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초봄 양평 수종사 삼정헌 박정숙 ·대한민국불교사진협회 회원 ·96년 「월간 사진」 초대작가 011-9779-8919
14명의 미국 젊은이들이 한국 스님들의 생활을 직접 체험하고 한국불교를 배우기 위해 한국 사찰 기행에 나섰다. 미국 조지아대학(The University of Georgis)의 최우수학생 프로그램 (Honors and Flellows Progrum oundation Fellow) 연수차 한국을 방문한 이들은 3월16일부터 23일까지 7박 8일간 한국 불교의 정신과 문화를 접했다. 조지아 대학생들의 첫 행선지는 경주 불국사. 불국사에서 이들을 처음으로 반겨준 것은 일주문 안의 사천왕상이었다. 우락부락한 눈을 부라리며 노려보는 사천왕상을 향해 장난기가 발동한 청년들은 눈을 한 번 찡긋해본다. 이들이 석굴암에 도착했을때 토함산은 안개속에 갇혀 앞사람의 그림자조차 희
문명과 도시는 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다. 앙코르 제국이 그곳에 터를 잡은 것은 톤레삽 호수가 있기 때문이다. 씨업리업 도심에서 남쪽으로 15Km 거리에 있다. 전지 크기로 된 4천만분의 1인 세계지도에도 표시될 만큼 동양 최대의 담수호이다. 배를 탈 수 있는 입구 마을은 무척 어수선하고 남루하다. 비포장 둑방길을 따라 양쪽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원두막 수준의 가옥들, A형 텐트 같은 집들이 위태롭게 늘어서 있다. 어딜 가나 풀풀 날리는 흙먼지, 쪼르르 달라붙는 행상 아이들 일색이다. 아이들을 헤치고 배들이 늘어서 정박해 있는 곳으로 간다. 15명쯤 탈 수 있는, 바나나 껍질 같이 생긴 길죽한 동력선
이산가족이 남과 북에서 서로 만나고, 또 남북이 서로 통하는 도로가 닦여지니 통일의 가능성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그러나 최근 북한 핵 문제로 시비가 분분하다. 미국이 이 문제로 북한을 응징하겠다고 하니 전쟁이 또 다시 이 땅에 들이닥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작년에 우연히 서점에서 류춘도 선생의 시집 『당신이 나입니다』를 구해 읽게 되었다. 류춘도 선생은 육이오 전쟁 당시 의대생이었는데 북조선 군의관으로 종군하였다. 그러다 인민군 퇴각 때 포로로 잡혔다 풀려난 후 남한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살아오신 분이다. 70이 넘은 저자는 지난 50여 년 동안 전쟁에서 겪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혼자 간직하고 살았다고 한다. 이 시집은 그동안 감추고 살았던 자신의 고통을 시로 토해낸 책이다. '나는 병원
마음이 허한 날이 있다. 내적으로 평화롭지 못하며 괜스레 마음이 헛헛한 그런 날. 그런 날 나는 가만히 내면의 뜰을 바라보면서 산길을 걷곤 한다. 한동안 맑은 숲길을 거닐다 보면 역시 원인 없는 마음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무 이유 없이 공연하게 마음이 허한 것이 아니었음을. 분명 그렇게 허한 날은 이 마음이 중심을 못 잡고 어딘가 한없이 헤매다 온 것이 틀림없다. 마음은 날뛰는 원숭이와 같아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이리 저리 옮겨 다니길 좋아한다. 내 마음이 내 안에 중심 잡고 딱 붙어 있어야 할 것인데 잠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자꾸 바깥으로 놀아나기를 쉬임 없이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 붙었다가, 미워하는 사람에게 가 붙었다가, 돈에 가 붙고, 명예에, 권력에, 지위에
미국의 대학들은 6월 초순이면 대부분의 학기를 끝마친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의 이사가 여름철에 집중되게 되는데, 나도 젊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여름이 되면 연중 행사처럼 학교 선·후배들이 이삿짐을 날라 달라는 부탁을 한 두 차례 받게 된다. 이런 인연으로 지난주에도 정치학과 박사과정에 있는 친구로부터 연구 차 1년 간 중국에 가게 되었다며 이삿짐 나르는 것을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됐다. 이 친구의 이삿짐은 간단했다. 고작 25개 가량의 박스와 간단한 가구 몇 가지에 불과할 정도로 단출했고 그나마 박스 가운데 20여 개는 모두 책들이니, 살림살이는 그야말로 한줌에 불과할 정도로 적었다. 이삿짐을 대충 옮기고 나서 숨을 돌릴 겸 의자에 앉아 친구가 준비한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며 잠시
