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다-없다’에 빠진 한영원히 해탈 할 수 없어 죄도 습관에서 비롯돼‘오온개공’ 알아야악순환 끊어 12. 참회 (懺悔) 육조단경 강의에 앞서 한의사인 양승희 선총회 회장이 고우 스님의 맥을 짚어 건강상태를 살피고 있다. “앞 생각(前念), 뒷 생각(後念), 현재의 생각(今念)이 생각마다 질투에 물들지 않아 지난 날의 질투하는 마음도 없애라. 자기 마음에서 만약 없애 버리면 이것이 곧 참회다. 〈이상 세 번 합창〉”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다 질투가 있습니다. 이것도 뿌리 깊이 ‘있다-없다’에 집착하는 우리 마음의 잘못된 현상이거든요. 그래서 육조스님은 세 가지 현상을 들었어요. 악행과 거짓되고 속이는 것, 그리고 질투. 질투는 여자들만 하는 게 아니고 남
죄라는 것은 연기 현상공 이라는 것 알아야 존재 원리를 보게 되면어리석은 데 물들지 않아 '돈황본 육조단경 대강좌'는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문화공연장에서 열린다. 고우 스님이 법석에 오르기 전 강의 준비를 하고 있다. 12. 참회(懺悔) 그 동안에 우리가 육조스님 법문 중에 정혜, 무념, 좌선, 삼신불, 서원을 공부하고 이제 참회인데, 이것이 표현은 다양해도 내용은 결국 같은 걸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부 우리 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듣고 보고 있는 이 마음 즉, 마음의 모양이나 작용하고 있는 걸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면 견성이라 합니다. 그것을 바로 보게 되면 그렇게 행복해진다는 거예요. 본질을 보니까 평등한
‘있다·없다’ 삿된 견해우치와 미망 속 성품 있어 무아로 돌아가기 위해자기 비우는 훈련 해야 11. 네 가지 원(四願) 고우 스님이 간화선 수행자에게 '정견'의 요체를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계속 정혜, 무념, 무상, 무주, 좌선, 삼신불 이렇게 우리 존재원리를 다양하게 설명을 했습니다. 이런 설명으로 우리는 법을 깊이 이해했으니까 원력을 세워 이것을 바탕으로 중생 교화를 하자. 말하자면 자기도 생활화하고 사회화하자는 것입니다. 앞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이 자본주의 체제가 자유스럽고 능력에 따라서 살아가는 시장원리가 참 좋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나쁜 것은 모든 것을 밖으로 밖으로 자꾸 소유하고자 하는 것 욕망 때문에 이 자본주의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불교에서의 ‘선함’은‘있다-없다’ 초월한 행위곧 부처님의 행 의미 양변 여읜 자리가 ‘귀의’중생-부처 나누지 말고스스로 깨달아 닦아야 흰눈이 소담스럽게 쌓인 산자락으로 포행나온 고우 스님. 해와 달은 항상 밝으나 다만 구름이 덮이면 위는 밝고 아래는 어두워 일월성신(日月星辰)을 보지 못한다, 홀연히 지혜의 바람이 불어 구름과 안개를 다 걷어 버리면 삼라만상이 모두 일시에 나타난다. 이것도 비교가 하나 되지요.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나오면 진공묘유(眞空妙有) 일체 삼라만상이 다 보이는 것과 같다. 세상 사람의 성품이 깨끗한 것이 맑은 하늘과 같아 혜(慧)는 해(日)와 같고, 또 지(智)는 달(月)과 같다. 지혜는 항상 밝되 밖으로 경계에 집착하여 망상의 뜬구
앉아 있는게 좌가 아니고 밖으로 분별심안 일으키는게 ‘좌’ 안으로 본성이어지럽지 아니한 것을보는 것이 ‘선’ 강의에 앞서 한 불자가 간화선 수행법에 대해 참문을 하고 있다. 미혹한 사람은 자기 몸은 움직이지 않으나 입을 열면 곧 사람들의 옳고 그름을 말하니 도와는 어긋나 등진다. 마음을 보고 깨끗함을 본다는 것은 오히려 도를 가로막는 인연이다.이제 너희들에게 말하니(今記汝), 이 법문 가운데 어떤 것을 좌선이라 하는가? 이 법문 가운데 일체 걸림이 없어(無碍) 밖으로 모든 경계 위에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앉음(坐)이며 안으로 본래 성품을 보아 어지럽지 않은 것이 선(禪)이다. 여기에 좌선(坐禪)이 나옵니다. 일체에 걸림이 없다는 것은 ‘있다-없다’에
