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총수에서 ‘효 포교사’로 이름 알려 서암효행상 통해 전국의 효자·효부 발굴홍은·홍효사 창건해 불교의 효 사상 선양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에게 이르셨다. “나는 세세(世世)에 온갖 부처님의 지극한 효행을 본받아 행했으므로 덕이 높아지고 복이 왕성해져, 마침내는 부처가 되어 삼계(三界)에 독보하게 되었느니라.” 육도집경(六度集經) 윤회를 끊지 못한 중생들은 억겁의 세월을 돌고 돌아 서로가 부모이고 자식이었을 터이다. 나의 자식은 가까운 과거, 나의 부모였을 것이고 한번 스침으로 끝난 박한 인연 또한 지혜로 보면 칭얼거리며 안겼던 부모의 따뜻한 품이었으리라. 대현 그룹 손현수 회장(78). 그는 1976년 대현실업을 창립, 지하상가개발에 뛰어든 이래 20여 년간 선견지명으로 국토의 면적을 늘리고 국민의
태허 운암 김성숙의 외손자기자 시절 운암 삶 접하고 전율3년 노력 끝 기념사업회 설립용문사에 운암 파크 조성 꿈 “학식과 덕망이 높았던 만해 스님이나 용성 스님이 수행자의 신분으로 항일운동에 적극 앞장서셨듯이, 태허 스님도 항일운동에 투신하여 스님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활동했던 분입니다. 그런데 불자들마저 잘 모르고 있다는 게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지난해 3월 조계사에서 열린 추모제를 통해 불교계에 그 존재를 드러낸 ‘태허 스님 기념사업회’를 이끌고 있는 민성진 사무국장(48). 그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열정을 불태웠던 태허 스님이 불교계에서조차 낯선 이름으로 남아 있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웠던 나머지 태허 스님의 사상 조명을 업으로 삼아 스님이 못다 이룬 뜻을 이루기 위한 또다른
“소나무와 삼나무는 해를 가리고/ 벌려 선 봉우리는 하늘을 이었으니/ 인간 세상의 정토(淨土)라 할 수 있고/ 구름과 물의 산 그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옛사람들은/ 여기서 도를 얻었고 여기서 즐기었다.” (서산대사 『청허당집』 중) ‘푸른 길 따라서 구름 속으로 들어가니/ 누각이 시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네. /눈발 흩날리며 걸린 폭포는 용의 조화가 분명하고/ 하늘 찌르며 솟는 흰 학은 몇 천 년이나 살았는지/ 시냇가 푸른 소나무도 삼백 길이나 되어 보이네./ 스님은 내가 봄잠 즐기는 것도 알지 못하고/ 무심하게 낮 종을 치고 있구나.’ (김삿갓 ‘금강산에 들어가다’) 절벽 위 위태한 보덕암…골골마다 부도며 석불 지천으로 만개 ‘마하연엔 주춧돌’ 서러워 눈물…지관
“죽음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길은끊임없이 정진하고수행하는 길 뿐” 매주 화요일마다 부산 광안동에 있는 이숙희 컬렉션에서 경전공부를 하고 있는 화요법회 도반들. 도반(道伴), 어디 함께 수행하는 벗 정도를 이르는 말일까. “산꼭대기까지 오르도록 나를 따라오던 것이 새소리 물소리뿐만이 아니었다”라고 노래한 어느 시인은 “나도 모르는 사이 옷깃에 스며들기도 하고 물들기도 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저 홀로 빛나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라며 아름다운 도반에 대한 정의를 읊조린다. 부처님께서는 도반에게 가르침을 설하고 도반에게 대중 참회를 청하고 도반을 통해 대중의 근기에 맞는 법을 설한다. 그러하기에 도반은 ‘수행 그 자체’와 ‘수행의 완성’을 의미한다. 진정한 도
“아이들 마음은 하도 순수해서참선이라는 등불 하나만 켜줘도스스로 온 마음을 밝힙니다” 지난해 11월, 부산 사동초등학교 4학년 1반에서 한바탕 경사가 났다. 부산 영재올림피아드에 출전할 학교 대표 선발시험에서 총 6명의 대표 중 4학년 1반의 학생만 무려 4명이 뽑힌 것이다. 영재올림피아드에 4학년이 출전하게 된 것도 이례적이지만 한 반에서 한꺼번에 4명이 뽑힌 것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부산 교육계 신화로 떠오른 인물 동료 교사와 학부모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도대체 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쳤을까. 답은 하나, 담임교사 조미자 선생(55, 길상심)이 아이들에게 참선을 통해 집중력을 높여 준 것이었다. 최근 ‘부산교육계의 신화’로 떠오르고 있는 화제의 인물 조미자 선생
