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 숨어도, 바다 속에 숨어도 산중의 굴속에 숨어도 이 세상에서 죽음을 피할 곳은 아무 데도 없다.”『법구경』에 나오는 부처님 말씀이다. 그리고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죽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호흡 간에 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죽음이 자신과는 무관한 듯 도외시하고 있거나 행여 피할 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젊은 사람일수록 아직 자신과는 거리가 있는 아주 먼 훗날에 일인 것처럼 여긴다. 그러다보니 이 순간 이곳에서의 삶에 최선을 다해 주인으로 살지 못하고 머뭇대고 미루고 무관심하게 그럭저럭 피동적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만일 비구가 죽음의 생각을 많이 닦아 익히면 반드시 복된 이익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이를 토대로 이번 여름 수련법회에는 ‘
절 안을 오가다보면 어느 때는 답례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인사를 나누지만 가장 반가운 인사는 아이들과 나누는 인사다. 어머니가 하는 양을 따라 고사리 손을 모아 땅에 머리를 박을까 싶게 인사를 하는 꼬마의 모습을 접할 때는 그 천진스러움에 우리 마음마저 깨끗해진다. 그리고 합장 인사를 건네고는 수줍은 듯 달려가는 초등학교 꼬마 아이들을 대할 때면 맑은 희망을 본다. 그리고 간혹 TV나 영화에서 본 것을 흉내 내어 한손만을 가슴에 대고 장난기를 섞어 ‘아미~타불’하는 아이들을 보면 ‘그래도 인연 종자를 심었구나’ 싶다. 이런 아이들을 법회 시간에도 함께 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통도사의 경우 매달 적지 않은 금액을 후원하고 차로 모셔오고 지도법사와 선생님들이 온갖 정성을 들이는데도 아이들은 그저 스물 댓 명
다른 어느 나라보다 우리나라는 이념적 갈등이 심했고, 요즘도 그 갈등이 심상치 않다. 서로를 어느 한쪽으로 단정 지어 놓고는 딱지를 붙인다. 그리고 자신과 다른 부류다 싶으면 배척하고 매우 심한 말도 서슴없이 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부류로 몰린 사람들 사이에서도 분파를 짓고 원결을 맺는다.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글로벌 시대를 달고 산다. 마치 작은 배를 타고 함께 큰 강을 건너가야할 사람들이 일시 나와 호흡이 맞지 않는다 해서 노를 뺏고 강 속으로 밀어 넣으면서 다른 배에 있는 사람을 불러대는 형국이다. 장자 측양편(則陽篇)에 나오는 와각지쟁(蝸角之爭)이란 고사성어가 있다.나라 간에 배신이 난무했던 중국 춘추 전국시대에 양나라 혜왕과 제나라 위왕은 서로를 침범하지 않기로 굳게 약속을 맺었는데, 제나라
우리 사회는 사회적 신뢰의 붕괴 때문에 성숙한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은 이미 오래전인지라 말할 것도 없지만 정부에 이어 법원마저도 판결에 있어 그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또 교단에 대한 신뢰 상실은 우리 사회 지성의 산실이라는 대학 교단에까지 미치고 있다. 그리고 믿음에 있어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는 종교는 다분히 상업화되고 지나친 정치 성향을 내세운다. 초연히 객관자적 입장을 견지하며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속세와 그저 하나가 되어 물들어가고 있다. 이렇듯 우리 사회 어느 한곳도 온전한 신뢰를 얻지 못해 불안한 가운데 눈앞의 이익만을 우선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자연 우리 사회는 미래나 이웃은 외면한 채 겉모습과 쾌락과 향락에 물든 퇴폐 사회가 되고 있다. 모든 사회는
