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병 걸린 노 비구니 병수발 자처했던 스님 늘 자비로운 그 마음이 수행의 결과임을 깨달아 강원 다닐 때였다. 출가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큰스님들 앞에서면 늘 긴장하기 십상이었다. 그래도 그 당시는 구도의 열정이라는 어설픈 마음 하나 챙겨들고 많은 스님들을 찾아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만 할 수 있는 추억일 뿐이다. 사찰에 소임을 맡고 있으면서 가까운 곳에 큰스님 법문이 있다고 가서 자리하고 앉아 단지 법문을 듣기가 쉽지 않다. 의례적인 인사를 위해 참가해주어야 하는 각종 행사는 늘 돌아서는 마음을 허전하게 한다. 흔히 큰스님이라고 하지만 큰스님의 경계는 정말 모호하기 이를 데 없다. 높고 깊은 수행력은 우리들이 알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들이 큰 감동을 받는 곳은 수행의 심오한 교리나 치열
가까이 하고 싶었던 스님 소식 전해 들으며귀한 인연 이어가지 못하는 내 모습 참회 절에 살다보니 기억을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신도들과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나게 된다. 언젠가 명함을 정리하다가 만남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 만난 당시 마치 수많은 생을 서로 그리워하다가 만난 듯 의기투합되어 영원히 함께 할 것같이 차를 마시고, 같은 취미를 이야기했던 사람들의 명함을 다시 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 순간 마치 망각의 술이라도 마신듯 완전히 잊혀진 듯 살아가는 자신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전화를 해봤다. 그 사람도 어제 일같이 그날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로의 현실적인 삶은 아름다운 인연의 끈을 마치 가녀린 연뿌리가 끊기고서야 이어지는 가는 연실처럼 만들어 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타 스님이 후배지만 존경한다는 비구니 老스님출가 선후-비구·비구니 떠난 승가 화합 아름다움 느껴 통칭 북전으로 통하는 북방으로 전례 된 율장에는 비구계목이 250개인데 비해 비구니 계목은 348개이다. 이렇게 계의 항목이 많다는 것만으로 단순 비교하여 불교는 여성을 차별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구심을 일으키고는 자꾸 따져 묻던 여자신도분이 있었다.스님들이 지켜야하는 구족계는 실제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만 제정하였지 미리 대비하여 정하지 않았다. 결국 부처님 당시 여성 출가자들이 보다 많은 지적을 받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세세한 내용들을 보면 당시 사회의 관습과 여성이라는 생물학적인 조건으로 인해 보다 많은 계목이 생겨나게 되었을 뿐 결코 차별적 견해에서 제정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교는 세
오랜 묵언 수행으로 말하는 법 잊었던 스님티 없이 맑은 마음 간직한 모습 부러워 가을이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더없이 하늘이 높아져 더없이 넓어진 하늘과 땅 사이의 공간에 이 가을 무엇으로 채워나갈까? 삶속에서 가장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단어는 언제나 행복이다. 부처님에 관해 말 할 때도 가장 자유로웠고 행복했던 분이라고 규정하고 싶다. 부처님을 믿고 의지해 따르는 사람들은 높아진 가을 하늘 가득 부처님처럼 행복으로 가득 채웠으면 좋겠다. 단순함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느껴지게 하곤 한다. 일상도 마찬가지로 의식의 단순함을 지닌 사람들을 가까이 하다보면 티 없는 가을 하늘같이 청아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처음 지엄 스님을 만났을 때 느낌이 그랬다. 한참을 말없이 있었다. 말
지난 28일 범불교도 대회가 우리나라의 심장부 서울 한복판에서 열렸다. 한사람의 잘못된 생각 때문에 수많은 대중들이 마음에 상처를 받고, 힘들어 해야 했다. 종파를 초월한 모든 스님들과 불자들이 다 함께 모였으니 그야 말로 범(凡)이라는 말을 붙이기에 조금도 주저 하지 않을 것이다. 많은 불자들이 모여 국가의 앞날을 염려하고 편협하고 잘못된 의식이 나을 엄청난 재앙을 미리 막고자 했던 것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이렇게 먼 길을 올라와 함께 외치는 소리를 듣는 위정자들이 측은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언제나 불교계의 크고 작은 모든 행사에 꼭 참가하는 실천하는 불제자가 계신다. 신계사 낙성법회으로 금강산에 갔었을 때의 일이다. 꿈에서도 그리던 금강산 비룡폭포를 오르면서 일행 중에 참으로 기이한 스님,
여름 장맛비가 한참을 퍼붓고 지나간 자리에서도 그 자태를 잃지 않고 고고한 모습을 간직하는 연꽃은 언제 바라보아도 그 단아함에 흐트러지고 산란했던 마음을 챙기고 옷매무새를 여미게 만든다. 요즘 집권자들은 한창 종교편향 정책으로 물의를 빚고 있다. 현 정부의 왜곡되고 편향된 의식을 접하다 보면 종교가 사회를 지배해 ‘암흑의 시대’로 불렸던 중세 서구사회가 문득 생각나서 섬뜩함이 느껴진다. 김영삼 정부 때 경복궁의 수련을 뽑아버렸다는 소식을 접한 일이 있었다. 종교적 편향성에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성마저 왜곡되어버린 사람들이 어떻게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어쩌면 연잎과 연꽃들은 이 무더위에 수면을 박차고 올라와 우리들에게 다시 한 번 크게 소리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제발 혼탁한 세상에 물
