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상담 실습을 조금씩 여기서 소개하고자 한다. 명상상담은 명상에 기초한 상담을 의미한다. 상담이 현실적응의 문제에 더 관심을 갖고, 언어적인 작업에 의존한다면 명상은 현실보다는 초월적이고 언어적인 접근보다는 체험적인 접근이 강조된다. 양자의 장점을 살린 것이 명상상담이다. 매일 순간 순간하는 호흡명상은생활·마음균형 잡는데 효과적 명상 후 대중과의 의견 교환도현실 문제 점검 하는데 유익해 상담에서 명상을 활용하고, 명상을 통해서 현실적인 문제에 접근한다. 호흡명상은 스트레스 관리를 해줄 뿐만 아니라, 동시에 현실적인 문제에 차분한
호흡의 생리학적인 측면이란 생명현상을 말한다. 호흡이 멈추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고 호흡의 존재가 생명을 유지하는 중요한 한 부분이다. 숨이 들어옴으로써 몸속 혈관에 산소가 공급된다. 반면에 숨이 나감으로써 몸속의 이산화탄소가 몸 밖으로 배출된다. 호흡의 리듬은 생명유지의 필수적인 과정이다. 뿐만 아니라, 호흡은 신경계와 연결되면서 신체반응에 깊게 영향을 준다. 모든 유기체는 위협적인 상황에서 공격을 하거나 도망가는 행동을 하는데, 이때 자율신경계가 작용하게 된다. 공격을 하거나 도망을 가든지 신체가 준비한다. 교감신경계는 신체적
호흡명상이란 호흡을 관찰하는 명상법이다. 호흡을 관찰함으로써 불안과 같은 산란한 마음이 점차로 가라앉으면서 편안하게 된다. 또한 부가적으로 들숨과 날숨에 대한 관찰을 통해서 알아차림의 통찰을 개발하게 된다.실제로 호흡을 관찰할 때는 호흡과정을 몇 단계로 나누어서 실습하게 된다. 요가 호흡에서는 ‘들숨/멈춤/날숨/멈춤’의 4단계로 관찰하곤 한다. 반면에 불교에서는 ‘들숨/날숨’의 2단계로 구분하고, 호흡의 멈춤에 대해서 별로 주의를 두지 않는다. 들숨과 날숨에 대한 분명한 자각, 알아차림이 강조된 까닭이다.잠시 호흡 멈춰 자신 관찰하
호흡명상이란 호흡을 주제로 하는 명상을 말한다. 이때 ‘호흡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입장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가 된다. 하나는 호흡을 통제하고 관리하려는 입장이다. 여기에 해당되는 경우가 인도의 요가전통이나, 중국의 기공전통이 여기에 해당된다. 다른 하나는 불교의 명상전통이다. 여기서는 호흡을 통한 알아차림과 지켜보는 지혜의 개발에 초점을 맞춘다.통제·수용, 조절·허용을서로 보완적으로 적용시켜어느 쪽이 유용한가 보다는무엇이 유용한지를 살펴야불교에서는 호흡명상을 빨리어 ‘anāpanasati’라 하고 요가에서는 범
명상이란 무엇인가? 이점에 대해서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아마도 명상을 우리가 왜 수행하는가 하는 점을 생각하여 보면 보다 분명하여 질 것이다. 첫째는 마음의 고요함, 평화이고, 둘째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분명한 앎, 깨달음과 같은 깨어있는 통찰이 아닌가 한다.명상의 사전적인 의미는 '고요하게 생각하다'는 것이다. 명상에서 冥은 '어둡다. 깊다. 고요하다'는 의미이고, 想은 '생각하다'는 뜻이다. 우선 마음의 고요한 측면과 사유하는 두 가지의 측면이 있다. 여기서 생각하다는 것은 알아차림의 알아차림을 말하는 것으
암병동에서 의사는 환자의 암세포가 뼈 속에 전이되었는지를 정밀하게 조사하여 알고 싶어 한다. 이것은 뼈에 손상을 주지 않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정맥에 주입하고, 그 반응정도를 카메라로 촬영하여 판독함으로서 가능하다. 이것을 본스캔(Bonescan)이라 한다. 필자는 최근에야 본스캔이란 용어를 알게 되었다. 실제로 본스캔을 해본 경험이 없다. 단지 가까운 가족이 본스캔을 받는 것을 도와드린 적이 있다.우리가 일상의 삶에서 고통을 받으면 몸과 마음이 반응한다. 본스캔처럼, 이들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명료하게 그대로 관찰할 수 있는 방법이
몸의 느낌과 마음은 서로 어떤 관계에 있을까? 이 부분은 불교심리학에서도 문제가 된 부분이지만, 서구 심리학에서도 여전히 심중한 쟁점 가운데 하나이다. 자극이 오면 먼저 마음 곧 감정적인 반응이 먼저 발생하고 나중에 몸의 느낌이 생겨날까? 아니면 먼저 몸의 느낌이 있고 마음의 반응이 생겨날까?아이가 길을 가다가 개를 만났다. 그런데 갑자기 개가 마구 짖어댄다. 아이에게는 매우 위협적인 사건이 된다. 이때 위협적인 자극이 마음의 두려움을 만들어내고, 그런 다음에 몸의 느낌이 생겨날까? 아니면 몸의 반응이 먼저이고, 나중에 마음에서 불
