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깊어가는 화요일 저녁. 광주 무각사에 하나 둘씩 사람들이 모여 듭니다. 5·18 유가족들, 부상자들, 구속자들 그리고 수녀님들, 학생들, 직장인들…. 7시가 되면 ‘오늘의 주인공’과 정신과의사 정찬영씨가 자리에 앉습니다.‘오늘의 주인공’은 임금단 어머니입니다. 그는 5·18 최초의 희생자인 고 김경철씨 어머니입니다. 고 김경철씨는 어렸을 때 아파서 청력을 잃었고 당시는 충장로 국제양화점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5월19일 오후 2시반 퇴근하다가 공수부대의 곤봉에 맞아 머리가 터졌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눈을 감
TV에서 자녀 살해 사건의 보도를 보게 됐다. 정말로 상세하게, 자식을 죽인 부모의 심리상태와 주변 정황, 기타 등등을 보도하고 있었다. 참으로 끔찍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너무도 역겨운 느낌이 들었다. 그 사건에 대한 역겨움이 아니었다. TV 보도에 대한 것이었다. ‘왜 저 TV에서는 저 사건을 저리도 상세하게 보도하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 목적일까?’ 하는 의구심에 따라오는 역겨움이었다.언론이라는 것이 여러 가지 측면을 지닌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일이다. 그 가운데 사실을 알린다는 것은 언론의 역할 가운데서도
최근 흥사단에서 전국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 결과는 충격을 준다. ‘2015년 청소년 정직지수 조사’ 결과에서 ‘10억이 생긴다면 죄를 짓고 1년 정도 감옥에 가도 괜찮다’라고 응답한 고교생이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6%였다고 한다. 2012년 조사에서도 47%로 적지 않았으나, 3년이 지난 후 그 비율은 10% 이상 늘어났다. ‘이웃의 어려움과 관계없이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응답은, 2012년에 36%에서 2015년에는 45%로 늘어났다.결과가 발표된 후 만난 내 선배들 중에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들의 윤
기욤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는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허나 괴로움에 이어서 오는 기쁨을 나는 또한 기억하고 있나니”로 시작한다. 파리는 유럽의 꽃이자 진주이다. 파리를 처음 찾았을 때 기원전 1세기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정벌한 황막한 야만의 땅 갈리아의 세느 강변에 서구문화의 정수가 한 송이 고혹적인 꽃으로 피어났다는 것이 기이하게 느껴졌었다.2015년 파리에서 21세기 인류의 미래를 규정할 두 큰 사건이 일어났다. 즉 11월13일 130여명의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참혹한 IS 테러와 12
“큰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 물에 젖지 않은 연꽃같이 / 저 광야에 외로이 걷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수타니파타’)일본 대사관앞. 12월30일, 올해 마지막 수요집회가 열렸습니다. 1211차 수요집회는 올 한 해 세상을 떠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아홉 분의 넋을 기리는 추모회였습니다.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 238명 가운데 이제 단지 46명이 살아계십니다. 그 자리에서 이용수 할머니는 “우리들한테 얘기 한번 듣지 않고 일본에 법적 책임을 면해주고 소녀상 철거에 대해 검토까지 해주
해가 뜨고 지는 순환과 달이 차고 기우는 순환, 그것보다 더 크면서도 우리가 관찰을 통해 알 수 있는 가장 큰 순환이 해가 바뀌는 것이리라. 시간이라는 흐름을 따라서 살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은 이러한 순환의 주기를 단순히 자연의 주기로 보지 않고, 삶을 설계하는 단위로 삼게 마련이다. 하루하루를 짜고, 한 달 두 달을 계획하고, 한해 두해를 설계한다. 시간이라는 흐름 속에 보다 나은 그림을 완성시켜나가는 공간적 작업을 이루어나간다.그 작업에 가장 바탕이 되는 것은 내다봄과 되돌아봄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큰 목표에 대한 내다봄을
올해는 다양한 청년들과 여러 가지 방식으로 만날 기회가 많았다. 청년캠프를 통해, 평소처럼 대학의 수업을 통해. 그 만남을 나는 간단하고 세상일과는 무관해 보이는 시 구절 하나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내 직업이 문학평론가이기 때문이어서만도 아니고, ‘헬조선’이라는 자조가 들끓고 있는 이 시대 젊은이들을 ‘힐링’시키려는 목적 때문도 아니었다. 생존의 절박함이 삶을 압박하고, 사회에 억압적인 공기가 가득하여 숨이 막히는 시대일수록 시시하고 무용해 보이는 작은 것들이 지닌 힘을 각성하고, 여기에서부터 자유로운 삶에 대한 구체적인
