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제외하고 하루종일 한 사람도 만날 수 없는 암자에 주석하고 있다. 마당에 서 있는 오래된 단풍나무는 엊그제 내린 된서리에 잎을 모두 내려놓았고, 그 단풍나무를 딱따구리가 시끄럽게 쪼아대고 있다. 나한님은 산 중턱부터 내려온 큰 너럭바위 아래 깊은 굴속에서 촛불 하나 의지해 깊은 선정에 들어계시고, 바위굴 주위에는 산신님 칠성님이 옹기종기 둘러 않아 소임을 다하고 있다. 한가로운 일요일에 기분 좋게 청소를 끝낸 정갈한 도량에는 따뜻한 햇살이 눈부시게 내려앉고 있다. 가사장삼 두른 나는 부처님과 독대하고 있다. 부처님은 구중궁궐
2000년 전 대승불교 출현에 재가자가 어떻게 관여했는가에 대한 연구는 일본학자 히라카와 아키라 교수에 의해 시작됐다. 석존의 유골을 모신 탑의 건축이나 관리가 재가자들에게 위임됐으며, 그것이 계기가 돼 재가자들이 대승교단 형성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동서양 학자들에 의해 이에 대한 반론과 재반론이 이어지고, 그것이 축적돼 대승불교 흥기의 기원에 대한 논의도 더욱 깊어졌다. 더불어 대승의 보살도가 출·재가가 함께하는 이상적인 공동체 이념임은 분명해졌다. 재가자들이 대승교단의 양 날개 중 하나임은 이제 의문의 여지가 없다.
중앙정부에서 결정하는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던 시절에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공무원들의 힘은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다’고 할 정도로 막강했다. 그러다 1995년에 지방자치제가 전면 실시되면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장관급 예우를 받던 서울시장은 물론이고, 차관급 예우를 받던 다른 광역자치단체장들도 ‘대통령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시장·군수와 광역 및 기초의회 의원의 위상도 높아져, 국회의원·장관 등 중앙정치 무대 진출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어쨌든 지방자치제 전면 실시는, 국민들의 정치의식을 높여서 행정 감시
발심 출가한 행자들의 50% 이상이 출가 3개월 이내에 환속을 고려했다는 법보신문 최근 기사를 보면서 조계종단과 한국불교의 근본적인 위기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우선은 출가자의 절대 부족이 근본적인 위기이다. ‘조선왕조실록’ 성종조엔 당시 출가자에게 발급된 도첩이 5만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도첩을 받지 않고 출가한 사람까지 고려하면 10만의 승려가 있었다고 추정한다. 불교가 탄압받던 시절임을 감안하고 현재 불교 승려 수와 비교해 보라. 조계종단 스님 총수가 1만 3천 전후라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근본적인 위기 상황이다. 일반적
베이비 붐 세대로 불리는 우리 또래는 무엇보다도 손편지 세대였다. 걸핏하면 영혼 없는 위문편지를 써야 했고, 친구의 낯 간지러운 연애편지를 돌려가면서 읽었다. 담임교사의 편지 샘플을 본보기 삼아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며, 두세 통의 위문편지를 뚝딱 써냈던 기억들이 아스라하다. 더러 마음에 없는 말을 잘하지 못하는 짝꿍을 위해 작문 실력을 발휘하던 친구들도 있었다. 그렇게 군인 아저씨 앞으로 배달될 위문편지가 교탁 위에 수북이 쌓였다. 이쯤에서 문득 지난날이 무조건 아름답게 채색되는 것은 경계해야 할 마음의 질병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정치는 국민과 다른 정당들과 관계 맺고 연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세상의 질서는 관계 맺기로 이루어져 있다. 불교적인 용어로 본다면 ‘인연맺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한 갑자를 넘기니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관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세상에 신물이 나서 은둔적으로 바뀌었다고 해야 할까. 자연의 순리대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의지가 생겼다고 해야 할까. 한창 혈기가 왕성하고 에너지가 강할 때는 정의에 방점이 있어서 옳고 그름의 가름이 분명했다. 지금은 은둔자처럼 살고 있지만 결국에는 세상과 연대하고 관계 맺고 살아가는 생명이기에 세상
생로병사·성주괴공·생주이멸은 불교의 역사관이다. 이 법칙에 의한다면 불교 또한 예외일 수 없다. 그래서 정법·상법·말법이라는 독자적인 시간관이 등장했다. 언젠가는 세상 모두가 괴겁(壞劫)의 시기에 들어설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존재의 이유와 목적을 이해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당위성이 있다. 이를 위해 세계 곳곳에서 숱한 성현들이 나와 우리를 바른길로 이끌고자 얼마나 고군분투해 왔던가. 불교 또한 개인과 세계의 고통을 직시하고 해소하기 위해 줄기차게 노력해왔다. 그 세월이 무려 2500년이 되었다. 타자를
