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지역에 강의를 하러 다니면 좋은 점이 참 많다. 강의가 아니라면 평생 갈 일이 없었을 곳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살던 지역을 벗어나 낯선 곳에 가면 우리 동네에서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 밀려온다. 사람 사는 곳이 다 거기서 거기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산세도 다르고 건물도 다르고 도로와 정류장의 교통안내판도 다르다. 사람들의 말투와 생활습관과 인심도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언어와 생활방식을 지닌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공통분모 때문에 낯설다는 느낌보다는 친근함이 더 강하다. 우리 동네와 낯선 동네의
‘아직도 이런 풍경이 남아 있다니….’아련한 향수 일으키는 정겨운 풍경들선뜻 자기 우산 건네주는 친절한 사람예기치 않았던 선물 받고는 큰 감동타인 바라보는 시각 수정하게 만들어강의를 하러 목포에 갔다. 목포대 평생교육원 요청이라 강의 장소가 목포인 줄 알았는데 무안이었다. 목포와 무안은 붙어 있는 도시였다. 목포든 무안이든 낯설기는 마찬가지여서 두 도시의 차이점을 생각하지 못하고 갔다. 지방 강의를 자주 다니는 만큼 아무리 낯선 장소라도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 부르는 측에서는 그게 아닌가보다. 기차를 타고
“지난번 조국 교수 강의는 집중이 잘 되지 않았어요.”매끈한 미모·몸매 동경하나육신의 쇠퇴는 막을 수 없어우리는 불성이라는 미모 가져젊거나 늙거나 모두 아름다워서울에 있는 어떤 절에 강의하러 갈 때였다. 그 절의 신도 보살님 한 분이 그런 말을 했다. 조국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 당선 후 민정수석으로 임명된 사람이다. 워낙 유명한 사람이라 강의도 잘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강의 많이 다니던데 소문과 다르게 별로였나 봐요?”사람이 모든 것을 다 갖출 수는 없지. 너무 완벽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절망감을 줄 테니까. 조국
오늘이 인천 송도에서의 마지막 강의다. 5주 동안 인천 연수구에 있는 해돋이도서관에서 불교미술에 대해 강의를 했다. 그런데 다섯 번을 왔으면서도 강의하느라 바빠 한 번도 정원을 산책하지 못했다. 드디어 오늘 그 다섯 번째 강의를 마치는 날이다. 언제 다시 이곳에 올 수 있다는 기약도 없으니 그 멋진 정원을 꼭 걸어봐야겠다. 걷다 시원한 그늘이 나오면 벤치에 앉아 산들거리는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어야겠다. 1시에 강의가 끝나면 점심 먹으러 가기에 바쁠 것이다. 강의 전에 걷는 게 좋겠다.보행에 불편주는 통유리 건물쉼 제공하는 도서관
북한산 금선사에 다녀왔다. 특강을 하기 위해서였다. 두 번째 찾은 길이라 지난번처럼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경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로움까지 생겼다. 한 달 전에 왔을 때는 놀람 그 자체였다. 서울 시내에 있는 도심 사찰이 어쩌면 이렇게 시골스러울 수 있을까. 믿기지가 않았다. 요즘은 아무리 깊은 산속 오지에 있는 절이라도 찾아가기가 어렵지 않다. 차가 일주문 앞까지 들어갈 수 있게 길이 잘 닦여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금선사는 구기동 주택가 바로 위에 있는 절이다. 당연히 접근성이 뛰어나리라 예상했다. 예상은
“무슨 김밥을 이렇게 크게 싸?”김밥 싸는 모습을 본 남편이 묻는다. 넓은 김에 찰밥을 얼마나 많이 넣었던지 김밥이 무만 했다.“혹시 남으면 저녁에 먹으려고.”강의 하러 창원으로 가야하는데기차 놓쳐서 지각만 걱정하다가지각에 대해 수긍하며 받아들여도착 위해 최선 다하는 마음가져오늘은 창원에서 특강을 하는 날이다. 오후 2시에 특강이 예정되어 있는데 1시에 마산역에 도착하면 곧바로 강의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 점심 먹을 시간이 애매하다. 보통 때 같으면 빵이나 샌드위치로 때울 수도 있지만 약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밥을 든든히 먹어야 한
병원에서 퇴원했다. 보름 동안 집을 비운 사이 힘들었을까. 남편이 감기에 걸려 끙끙 앓는다. 아직 내 몸도 회복되지 않았는데 집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부엌으로 향한다. 또 다시 주부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부엌은, 라면도 제대로 끓일 줄 모르는 남편이 보름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생생하게 증언해주는 듯하다. 설거지통에 숟가락과 젓가락이 가득하다. 입원하기 전에 사다 둔 햇반 한 박스가 거의 다 비어있다. 혼자 식탁에 앉아 햇반을 먹었을 남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제 내 손으로 지은 밥을 먹여야겠다. 장을 본 지가 오래 되었으니 급한 대
