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아미타불’에는 산스크리트(범어)와 한문이 합성되어 있습니다. ‘나무(namo)’는 경배, 경의, 예배, 귀의를 의미하는 말이고 ‘아미타불’은 그 대상이 되는 부처님의 이름입니다. ‘아미타불’ 안에는 ‘아미타’라는 말과 ‘불’이 합성되어 있습니다. ‘아미타(amita)’는 한량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아미타불’은 한량없는 부처님이라는 의미입니다.무량수불 선호하는 이유는 오래살고 싶은 욕망서 비롯담란스님 진정한 무량수 찾고정토종으로 개종 신앙에 매진담란스님이 발견한 무량수는육신이 아닌 법신의 진리일 뿐 죽는다거나 산다는 미혹
극락을 이야기하면 꼭 윤회를 생각하게 됩니다. 윤회나 극락이나 모두 다 내생의 일이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극락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윤회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불교학계입니다. 불교학자들 중 극락을 연구하는 분들은 매우 드물지만 윤회를 연구하는 분들은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윤회를 둘러싸고 여러가지 논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윤회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저 역시도 윤회를 논하는 분야의 불교학, 예를 들면 초기불교나 부
오늘은 교판(敎判)이야기를 말씀드립니다. 교판은 줄임말이고 갖추어 말하면 교상판석(敎相判釋)입니다. 교상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합니다.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놓고 해석하며 판단하는 일을 교상판석이라 하는데 간단하게 교판이라 말해옵니다. 교판은 불법 해석하고 판단하는 것정토종 교판은 쉬운 이행도에 해당 노병사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사’생사문 아닌 사생문인건 죽음 때문그래서 유생문 사생문으로 나눈 것이 순간에도 죽음은 쉼없이 다가와죽음 인식해야 비로소 발심도 가능정토종이라는 종파를 생각할 때 먼저 그 교판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도
오늘도 초기불교의 가르침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초기불교의 가르침에 관심이 많고, 그것을 기준으로 해서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써 초기불교의 가르침과 대승불교, 특히 정토불교 사이에 가교를 놓는 일 역시 의미 있는 일이라 판단합니다. 극락이 있나 없나 따지는 건‘전유경’ 독화살 비유와 같아독화살을 바로 뽑지 않으면화살재료 알기 전에 죽게 돼극락의 존재 따지는 건 희론아무리 고민해도 해답 없어극락에 대해 판단 중지하고오직 ‘아미타불’만 염불해야오늘 드릴 말씀은 만(?)동자라는 젊은 수행자에 대한 이야
앞의 편지에서도 의상(義相) 스님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다시 한 번 의상 스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의상 스님은 모두 아시겠습니다만 당나라 유학을 했습니다. 장안(지금의 서안)의 남쪽에 있는 종남산이라는 산에서 스승 지엄(智儼) 스님을 모시고 ‘화엄경’을 공부하였습니다. 그 당시 의상 스님께서 읽으셨던 ‘화엄경’은 60권본입니다. 당 유학 중에 지엄 스님 은사로60권 읽고 요약한 법계도 펴내210자 글자 정사각형 도형으로돌고 도는 굴곡형태 모두 54각53선지식 만나서 성불하는 내용그림과 함께 시에 의지한 것은허구 입각 진실
이제까지 저는 몇 통의 편지에서 과연 극락을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좋을까 말씀드려왔습니다. 그 문제가 현대인들에게 정토신앙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벽이라고 생각해서입니다. ‘나무아미타불’의 저자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역시 그 책의 ‘사문 법장’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합니다. 현대인의 극락에 대한 인식문제는 정토신앙 갖지 못하도록 하는 ‘벽’초기불교가 있기에 정토신앙 존재‘나’라고 하는 것 없다는 게 불교그래서 이해하기도 믿기도 어려워무아 가르침 초기불교 핵심 사상대승경전에서도 무아 사상 반복초기불교·대승불교는 모두 ‘일
오늘은 정토경전을 포함하여 대승경전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다 아시는 것처럼 현대 불교학의 연구는 대승경전이 역사적 실존인물인 석가모니 부처님이 직접 설하신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른바 대승비불설(大乘非佛說)의 입장입니다. 대승경전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직설(直說)이 아니라는 것만으로, 대승경전에 의지하는 불교신행에는 문제가 있는 것으로 치부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불교계에서 정토신앙이 그다지 폭넓게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것도 그 밑바닥에는 이러한 대승비불설론이 미치는 어두운 영향이
편지 형식의 이번 글을 쓰게 까닭은 제가 옮긴 책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의 ‘나무아미타불’(도서출판 모과나무)에 대하여 일종의 에프터 서비스를 해드려야겠다고 생각해서입니다. 그런 까닭에 이러한 ‘편지’는 모두 ‘나무아미타불’에 대한 일종의 주석이자 보충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아미타불 전신인 사문 법장은특정한 개인 아닌 모두의 이름‘법’은 초월적 이념·실재 아냐대승이야말로 ‘법’ 잘 드러내 우리 안에 내재된 법장 본다면지금 이곳서 극락 누릴 수 있어제 주위에서도 ‘나무아미타불’을 읽으신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중국 칭명염불 선구자 담란 스님은공사상에 정통했던 뛰어난 사상가아미타불 법신이듯 극락도 법성토극락 유무 묻는 것은 희론에 불과오늘은 담란(曇鸞, 476~542)스님의 말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담란 스님은 원래 사론가(四論家)입니다. 네 가지 논서, 즉 용수(龍樹)의 ‘중론(中論)’ ‘십이문론(十二문論)’ ‘대지도론(大智度論)’, 그리고 용수의 제자인 제바(提婆)의 ‘백론(百論)’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셨습니다. 이러한 네 가지 책들은 모두 공(空) 사상에 입각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러다가 50대 중반에 이르러 정토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었
