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가 성립은 경계의 설정에서 비롯돼결계 이뤄지지 않는다면 승가 아니다 부처님오신날 행사를 비롯하여 5월은 특히 불교계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달이다. 불교학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 무렵에는 다양한 학회나 세미나가 열린다. 지난 주 토요일,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계율의 현대적 재조명’이란 이름으로 한 학회가 열렸다. 성문계와 대승계의 양립 문제, 율장과 종헌·종법과의 문제, 그리고 율장과 청규와의 문제 등, 주로 한국불교승가, 특히 조계종이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율장에 비추어 재조명해보는 뜻 깊은 자리였다. 딱딱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출재가인들이 모여 경청하는 모습에서 최근 일어나고 있는 계율에 관한 깊은 관심을 엿볼 수 있었다. 필자도 발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참석하여 승가화합의 판
삼의일발(三衣一鉢). 오로지 수행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양만으로 만족하는 소박한 소욕지족(少欲知足)의 삶을 지향하는 출가자의 생활을 상징하는 말이다.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출가자의 식생활은 발우라 불리는 자그마한 하나의 그릇을 통해 해결된다. 자신의 미각을 만족시키고 배를 가득 채우기 위해 맛난 음식에 집착하는 일 없이, 재가자의 신심으로부터 주어지는 음식을 질과 양에 상관없이 감사하게 받아 섭취하며 이를 기반으로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육체적 환경을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발우에 담긴 의미이다. 『오분율』에 의하면, 육군비구 가운데 한 사람인 발난타가 많은 발우를 얻게 되자, 이 발우 저 발우 바꾸어 가며 쓰고, 오래된 발우는 여기저기 방치해 두었다. 절을 찾아 온 신자들이 이를 보고‘
최근, 일부 언론의 조계종 비판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에 방영된 한 시사프로에서는 조계종 스님들이 문화재관람료를 징수해 1억 원대를 호가하는 고급승용차를 타고 골프를 치는 호화스러운 모습이 방영되었다. 조계종 스님들이 모두 이런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건만, 일부의 부도덕한 행동이 조계종 전체의 모습인 것처럼 비추어진 점에 대해서는 아쉽고 안타깝기 그지없다. 하지만, 문제가 된 일부 스님들이 분명 조계종의 정식 승려라는 점에서, 그것도 사찰의 주지라는 요직에 있는 스님들이었다는 점에서 일부에 불과하다든가 언론의 편파적인 과잉보도라든가 하는 말로 자위하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이미 오래전부터 조계종 안팎에서는 일부 스님들의 출가자로서의 도덕성이나 종단 자체의 자정능력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심심찮
갈마는 승단 대소사를 의결하는 제도승단 내 갈등 예방…화합으로 이끌어 승가 생활의 기본은 화합과 참회의 정신이라고들 한다. 옳은 말이다. 자기 자신의 수행은 물론이거니와, 그 수행을 통해 이 세상의 모든 생류를 이롭게 하는 길을 걸어가겠노라 위대한 원을 세운 출가자들의 삶에 있어 어찌 서로 다투고 탓하며 스스로의 잘못된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승가공동체야말로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 그리고 자발적인 참회로 운영되는 평온한 공동체일 것이라고, 아니 그래야 한다고 우리는 기대하곤 한다. 하지만, 공통된 인식과 목적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이라도 실제로 함께 생활하다 보면 이런 저런 일로 의견 충돌을 일으키기 마련인 것 같다. 서로 대화를 통해 쉽게 의견 조정에 이르는 경우도
조계종의 기본 법령인 현행 종헌·종법의 내용 가운데 율장 정신에 위배되는 부분이 많다는 지적과 개선의 필요성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행 종헌·종법은 1994년 개혁종단의 산물로, 기존 법령에 새로운 규정을 추가하기도 하고, 시대에 맞게 새로운 시각으로 개정한 부분도 있다. 당시의 총무원장 스님은 이 법령을 모아 놓은『대한불교조계종 법령집』의 간행사를 통해 다음과 같은 소견을 밝히고 계신다. “원래 불교도라면 부처님의 근본계율로써 모든 행위의 규범을 삼아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계율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상황에 맞게 적합한 것으로 여러 차례 재해석되어 왔고 심지어는 새롭게 제정되기도 하였다. 이는 불교적 이상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면 행위의 규범도 끊임없이 재해석·개정·제정될 수 있다는 여지
원만한 공동체 생활 위한 약속상호 열린 마음이 진정한 화합 승단의 대표적인 행사 가운데 자자(自恣)라는 것이 있다. 자자란, 안거(安居)의 마지막 날, 안거를 함께 보낸 스님들이 전원 모여 3개월 동안의 율 위반을 서로 지적하며 참회하는 일종의 자기 반성회 같은 모임을 가리킨다. 우리나라에서는 우란분절, 혹은 백중이라는 말에 가려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느낌일지도 모르지만, 승단에서는 매우 중요한 행사이다. 율장「자자건도」에서는 자자 제정의 인연담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부처님께서 사위성 근처에 있는 기수급 고독원에 머무르고 계실 때의 일이다. 안거철을 맞이한 스님들이 한 절에 모여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대중 생활로부터 빚어질 갖가지 충돌과 불화를 염려한 스님들은‘어떻게 하면 우리들은 서로 화합하여