비오는 산방 다실에 앉아 방문을 활짝 열어 놓고 추적 추적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나홀로 차 한 잔 마시는 즐거움은 산사에 사는 또다른 즐거움을 선사해 준다. 이럴 때는 홀로 이 대자연의 연주를 감상하며 차향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요즘처럼 이런 비가 몇 일이고 내내 쏟아지는 날은 이따금 맑은 차 한 잔 함께 나눌 도반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맑은 수행자에게서는 향기가 난다. 그러나 그 향기는 ‘수행자’라는 거창한 이름에서 오는 향기가 아닌 그저 한 사람으로써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모습에서 온다. 제 스스로 수행자라고 티를 내거나, 스님의 상에 갖혀 거만하고 우쭐거리지 않고, 자신에 대한 아무런 한정도 짓지 않은 그저 ‘자기 자신’으로써 만족하는 자유로운 사람, 그런
야생화 핀 절야생화를 찾아 전국의 산과 들을 다니다 보면 많은 사찰들을 만나게 된다. 어쩌면 나만큼이나 사찰의 앞마당을 수없이 그저 지나쳐 간 사람도 그리 흔치 않을지 싶다. 어떤 이들은 식사 때가 되면 절에 가서 공양을 하고 간다고 자기 집처럼 드나들기도 하고 어떤 이는 산길에서 밤이 되면 절에 가서 잠을 청하고 간다고 역시 자기 집처럼 들어간다. 나는 아주 위급한 상황도 아닌데 기도하는 도량에서 머문다는 것은 마음이 오히려 불편해 지기 때문에 어두우면 더듬더듬 더듬어서 마을로 내려오는 것이 더 편하다. 그런 때문인지 1970년부터 2000년까지 산에서 일하면서 거의 공양이나 잠을 잔일이 없다. 통도사 서운암 전경. 지난 몇 년 전 연구소에 전갈이 한 통 왔었다. 나를 잘 아는 초등학
우리 절엔 한 1년 쯤 전부터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된 고3 수험생들이 셋 있다. 학교에서 공부하느라 힘들고 답답할 때면 점심시간이고, 하교길에고, 쉬는 날에고 할 것 없이 절을 찾는다. 그저 조용한 절이 좋아 찾는 줄로만 알았었는데 얼마 전 부터는 새벽기도에도 곧잘 나오고, 평소에도 절에 와서 108배도 하고 1080배도 하고 나름대로 부처님 전에 앉아 원(願)도 세우고 기도도 하곤 한다. 그래도 이 곳 시골은 이 정도로 수험 시즌이 정갈하고 차분하니 참 좋다. 이 아이들 부모님들이야 내심 걱정이 안 되겠느냐마는 도시 부모님들처럼 그렇게 유난을 떨지는 않아 보인다. 이 맘 때면 전국의 산사가 기도객들로 분주하다. 입시기도며 진급기도 등으로 수많은 기도객들이 정성스럽게 불전으로 나아가 향을 사르
지혜 - 자비 찬탄한 최고의 존칭들 중생을 보듬는 부처님의 마음 표현 부처님에 대한 존칭은 각 경전에서 열거된 것 만해도 수 십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열 가지의 명호를 ‘여래십호(如來十號)’라고 하는데 이 열 가지 명호는 부처님께서 갖추신 능력과 덕망, 공덕상을 설명하는 것으로 부처님의 열 가지 이름을 말한다. 부처님을 뜻하는 열 가지 명호는 각각의 어떤 의미와 뜻을 담고 있는지 알아보자. 여래십호에는 여래(如來), 응공(應供), 정변지(正編知), 명행족(明行足), 선서(善逝), 세간해(世間解), 무상사(無上士), 조어장부 (調御丈夫), 천인사(天人師), 마지막으로 불세존(佛世尊)이 있다. 첫 번째로 여래(如來)는 진리로부터 오신 부처님이라는 뜻으로 ‘여실(如實)한 진
영어를 마스터하는 것이 道다? 어학도 잘 할수록 표시 안 나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도 영어 교육의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영어가 전 세계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에 쓰이는 공용어처럼 되고 보니 아무래도 영어 교육을 무시 할 수가 없게 됐나 보다. 최근에는 강원에서도 컴퓨터와 함께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의견이 최근에 나온다고 하니 세상의 흐름에 스님들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영어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초창기에 미국에 와서 처음 불교를 전수 한 스즈키 순류 선사는 자신의 저서에서 “영어를 마스터하는 것은 마치 도(道)를 닦는 것과 다를바 없다”고 밝혔다. 미국에 살면서 스님이 영어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이 한 문장을 통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사실 미국에서 11년