시어머니와 떠난 여행 통해생로병사에 대해 다시 생각냄새는 음식에서도 오지만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독한 마음서 나쁜냄새 나듯자비로운 마음선 좋은 향기“아, 구수한 냄새!”병실을 청소하러 온 아줌마가 문을 열자마자 감탄사를 터트린다. 입원한 지 일주일 정도 지나자 우리는 사소한 대화도 자주 할 정도로 친숙해졌다. “커피 냄새예요. 설탕 넣지 않은 원두커피인데 한 잔 드릴까요?”나는 커피를 좋아해 집에서 원두커피를 분쇄해왔다. 로스팅한 커피는 입원 직전 배달받아 신선도를 유지했다. 핸드드립 주전자와 드립퍼, 필터기까지 가져왔다. 긴긴
시간이 날 때면 종종 뒷산으로 산책을 나간다. 산이라고 해봤자 언덕보다 조금 높은 정도여서 10분만 오르면 정상에 도착한다. 산이라고 부르기에도 무색한 높이다. 등산 대신 산책이라고 말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낮아도 산은 산이라 평지를 걷는 것보다는 힘에 부쳐 입산을 하려면 특별한 결심이 필요하다. 그 어려운 결심을 요즘 자주 한다. 봄산이 주는 황홀한 매력 때문이다. 산에 가는 길은 여러 코스가 있다. 그중에서도 나는 동네 풍경을 천천히 구경할 수 있는 코스를 좋아한다. 뚜렷한 목적이 없어도 어슬렁거리며 걷다 보면 내가 살고 있는
삼국유사 순례를 다녀왔다. 구미의 도리사, 영천의 거조암, 군위의 석굴암과 인각사 등 아도화상과 지눌법사와 일연 스님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순례였다. 여러 차례 답사를 다녀봤지만 도리사와 인각사는 처음 방문이었다. 꽃 피는 계절에 찾은 역사적인 유적지. 여기에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앞장서서 감칠맛 나는 설명까지 곁들여주니 이보다 더 좋은 여행이 있을까 싶었다. 순례(巡禮)는 종교적으로 의미 있는 곳이나 여러 성지(聖地)를 찾아다니며 참배하는 것을 뜻한다. 뜻은 거룩하고 무겁지만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장소를 찾아가는 행위이니만큼 설렘
올해 아흔세 살인 그녀는 열 명의 자식을 낳았다. 그녀가 젊었을 때는 다산이 시대의 트렌드라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친정집도 부유했고 시댁도 넉넉해 도와주는 일손이 많았다. 때론 병에 걸려, 때론 불의의 사고로 자식을 잃는 집안이 많았지만 그녀의 집은 예외였다. 열 명의 자식들이 한결같이 건강하고 공부도 잘했다. 잔소리 한 번 한 적이 없었는데 일등을 놓치지 않았다. 열 명의 자식들은 약속이나 한 듯 최고의 대학에 입학했고 졸업 후에는 좋은 직장에 취직해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 홍복
행복은 행복을 줄까? 불행은 불행만 줄까? 얼마 전에 노비구니스님을 만났다.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바라본 스님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저렇게 고운 사람이 무슨 계기가 있어 출가를 결심했을까 궁금했다. 꼭 무슨 사연이 있어야 출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로병사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는 출가하려는 마음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스님의 얼굴은 맑아 보였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고생이라고는 전혀 모르고 자란 사람 같았다. 그런데 스님의 입을 통해 듣게 된 출가 동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남편·자식 하룻밤 새 잃고친정식
“그 형님이 방송통신대 중국어과에 입학했대.”“그래? 정말 잘 됐네. 사업 새로 시작하셨나보네. 요즘 중국과의 관계도 좋지 않은데 무슨 일 하신대?”“새로 시작한 건 아니고 워낙 외국어에 관심이 많은 분이니까 시간 여유 있을 때 공부해두려는 거지.”“역시 배운 사람은 다르구나. 그분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내가 예전에 알아봤다니까.”은퇴 후에도 공부 이어가며주변에 용기·희망 주는 지인어려워도 반복하면 익숙해져생각 거듭하면 통찰력 얻어늦은 저녁, 모임에서 돌아온 남편이 그분 얘기를 한다. 대학을 졸업한 지 30년도 훨씬 지난 나이에
오래된 얘기다. 언니 때문에 빚을 잔뜩 지게 되어 월세로 산 적이 있었다. 사는 것이 팍팍해 희망이라고는 전혀 기대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가족만큼 친하게 지내던 분이 딸의 등록금을 빌려달라고 했다. 딸이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등록금을 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고 파출부로 생활하면서 아이 둘을 기르는 분이었으니 사정이 매우 절박했을 것이다. 내 성격이 원래 징징거리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결코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살았다. 때문에 그분은 내가 어떤 상태인지를 정확히 모르고 부탁했
“아, 이제 다 살았어.”있는 돈 없는 돈 모두 털어사람들에게 보시하는 스님노후준비 안 하느냐 질문에“이 순간 잘 살면 노후준비”치과에 다녀온 남편이 탄식 끝에 붙인 후렴구다. 점심 때 식당에서 밥을 먹다 딱딱한 것을 씹었는데 너무 아파 치과에 갔더니 신경치료를 하라고 했단다. 신경치료가 끝나면 이빨을 씌우는 보철을 해야 하고 그것도 심해지면 임플란트를 해야 한단다. 그러면서 절대로 딱딱한 것이나 질긴 것은 먹지 말라고 했단다. 이제 음식도 함부로 먹을 수 없으니 다 살았어, 다 살아. 남편은 거듭거듭 한탄을 늘어놓는다.“다 살긴.