2000년 김흥국 장학재단 설립뇌성마비축구단 후원 등 보살행작고한 어머니 통해 불교 인연불자연예인 자존심이 인기비결 대표적인 불자가수 김흥국. 그는 늘 바쁜 와중에도 보시행을 이어가고 있다. 그에게는 남의 어려움도 내 것처럼 느끼는 따뜻한 인간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그를 만든 사람은 바로 어머니였다. 지난달 18일 오후 7시, 리베라 호텔 3층 베르사이유홀에 마련된 ‘김흥국 디너쇼’ 행사장 가득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윽고 홀의 모든 조명이 꺼지자 노래가 울려 퍼졌다. “왕십리~밤거리에~구슬프게 비가~내리면~” 사람들이 환호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홀에 마련된 객석은 한참 전에 가득 찼건만, 몰려드는 인파는 끝이 없었다. 이날 행사 주최 측이 추산
지난 5월 19일 조계사에서 열린 장애인 수계법회에서 고색의 가보트를 연주하고 있는 김지선 어린이. 빛과 같은 사람 되어 아무리 어둡고 절망의 그늘이인생에 드리운 채 붙잡고 있어도일어서서 걸어 갈 수 있는 사람 절망의 어둠에서 소망의 빛으로걸어 나올 수 있는 사람이힘차게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인생이 언제나 밝음만이있을 수 없겠지만시련이 와도 포기하지 아니하고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사람 절망과 어려움소망 없는 듯 하여도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사람 용기와 지혜 판단력으로빛과 같은 사람 되어성공의 길을 걸어가는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김지선 자작시 어둠, 눈물, 편견, 바이올린, 베토벤, 레이 찰스, 이희아 등등. 시각장애를 딛고 바이올린으로 꿈을 연주
스물다섯 꽃다운 나이의 한 여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했다. 근거 없이 떠도는 소문이 칼날이 되어 그녀를 천 길 낭떠러지로 몰고 간 것이다. 그녀는 이제 세상에 대해 더 이상의 미련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데…. 너무 억울했다. 정말 이렇게 끝내야 하는 걸까. 생과 사의 갈림길…. 그 순간 독실한 불자였던 지인 한 분이 ‘불교를 공부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이 스쳐갔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난생 처음 부처님을 떠올렸고, 약봉지를 접어둔 채 절로 향했다. 그것이 불연(佛緣)의 시작이었다. 성인월 김기연(48·부산 서대신동) 씨. 그녀는 지금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깊은 우물 바닥 속을 헤매듯 절망의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리는 그녀에게 불교는 한 줄기 빛이었다. 25세 절망서 만난 부처님 “
사생대회에 참가한 어린이, 청소년들이 봉화산을 주제로 대웅전과 포대화상 주위에서 자유롭게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다. 대웅전 어간 앞 토방에는 어린이 불자들이 부처님을 생각하며 글을 쓰고 포대화상에 기대어 그림을 그린다. 사찰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영어 말하기 대회와 구연동화마당도 도량 옆 특설 무대에 마련됐다. 학부모들은 노래 실력을 뽐내느라 여념이 없고 어르신들은 도량을 배경으로 한 무대에서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추기도 한다. 어린이날인 5월 5일과 6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에 위치한 봉화산 정토원(원장 선진규)에 펼쳐진 풍경이다. 올해로 23회째를 맞이하는 봉화산 청소년 축제는 이름만 청소년 축제이지 가족 축제마당이자, 인성을 배우고 가족애를 배우는 교육마
박정자 할머니의 하루는 천수다라니를 외우고 화엄경, 금강경, 법화경이 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새기는 일로 시작된다. 20여년간 어린이 법회를 지도해서일까, 80세를 훌쩍 넘은 노보살님의 얼굴은 해맑고 욕심이 없어 보였다. 어린이 같이 수줍어 하는 모습은 영낙없는 초등학생이다. 부산 남산동에 있는 낡고 오래된 15평 남짓한 아파트는 부산 청룡초등학교 교장을 퇴직한 박정자 할머니(87· 보리성)의 보금자리이다. 45년간 교편을 잡았으니 퇴직금과 연금도 만만치 않으련만 박 할머니에게 남은 건 초라한 이 아파트가 전부다. 이 아파트도 어린이 포교를 위해 사단법인 동련에 보시했으니 실제 재산은 없는 셈이다. “연필 하나로도 어린이 마음을 잡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포교에 진
