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때 무구정광다라니경 한 권을 넣었다”고 기록된 1038년 중수형지기 묵서지편. 무구정광다라니경이 고려시대에 조성됐을 수도 있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0월 27일 국립중앙박물관 소회의실에서 ‘석가탑 발견 유물 조사 중간 보고회’를 개최했다. 이날 보고회에서는 서울대 국사학과 노명호 교수와 서울대 언어학과 이승재 교수가 석가탑에서 나온 묵서지편의 내용들을 공개했다. 그런데 묵서지편 중수형지기 부분에서 신라 때 유물들을 그대로 봉안한다는 내용과 함께 “고려 때 무구정광다라니경 한 권을 넣었다”는 기록이 나왔다. 이승재 교수는 중수형지기 19-20행에 전물부동(前物不動), 즉 “(사리를 안장하오되) 전에 있던 물건들은 그대
백제 위덕왕이 죽은 왕자를 기리기 위해 정유년(577년) 2월 왕흥사를 세웠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부여 왕흥사지에서 사리기가 봉안된 사리장엄구와 함께 사리함에서 왕흥사 창건연대를 알려주는 명문이 함께 발견됐다.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김용민)는 10월 24일 왕흥사지 제8차 발굴조사 자문위원회를 개최하고 왕흥사지에서 출토된 유물을을 공개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사리장엄구의 출토와 함께 사리함에서 왕흥사 창건 관련 명문기록이 발견되고, 백제 귀금속 및 장신구 등 다량의 보물들이 출토됐다. 사리함 동체부에는 ‘丁酉年二月/十五日百濟/王昌爲亡王/子立刹本舍/利二枚葬時/神化爲三(정유년 2월 십오일 백제왕 창이 죽은 왕자를 위하여 절을 세우고 본래 사리 두매를 묻었을 때 신의 조화로 셋이
2007 해외 상반기 불교학 박사논문인도 델리대에서 올해 8월 박사학위를 받은 조명림 씨의 논문 「인도 고대의 불교사원에 대한 재정적인 후원의 연구」는 붓다시대부터 마우리야, 사타바하나, 쿠산왕조에 걸쳐 행해진 불교사원에 대한 후원을 고찰한 연구이다. 조 씨는 인도의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 역사적 배경, 붓다 재세시 빔비사라왕을 비롯하여 마우리야 왕조의 아쇼카왕, 그리고 데칸지역의 사타바하나왕조와 쿠산왕조의 카니시카왕 등 각 왕조에서 불교에 큰 공헌을 한 왕들의 업적, 보시의 개념에 대한 연원을 베딕문헌과 불교문헌을 비교·분석했다. 조 씨는 또 복전(福田)사상과 생천(生天)사상을 각 경전별로 취합하여 다루었다. 그는 “초기경전에서는 석존을 중심으로 한 승단을 복전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대승에 이르
“부처님 법대로 살아보자는 성철의 선언은 부처님이 제정하신 계율의 말씀 그대로 준수해 가면서 살아가자는 취지였다. 공주규약을 통해 살펴본 봉암사 결사는 선보다는 율이 강조된 율 중심의 결사였다.” 봉암사 결사의 재조명과 역사적 의의를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에서 ‘결사 개념의 재검토와 근현대의 결사들’을 발표한 동국대 인도철학과 김호성 교수는 봉암사 결사의 의미를 율 중심의 결사로 규정했다. 유례없을 정도로 불교계의 위기의식이 고조돼 있는 현재, 조계종 불학연구소가 10월 18일 불교문화기념관에서 개최한 ‘60주년 봉암사 결사 학술대회’는 봉암사 정신을 다시한번 새기고, 이에 대한 학술적 조명을 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김호성 교수는 “성철 스님과 보조 스님의 결사가 실천면에서 놀라울 만큼 닮아있다”고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가 불교상담학 전공 석사과정을 신설하고 첫 입학생을 모집한다. 불교상담학 전공은 불교와 상담 양 분야의 전문성을 갖춤은 물론, 불교상담이란 고유한 분야를 새로이 정립하여 생활 속에 실제로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는 불교 교리, 불교 수행법, 상담심리학 이론 등을 배우게 되며 불교상담학이란 새로운 분야의 이론을 구축해 창의적이며 효과적인 상담기법을 갖춘 전문인을 양성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또 재학 중에 상담자격증, 불교상담자격증을 모두 취득하는 것을 필수 목표로 삼아 상담수련활동을 적극 지원한다. 상담관련학회, 불교상담관련기관의 자격요건을 구비할 수 있도록 상담실습 기회를 제공하고, 워크숍, 집단상담, 슈퍼비전 및 사례발표회를 통해 학문적, 전문적 소양을 더욱