지난 9월16일, 바티칸 시국(市國)의 베드로 성당 외벽에 김대건(1821∼1846)의 거대한 상이 세워졌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대건 상이 설치된 장소 가까이에서는 주교회의 의장을 비롯한 한국 천주교도 400여명이 참석한 ‘김대건 신부 성상 축복식’이 있었다.김대건 신부 입상을 바티칸에 세우는 것은 천주교의 자유이고 권리이다. 그런데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대통령 특사로 파견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강승규가 교왕에게 대통령 친서를 전하고, “많은 순교자의 피와 땀으로 이룩한 한국 천주교의 역사 … 올해는 한국과
“나라와 민족을 이 꼴로 만든 세대인 주제에 무슨 염치로 생일상을 받겠는가?”하면서 돌아가실 때까지 차려드리는 생신상을 받지 않으신 스승이 계셨다. ‘이 꼴’이라는 것은 지금 우리나라 우리 민족의 가장 아픈 상처인 분단 상황을 말하는 것임을 다시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 스승은 그렇게 이런 우리나라 우리 민족의 상황을 단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돌리지 않고 자신을 비롯한 그 세대 모두의 책임으로 생각하고 부끄러워하였다. 그런 스승의 모습이 새삼 떠오르는 것은 요즈음 독도를 둘러싼 우리의 상황 때문이다. 혹시나 얼마 지나서는 세계 지
후쿠오카 오염수 방류문제나 홍범도 장군의 흉상 철거를 둘러싼 이념논쟁에는 차마 끼어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전문적인 식견도 없었고. 하지만 고(故) 채수근 해병 사건을 담당했던 박정훈 해병대수사단장을 느닷없이 보직 해임하더니, 듣기만 해도 오싹한 집단항명 수괴죄로 몰아세우는 것을 보고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사고부대인 해병대 1사단장을 혐의 대상자에서 빼라는 대통령실의 직간접적인 지시를 어긴 것에 대한 괘씸죄가 분명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해놓고, 정작 본인은 자기에게 충성하는 사람만 막무가내로 챙기는, 저 이율배반을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에는 “모든 어린이가 차별 없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니고, 겨레의 앞날을 이어나갈 새 사람으로 존중되며, 바르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함을 지표로 삼는다 ”라고 나와 있다. 요즘 교육계는 교사와 학부모가 나뉘어 패싸움을 하는 양상이다. 그 누구를 비난할 수도, 비난받을 수도 없어 보인다. 한창 산업화가 이루어지던 시대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산업인재 양성을 위한 목적인 학교에서 나쁜 기억 하나 쯤은 가지고 있다. 그때는 성적표도 복도에 보란 듯이 내걸었고, 그 성적에 따라 때리고 맞는 것에 대한
인간의 무지가 펼치는 다양한 증세를 새만금 개발만큼 잘 보여주는 사례는 없을 것이다. 첫째는 거짓말이다.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대통령이 된 전두환의 대권을 잇기 위해 나선 노태우가 1987년 12월 전주 유세에서 전라도의 표심을 모으기 위해 내건 공약이 바로 새만금 사업이다. 당시 이 사업의 목표는 식량 생산과 담수호 확보였다. 그러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목표가 바뀐다. 이 ‘황금의 땅’에 디즈니랜드, 골프단지 등을 만들어 복합 관광레저단지를 만든다는 계획이 나오고, 심지어는 카지노를 유치하자는 제안까지 나왔다. 아예 동북아 경제중심
중국 전체 역사에서 대외적으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던 시절이 건륭(乾隆) 황제 재위 기간(1735~1796)이었을 것이다. 이 시기에 역대의 주요 서적을 수집, 유교경전[經]‧역사[史]‧제자백가[子]‧기타 서적[集]으로 분류하여 발간한 ‘사고전서(四庫全書)’ 편찬 사업은 중국 역사 최대의 문화 사업이었다.건륭 황제가 60년 동안 권좌에 있으면서 현재 저지앙(浙江)성 성도인 항저우(杭州)를 네 차례나 찾았다. 지난 2012년 항저우에 갔을 때 건륭제가 마셨다는 샘물에 그가 직접 ‘용정(龍井)’이라고 쓴 글씨를 돌에 새겨 세운 것을