“뭘 이렇게 많이 싸 왔어?”셋째 언니가 왔다. 염색도 하지 않아 머리가 허연 언니가 배낭을 내려놓고 그 안에서 뭔가를 바리바리 꺼낸다.서운함 잊지 않는 나와 달리금세 관계 회복하는 셋째언니마음에 드는 사람만이 아니라모든 사람을 자비심으로 대해선택적 자비, 경계없는 자비베푸는 것 일체가 당신의 몫“모시송편 먹고 싶다고 했잖아.”“그래도 그렇지. 무거운데 이렇게 많이 싸 왔어? 어깨 빠지겠네.”“이 정도로는 어깨 안 빠져.”미리 사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는지 송편은 딱딱했다. 이것은 동부송편이고 이것은 깨송편이다, 공부하다 배고프면 참지
매생이를 샀다. 제철에 듬뿍 사 손질 후 냉동실에 넣어 두면 싼 가격으로 한여름까지 먹을 수 있다. 추운 날 먹는 매생이국은 허기진 위장뿐만 아니라 얼어붙은 마음까지 확 풀어준다. 겨울철 별미다. 겨울철 별미를 봄과 여름까지 두고두고 맛보려면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 찬물에 서너 번 씻어 매생이에 들러붙은 이물질을 제거해야 한다. 다 씻은 매생이는 물기를 꼭 짠 다음 먹기 좋을 만큼의 분량으로 나누어 각각의 비닐봉투에 담아 냉동실에 보관한다. 이렇게 보관한 매생이는 필요할 때마다 하나씩 꺼내 다시물을 붓고 끓이면 끝이다. 처치 곤란한
외출해서 돌아와 보니 대문 앞에 택배가 와 있다. 주소는 맞는데 받는 이가 누군지 모르겠다. 잘못 배달된 물건이었다. 돌려줘야 하는데 전화번호가 적혀 있지 않다. 택배회사로 전화를 하자니 8시가 넘어 업무가 끝났을 것 같았다. 내일 아침에 찾으러 오겠지, 싶어 현관에 놓아두었다. 저녁을 먹은 후 11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한참 잠에 빠져 있을 때 갑자기 인터폰이 울린다. 시계를 보니 12시 반이었다. 잠에 취해 인터폰을 받았는데 앞집 여자다. 혹시 택배 받은 것 없느냐고 묻는다. 받았다고 하니까 자기 아이한테 온 물건이란다. 지금
어. 이상하다. 목이 왜 이렇지. 새벽에 눈을 뜨는데 고개 들기가 힘들다. 죽창으로 찌르면 이렇게 아플까. 연자맷돌을 목에 걸면 이렇게 무거울까.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날카로운 통증이 뒷목을 치받는다. 새벽이라 병원에 가려면 서너 시간은 기다려야 하는데 목을 돌릴 수도 숙일 수도 없다. 항상 내가 쓰는 몸이라 내가 주인인 줄 알았는데 결코 내 것이 아니었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닦아주고 재워줬는데 이렇게 가차 없이 배신을 하다니. 당혹감도 들었다. 불안해진 남편은 응급실에 가자고 했다. 우선 통증에서라도 벗어나고 싶었지만 피가 흐르는
점심 무렵 산책을 나갔다. 햇볕을 쬐기 위해서였다. 노루꼬리만 한 햇볕이 스러지기 전에 서둘렀다. 옛날 사람들은 표현력도 참 대단하다. 겨울 햇볕이 얼마나 짧으면 개꼬리도 아니고 노루꼬리라 했을까. 사물에 대한 진지한 관찰에서만 나올 수 있는 비유다. 지금도 이 비유법을 대체할 만한 표현이 없는 것을 보면 그만큼 우리가 사물을 건성건성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가능하면 하루에 한 번은 집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예전에는 이런 시간도 아까워 방안에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발이 시리면 전기방석을 깔고, 등이 시리면 등에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