삶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 가운데 하나가 바로 느낌이다. 우리가 산다고 하는 일은 바로 느낌을 느끼는 일이기 때문이다. 달콤한 느낌에 대한 애착과격렬한 저항이 우리 삶 모습진정한 나 이해코자 한다면느낌 이해·탐색이 출발점느낌발생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관점이 있다. 첫째는 가장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관점인데, 느낌은 외적인 자극에 의해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자극이 없으면 느낌이 없고, 이때 의식은 접촉된 자극을 구성한다고 설명을 한다. 이런 관점은 외적 자극에 초점을 맞추어진 해석이다. 이때 느낌은 자극에 대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세상을 산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몸으로 느낌을 느낀다는 의미이다. 느낌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고 반응하게 된다. 이때 특히 몸이란 공간이 중요하다. 느낌은 언제나 바로 몸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자극을 받으면 일차적으로 우리는 몸을 통해서 그것을 접수하게 된다.대상은 자체로는 부존재마음에 의해 창조되는 것각자의 마음가짐에 따라삶의 방식 그대로 드러나불교심리학에서는 느낌발생의 과정을 ‘접촉’으로 설명한다. 접촉이란 의식[識], 대상[境], 감각기관[根]의 화합을 말한다. 이것은 의식을 조건으로 하여 대상이 생
느낌은 몸과 마음의 징검다리이다. 느낌은 몸에 속하면서 마음에도 속한다. 몸과 마음은 의료적 관점에서 보듯이 서로 별개로 이해할 수 없다. 이들은 늘 함께 통합적이고 상호작용한다. 느낌은 몸을 조건으로 해서 발생되는 느낌과 마음을 조건으로 발생되는 느낌을 구분할 수가 있다. 가슴의 답답함, 뒷목의 경직됨과 같이 몸에서 일어난 경우를 몸(신체) 느낌, 혹은 감각 느낌이라 하고, 불안이나 슬픔과 같은 마음에서 발생되는 느낌을 감정으로 구별하여 부르고자 한다. 물론 이들은 설명을 위한 편의상의 구별이다. 이들은 실제로는 구분할 수 없을
우리는 일상에서 느낌이 좋다 혹은 나쁘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느낌은 막연한 어떤 감, 분위기이다.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영역을 말한다. 분명하게 자각하기가 어려운 만큼 인간의 무의식적인 행동에 더 많은 영향력을 미친다. 우리는 의식하기도 전에 벌써 달콤한 느낌에는 저절로 끌려가고, 불쾌함에 대해서는 쉽게 혐오감을 표현한다. 느낌과 행동 사이에는 간격이 없는 듯 순식간에 자동인형처럼 반응을 한다.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데 느낌에 대한 자각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마음에서 신체 현상 표현되고과거 경험 따라 무의식적 표출현재
몸이란 무엇인지는 다양한 논의가 있다. 예를 들면 몸이란 욕망의 상징이고 본능과 동일시된다. 이런 입장은 자주 종교적인 영역에서 발견된다. 한편 철학의 인식론적인 입장에서 보면, 몸은 세계를 경험하는 공간이다. 세상을 경험한다는 말은 바로 몸에 의한 체험이다. 체험은 몸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실제로 산다는 것은 몸이 있기에 가능한 사건이 아닌가 한다.명상수행에서는 몸을 어떻게 볼까? 두 가지 관점이 있다. 하나는 초기불교의 관점인데, 몸은 알아차림 명상의 대상이 된다. 몸은 관찰의 대상이다. 두 번째는 조사선에서 강조한 부분이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어떠한 판단을 하지 않고, 대상을 그대로 수용하기.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우리는 항상 어떤 상태로 준비가 되어 있고, 물들여져 있지 않는가? 한 생각이 일어나면 온갖 물결이 폭풍처럼 일어난다고 하지 않는가? 한 생각을 어떻게 내려놓을 수가 있을까?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수행이 ‘위빠사나’이다. 위빠사나(Vipassanā)는 알려진 바처럼, 거리를 두고 대상을 존재하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의미이다. 이런 해석은 vi가 '떨어지다', '거리 두다'와 같은 의미를 가진 접두어이고, passana는