송광사 강원에 살적 이었다. 동안거 결제기간에 십육국사 진영을 모신 국사전에 밤새 도둑이 들어 세 분 국사의 진영만 남는 일이 있었다. 그 일이 있은 지 며칠 후 방장 스님의 상당법문 시간이었다. 방장 스님께서는 법상에 오르셔서 주장자만 세 번 치시고 한참을 그저 좌정해 계시다가 다시 주장자만 세 번 치신 후 내려 오셨다. 그 때 그저 어렴풋이 방장 스님의 뜻을 짐작해 보았을 뿐, 깊이 느끼지는 못했었다. 이제 그 분을 고인으로 보내며 방장 스님의 심정을 깊이 느껴보며 지면을 텅 빈 채 남겨두었으면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내겐 방장 스님처럼 무언으로 뜻을 전할 힘이 없으니 나름의 소회를 몇 자 적어본다. 그 분처럼 살아서나 떠나서나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남겨준 분은 드물지 않나 생각된다. 그 중 하나가
얼마 전 인연 있는 분이 손수 그린 매화 한 폭을 두고 가셨다. 출가자의 방에 꽃 그림이라는 것이 어색했지만, 그려주신 분의 성의도 있고 거처가 남이 느끼기에 좀 어두웠나 싶어 걸어두고 있다. 그런데 화제가 ‘梅一生寒不賣香(매화는 한 평생 추위 속에 있어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로 조선시대 4대 문장가 중 한 분인 상촌 신흠(象村 申欽)의 시 중에 나오는 한 구절이었다. 이 말을 화제(畵題)로 적어 놓은 까닭은 아마 그 분 스스로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기도 할 뿐더러 ‘우리에게 세상의 많은 유혹과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능히 견디어 가는 수행자가 되어주십시오’ 하는 뜻이라 짐작해 보면서 현재 우리의 삶이 얼마나 설중매를 닮고 있는지를 되새겨본다. 스스로는 하심(下心)이라 안위하면서 정한 궤도를 너무 이탈하
며칠 전 신도님들과 3일간 5대 적멸보궁 순례를 다녀왔다. 순례일정은 첫째날 통도사에서 새벽예불을 보고 적멸보궁에서 입재식을 올린 후 법흥사와 정암사 보궁을 참배한 후 오대산 상원사 중대에서 일박하며 보궁 기도를 한 후 다음 날 설악산 봉정암에 올라 일박하며 기도를 드린 후 늦은 시간이지만 다시 통도사 보궁에 와서 참배하고 회향식을 올리는 순으로 진행되기에 웬만한 신심으로는 동참하기 힘들고 진행하기도 만만치가 않다. 우선 꼬박 3일을 시간 낸다는 것 자체가 힘이 들고, 일정상 잠시의 편한 휴식 없이 기도와 산행 그리고 버스로 이동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더욱이 워낙 많은 분들이 찾는 곳이기에 땀에 범벅이 되었어도 씻기가 마땅치 않고, 잠은 새우잠이라도 잠시 어찌 붙여볼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고, 먹는
통도사를 찾아오신 분들을 안내하다보면 이따금 명부전에 이르러 시왕탱화를 설명하게 된다. 시왕탱화 속에는 여러 지옥들의 모습이 상세하게 묘사돼 있다. 가령 제1 진광대왕 탱화에는 험상궂게 생긴 옥졸이 죽은 사람을 관(棺)에서 꺼내는 모습, 죄인들이 굴비 묶듯 밧줄에 묶여 끌려가는 모습, 손이 묶인 채 칼을 쓰고 있는 모습, 몸에 쇠 징을 박는 모습 등이 묘사되어 있다. 다음 제2 초강대왕 탱화부터는 좀 더 무서운 장면들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죄인을 묶어 놓고 죄인의 배꼽에서 창자를 끄집어내는 장면이 있고, 제3 송제대왕 탱화에는 죄인을 기둥에 묶어 놓고는 혀를 길게 쭉 빼 집어내 펼쳐놓고 그 위에서 옥졸이 소를 몰아 쟁기질 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이어 제4 오관대왕 탱화에는 화탕지옥, 즉 펄펄 끓는
오늘 낮, 종무소로 큼직한 걸망을 둘러매고 설핏한 몸가짐으로 강원 치문반에 방부를 들이고자 찾아온 학인 스님을 보자니, 부럽기도 하고 그 시절이 생각이 난다. 계를 받고 그저 포교에 나서고 싶다하였지만, 강원에 들어가 중물을 들인 후 해도 늦지 않다며 등을 떠미는 은사 스님 덕분에 걸망을 꾸려 송광사로 내려갔다. 행자교육원 시절 교수사로 강의를 해주신 지운 스님이 크게 인상에 남아 송광사를 택했다. 방부를 드리고자 가보니 수계 도반들이 이미 여럿 와서 공부를 시작한 상태였다. 얼마 후 하안거가 시작된 날 오후 습의 시간이었다. 사집반 스님들이 “아랫반들은 무릎을 꿇고 앉으라” 하자 이 일을 문제 삼아 치문 상반 스님 몇이 선방에 간다고 걸망을 메고 떠나 버렸다. 이에 강원은 열대여섯 명이 대중을 이루어 하
