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저 하늘 위에서 지구를 내려다본다면, 푸하하 웃음을 터뜨릴 것 같습니다. 한쪽에서는 좋아서 환호성을 지르고, 한쪽에서는 슬픔에 겨워 깊이 탄식하고, 한쪽에서는 죽이겠다며 총을 쏘고, 한쪽에서는 살려야 한다며 발을 동동 구릅니다. 한쪽에서는 집으로 돌아가고, 한쪽에서는 집을 떠나고 있습니다.여행 주제 원고 청탁하니죽음과 연관짓는 글 많아모로코 여행 앞두고 설레여행지에선 모두가 이방인새처럼 자유롭게 다녀올 것스님, 휴가철입니다.처음에는 휴가의 ‘가’라는 글자가 집 가(家)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쉰다’는 뜻으로 생각
혜인 스님 전화로 하루시작생전에 자신의 영단 당부해“가사만 덮은 운구 참 좋아화려한 꽃장식도 하지마라”지루한 장맛비가 멈추어선 곳에는 벌써 파아란 하늘이 자리 잡았습니다.먼 남쪽나라 제주에서 장마소식이 끊어지면 곧 우리가 사는 아름다운 강산에도 비가 멈추어지고 생기발랄한 여름이 활기치기 시작하겠지요.장마가 물러난 자리에는 사색가득 묻어나는 만해 스님의 시구가 마음에 머물며 좀처럼 떠나지 않습니다.“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루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
이른 아침입니다. 다섯 시를 조금 넘긴 시각. 습기를 머금은 대지에는 새벽 기운이 서늘합니다. 새들이 지저귀고, 부지런한 사람들은 자동차를 몰고 일터로 향합니다. 이 이른 아침.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미워하는 이와 만나는 것이더 어렵다 생각한 적 있지만이른 새벽 찬 기운 속 허전함은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일 수도2600여년 전, 인도 마가다국의 아자타삿투왕은 보름달이 두둥실 뜨는 서늘한 저녁에 신하들을 불러 놓고 “지금 무엇을 하면 가장 좋을까?”를 물었다고 하지요. 그런데 저는 지금 파란 새벽기운이 마지막 숨을 토해내는 이 시각에 눈
장맛비가 멈출 줄 모르는 기세로 쏟아집니다. 제주에는 물이 고여 냇물이 되도록 흐르는 일이 좀처럼 없지만 오늘따라 자꾸 거칠게 내리는 빗줄기가 야속하게 느껴집니다. 수십 년을 보아온 장마이지만 오늘 마음의 정점이 흐트러지고 나니 속절없이 내리고 있는 비가 자꾸만 쓸쓸하게 느껴집니다.병환 중에도 매일 108배 수행스스로에게 게으름 용납 안해선방 안거 스님들에 대중공양 평소 원력대로 텅빈 통장 남겨 2년 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은사스님께 갑자기 간암이 발견되어 절제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평소 워낙 책임감이 강하신 분인지라 수술한 지
스님, 장마철이 시작됐다고 하는데 이곳에는 시원스런 빗줄기를 만날 수 없습니다. 비가 와야 할 때는 비가 오는 게 맞고, 해가 쨍쨍 내리쬐어야 할 때는 햇살이 따갑고 뜨거워야 옳겠지요. 산다는 게 이런 것 같습니다. 내 뜻에는 흡족하지 않아도 순서가 지켜지는 것이 옳기에 때로는 억울하거나 속이 상해도 ‘이치대로 흐르는 법이니까…’라며 억지로 마음을 달래야 할 때가 있지요.6월23일 접한 원적 소식 후 전해지는 행적 보며 깊은 감동 더 머물러 달라 청하고 싶지만 스승은 기다려 주지 않는 듯 지난 6월23일, 스님의 은사이
스님, 안녕하세요. 꽃소식과 햇차 소식만 남쪽에서 올라오는 건 아닌가 봅니다. 장마 소식도 올라오고 있어요. 이젠 완연한 여름이 틀림없습니다. 여름은 비와 함께 시작하니까요.세상 줄서기에 끼지 않는 대신 천천히 움직이며 세상과 공감스님 삶의 속도는 어떤지요? 지난번 드린 편지에서는 한 청년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가득 실어 보내드렸지요. 그리고 그와 관련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계속 스님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스님의 답장을 받고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편지란 것은 본래 마음이 움직여서 자신도 모르게 두런두런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습니다. 세월이 참 빠르다고 인사를 나누기 시작한 일이. 엊그제가 부처님오신날이라고 경축에 들떴던 마음이었는데, 벌써 아스라한 일같이만 느껴집니다. 앞으로 다가올 많은 일들에 관한 망상들이 우리들의 시간을 훔쳐가 버리는 것만 같습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행복의 첩경이라 가르치지만 차가운 현실 속 맨발은 시려워슬픔 감내해야 하는 사바에서 진정한 자비의 길은 무엇일까 늘 앞에 둔 듯한 가르침인 제행무상한 일들을 자꾸 만들어 가는 사이에 시간이 화살같이 날아가 버린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늘
