의 조사를 베었는가?” 직세가 대답했다.“3백명입니다.” 이에 운문 선사가 말했다.“아침에 3천 방망이 저녁에 8백 방망이를 때려야 겠구나. 동쪽 집에는 표주박 자루가 길고, 서쪽 집에는 표주박 자루가 짧으니 어찌하겠는가?” 직세가 아무런 말을 못하자 선사가 때렸다.
운문(雲問) 선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스님이 대답했다.“탑에 예배를 하고 왔습니다.” 선사가 다시 말했다.“나를 속이는구나.” 스님이 말했다. “저는 정말로 탑에 절을 하고 왔습니다.” 그러자 선사가 말했다.“5계도 지키지 못하는구나.” 이를 놓고 보복 스님이 말했다.“지혜 있는 이는 어석은 이를 꾸짖지 않는다.” 분주 스님이 말했다.“피차 바보를 만드는구나.”
운문(雲門) 스님이 대중에게 말했다.“소리를 들어 도를 깨닫고, 색을 보아 마음을 밝힌다 하는데, 어떤 것이 소리를 듣고 도를 깨치는 것이며, 색을 보고 마음을 밝히는 것인가?” 이어서 손을 들고 말했다.“관세음 보살이 돈을 갖고 와 호떡을 샀다.” 다시 손을 내리고는 말했다.“원래는 만두(饅頭)였구나.” 이에 대해 법진일(法眞一)이 송했다.“색을 보고 소리를 들을 때 마음을 깨칠 만한데 소양(韶陽)이 재창할 때는 아는 이 적다.만두도 호떡도 사는 이 없으니 곁에서 보는 이들 웃음만 짓게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