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불교를 이 시대의 삶과 고통 속에서 이해하고 실천하고자 하였다. 그는 많은 글을 읽었고 오랜 시간 사색했다. 보석 같이 다져진 문장을 세상에 내놓아 ‘천재’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비승비속의 삶을 선택함으로써 승려라는 보호막과 권위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불교 인문학자로서, 학위나 강단하고는 거리가 먼 독학자의 길을 걸었다. 그는 폐쇄적이며 괴팍하고 예민했다. 친하게 지내다가 싸우고 다시는 안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고독했고 쓸쓸했으며 항상 울분에 차 있었다. 하지만 불교를 공부하려는 젊은이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따뜻했고 지
평등해야만 평화로워진다‘본인이 식사당번인데 왜 밥을 안 하는 거야?’ ‘담당한 구역을 청소하기로 해놓고 왜 청소안해?’…. 요즘 ‘공동체운동’ 관련 공부를 하면서 대부분 공동체 내 갈등과 불화는 심오하고 거창한 문제가 아니라 공평하게 하기로 한 식사, 설거지, 청소 등과 같이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걸 깨닫는다. 공동체 내에 평등하게 나눈 역할분담을 누군가가 게으름 피우거나 안하게 되면 결국 다른 누군가가 대신 희생하고 고생하게 된다. 그러나 너무도 사소하고 말하기에 자잘해서 그냥 넘어가곤 하지만 해소되지 않고 쌓이
최근 스포츠계에서 발생한 성폭력을 보면서 과연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의 안전지대가 있을까를 생각했다. 10년 전 지금과 비슷한 일로 스포츠 경기장마다 현수막을 펼쳤고, 서명지를 들고 스포츠 성폭력 근절을 위한 캠페인과 이동 상담을 했다.그러나 사회는 들끓었지만 스포츠계의 선수들은 차분할 정도로 냉담했고 오히려 순간 잠잠해졌다. 그때만 해도 우리 사회가 스포츠 성폭력에 대해 아직 성숙한 의식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라 여겼다. 그런 가운데도 우리 활동가들은 사회의 감시를 피해 성폭력이 발생하고 있지 않을까 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떼지 않고
2019년은 3·1운동이 발발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19년 3월1일 천도교·불교·기독교계 지도자 33인이 민족을 대표하여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것을 기점으로 그해 5월말까지 전국적으로 무저항의 만세시위는 계속되었다. 최남선이 기초한 독립선언서에 따르면 당시 인구는 2000만명으로 나타난다. 그러면 이 무렵 종교 인구는 얼마나 되었을까? 한 종교 연구가의 연구에 의하면 1919년 3·1운동 당시 천도교도들은 100여만명, 개신교는 20만명이 조금 넘는 숫자였다고 한다. 100년이 지난 오늘 종교인의 숫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연초부터 학계와 종교계,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 할 것 없이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각종 행사로 떠들썩하다. 불교계도 3·1운동 관련 학술사업과 다양한 이벤트가 예고되었다.하지만 불교계에서 3·1운동에 대한 관심과 탐구를 심화시키고 그 의미를 현재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고, 지금 불교계가 3·1운동에서 어떤 가치를 발견해야 되는지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지난 20년 동안 불교근현대사 연구는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다. 연구주제도 다양화되고 불교계 독립운동에 대한 연구도 진척되었다. 하지만 일반
1100여명의 유대인을 구한 스토리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가 2019년 1월 재개봉된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접한 후 독일인 존 라베 등이 떠올랐다. 존 라베는 1937년 중일전쟁당시 난징의 독일 지멘스의 지사장으로 있으면서 30만명이 일본인들에게 학살되는 것을 보고 일본군이 못 들어오게 조계지역을 만들어 난징시민 20만명을 살렸다. 중국에서 의인 칭호를 받는 그는 역설적이게도 나치당원이었다. 또 1939년 2차대전의 전범국 일본의 리우투아니아 외교관 스키하라 지우네는 본국의 명령을 어기고 죽음의 위기에 처한 유대인 6000여명에게