영남을 대표하는 불화소였던 부산 영도 복천사가 불모 완호 스님을 재조명하는 학술세미나를 개최한다. 복천사(주지 경호)는 10월 25일 오후 2시부터 복천사 대회의실에서 ‘복천사 역사와 문화 연구’라는 주제로 첫 학술세미나를 마련한다. 강대민, 이성혜, 서치상 , 박은경, 송경숙 교수 등이 ‘복천사’를 주제로 각각 발제를 이어간다. 주영미 기자
의병운동이 한창 활발하던 1907∼8년경 조선의 사찰들이 의병전쟁으로 인한 피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제에 보호를 요청하거나 일본 사찰의 말사로 등록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동민〈사진〉 수원시사 전문위원이 10월 18일 한국선학회에서 발표한 논문 ‘의병전쟁기 불교계의 현실과 대응’은 의병전쟁으로 인한 불교계의 피해상, 그 이후 이어지는 불교사찰의 친일행각을 드러냄으로써 그동안 근대불교사에 공백으로 남아있는 개항과 일제시대의 교차 지점을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1907년 군대 해산이 강행되면서 전국의 유생들은 일제에 대한 의병봉기를 일으켰고, 한반도 전역은 일본군과의 전쟁터로 변모했다. 당시 의병과의 싸움이 주로 산간에서 이루어진 탓에 사찰은 전투의 한복판에서 숱한 피해를
홍련암. 양양 낙산사(주지 정념)의 의상대와 홍련암이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으로 지정될 전망이다. 문화재청(청장 유홍준)은 10월 15일 양양 낙산사의 ‘의상대와 홍련암’ 등을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으로 지정하기 위해 지정예고 했다. 이번에 지정예고 된 대상은 양양 낙산사의 ‘의상대와 홍련암’과 포함 삼척의 ‘죽서루와 오십천’로 ‘관동팔경’에 속하는 문화유적들이다. ‘관동팔경’은 동해안의 여덟 군데 명승지로 대관령 동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관동팔경이라 칭하는데, 북쪽에서부터 총석정, 삼일포, 청간정, 낙산사, 경포대, 죽서루, 망양정, 월송정이며, 이 중 총석정과 삼일포는 북한에 있다. 문화재청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명승지인 관동팔경 중 남
올해로 4회를 맞는 불교학연구지원사업회 ‘불교소장학자 연구지업사업’의 수상자가 발표됐다. 올해의 박사논문 수상자는 서울대 미학과에서 「송대 예술관에 미친 선종의 영향-의경과 시서화일률론을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받은 명법 스님, 교토대 미학미술사학과에서 「조선왕조전기 왕실주변의 불교회화」로 박사학위를 받은 강소연 씨, 동국대 인도철학과에서 「설일체유부의 삼세실유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황정일 씨 등 3명이다. 사업회 측은 명법 스님 논문의 선정 이유로 “송대 미술관의 특징을 선종의 사상적 개성과 결합시켜 논구함으로써 송대 문화적 개성을 선종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으며, 동아시아 지역의 예술문화 전반에 걸친 종합적 이해에 큰 도움이 되는 연구”라고 평했다. 또 강소연 박사의 논문
보물 1526호로 지정된 범어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부산의 불교 문화재가 국가 및 시 지정 문화재로 등재됐다. 선찰대본산 범어사(주지 대성)는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을 비롯한 소장 문화재 4건이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지정됐다. 보물 제1526호로 지정된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범어사 대웅전의 주불인 석가모니불과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로 순치 18년 17세기 중·후반기를 대표하는 조각승 희장 스님 등이 조성한 기록이 현존하며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 보물 1525호로 지정된 ‘금장요집경’. 보물 제1525호로 지정된 『금장요집경』은 인과응보에 관한 설화를 편찬한 경전으로, 고려 말에 새기고 조선전기에 인출한