분명한 앎(知, sampajañña)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가 하는 질문이 들어왔다. 그것은 삼빠잔냐에는 ‘주의 깊은 관찰로서 형상이나 모양을 안다’는 개념이 없다는 반론이다. 이것은 필자와 조금 다른 견해이다. 삼빠잔냐가 ‘주의 깊은 관찰’과 연결되어 있음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형상이나 모양에 대한 앎이 없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찬성할 수가 없다. 이것을 확인을 위해서는 호흡명상을 기술하는 아래의 ‘염처경’의 사례를 다시 보자.분별있는 앎과 없는 앎서로가 무관하지 않아현실과 초월 함께할 때창조적 긴장관
위빠사나 명상수행의 경전적 근거는 ‘염처경(念處經)’이다. 여기서 ‘염처’란 ‘알아차림의 확립(satipatthana)’으로 번역된다. 어원적으로 보면 ‘sati’는 ‘알아차림’으로 ‘patthana’는 ‘확립’에 해당된다. ‘patthana’는 ‘다가가다’는 의미의 ‘pa’와 장소를 의미하는 ‘sthana’가 결합된 말로, 어떤 장소[處]로 다가간다는 의미이다. 알아차림의 확립(念處)이란 일차적으로는 몸(身), 느낌(受), 마음(心), 현상(法)과 같은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이고, 이차적으로는 그 장소에 다가가서 ‘머물다’는 의
자애명상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사마타, 곧 집중명상에 포함된다. 자애로운 마음은 우리의 정서를 안정되게 하고, 안정된 마음에서 자애가 생겨난다. 이점은 마음이 고요하지 않는 경우를 보면 금방 이해할 수가 있다. 온통 마음을 뒤흔들어놓은 대표적인 마음현상들은 불안, 분노, 슬픔과 같은 감정들이다. 일단 이것들이 몰려오고 화를 내면 몸과 마음이 크게 상한다. 정서적으로 안정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화를 낼 때 우리는 대부분 그곳에 이기심이 가로놓여 있음을 본다. 쉽게 말하면 내 뜻대로 되지 않기에 화가 난 것이다. 우리는 산
우리는 일상에서 집중이란 말을 자주 사용한다. 축구경기를 하거나 아니면 학교공부나 일상의 업무에서도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집중하라고 말하곤 한다. 이때의 집중에는 무엇인가를 이루고 성취하기 위한 어떤 강한 갈망, 동기나 의도가 있다. 현실적 목표를 이루기위해서 집중하는 것은 적응적인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하지만 일상에서 말하는 집중이 명상이 되기 위해서는 그곳에 다른 어떤 무엇이 첨가되어야 한다. 마음의 평정과 같은 신체적인 이완이 동반해야한다. 이완이 없는 집중은 근육의 긴장과 심리적인 압박감을 유발하고, 그곳에 오랫동안 지
바쁘고 끊임없는 경쟁에 내몰리는 현대인에게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는 필수품이 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대체로 짜증을 내거나 도망을 간다. 짜증은 공격하는 형태로 나타나기에 불쾌감을 주고 새로운 스트레스를 만들어낸다. 술과 담배처럼 일시적으로 긴장감을 해소시키기도 하지만 이 경우도 근원적인 해결책은 아니다.경직된 근육 의도적 이완하고회피 보단 충분한 경험 필요지속적인 명상연습과 상담은심리적 저항 이겨낼 수 있어공격과 도망은 계속적으로 반복되고 습관화되어 성격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공격과 회피행동은 합리적인 문제해결
‘조건 지어진 모든 것들은 변화한다.’ 그렇다. 현실 속에서 변화하지 않는 대상을 찾을 수가 없다. 물론 사물들은 잠깐 동안 멈추고, 일정한 모양과 형태를 유지한다. 하지만 이것도 끝내는 사라진다. 사진을 찍어본 사람이라면, 모든 현상은 그때 그 순간이 지나면 다음에 다시 그것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이 사실은 우리에게 두 가지의 교훈을 준다. 하나는 모든 대상이 변화하기에 마음의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게 한다. 다른 하나는 반대로 변화하는 그것을 붙잡고자 더욱 집착하게 만든다. 내려놓은 경우는 그래도 다행이다.
일상에서 우리는 어떤 일에 집중된 상태를 ‘삼매에 들었다’는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로 결코 쉽지가 않다. 금방 생각들이 일어나면서 근심이나 불안에 자신도 모르게 다시 빠져들곤 한다. 그래서 더욱 수행자들에게 선정체험은 중요한 과제가 된다. 선종의 대표적인 어록인 ‘육조단경(六祖壇經)’에서는 일상의 모든 행위 가운데 흔들림이 없는 한결같은 마음(직심, 直心)을 ‘일행삼매(一行三昧)’라고 정의한다.근심은 순간순간 일어나흔들림없는 마음이 중요인내 속 대상에 집중하면고요함 그자체 체험 가능나의 행위들 하나하나가 모두 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