진여는 생각의 본체요생각은 진여의 작용이다 성품이 생각을 일으켜 보고 듣고 느끼고 아나 경계에 물들지 않아 항상 자재한다 육조단경 수강생들이 고우 스님의 강의를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가르침의 문은 무념을 세워서 종을 삼는다. 실체가 없고 공(空)이다. 상(相)이 상이 아니다,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보는 것이 무념입니다. 그래서 이 육조스님의 가르침은 무념(無念)을 세워서 종(宗)으로 삼습니다. 만약 무념을 종으로 삼지 않고 유념(有念)을 종으로 삼는다면, 일체 진로 망념(塵勞 妄念)이 나와서 드라마를 쓰게 되는 것입니다. 일체 진로 망념은 티끌세상에서 일으키는 고통을 말하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삿된 생각을 일으키기 시
본질 보는 것이 무상(無相)분별 하지않으면 무념(無念)정혜 하나된 마음이 무주(無住) 고우 스님이 강의를 마친 후 수강생들의 인사를 받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8. 무념(無念) 생각이 없음 선지식들아, 법에는 단박 깨침과 점차로 깨침이 없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영리하고 우둔함이 있으니, 미혹하면 점차로 계합하고 깨친 이는 단박에 닦느니라.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아는 것이 본래의 성품을 보는 것이다. 깨달으면 본래 차별이 없으나 깨닫지 못하면 오랜 세월을 윤회하느니라. 앞에 정혜를 또 다른 말로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무념입니다. “선지식아, 법(法)에는 돈점(頓漸)이 없다.” 법에는 빠른 것도 없고 점차도 없어요. 그런데 사람은 영리하고 둔한 것이
마음이 머물러 있지 않으면 곧 통하여 흐르는 것이고 마음이 머물러 있으면 곧 속박되는 것이다. 유(有)에도 집착하지 말고 무(無)에도 집착하지 않아야 비로소 통류는 가능하다. 고우스님이 법을 묻는 재가불자들과 차담을 나누고 있다. 7. 정혜定慧 그러나, 미혹한 사람은 법의 모양(法相)에 집착하고 일행삼매에 얽매여 앉아서 가만히 움직이지 않는 것을 곧은 마음(直心)이라 생각하며, 또 망상을 없애어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일행삼매라고 한다. 여기서 직심은 ‘너다-나다’ 하는 양변을 여의는 것인데, 일행삼매와 법상에 집착한 사람은 가만히 움직이지 않는 것을 직심(直心)이라고 오해합니다. ‘좌부동(坐不動)’ 하며 ‘앉아서 동(動)하지 않는 것’이 일행삼매라
법에 두 가지 모양(相)이 있으니 입으로 선한 것을 말하고 마음으로 선하지 못하면 정혜가 평등하지 않고, 마음과 입이 함께 선해서 안팎이 하나가 되면 정과 혜가 곧 평등할 것이다. 고우 스님이 육조단경을 공부하는 불자에게 정진할 것을 당부하고 스님이 감독한 '선요'에 사인을 해주고 있다. 7. 정·혜(定慧) 여기에 제일 먼저 정(定)과 혜(慧)가 나옵니다. 정과 혜가 나오는데 이 자체가 우리 존재원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금 듣고 보고 계시는 게 정혜예요.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혜는 작용하는 겁니다. 지금 생각하고 계시죠? 보고 계시죠? 듣고 계시죠? 지금 정신 작용도 하고 육체 작용도 하는 것을 혜(慧)라 하고, 작용하고 있는 그 근본
고우 스님이 강의 시작전 수강생들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스님은 가끔 강의보다 격식없는 대화를 통해 더 많은 지혜를 전하기도 한다. 6. 법을 받음(受法) 곧 오조 스님은 단박 깨치는 법(頓法)과 가사를 전하며 말씀하셨다. “너는 육대 조사가 되었으니, 가사로 신표를 삼는다. 대대로 받들어 서로 전함에 법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되 마땅히 스스로 깨닫게 하라.” 오조 스님이 깨닫도록 법(法)을 쓰시기는 했지만, 육조 스님이 그만큼 신심이나 여러 가지로 준비되어 있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즘 ‘선지식이 없다’고 하면서 자기가 공부 못하는 것이 선지식이 없어서 그렇다는 식으로 말하는 분들이 계신데, 전혀 안 맞는 소리는 아닙니다마는, 그래도 100% 맞는 소