불교학술대회 일정 ·한국선학회 추계10월 18일 오후 2시동국대 다향관 세미나실 ·한국선문화학회 추계10월 19일 오전 10시영월 법흥사 ·보조사상연구원은 월례10월 20일 오후 2시동국대 다향관 세미나실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추계국제10월 20일 오전 10시통도사 설법전 ·불교문화연구원 추계국제10월 26∼27일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 ·불교학연구회 추계11월 10일 오전 9시동국대 덕암세미나실 ·보조사상연구원 국제11월 17일 오전 10시법련사 ·한국불교학회 추계11월 17일동국대 문화관‘수확의 계절’ 가을을 맞아 불교학회의 학술대회들이 연달아 개최되고 있다. 한국선학회는 10월 18일 오후 2시 동국대 다향관 세미나실에서 추계학술대회를 개최한다. 한동민 수
2007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평양을 다녀온 도올 김용옥 세명대 석좌교수가 우리 시대의 통일해법으로 원효의 일심(一心)사상을 제시해 주목을 끌고 있다. 10월 7일 KBS스페셜 ‘남북 정상회담 특별기획-도올의 평양 이야기’에 출연한 김용옥 교수는 대학생 200명을 대상으로 자신의 시각에서 바라본 정상회담 소감을 전달하며 원효의 일심사상을 통일해법으로 소개했다. 원효는 신라, 백제, 고구려 삼국간의 문제를 일심사상으로 해결한 통일사상가였고 우리 한마음 속에 진리의 세계가 다 들어있다는 불교사상으로 통일 사상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언론에서 제기한 남북정상회담의 문제점들과 언론에 의해 잘못 전달된 회담 내용들을 지적하는 한편 자신이 생각하는 통일의 의미에 대해 1시간 동안에
2007 해외 상반기 불교학 박사논문올해 9월 일본 교토불교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필원 씨의 논문 「아라한의 연구」는 초기불교 당시 부처님을 지칭하던 아라한이라는 용어가 불교 이전에는 어떻게 쓰였는지 그리고 부파불교시대를 거치면서 이 말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고찰한 연구이다. 이 씨의 논문에 따르면 『숫타니파타』에서는 아라한이라는 용어 대신 바라문, 무니, 붓다 등의 다양한 용어가 사용되었다가 『담마빠다』가 성립할 무렵 불교에서 이상적 수행자를 지칭하는 용어로 불리게 되었다. 부파불교 시대에 들어서면 아라한의 개념에도 분화가 일어나 아라한의 우열이 논해지기 시작한다. 초기 경전 전반에 걸쳐 아라한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등장하는 심해탈과 혜해탈은 아라한의 최초 분화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 씨는 “본
“ 3·1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용성 조사께서 서대문 감옥에 계실 때 깜짝 놀라셨다고 합니다. 함께 수감돼 있던 목사님들이 한글 성경을 읽고 계셨기 때문이었죠. 불교가 들어온 지 1600여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는데도 한글로 번역된 불경이 없었기에 가슴을 치신 겁니다.” 법손인 죽림정사 조실 도문 스님의 용성 진종 조사에 대한 회고이다. 일제 강점기만 해도 불경은 모두 한문이었다. 불자들은 복을 빌며 기도만 하는 기복 불교에 매달렸을 뿐, 부처님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공부할 길이 막막했다. 불경은 스님들만의 ‘전유물’이었다. 3·1 운동 당시 처음으로 독립운동과 민족의 상징물로 태극기를 쓰자고 제안했던 용성 스님은 한문으로 된 불경을 한글로 풀어쓴 ‘역경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세수 58세 되던 해인 19
“니가 승중(비구니)이 되어 잘해서 승중계에 혁명을 일으켜서 큰 중이 되면 안되나.”성철 스님으로부터 이 이야기를 듣고 출가한 청담 스님의 딸은 그로부터 13년 뒤 한국 최초의 비구니 강사가 되었고, 후일 봉녕사에 한국 최초의 비구니 율원을 개원했다. 그가 걸어온 길은 한국은 물론 세계 비구니사의 물길을 터가는 과정이었다. 국내 최초의 비구니 강사 한국 최초의 비구니 강사 묘엄 스님〈사진〉의 주강 50년을 기념해 봉녕사승가대학이 기념논총을 출간했다. 이 논총에는 묘엄 스님으로부터 전강을 받은 제자들과 인연이 있는 학자, 스님들의 논문 21편이 수록됐다. 해외에서는 한국 비구니승단이 남녀평등 승가의 상징처럼 추앙되고 있지만 사실상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한국의 실정 또한 ‘평등’을 논할 수준은 아니다.