스승과 제자 사이인데도 한번도 권위 내세우지 않아늘 격의 없는 모습에서 수행자 위의 마음으로 체득 여름의 무더위는 승속을 막론하고 견디기가 어렵다. 가야산 600고지에 자리한 해인사도 여름의 더위는 견디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강원에서 공부할 때는 그 무더운 삼복더위에도 아랑곳 않고 축구를 한다면 바로 운동장에 나가 뛰어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토록 더운데도 뛰어 다녔는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며칠 전 더위가 심하다고는 하지만 사중 스님들의 복장이 너무 심했다. 아예 상의는 벗어버리고 하얀 블라우스 같은 개량 승복을 입고 공양하려 나타났다. 조용히 지적한 이후로는 그렇지 않았지만 정말 스님들도 여름 하복을 특별히 제작하는 것이 좋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여름복장이 따로 없고
넘치는 끼로 주변에 즐거움 전하는 스님 올 가을 음악회에서 신나는 춤사위 기대 정말 무덥다. 때로는 수식어가 그 의미를 더 강하게 해주지만 극단의 상황에서는 아무런 수식어가 없는 것이 더 강하게 의미를 전달하는 것 같다. 찜통더위니 불볕더위니 하는 말도 너무 더워 숨이 턱 막힐 듯한 지금의 순간에는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느낌으로 들린다. 제주는 전국 최고 온도에는 못 미치지만 습도가 더 문제다. 평균 70%이상의 습도는 정말이지 뜨거운 증기로 삶는 듯하다. 더위에 지쳐 있다가 이 더위에 법고를 연습하는 소리가 들렸다. 갓 계를 받은 스님이 열심히 법고를 연습하고 있었다. 법고소리를 듣다보니 하유 스님이 생각난다. 법고를 잘 치기로는 하유 스님을 따를 스님이 없을 것이다. 너무 기교적으로 친다고도 하지만
비문 해석서로 만났던 스님의 자애로운 일생후학의 모범 되지 못할 내 모습 자꾸 부끄러워 무수한 스님들을 만나게 되었지만 실제로 만나 많은 시간을 보냈을 지라도 결국은 몇 마디 말과 내 마음 속에 남아있는 몇몇 행동만으로 그 스님을 그릴 뿐이다. 몇 분은 살아서 만났지만 지금은 피안의 나루를 건너셨고, 또 많은 분은 제법 긴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지금은 이름조차 아득하니 실로 내가 직접 만났다고 말을 하지만 이 또한 너무나 허망한 기억의 놀음에 불과한 것 같다. 직접 만나고 잊혀진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로 만날 수 없는 먼 시간의 생을 머물다 가셨고, 이제는 차디찬 비석으로 남았지만 내게 더없이 따스하게 닿아 오신 분들도 계신다. 충남 보령 성주사 무념 선사를 처음 만난 것은 구산선문에 열정을 가지고 북한
병기 녹여 불상 만든 신라 불자들 이야기신심 깊었던 그 마음을 내 삶의 귀감으로 삼아 인류는 언제나 최신소재와 기술을 만들어 왔다. 이러한 일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최고의 기술은 군사용 기술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카메라가 소형화되고 특히 휴대폰으로 고해상도의 사진을 찍을 때면 흔히들 “스파이용 같다”는 말을 쉽게 하게 되는 것도 우리들 머릿속에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도구는 군사용으로 먼저 사용된다는 사실이 무의식중에 담겨져 있다. 하지만 오래전 신심이 돈독했던 신라 사람들은 청동기보다 강하고 뛰어난 최신소재인 철기를 전쟁무기의 소재로 받아들였다. 당시 불자들은 이웃국가의 철기를 녹이고 그들의 땅에서 철을 채집하여 강인하고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철조 부처님 상을 제작했다. 훗날
세상을 정화하듯 그림 그리는 스님고귀하고 맑은 영호 닮지 못해 부끄러워 호감형이라는 말이 한때 유행했다. 정형화된 말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우리들은 이러한 느낌에 익숙해져 있는 게 사실이다. 누구나 처음 만나는 타인에게 좋은 이미지로 남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다. 어느 연구에 의하면 우리들은 호감과 비호감에 대한 판단을 불과 0.3초 사이에 해버린다고 하니 정말 숙세의 인연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자신의 이미지를 타인에게 좋게 비치게 할 수 있겠는가? 한동안 우리 교단이 폭력적인 이미지로 인해 힘겨울 때가 있었다. 그 당시 얼룩진 불교의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다시 맑고 티 없는 천진한 이미지로 바꾸어 심어 준 데는 원성 스님의 그림과 글이 큰 역할을 했다. 스님을 가까이서 대하다보면 스님
복수심 놓고 깨달음 얻은 티베트 성자의 시 외우며최고 진리 향해 정진하는 수행자로서 마음 다잡아 어머님 살아계실 때 / 내 나이 어렸고 / 나 이제 나이드니 / 그분 이미 아니 계시네우리 함께 있다 해도 / 영원을 기약하지 못 할 것 / 나 불멸의 진리를 찾아 / 수행에 정진하리라아버님 살아계실 때 / 나 집 떠나 없었고 / 나 이제 돌아오니 / 그분이미 아니 계시네우리 함께 있다 해도 / 영원을 기약하진 못 할 것 / 나 불멸의 진리를 찾아 / 수행에 정진하리라 행자시절이었다. 잘린 연뿌리에 가늘게 이어지는 연실처럼 미련이 연연이 피어오를 때면 언제나 흐트러진 마음을 다지면서 늘 맘속으로 되새겨보았던 티베트의 영원한 성자, 밀라레빠의 시구절이다. 일체의 무상을 너무나 간결한 일상의 문체로 써 내려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