정말 행복한 것은 작고 사소한 데에서 온다. 많이 가져야 행복할 것 같지만 많이 가지게 되면 작은 데서 느낄 수 있는 깊고 소박한 행복감을 놓치고 만다. 신교대 장병 법우들 법회를 가면 초코파이 하나가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지 모른다. 평소에 하나를 주다가 어느날 두 개를 준다고 하면 그냥 법당 안이 난리가 난다. 그냥 농담삼아 장병 법우들이 좋아할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이 친구들은 정말로, 진심으로 기뻐하고 좋아한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휴가를 나가면 초코파이를 실컷 사 먹겠나? 아니지. 돈 아무리 많아도 초코파이 돈 주고 안 사먹는다. 또 초코파이 잔뜩 쌓아 놓고서 너희들 먹고 싶은데로 실컷 먹어라 하면 좋아 하겠나? 아니다. 잘 안 먹게 마련. 우리 군종병도 같은 군인이지만,
좋은 인연은 시작이 아니라 끝맺음이 중요 인연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노력이 바로 수행 “미국이라는 이국 땅에서 혼자 살면서 고생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부처님 잘 모시고 주변 사람들을 위해 좋은 봉사를 많이 했으니 그 공덕이 어디 가겠습니까. 한국에 돌아가 결혼하게 되면 남편에게 사랑 받는 행복한 삶이 될 것입니다.” 이제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가는 신심 깊은 어느 보살님을 위해 마련된 조촐한 환송식에서 주지 스님은 이렇게 축원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4년 동안 절 일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변함 없이 봉사를 했던 보살님이라 감회가 깊었던 것 같다. 이런 마음은 모두가 한결 같아서 절 식구들은 못 내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고, 보살님의 앞길에 장애가 없기를, 그리
행동마다 서원 세우면 모든 것이 보현행원 나와 남이 하나되는 행복한 실천 수행법 지난 10여년간 보현행원 수행을 하고 있는 이종린 원장은 한국불교는 ‘깨달음의 병’에서 벗어나 ‘부처님의 행’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아가야, 이제 주사 맞았으니 곧 괜찮아질 거야. 아파도 힘내야해.” 서울시 강서구 발산역 부근에 위치한 홍익소아과. 기자가 이곳을 찾았을 때 이종린〈49·사진〉 원장은 연민 가득한 눈으로 아기환자를 돌보고 있었다. 여느 소아과와 별반 다를 바 없었지만 병원 한켠에 마련된 작은 서재에 들어섰을 때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히 차 있는 불서들에서 불교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토요일엔 환자가 거의 없는데 오늘은 좀 유별나네요. 허허허.”
-매일 한번은 꼭 예불시간을 갖는다. -일체 중생을 행복과 해탈로 이끌겠다는 서원을 세운다. -염불이나 간경 등으로 부처님에 대한 그리움과 간절함을 키워간다. -부처님과 대화하는 습관을 갖는다. -모든 번뇌망상이나 고통 등을 부처님께 있는 그대로 공양한다. -행동 하나하나를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부처님을 위한 것이라고 다짐한다. -모든 이들을 부처님처럼 대하려 하지 말고 부처님으로 대한다. -주변 사람에게 먼저 고맙다, 잘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늘 한다. -익숙하지 않더라도 꾸준히 하면 모든 것이 이뤄진다는 생각으로 계속한다. -수행의 모든 공덕을 중생에게 돌린다.