스님, 안녕하세요. 은혜와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에도 벅찼던 5월이 이미 지났고 어느 사이 6월 속으로 쑥 들어와 버렸습니다. 며칠 전 서울의 지하철 역사에서 또다시 사망사고가 일어났지요. 열아홉 살 청년의 죽음. 정말 잘 살아보려고 애를 쓰던 청년이 비극을 맞고 말았다는 사실이 가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잘 살아보려 애쓰던 청년 끼니 챙겨먹을 새도 없이 종종걸음 처야하는 이들에게 부처님은 어떤 법문을 주실까지독한 사바에 펴는 가르침은지친 이들에게 위로가 되어야 그러지 않아도 이 땅을 탈출하고 싶다는 젊은이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오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가네….’스승의 노래 부르던 시절 지나고 앞자리서 그 노래 듣는 나이 돼어린시절 선생님의 부당한 행동 아직까지 기억 속에 남아 있어 스승인 세존 만난 것이 큰 행복부처님오신날 전야제 작은 축제 때 탑돌이를 마치고 찬불가를 부르던 ‘리틀붇다어린이합창단’들이 갑자기 스승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합창을 마치고 참석한 스님들께 작은 선물과 꽃바구니를 선물했답니다. 갑자기 가슴 뭉클한 순간이었습니다.어린 시절 오월이면 늘 부르던 스승의 노래와 어린이날 노래는 가사와 음곡 모
스님, 안녕하세요.어제는 강의 휴식 시간에 어떤 분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이 선생님 은사이신 고익진 교수님의 책을 구해서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분, 참 아까운 연세에 세상을 떠나셨더군요. 54세에….”54세 입적한 故 고익진 선생젊은이들의 이야기 들어주며생각 기회 열어준 스승 떠올라그 나이 접어든 자신 돌아보며안일한 기성세대된 건 아닌지우리 선생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뒤로 어느 때나 아쉽고 마음 아프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오전, 이 말을 듣는 순간에는 쿵 하고 뭔가가 저를 강하게 때리는 것만 같
오월은 인생 어느 때나 설렘의 계절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어릴 때는 어린이날이 있어 오월이 오면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자신의 전부 담은 빈자일등은절대적 크기 떠난 마음의 표현눈에 보이는 모습 기준 삼으면풀지 못할 일 너무 많아져대학시절 오월은 젊음을 아픔 속에서 분노의 열정으로 들끓게 하곤 했습니다.‘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를 노래 부르며 거리로 뛰쳐나갔던 기억들이 싱그럽게 다가옵니다.신록의 계절 오월이 곁에 왔습니다.‘꾀꼬리처럼 울지도 못할 기찬 사랑을 혼자서 가졌어라’ 노래한 시인의
스님, 안녕하세요. 봄의 한가운데로 쑥 들어와서인지 두 사람이 주고받는 편지에 꽃 이야기가 빠지지 않습니다. 꽃을 지금처럼 많이 이야기해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예요. 꽃 이야기에 슬그머니 싫증이 나서 눈을 들어 창밖으로 눈길을 던집니다. 하지만 그곳에 역시 꽃이 있네요.퇴근길 지친 세상 사람들위로해 주는 거리의 연등은저렴하고 흔한 플라스틱등힘없는 이들 곁의 불교 돼야지난번 답장에 쓰여 있던 스님의 생각, 잘 읽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봄꽃의 정확한 이름이나 원산지, 식물학적 계통은 알지 못해도(중략) 꽃에 대한 알음알이보다 꽃을 꽃으
깊고도 깊은 봄인가 봅니다. 봄꽃은 아름다운 제주의 길가에만 가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꽃 아름다움은 꽃 자체보다마음속에서 모질게 결정돼수행의 문 일단 들어섰다면일체 ‘지해’ 다 내려놓아야‘지혜’는 비울 때 더 빛나보내오신 편지에 온통 봄꽃이 흐드러져 나부끼네요. 봄꽃 가득 묻은 편지를 보니 어린 시절 좋아했던 시조가 생각납니다.‘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 만은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들어 하노라’정말 봄날 달밤, 배꽃 가득 핀 산언저리 밭에 하이얀 달빛이 배꽃에 쏟아질 때면 달빛 감싸 안은 배꽃을 향한 감