“용성 큰스님께서 계속 보내주신 독립운동 자금으로 나라의 광복을 맞이하는 데 크게 이바지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매헌 윤봉길 의사를 보내 주시어 만대 귀국 충절 순국의 사표가 되도록 하여 주셨나이다.” 때는 1945년 12월 12일, 일제 강점기에 맞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끌었던 백범 김구 선생이 3·1 독립만세의 진원지였던 종로 대각사를 방문해 용성 조사의 영정 앞에서 흐느끼며 인사를 올렸다. 풍전등화와도 같았던 민족을 구하였기에 ‘겨레의 육신보살’이라 추앙하며 대한민국 임시 정부 요인들이 함께해 머리를 숙이며 눈시울을 적시었다. 3000리 금수강산을 터전삼아 살다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2000만 겨레를 구하는데 일생을 바쳤기에, ‘겨레의 육신보살’이란 호칭이 임시 정부 요인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흘
2007 해외 상반기 불교학 박사논문올해 8월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천학(히메지독쿄대 준교수·사진) 씨의 논문 「일본화엄사상의 연구-헤이안기 화엄사기류(華嚴私記類를 중심으로」는 헤이안시대 화엄문헌 중 사기(私記)류를 통해 일본 고대말기의 사상적 특징을 고찰한 논문이다. 지금까지 일본사상사학계에서는 헤이안시대 화엄종이 다른 종파에 비해 쇠퇴했다고 평가해왔다. 그러나 김천학 씨는 “헤이안기 화엄사상이 쇠퇴했다는 평가는 일부 수긍할 수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며 기존 학설을 부인했다. 김 씨는 그 예로 “교넨(凝然)의 『화엄종경론장소목록』에는 25편정도의 사기의 명목이 보일 정도로 어느 정도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또 “사기류의 사상을 검토한 결과 헤이안시대 화엄
옛 고승들은 국정책임자들을 어떻게 대했을까. 대통령이 법회에 참석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홍보가 전무해도 수백명의 스님이 호텔을 가득 채우고, 이교도인 대통령 후보의 후원모임을 앞장서서 마련하고, 대통령을 수행하는 이에게 줄을 대서 대형불사를 일으키는 우리시대 불교의 모습을 보면서 무엇이라 평가했을지 의문이다. 대선을 앞두고 일부 정치승들과 권력층간의 결탁관계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동국대 김상현〈사진〉 교수가 신라시대 국왕과 정치, 불교의 관계를 조망한 논문을 발표해 주목되고 있다. 김 교수는 동국대 신라문화연구소에서 발간한 『신라문화』 제30집에 「7세기 후반 신라불교의 정법치국론(正法治國論)-원효와 경흥의 국왕론을 중심으로」를 발표했다. 김 교수는 “7세기 후반 신라 중대왕실의 국왕들은
사명대사가 호신불로 모셨던 금동불상이 100년 만에 발견됐다. 현재 포항 대성사에 소장된 이 불상은 이번 달 말에 국고보물로 공식 지정될 예정이다. 포항시 북구 용흥동 대성사에서 발견된 이 금동여래좌상은 높이 9.4㎝ 규모의 고려말 조선초 양식의 불상으로, 최근 문화재청과 조계종의 문화재조사작업 도중 불상 내부에서 사명대사의 친필 원장이 발견되면서 사명대사 호신불임이 밝혀졌다. 조계종 문화부 이분희 행정관은 “불상 양식이 사명대사 생전보다 훨씬 앞서 조성된 시기인 것으로 보아 사명대사가 직접 조성한 불상은 아니지만 1913년 조선총독부 도록에도 이 불상이 사명대사 호신불로 명시돼 있다”며 “불상에 발견된 친필 원장으로 볼 때 사명대사가 이 불상을 소지하고 다닌 것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조계종 문화부는 9월 18일 2007년 조계종 성보보존위원 명단을 발표했다. 성보보존위원은 총 62명으로 정책분과 11명, 동산분과 22명, 고고·건축분과 13명, 박물관·보존분과 7명, 무형분과 9명이다. 조계종 총무원은 지금까지 임기 4년의 성보보존위원과 임기 2년의 전문위원으로 분리 운영되던 제도를 올해부터 성보보존위원으로 통합하여 총 62명의 위원을 위촉했다. 이번에 개정된 성보보존회령은 성보보존위원의 임기를 2년으로 단축했으며, 성보유형에 따른 분과위원회를 둘 수 있게 했다. 조계종은 성보문화재의 보존 관리 및 포교적 활용에 관한 사항을 조사 심의하기 위해 1998년 성보보존위원회령을 제정하고, 성보문화재에 대해 전문적 식견이 있는 위원으로 성보보존위원회를 구성하여 종단 성보문화재와 관련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