보현행자의 입각처가 어디에 있는가. 이것은 바로 우리의 생명이 완성된 진리, 불성생명, 내 생명이 부처님 무량공덕이라고 하는 사실을 긍정해 놓고 그 토대 위에서 그 생명으로서 부처님의 법문을 받아서 행할 것을 다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떠한 모습으로 나투시든지 그 겉모습을 보지 아니 하고, 그것은 나투신 형상인 것으로 알고, 그 본신은 미진수 부처님 가운데 하나이신 일체 부처님인 것으로 본다고 하는 입장에 서야만 보현행자의 서원이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보건대 한 사람 한 사람이 부처님의 덕상을 갖추었습니다. 모든 이웃은 착한 이웃 나쁜 이웃 할 것 없이 모두가 부처님의 나투심입니다. 순수한 자기 가운데 이런 기도를 실현해 갈 때야 비로소 자기 것이 되는 것입니다. 내 생명에 깃든
자원봉사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여가시간보다는 하루의 일과를 짜임새 있게 활용하시는 분들이다. 이러한 자원봉사자와 봉사할 대상을 정함에는 심사숙고해야 한다. 나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게 보내시는 사회복지시설에 계신 노인분들을 택하여 봉사하게 되었다. 즉 의료봉사다. 대체요법(수지침요법)으로 봉사를 하고자 봉사단체 모임을 만들어 봉사하고 있다. 이는 참여하는 봉사요원의 지식과 많은 임상적 경험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노인들은 대부분 만성적 질환으로 고통을 호소한다. 현대의학으로 치료해 본 경험이 많은 분들이므로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신체고통도 고통이려니와 한편으로는 외로움의 고통이다. 그런 관계로 신체적 고통이 더욱 심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러면 이 양면의 고통을 어떻게 해결할 수 없을까? 고민하지
출세간 모두에게 고향 같은 곳 사찰의 많고 많은 전각과 공간 가운데 ‘이야기’라는 단어와 가장 어울리는 곳은 어디일까.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곳을 꼽아보자면 공양간, 해우소, 지대방 등일 것이다. 이 공간들에 관한 이야기라면 (그 곳이 아무리 사찰 안 경내에 위치한 엄연한 수행공간이라 할지라도) 모깃불 피워 놓은 한여름 대청마루에 누워서나, 휘영청 보름달 밝은 동내 언덕 마루에 철퍼덕 앉아서나, 혹은 따끈한 아랫목에 옹기종기 배를 깔고 엎드려 듣고 말해도 전혀 ‘죄스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서도 풋풋한 삶의 체취가 가장 담뿍 묻어나는 곳은 단연 ‘공양간’일 터. 구수한 밥 냄새와 고소한 나물 반찬 냄새가 묻어나는 듯한 공양간의 모습은 세간인들에겐 어린 시절 할머니
100인분도 거뜬한 ‘쇠가마’ 20년 자리 지키는 ‘목탁’ 서로 잘 아는 이웃지간을 표현할 때 흔히 “숟가락 숫자까지 훤히 안다”고 한다. 안살림 특히 부엌살림은 한 집안의 내밀한 풍습과 전통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공양간의 물건들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사찰의 전통이나 문중의 풍습을 엿볼 수 있다. 운문사 공양간에는 커다란 쇠 가마가 한 구석에 놓여있다. 가마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그 크기가 만만치 않다. 가스를 연결해 밥을 짓는 가마는 100여명 이상의 밥도 너끈해 보인다. 아직도 장작불에 국을 끓이는 운문사 공양간의 이 밥짓는 쇠가마는 “한 여름에 장작불로 밥 짓기가 너무 고되다며 어른 스님들이 마련해준 선물”이다. 주로 여름에만 사용했는데 그 나마도 요즘에는 서랍
요즈음 난 또다른 하나의 여행을 떠난다. 삶이란 늘 여행길이며 그 여행길이란 언제나 새롭게 마련이지만. 똑같은 일상을 살더라도 새로운 여행은 떠날 수 있는 것. 꼭 애써 짐을 챙겨 길을 나설 필요는 없다. 똑같은 생각들을 가지고, 똑같이 반복하며 살다보니 우리 삶이 늘 그렇고 그렇지 새롭지를 못하다. 생각이 딱 틀에 박혀 있으면 서점엘 가도 늘 똑같은 류의 책만 고르게 되고, 사람을 만나도 꼭 내 뜻에 맞는 사람만 만나게 되고, 음식을 먹어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만 먹게 되며, 어디엘 가더라도 내 스타일의 장소만 찾는다. 왜 어디 강의를 들으러 가도 매일 앉는 자리만 앉게 되지 않는가. 앞에 앉는 사람은 어딜 가도 앞 자리에 앉고 뒤에 앉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뒷자리 신세다. 종교도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