3월 4일은 부처님이 안락함과 친밀함, 든든함과 즐거움 등 세속적 의지처를 모두 뒤로 한 채 영원한 행복을 찾아 스스로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사문의 길로 나서신 출가재일이다.모든 날들이 다 귀하고 모든 곳에서 다 받들어야 하겠지만 통도사에서는 더 깊은 의미로 다가드는 날이다. 왜냐하면 통도사는 출가를 상징하는 부처님의 금란가사와 열반을 상징하는 정골사리를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반재일까지 이를 되새기고자 법회를 봉행하고 있다. 7일 동안 매일 사분정근을 하고 사시기도 후에는 일곱 분의 법사가 부처님의 일대기를 팔상성도에 맞추어서 법문을 하시고, 법문 후에는 본사 주지 스님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선창을 하시며 108참회를 하는데 그 음성이 온 도량을 가득 채우고 매화향보다도 더 짙고 환희롭게 퍼져나간다
영각 앞과 극락전 수각 옆 매화나무가 늦추위를 밀어내며 활짝 꽃을 피워 봄이 시작되었음을 확연히 일깨운다. 해마다 매화를 보노라면 떠오르는 선시 한수가 있다. 바로 송나라 때 이름모를 비구니 스님이 지은 探春詩-봄을 찾아 나서는 시-이다.盡日尋春不見春(진일심춘불견춘)芒鞋遍踏頭雲(망혜편답롱두운)歸來笑然梅花臭(귀래소연매화취)春在枝頭已十分(춘재지두이시분)이를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온 종일 봄을 찾아 다녔으나 봄은 보지 못하고/짚신이 다 헤지도록 언덕 위 구름만 따라 다녔네/돌아오니 활짝 매화가 피고 향내가 가득하니/봄은 이미 매화가지 위에 한껏 와 있음이라.봄, 즉 행복은 밖을 향해 아무리 애를 써 추구한다 하여도 그저 미로 속을 헤매 도는 것이 될 뿐 결코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돌이켜보는 순간 지금 바로
통도사 영각 앞에는 오래된 매화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고목이지만 다른 나무보다도 일찍 꽃을 피워 하동에서 매화 소식이 들려오기 2, 3주 전에 벌써 꽃을 피운다. 작년 3월 초에 이곳에서는 한겨울에도 구경하기 힘든 눈이 내려 설중매를 볼 수 있기도 하였다. 오늘 낮에는 앞을 지나가다 가지가 볼긋해 살펴보니 꽃눈이 금시 비집고 나올 듯 해 입춘임을 실감케 해 주었고 해제가 다 되어 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이 나무에 꽃눈이 봉오리지면 강원이나 선원은 동안거 해제를 맞게 되고 각기 한 겨울 동안 해 온 공부를 점검 받거나 또 다른 공부처를 찾아 걸망을 매게 된다. 사중 소임을 살면서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굳이 해제가 없다는 것이다. 살러 오신 스님들이 걸망을 둘러매고 하늘을 날아오르는 새처럼 산
산중에 절을 찾아드는 이들 중에는 솔바람에 울리는 청아한 풍경소리를 듣고자 굳이 먼 길을 돌아와 들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아마 그들 대부분에게 그려지는 풍경소리는 노산 이은상 선생이 작사한 ‘성불사의 밤’에 그려진 ‘뎅그렁’하며 그윽하게 울리는 소리일 것이다. 설령 이 시를 전혀 모를지라도 나뭇잎들이 거개 본래 자리로 돌아갈 무렵, 어쩌다 산행 길의 땀을 식히려 물 한 모금 마시고 절간 툇마루에 앉았다가 이따금 들려오는 저음의 깊은 풍경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 사람이라면, 고엽(枯葉)을 따라 떠돌던 마음도 본래 자리로 돌아가고 깊은 평화가 찾아듦을 느껴보았을 것이다. 이런 이에게 풍경소리는 천상의 소리처럼 아름다운 소리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람이 심하게 부는 밤, 밤새 요란하게 ‘쩡그렁 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