우리나라를 널리 알릴 수 있었던 세계적 축제인 세계 잼버리의 안타까운 뒤끝을 보았다. 너무도 부끄럽고 실망스러워서, 내가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곳에 모인 세계의 청소들과 그들의 부모들, 그들 국가에 참으로 미안하고 부끄럽다는 사과의 말을 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심정을 또 참혹하게 만드는 뒤끝을 보게 된다. ‘전 정권 탓’이라는, 유난히도 이 정권 들어서 자주 듣게 되는 ‘네 탓’ 타령이 더욱 마음을 우울하게 하고 또 부끄럽게 만든다. 왜 이리도 진솔한 사과의 말을 듣기가 힘든 것일까? “제 책임입니다”라는 말은 완전히
구명조끼도 없이 수해현장에 투입되었던 해병대 일병이 급물살에 휩쓸렸다가 끝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는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났다. 경북 예천의 내성천 일대에서 부대원들과 함께 실종된 주민들을 수색하던 와중에 발생한 불의의 사고였다. 상병 진급과 함께 보국훈장 광복장이 추서된 채모 일병은 결혼 10년 만에 어렵게 얻은 외동아들이자 집안의 장손이어서 주위 사람들을 더욱 먹먹하게 했다. 올봄에 입대한 그는 기본훈련을 마치고 해당 부대에 갓 전입한 신병에 불과했다. 사고를 당한 해병대원은 포항의 해병 1사단 포병대대 소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을 보고난 후에야 부랴부랴 호들갑을 떤다.세상은 늘 사건사고로 시끄럽지만 그 중 가장 안타깝고 가슴이 찢어지는 사건은 영아들이 유기 또는 아무도 모르게 죽임을 당해 냉동고나 쓰레기장에서 방치되는 일이다. 이에 업둥이라는 명목으로 아이들이 절에 버려지고 절에서는 그 아이들을 내치지 못해 길러주는 일들이 있었다. 물론 필자도 그런 경험이 있다. 갓난아이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돌보고 있는 비구니스님의 모습에 사람들은 이상한 눈초리를 보냈고, 설명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어떤 비구스님은 베이비박스를 운영하겠다고 문의를 해
우리가 직면한 사회 문제들은 미성숙한 인간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붕괴된 핵발전소에서 나온 후쿠시마 오염수의 해양방출은 지구를 방사능으로 오염시키는 무모한 행위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문명을 파괴하는 야만적인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인류는 아직도 제동을 걸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지구온난화, 환경과 생태 파괴, 지구자원의 고갈, 부의 불균형, 권력의 독점, 약자·소수자·인종·여성·이민자에 대한 차별 등 국내외에서 일어나는 불의와 부정과 부조리에 의한 고통은 무지로부터 발생한다.무지를 타파하는 첫 길목이 정견이다. 불법의 핵심
지난 6월20일 인터넷에서 주요 뉴스를 훑어보다가 ‘부산 최대 라이벌 사우디의 파격…PT연설 절반이 여성이었다’는 기사 제목이 눈에 띄었다. 2030년 개최되는 세계박람회(엑스포)를 부산에 유치하려는 한국의 최대 경쟁국으로 꼽히는 곳이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로 칭함)라는데, 다른 분야는 모르겠지만 그 나라에서 일어나는 여성 인권 신장 변화 속도가 이토록 빠르리라 내다본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엑스포 유치 설명 PT를 한 여섯 명 중 세 명이 여성이었다고 하니, 사우디가
불교는 성 차등을 근본으로 하는 종교인가? 아니면 출가 승단에서만 성 차등을 인정하는가? 수행자로서 남성과 여성은 근본적으로 차등이 있는 것일까? 성 평등을 근본으로 하는 현대 사회에서 불교가 답해야 할 문제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답을 미루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문제의 뿌리는 출가 승단 안에서 비구와 비구니의 엄격한 차별에 있다. 출가자의 공동체인 승단은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조직사회이며, 재가자들이 본받아야 할 모범적인 공동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기에 이 문제는 더더욱 근본적인 물음이 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복싱 체육관에서 ‘도장깨기’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알아보니 일본에서는 제법 역사가 있는 뒷골목 용어인 모양이다. 뭐 그렇다 치고. 요즘에는 방송용어로도 흔하게 사용되는 핫(hot)한 유행어가 된 듯하다. 장윤정의 도장깨기나 지역 맛집 도장깨기란 프로그램도 있으니까 말이다. 재밌는 것은 도장깨기가 선객들이 서로의 공부 머리를 가늠해보던 이른바 ‘법거량’과 정확하게 같은 취지의 말이라는 점이다. 힘으로 누가 더 센지를 겨뤄보는 것이나 말로 누가 더 깨쳤는가를 시험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 뜬금없이 이런 말을 꺼낸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