은사 경봉 스님 원적 지킨 孝상좌총림서 법납 가장 높은 어른 스님끝없는 회향·발원…염불선 사표 “산승이 오늘 이 자리에 머무는 것은 오로지 섣달 부채의 역할을 하기 위함입니다. 사부대중은 산승의 이런 간곡한 마음을 잘 헤아려 주시길 바랍니다.” 4월 22일 통도사 경내에는 따뜻한 훈풍이 불고 있었다.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다. 문중간의 대립으로 3년여 세월을 서릿발 같은 차가움으로 지새웠던 영축총림. 그러나 평생에 단 한명의 적도 만들지 않았다는 화쟁도인 원명(圓明·70) 스님이 총림 방장에 추대되자, 그동안의 불협화음은 한여름 뙤약볕에 얼음 녹듯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통도사 경내에 환한 햇살이 드리운 것은 월하 스님 입적 이후 3년만의 일이었다. 통도사 최고 어른에 추대된 원명 스님은 첫째도 화
김동호 군이 경증 장애인 친구를 도와 하산하고 있다.(좌) 김연정 양이 산을 오르다 장애인 친구와 담소를 나누고 있다.(우) 무턱대고 손을 잡고 산을 올랐다. 장애를 가진 그들이 산을 오르기엔 힘겨우니 도와야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그들이 손을 놓았다. 당황스러웠다. 머릿속엔 ‘왜’라는 단어만이 맴돌았다. 그들은 그런 도움이 없어도 산에 오르는 것은 쉽다고 시위하듯 경쾌한 걸음으로 산을 올랐다. 장애인을 도와 산행하겠다는 김동호(16·명덕)와 김연정(14·보현) 남매의 2006년 봄 노는 토요일 첫 산행은 그렇게 흘러갔다. ‘돕는다’는 생각으로 시작 “처음에는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무작정 도와주려했어요. 하지만 선생님들
대불련 구도부 출신 14명 ‘뚝섬 봉은사’에 65년 개원창립 지도교수 박성배 방한-출판 기념해 만남의 시간 봉은사 미륵전 앞에 모인 대불련 구도부 회원들. 이제 모두 노거사가 되었지만 구도열정만은 젊은이들 못지 않다. 흐드러진 봄꽃을 시샘하듯 바람이 제법 야무지게 꽃가지를 흔든다. 짧은 봄날의 하루를 마감하기 위해 뉘엿거리는 늦은 오후의 햇살이 삼사오오 모여 있는 노신사들의 희끗한 백발에 반짝이듯 부서져 내린다. 4월 8일 오후5시. 서울 강남 봉은사 미륵전 앞에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노거사들이 모여들었다. 많게는 일흔 살을 바라보는가 하면 이곳저곳을 다니며 연신 먼저 인사를 건네는 ‘젊은 축’의 나이도 쉰은 훌쩍 넘은 듯하다. 거사들은 오래간만에 만난 듯
“별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내놓을 때 일생이 끝납니다. 열반의 길이란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비우고 베푸는 것임을 별들은 보여줍니다.” “석양이 질 무렵 미국 코네티컷주 미들타운에서 차를 몰고 한 시간 정도 가면 천문관측대가 나타납니다. 그곳에서 간단한 저녁거리를 먹고 어둠을 기다리고 있노라면 하늘에서 별이 하나둘씩 내려오죠. 그때부터 새벽 5시경 모든 별들이 시야 바깥으로 사라질 때까지 별의 움직임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그곳에서 처음에 발견한 것은 고독이었습니다. 그 고독에 익숙해질 무렵 별이 무기체가 아니라 하나의 살아숨쉬는 생명이라는 사실을 알겠더군요.” 이시우 전 서울대 천문학과 교수가 들려준 미국 유학 시절, 그에게 있어서 세상으로 통하는 유일한 창(窓)은 별이었다. 천문학을 천직으로 여기
유아법회-실버합창단 개설 포교 신대륙 개척군훈련병-청년회 등 취약 층 아이디어로 승부 최근 세간에서는 ‘블루오션(Blue Ocean)’이라는 새로운 경제용어가 유행하고 있다. 한정된 시장 내에서 자신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소모적인 출혈 경쟁을 하는 대신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장,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독자적인 영역을 만들어 나간다는 경제개념이다. 핸드폰, PSP, 적립식 펀드 등 예전에는 없었던 전혀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거나 고전적 볼거리의 사양 산업이었던 서커스를 새로운 공연 장르로 기획해 전혀 다른 문화상품으로 만들어내는 것 등이 바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내는 ‘블루오션 전략’이다. 이러한 시도는 마치 종교, 특히 불교계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듯 보인다. 하지만 교계에서도 이런 발상의 전환을