‘금강경’-‘응무소주이생기심’ 결국 같은 이야기욕심으로 필요없는 면적 키우면 싸움 절로 생겨 강의 시작 전 수강생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는 고우 스님. 6. 법을 받음(受法) 오조 스님이 밤 삼경에 혜능을 조사당 안으로 불러 『금강경』을 설하자, 혜능이 한번 듣고 말끝(言下)에 바로 깨달았다. 그 밤에 법을 전해 받으니 사람들이 다 알지 못했다. 오조 스님은 혜능 스님을 보호하려고 했지요. 밤 삼경이면 다 잘 때인데, 대중 몰래 혜능을 방으로 불러 『금강경』을 설해 줍니다. 그런데 『덕이본』을 보면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어디에도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돈황본』에는 이것이 없습니다. 나중에 들어간 것이죠
“지위가 높은 국왕이나 대신이라 하더라도 국민을 괴롭히는 그 사람이 천한 사람이니라. 너는 국민을 괴롭히는 국왕이나 대신보다 훨씬 더 귀한 사람이다.” 고우 스님이 돈황본 육조단경 강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강좌를 주최한 불교인재개발원 박윤흔 상임고문과 만나 담소를 나누고 있다. 우리는 ‘똥은 더럽다’고 ‘금은 귀하다’고 합니다. 상당히 대립되는 물건인데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본래 한 물건도 없다)로 그 자리를 깨달으면 금이나 똥이나 조금도 차이가 없는 아주 깨끗한 것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혼용하지는 않습니다. 금덩어리를 밖에 두지 않고, 또 똥 덩어리를 귀하다고 해서 옷장 안에 넣어 두지는 않습니다. 각기 용도에 맞게 적절하게 쓰면서도 어느 것이
보리는 본래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 또한받침대 없네. 부처의 성품은항상 깨끗하니 어느 곳에 티끌과먼지가 있으리오 고우 스님이 강의 전 찾아온 비구니 스님들에게 최근 펴낸 ‘선요’에 서명을 해주며 열심히 공부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5. 게송을 바침(呈偈) 혜능 스님은 8개월 동안 방아 찧고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하나의 게송을 짓습니다. 이제 혜능 스님이 게송을 바쳐 오조 스님으로부터 법을 받는 얘기가 나옵니다. 한 동자가 방앗간 옆을 지나가면서 이 게송을 외우고 있었다. 혜능은 한 번 듣고, 이 게송이 견성하지도 못하였고 큰 뜻을 알지도 못한 것임을 알았다. 한 동자가 지나가면서 신수 스님이 지은 게송을 외우는데 혜능 스님은 그것이 성품도 보지 못했고,
오조스님이 말하기를, “너가 지은 이 게는 조그마한 견해는 이루었으나 다만, 문 앞에 이르렀을 뿐, 아직 안에 들지는 못했다.범부가 이 게를 의지해 수행하면 곧 타락하지 않으나, 이 견해로 만약 위없는 깨달음(無上菩提)을 구하려 하면 얻지 못한다.” 고우 스님이 강의를 마치자 인연있는 불자가 찾아와 인사를 하고 있다. 신수스님이 밤 삼경에 촛불을 들고 남쪽 회랑 중간 벽에 게송을 쓰니, 사람들이 다 알지 못하였다. 게송은 이러했다.몸은 깨달음의 나무요.마음은 밝은 거울(明鏡)과 같으니언제나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먼지와 티끌이 없게 하라. “몸은 깨달음의 나무이고,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으니” 중국의 옛날 명경(明鏡)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할머니