스님, 안녕하세요.어느 사이 봄꽃들이 한꺼번에 피어서 온 세상을 꽃 대궐로 만듭니다. 노란 꽃, 분홍 꽃, 흰 꽃, 빨간 꽃, 주황 꽃, 심지어 보라색 꽃까지 온갖 빛깔의 꽃들이 산과 들에, 도시의 골목길과 아파트 단지에 피어난 걸 보다가 문득 놀란 적이 있습니다. 만약 사람이 한 몸에 저런 빛깔로 옷을 입는다면 분명 촌스러울 테지요. 그런데 어찌하여 저 꽃들은 저리도 잘 어우러지는 걸까?‘막존지해’는 외면과 달라부처님도 의문 갖고 출가부정·부당 판치는 사바서 잘 분별해 ‘최선’ 찾아야 멋쟁이는 비싼 브랜드 옷을 걸친 사람이 아니라
산사라는 말이 출가한 당사자인 본인에게도 낯설 때가 많아진 것 같습니다. 세상의 일들이 어떠한 여과 과정도 없이 전해지는 시대에서 산사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되씹어 보곤 합니다. 세상 소식들이 각종 매체를 통해 실시간 전해지다 보니 산사에 살면서도 늘 사바에 살아가는 것같이 되어 버리기 일쑤입니다.선거 앞두고 소란한 세상 보며삼권분립 존재하는가 의구심주지 중심 사찰 운영 형태도 민주적인 구조와는 거리 멀어 모순 지우는 길은 멀기만 한듯은해사에 가면 산내암자 기기암이 있습니다. 이름이 좀 특이한데 뜻은 정말 매혹적입니다. 신
스님, 편지 잘 받았습니다.초하루 법회를 마치고 모두가 돌아간 뒤 텅 빈 사원, 스님들의 법문 주머니도 털리고, 공양간의 밥솥도 깨끗이 씻기었고, 해우소에도 더 이상 사람들의 근심이 쏟아지지 않네요. 부처님도 이제는 휴식을 취할 시간입니다. 달뜬 소망과 지친 푸념을 한보따리 짊어지고 찾아온 대중들이 돌아가고 소망과 푸념의 뒷설거지까지 마친 절집 풍경이 그려집니다.해발 4000m 안나푸르나서 손전등도 없이 밤산행 강행 달빛 기대 무사히 캠프 도착관음보살 자비 달빛 닮은 듯 적막이 감도는 사원 뜨락에 바싹 야윈 달님이 손톱 끝에 위안의
오늘 초하루법회가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달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달을 중심으로 하는 삶에서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양력의 삶으로 전이해 버린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달빛을 바라보며 친구들과 나누웠던 많은 이야기들은 고스란히 삶의 언저리에 남아 지친 일상의 휴식처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우리들 가슴속 달은 그런 추억입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아이들에게 달은 그냥 낯선 이야기 속 소품에 지나지 않은 듯합니다.인류 대학살사 고뇌하던 중달빛 통해 신선한 답 얻어하루에 한 번쯤 밤하늘 보며감성의 리듬 회복하게 되길20세기
스님, 안녕하세요.제게는 매년 행복한 소식 두 가지가 들려온답니다. 단풍소식과 꽃소식이지요. 단풍소식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데, 꽃소식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옵니다. 자연의 화려한 빛깔이 쉬지 않고 오르내리는 가운데, 올봄도 예외 없이 꽃소식이 남녘에서 올라오고 있네요. 그런데 어쩐지 갈지자로 느리게 오는 것 같아서 “요 얄미운 것, 진작 좀 올라오지!”라며 짐짓 꿀밤을 먹이고 싶습니다. 하지만 찬바람을 견디느라 꽃가지들은 또 얼마나 고생했겠어요. 나름 찬 겨울 이겨내느라 애썼을 테니 그저 고맙고 대견한 마음으로 새 봄 새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립니다. 3월인데 올해 날씨는 종잡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을 만날때다 지구 온난화 걱정을 이야기 했는데, 오늘은 빙하기라도 걱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개성공단 폐쇄로 힘든 지인힘없는 백성만 고통 받는데잘했다며 박수치는 사람도무슨 주장이든 내 입장일 뿐변덕스럽기는 날씨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내 맘도 날씨에 버금가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한 번 글쓰기를 딱 멈춘 적이 있었습니다. 써놓은 글을 보니, 그때 심정으로 8할 이상이 못난 내자랑, 내주장이었습니다. 순간 어찌나 부끄럽던지….
스님, 안녕하세요. 어젯밤, 늦도록 책읽기 모임이 있었지요. 자정이 다 되어 버스정류장에 내렸는데 함박눈이 펑펑 내렸습니다. 순식간에 눈이 소복하게 쌓인 길을 터벅터벅 걸으며 집으로 돌아왔지요. 그런데 도로 가 화단에 쌓인 눈을 보자니 슬그머니 걱정도 됐습니다.규칙으로 사람들 강제하는 것타인에 대한 믿음 부족 때문기득권자가 자기중심 속에 사람 우겨넣으니 혼란 커져‘이제 머지않아 싹이 틀 텐데 이렇게 눈이 쌓였으니 이걸 어째…. 다시 꽁꽁 얼게 생겼네….’그러나 이내 걱정을 거뒀답니다. 지난겨울에 읽었던 북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