스승과 제자는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올바른 사제관계 승단화합의 밑거름 화상과 제자로서 한번 맺은 인연은 영원하다. 그런데, 지도 기간인 5년의 의지 기간 사이에 화상이 환속하거나, 죽거나, 혹은 다른 종교로 개종하는 등의 사유로 지도를 받을 수 없게 되는 부득이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아직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스승이 사라져 버렸으니, 제자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이럴 때는 어찌 해야 할까? 율장에서는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아사리(阿梨) 제도라는 또 하나의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두고 있다. 아사리란, 화상이 없어져 교육을 받을 수 없게 된 자를 화상 대신 교육시키는 스님을 일컫는다. 즉, 교육 기간이 끝나기 전에 화상을 잃게 된 비구는 화상을 다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사
화상과 제자, 상호의존-협력 관계한 번 맺은 인연은 영원이 지속돼부처님 당시 화상 제도, 즉 지금의 은사 제도가 아직 마련되지 않았을 때, 신참 출가자들의 모습은 엉망이었다. 삼의의 올바른 착용 방법도 몰랐으며, 출가자로서 지녀야 할 위의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탁발을 하러 가서도 발우를 들이밀며 음식을 요구하는 등의 품위 없는 행동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했고, 식당에서도 큰 소리로 시끄럽게 떠들며 먹곤 했다. 이를 본 재가신자들은 몹시 실망하여 그들의 행동을 비난했다. 이 소문을 들으신 부처님께서는, 이를 계기로 신참 출가자들이 승려로서의 위의를 갖출 수 있도록 지도하는 화상 제도를 마련하셨다고 한다.화상의 역할은 출가 의식의 준비로부터 시작된다. 지금은 사미(니)로 출가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부처
은사제도, 신참 출가자 교육 위해 마련권력 얻기 위한 사제 관계서 벗어나야 세월이 변하면서 인간관계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예전 같으면 자신을 키워준 부모에 대한 공양은 자식으로서 당연한 의무였지만, 이제는 물려줄 재산 없는 부모는 대접 받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이런 냉정한 계산은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에서도 여지없이 일어나고 있다. 이제 스승은 더 이상 자신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고 깨우쳐 주는 역할 만을 하는 존재가 아니다. 아니 그 보다 오히려 자신의 발판이 되어 자신의 앞날을 열어줄 능력을 소유한, 다시 말해 눈에 보이는 권력을 쥔 스승을 더 선호하는 세상이다. 약육강식의 비정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있는 없는 모든 인맥을 동원해야 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어찌 이 행
적절한 거문고 줄이 아름다운 소리 내듯바른 견해로 자신 돌아보는 여유 가져야 한 때는 열심히 사는 것을 최고의 미덕이라 여기며 스스로를 다그치고 또 다그치며 살기도 했지만,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고 보니 열심히 사는 것보다는 제대로 사는 것에 더 관심이 가는 것 같다. 그리고 제대로 산다는 것은 의외로 적당히 산다는 것과 통한다는 사실에도 눈을 떠가고 있다. 양 극단으로의 치우침을 경계하는 중도(中道)의 가르침처럼, 인생 역시 지나치게 긴장하며 자신을 옭아매지도 않고, 또 그렇다고 너무 관대하게 자신을 방치하고 늘어지지도 않도록 할 때, 가장 무리 없는 충실한 삶이 실현되는 것 같다. 율장 「피혁건도」에는 지나친 수행의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부처님 당시, 소나라는 스님이 있었
자신의 능력 과장하는 건 도적의 마음부족함 인정하고 성실하게 노력해야지난 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학력 위조사건을 비롯하여, 새로운 정부가 탄생할 때마다 인사 검증 과정에서 두드러지는 학력·경력 위조에 관한 보도를 바라보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과대 포장하여 자신의 노력 이상의 것을 덤으로 얻고 싶어 하는 잘못된 욕망에 빠져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학력 중시의 잘못된 사회 풍토라든가, 사람의 내면보다 외적인 조건에 더 쉽게 끌리는 일반적인 사회분위기가 더 문제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의도적으로 자신의 경력을 속인다거나 혹은 사람들을 혼동 시켜 오해의 여지를 남기는 미묘한 표현을 사용하여 과장하려 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이미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과 타협한 채 자신도
잡담, 삶 공허하게 만드는 무익한 것유익하지 않은 말은 가급적 삼가야 부처님 당시에 육군비구(六群比丘)라 불리는 여섯 명의 스님들이 있었다. 이들은 항상 무리지어 다니며 온갖 악행을 일삼았다. 율장의 주인공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대다수의 율 조문이 이 스님들의 악행을 계기로 제정되고 있다. 날마다 날마다 어찌나 기절초풍할 나쁜 짓만 하고 다니는지, 그러면서도 또 어찌나 반성은 잘 하는지, 밉다기보다는 오히려 어이없는 웃음을 자아내는 존재들이다. 아마 이들의 이런 묘한 캐릭터 때문에, 이들이 율장 성립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인물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는 것 같다. 이 스님들은 출가는 했지만, 출가자로서의 위의라든가 수행은 먼 나라 얘기였다. 어떻게 하면 맛 나는 음식을 보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