“내가 너희들에게 말한다. 세상 사람의 생사(生死)가 제일 큰일인데, 너희 문인들은 종일 공양해서 다만 복전(福田)만을 구하고 생사고해 벗어날 것을 구하지 않는구나!너희들의 자성이 미혹하면 복의 문이 어찌 너희를 구하겠느냐?” 고우 스님이 육조단경 강의를 마치고 참석한 대중들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3. 게송을 지으라 이르심(命偈) 여기에 육조스님이 행자생활을 끝내고 법 받는 얘기가 나옵니다. 오조 홍인스님이 하루는 문인(門人)을 다 불러 모이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혜능행자가 온지 8개월이 지난 어느 날, 오조스님께서 천여 명 대중을 다 불러 모읍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말한다. 세상 사람의 생사(生死)가 제일 큰일인데, 너희 문인들은 종일 공양해서 다만
“불성에는 귀천도 없고 고하도 없고 모든 것이 평등합니다. 이것만 알면 정말 편안합니다.스스로 괴로울 때 한번 점검해 보세요. 내가 남하고 무엇인가 비교하고 있지 않는가?” 고우 스님이 강의를 끝내고 수강생들과 즉문즉답을 하고 있다. 오조스님이 혜능에게 물었다. “너는 어느 지방 사람인데 지금 이 산에 와서 나에게 예배하며, 무엇을 구하는가?” 이것도 중요한 대목이죠. 우리가 절에 가면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더러 목적 없이 오는 이가 있어요. 또 절에 가는 이유를 잘못 알고 있는 분도 많고요. 심지어 ‘아들, 딸 시집가는데 날 잡아주십시오’ 하는 분도 있어요. 여기 오조스님도 그걸 물은 겁니다. “무엇 때문에 찾아 왔느냐?” 육조스님이 살던 신주에서 오조스
고우 스님이 돈황본육조단경 강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수강생들과 자리를 함께했다. “나도 때로는 미운 생각이 납니다. 오온개공인 것을 잠깐 잊어버린 때거든요. 미운 생각나는 자체가 굉장히 괴로워요. 그때는 오온개공으로 돌아갑니다. 그럼 미운 생각이 사라지고 정말로 즐겁습니다.” 스승을 찾아가는 목적도 가장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찾아가는 것이죠. 혜능 대사가 말하기를, “선지식아, 깨끗한 마음으로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생각하라.” 불교는 이 ‘마하반야바라밀법’에 다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반야심경」을 외웁니다. 이 경이 267자라 하는데 핵심 되는 말이 ‘오온개공(五蘊皆空)’입니다. 오온이 모두 공한 줄 알면 우리 마음 속에 마하반야가 생기기 시
육조 스님 시대나 지금이나 존재원리는 ‘마음’새끼줄을 뱀으로 착각하듯 ‘내가 있다’고 집착 그런데 여기에 “종지宗旨를 계승한다” 하는 이 ‘종지’는 우리 존재원리, 마하반야바라밀법을 말하는데, 이것이 갠지스강 모래수의 보물보다 더 가치가 있고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끊이지 않게 전해지도록 위거라는 분이 법해 스님한테 기록하라 했듯이 육조 스님이 또한 「단경」을 설한 의도도 여기에 있다. 그러면, ‘종지(宗旨)’란 무엇이고, ‘마하반야바라밀법’은 무엇이냐? 이것이 우리 존재원리의 내용이다. 이렇게 말하니까 굉장히 먼 얘기 같지만, 지금 내가 얘기하고 여러분들이 그 얘기를 듣고 있는 바로 그 존재원리를 말한다. 결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천년, 만년이 가더라도 이 존재원리는 조금도
「법보신문」은 각화사 선덕 고우 스님이 조계종 중앙신도회 산하 인재개발원 초청으로 1년간 진행하는 ‘돈황본 육조단경 대강좌’ 강의 내용을 격주로 연재한다. 연재되는 내용은 매월 한차례 씩 이어지는 강의를 녹취해 요약한 것이며, 고우 스님이 직접 감수했다. 「법보신문」은 고우 스님이 직접 감수한 ‘육조단경 대강좌’ 지상중계를 통해 보다 많은 독자 여러분이 『육조단경』의 정수를 만나기 바란다. 편집자 요즘 세상이 바쁘다고 하는데, 이렇게 별로 아는 것도 없는 사람의 강의를 들으려 오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실제 우리가 육조 혜능 스님의 단경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자기에게 무한히 감사해야 한다. 이 「단경」 강의는 대부분 불자들이 듣겠지만, 혹 불자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금강경」에도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