“선을 쌓은 집안에는 경사가 뒤따르고 불선을 쌓은 집안에는 재앙이 뒤따른다 (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 - 주역(周易)옛날 어느 마을에 사람이 죽으면 곧 그 사람이 천당에 갔는지 지옥에 갔는지 예언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를 신기하게 생각한 사람들이 어떻게 아느냐고 묻자 그거야 참 쉬운 일이라고 대답했다. 마을사람들이 죽은 사람에 대해 “그 사람 참 잘 죽었다. 더 빨리 죽었어야 했는데”라고 말하면 그는 지옥에 갔고 “하늘도 무심하다. 그렇게 좋은 사람을 데려가다니”라고 하면 천당에 갔다는 것이다.요즘은 민주주의 시대라
박 대통령 국무회의서 강경발언조계종 집행부 향한 ‘압력’ 걱정정부의 ‘노동개혁안’은 ‘노동개악’노동자 시위는 자신 요구 알리는협상일 뿐 좌우의 문제가 아니다노동자 옥죌게 아니라 권익 높여야템플스테이하며 스스로 성찰하길 스님들에겐 일상이지만, 산사에서 하루를 보내면 심신이 맑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종종 대학생들에게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템플스테이’를 추천하는 까닭이다. 지난여름에 ‘템플스테이 체험권’을 받았다. 언제든 절로 갈 수 있다는 느낌을 오래 지니고 싶어 아직 쓰지 않고 있다. 그 ‘애지중지 선물’을 선뜻 주고 싶은 사람
“세상이 그리 된지 오래지…”라고 반은 포기 가까운 마음으로 세상을 보다가도, “이건 해도 정말 너무 하는 것 아닌가?”하는 심정이 될 때가 있다. 이번 광화문 시위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를 보는 느낌이 바로 그렇다.어떤 것이 근본이고 어떤 것이 지엽적인 것인지가 도대체 구별되지 않는다. 아니 애초의 목적이 근본과 지엽을 뒤집어엎는데 있지 않은지 의심스럽다. 또 국가가 하지 말아야 할 가장 저열한 형태를 벌이면서도, 그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 마치 그것이 법질서의 수호요 사회정의의 실현이라는 구호로 포장하는 참담한 현실을
‘인문학’이라는 말은 이제 한국에서 사회현상이자 시대정신 같은 것이 되었다. 최근에는 인문학을 전통적 차원의 학문적 단위나 지식사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깊이 있는 생각과 문화 차원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인문정신’이라는 말이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인문학이라는 말에 비해 인문정신이라는 말은 모호하다. 사회적 공공성을 지닌 인문적 가치의 심화·확산이 절실하다고 생각해서 인문기획자의 길에 한 발을 겨우 내딛고 있는 내게도 그건 마찬가지다.그런데 난 요즘 그 모호한 ‘인문정신’이라는 걸 간단하게
명나라의 선비 원요범(袁了凡)의 저술 요범사훈(了凡四訓)에 나오는 이야기다. 명나라의 재상 여문의(呂文懿)가 늙자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많은 고향으로 은퇴하였다. 어느 날 술 취한 마을사람 하나가 그의 집에 가서 큰 소리로 그에게 터무니없는 욕설을 퍼부었다. 하인이 그를 관가에 고발하려 하자 여문의가 “이 사람이 취했으므로 다투지 말라”고 조용히 말하고, 문을 닫고 퍼붓는 모욕을 무시하였다.1년 후 그 취객이 중죄를 짓고 사형에 처하게 되었다. 이것을 듣고 여 문의가 크게 후회하며 말했다. “만약 내가 그 날 그가 관가에서 처벌받
“노동 개혁은 우리 딸과 아들의 일자리입니다!” 요즘 곳곳에서 만나는 정부 광고다. 광고에 근거하면 정부가 내놓은 ‘노동개혁’에 반대하는 이들은 죄다 비판받아 마땅하다. ‘우리 딸과 아들의 일자리’ 마련에 훼방꾼 아닌가.예서 그치지 않는다. 정부는 감성적 광고를 곰비임비 제작해 내놓고 있다. 가령 나이든 아버지의 자동차를 타면서 딸이 독백한다. “우리 아빠는 듬직하고, 산을 좋아하시고, 웃음만큼 잔소리가 많으세요. 그렇게 30년을 일하시면서 가정을 지키고 나를 키워주셨습니다.” 곧이어 “나도 아빠랑 같이 출근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제 우리는 곧 “짐이 바로 국가이다”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 같다. 터무니없는 걱정이 아니다. 역사의 진행방향을 완전히 거꾸로 되돌리는 교과서 국정화 발상이 관철되어 시행된다면, 절대 왕정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 뭐 어렵겠는가? 도대체 학자, 전문가, 의식 있는 지성인 층 모두가 반대하는 교과서 국정화를 그렇게 줄기차게 밀어붙이고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누가 뭐라 변명을 해도 권력의 정점에 있는 한 개인의 고집 때문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짐이 바로 국가”라는 말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 나가게 되지 않겠는가? 그런