참으로 멀리서 오신 걸음이었습니다. 아마도 서울과 부산 거리보다는 훨씬 더 먼 거리였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20년 동안이나 지도해 주신 스님이 떠난 뒤로 못내 그립기도 하고, 또 신앙상의 가르침이 목말라서 찾아온 걸음이었습니다.내용보다 사람 믿음 우선자기자신을 믿지 못하지만스승 깊게 믿고 수행 진력그런데 정작으로 오랜 만에 만나 뵙게 된 스님께서는 딱 부러지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흔들리는 모습만 보입니다. 제자들이 그렇게 멀리 찾아온 뜻은 결국 “극락왕생의 길을 묻고자 함에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염불 외에 (또 다른)
지난 편지에서 잇펜(一遍, 1239~1289) 스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에 뒤이어서 이제는 신란(親鸞, 1173~1262) 스님에 대해서 말씀드릴 차례입니다. 물론, 이 차례는 그 스님들이 사셨던 시대의 선후와는 역순입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불자들에게 좀 더 이해하기 쉬운 스님부터 하자는 생각에서 정해진 순서입니다.‘탄이초’ 정토진종 금서소수 스님만 읽을 수 있어근대 이르러 비로소 재발견철학자·예술가 등도 극찬“악한이 먼저 왕생한다”“내겐 스승도 제자도 없다”교단 필요 부정 파격 주장그런데 신란 스님의 입장에 대해서는 다음 편지에
제가 지금 ‘편지’라는 형식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만, 옛날 스님들도 편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수행을 지도했습니다. 선종의 선사들도 많은 편지를 남기고 있지만, 정토문의 스님들도 많은 편지를 남기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한 편지를 읽어드리고자 합니다.아미타불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공통 뿌리로 돌아가는 게 염불지옥·극락, 중생·아미타불 등이원론 넘어선 불이사상 기반“대저 염불행자가 마음을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해 (가르쳐 달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것 외에 따로 마음 쓸 것이 없고, 이외에 덧붙여서 설명해야
지난 번 편지에서, 저는 제18원의 이름을 권진염불원(勸進念佛願)이라 부른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것은 아미타불을 마주보고 서는 것(서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아미타불 옆에 서서 혹은 부처님을 등에 업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되면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입니다.아미타불 등에 업고 선다는권진염불원으로 해석한 것은의상 스님 ‘발원문’에서 착안48대원을 내 것으로 삼으면극락 존재여부 문제 안 되고자력·타력 문제도 절로 해소이러한 저의 입장은 정토사상사의 맥락에서 본다면, 새로운 입장입니다. 새로울 뿐만 아니라, 어쩌면
저는 지금 편지를 씁니다.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당신에게만 편지를 쓰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은 제가 알고 있습니다만, 제가 모르는 분들의 얼굴을 그리면서 이 편지를 씁니다.주변에 염불 권하는 게 ‘권진’아미타불 마음에 감읍했다면다른 사람들에게도 염불 권유이 글 읽어줄 수 있는 이에게중계해주는 것도 권진 방법이 편지를 받으시면, 제가 모르는 그분께 이 편지 배달 좀 해주실래요? 배달해 주실 때는 또 부탁드려 주실래요? “배달을 부탁합니다”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이 편지가 언제까지고 떠돌아다닐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그런데 말입니다.
오늘은 비유로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중국집이 있다고 합시다. 거기 메뉴판에는 짜장면, 우동, 탕수육, 양장피, 군만두 등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짬뽕이 없다고 합시다. 짬뽕이 없는 중국집이 있어도 좋을까요?한국에선 염불 법문 제공 안돼승가대학·불교교양대학도 홀대다수 위한 정토 제시 없을 땐중생들 다른 종교로 향할 것더욱이 슬픈 것은, 그 점을 신경 쓰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사장님은 물론, 주방장님도 무심합니다. 그분들의 생각으로는 손님들에게 짜장면과 우동, 군만두 같은 것을 내놓고, 좀 더 잘 드시는 분들을 위해서는 탕수
2010년부터 현재까지 약 7년 반 조금 더 되는 세월 동안, 우리나라 불교학계에서 정토학을 어떻게 해왔는지에 대해서 조금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목록조사를 다 마쳤고, 그중에서 우선 중요한 것들, 흥미가 가는 것들 위주로 몇 편의 논문을 읽었습니다.학계도 타력 부정하는 풍토불교는 자력이자 타력 종교정토문 부처님 의지해 성불아미타불 본원력 믿음 중요타력 콤플렉스에 빠져서는‘어둠의 자식들’은 못 도와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타력에 대해서 어떤 콤플렉스를 연구자가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애써서, 그 타력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