하루 1000배가 어느덧 일상이 되었다는 정맹희 씨. 다시 1000일 기도 입재에 들어간 그의 절 수행은 끝없이 이어진다. “엄마, 엄마는 왜 절을 해?”“음…. 우리 막내 딸 지원이 때문이지.”“나?”“그래. 우리 지원이 덕분에엄마는 절을 하게 된거야.”“하하하, 그게 뭔데, 엄마?” 지금으로부터 9년 전. 한 생명이 정맹희(44·법주화) 씨의 뱃속에서 꿈틀거렸다. 서른다섯에 생긴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였다. 행복해야할 일임이 분명하지만 행복할 수 없었다. 이미 여섯 살과 일곱 살 된 딸과 아들이 있었고 월급쟁이인 남편의 수입으로 근근이 버텨오던 시기였기에 새 생명은 행복의 결정체가 아닌 피할 수 없는 갈등이었다. 생명의 소중함.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생명을
팜플렛 한장에 연기인생 시작지금까지 400편 작품에 출연60년 자전극 ‘길’무대 올려“명작 만들겠다 ” 열정은 계속 팜플렛 한 장에 연기 인생을 시작한 백성희 씨. 그는 64년 연기 인생동안 400여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아버지. 전 약속을 지켰어요. 전 지금까지 60년 동안 연극만 하며 살았습니다. 보고 계시죠. 이제 절 용서해 주실 건가요?” 2004년 4월 서울 문예진흥원 예술극장에서는 ‘길’이라는 연극이 무대위에 올려졌다. 이 작품은 한국 연극계 최고의 여배우 백성희 선생의 연극인생 60년을 기념하는 자전극이기도 했다. 연극인생 60여 년이라는 경력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흔치 않은 것이다. 백성희 선생은 1925년생, 올해로 83세다. 하지
출재가 막론하고 서슬 퍼런 불호령안거 마지막 관문 … 간간이 칭찬도 충주 석종사는 동안거 해제를 하루 앞둔 3월 3일 소임자 스님과 재가불자들이 함께 자자법회를 열었다. 혜국 스님의 서릿발 같은 지적에 법당 가득 참회의 눈물이 흘렀으며 이번 생에 꼭 깨닫겠다는 발원도 금강석처럼 단단해져 갔다. 혜국 스님 참회로 자자법회 시작 3월 3일 오후 3시 충주 석종사 보월당. 병술년 동안거 해제를 하루 앞두고 이곳 선방은 순간 태산 같은 침묵과 긴장감에 휩싸였다. 선원장 혜국 스님이 주관하는 서릿발 같은 자자(自恣) 시간이기 때문이다. 자자는 부처님 재세 때부터 이어져 오던 오랜 전통으로 안거 마지막 날 대중 앞에서 자신의 죄를 지적해 달라고 도반에게 청하고 참회하는
전쟁참화 보며 실존철학에 관심30년간 충남대서 불교 길라잡이퇴임후 생협으로 새로운 삶 시작 지난 2월 18일 30년 교직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임한 이평래 교수. 한복 두루마기 차림의 온화한 모습이 봄날의 햇살같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소년은 사색하기를 좋아했다. 그 중에서도 그의 마음을 가장 끄는 것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공포, 한계상황에 반응하는 인간의 의지였다. 열한살이 되던 해 한국전쟁이 터지고, 항상 총소리를 들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그를 유혹한 것은 ‘우리가 한계상황에 반응하는 것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계획이나 타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혀 별개의 능동성, 즉 우리 내부의 가능적 실존의 생성에 있다’는 야스퍼스의 목소리였다. 1·2차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에 전시된 1987년작 ‘무’ 앞에 선 임옥상 화백. 대량생산의 폐해를 고발하려고 했던 이 작품에는 오히려 생명의 무한한 힘이 터져나오는 역설적인 메시지가 드러나 있다. 캔버스 바깥으로 분노와 억눌림이 툭툭 터져 나오는 불과 물, 사람과 산천들. 70∼80년대 한국 민중미술의 대표주자로 손꼽히던 임옥상 화백이 90년대 이후 꽃과 자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한국에도 드디어 봄이 찾아온 것’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장애아놀이터나 분당 책 테마파크에 등장하는 조형예술들, 지하철7호선의 ‘달리는 문화예술관’ 등 최근 그가 보여준 행보들 앞에서 ‘민중화가 임옥상’이라는 고정된 이미지를 또 한 번 깰 수밖에 없었다. 정림사지에서 노닐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