‘최소의 집’이라는 주제로 열린 건축전시회에 포럼 패널로 초대된 적이 있었다. 건축 문외한이라고 처음에는 청탁을 고사했지만, 기획자인 젊은 건축가는 긴 시간 진행되는 전시회에 중간점검을 하는 차원에서 건축전문가 외에도 인문학자를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결국 나는 이 청탁을 수락했는데, 다른 이유보다도 ‘최소의 집’이라는 주제가 작지 않은 궁금증을 유발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해서 내 지적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은 ‘최소’라는 말이었다. 난 ‘집’에 대해서는 깊은 생각을 해 본 적이 많다고 할 수 없지만, ‘최소’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대법원은 지난 8월20일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9억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해 징역 2년의 실형과 추징금 8억8300만원을 확정했다. 이는 그녀가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를 받고 불구속기소된 지 5년 그리고 대법원에 상고된 지 2년 만에 대한민국 사법부가 내린 판결이다.대법원의 유죄판결이 선고되자 한명숙 씨는 “정치권력이 개입한 불공정한 판결”이고 자신은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 무죄”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유죄판결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야당을 말살하려는
손석춘 교수, 본지 칼럼서 제기교육원장 주장 충격일 수 있지만현실에 대한 뼈아픈 내부 성찰재가불자, 스님들 ‘감시’ 못지않게 반불교적 현실 바꾸는 것도 중요교육원장 제언에 ‘꼬집기’보다사부대중이 문제의식 공유하길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이 최근 ‘깨달음과 역사’를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 “깨달음은 이해의 영역”이라고 주장해 큰 논란이 일고 있다. 초기불교 전공자인 김재성 능인불교대학원대 교수와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이 법보신문 기고를 통해 현응 스님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런 가운데 손석춘(건국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법보신문 논설위
북한과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해결되는 과정에서 희한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밑바닥까지 떨어졌던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50%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반등된 것이다. 이 사태를 보면서 정말 문제가 심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북 갈등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우리는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근본적인 불안상황에 놓여 있으며, 정신적으로도 결코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통감했다.이런 이야기를 하면 통칭 ‘좌빨’로 몰릴 위험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어느 쪽 편을 들고
내가 참여하고 있는 작은 인문공동체가 있다. 책상 위의 인문학을 이웃과 사회와 나누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이 모임은 매년 방학 기간에는 지역에 가서 그곳 시민들과 함께 시민인문학교를 연다. 올여름에 찾아간 곳은 한반도 최남단 땅끝마을 해남·강진이었다.해남·강진이 어떤 곳이던가. 어떤 유명한 여행기의 저자는 이곳을 ‘남도답사 일번지’라고 했지만, 옛날 관의 입장에서 보면 이 동네는 도성인 한양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곳, 그러므로 조선의 변방이었으며 유배지였다. 그런데 ‘남도답사 일번지’는 역설적으로 그런 이유로 가능하게 됐다. 한
장마철이 지난 후 찜통더위로 견디기 힘든 여름이 지속되고 있다. 낮의 더위는 그럭저럭 견딜 수 있다 해도 밤의 열대야는 정말로 힘들다. 온실가스 방출에 의한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우리나라가 사계절 뚜렷한 온대기후에서 점차 아열대기후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는 12월 파리에서 ‘제 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열리는데 2020년 종료되는 ‘교토 의정서’를 대체할 새로운 기후변화 대응체제를 마련할 예정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196개 모든 회원국이 2020년 이후의 온실가스감축안(INDC)을 9월까지 제출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