인도를 다녀온 사람들은 안다. 먼지가 하얗게 일어나는 그 길이 얼마나 척박한 지, 그리고 그 다양하고 차별적인 인권침해의 삶들이 얼마나 처참한지를. 이곳이 부처님께서 평등을 부르짖던 땅이었다. 부처님은 그 시대 기층민들이 받는 인권침해와 불평등한 삶을 평등의 지위에 올리기 위해서 부단하게 노력했다. 이로 인해 기득권 세력들에게 수없이 많은 견제와 박해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부처님은 묵묵히 그길을 걸어갔다. 이런 구조적인 차별의 문제는 부처님이 현존하던 시대에도 있었고, 오늘날에도 존재하고 있다.처음 여성폭력과 여성인권에 관심을 갖
북미관계가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북미 고위급 회담이 불발되면서 교착 국면이 길어지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면 한반도 비핵화의 과정이 역시 쉬운 길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올 초, 북한의 신년사를 계기로 평창 올림픽 참가,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그리고 싱가포르에서의 세기적 북미 정상회담 등을 거치면서 금방이라도 비핵화와 한반도의 평화가 손에 잡힐 듯 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초기의 낙관적인 예상과는 달리 북한과 미국이 서로가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 교환에 실패하면서 지금은 북미간 협상마저 교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 학문의 분야들은 그리 다양하지 않았다. 인문학자가 과학자였고, 과학자가 또한 사회학자이기도 했다.그런데 근대 이후에 각각의 분과 학문들이 생겨나면서, 인간의 삶 전체를 향해 열려 있던 시각 역시 그 분과학문들의 영역에 따라 시야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그런 양상들 중에 한국불교를 전공하는 필자가 가장 심각하게 느끼는 것은 한국사 쓰기이다. 한국사 관련 책들을 읽다 보면 유독 불교와 관련한 부문에 대한 의도적 도외시가 눈에 많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전공이 전공이다 보니 좀 더 많이 심각하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을
“첫 아이를 낳고 돌아오는 승용차 안이었어요. 전 아이를 안고 뒷좌석에 앉아 있었죠. 그때 어떤 낯선 느낌이 드는 거예요. 남편이 운전하는 뒷모습을 처음 본 거죠. 아이를 낳기 전엔 항상 남편 옆 조수석에 앉아 있었죠. 운전하는 뒷모습을 볼 일이 없었죠. 짠한 마음이 들더군요. 남편의 어깨가 더 무겁고 축 처진 것처럼 보였어요. 빠듯한 살림에 식구가 하나 더 늘었으니 그 부담이 어땠을까.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눈시울이 시큰해져요.”지난 3월 충북 괴산에서 귀농자, 귀촌인 여성들에게 글쓰기 워크숍을 했다. 거기 참석했던 한 분의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이다. 우리 민족의 정서상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새해는 설날이 기준이 되고 있기도 하지만, 국가나 사회의 모든 행정절차는 12월이 막달이다. 특히 이달 둘째 날(2일)은 국가의 내년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 날이라 그에 관한 뉴스가 연례적으로 반복되기도 한다. 또 동지가 들어 있어 동짓달이라고도 하며, 절에서는 동지불공과 기도를 올린다. 동지에 대한 풍속 등은 널리 알려졌으니 별로 언급할 것이 없겠으나 동지와 관련된 사찰 안팎의 문화나 현대인의 삶과 관련해서는 좀 더 살펴봐야 할 것이 있지 않을까 한다.
1993년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노래가 있었다. 탤런트이자 영화배우였던 신신애씨가 재미있는 가사를 붙여 발표한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노래다. 이 노래 가사에는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라는 대목이 있다. 당시 이 가사는 세태를 풍자하는 코믹한 표현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1993년이면 우리 사회가 대량소비 사회로 진입하면서 유명 브랜드의 상품을 선호하게 되고, 이를 이용한 거짓 상술이 점차 커지고 있던 시기였다. 이런 시기이니 만큼 그 당시로서는 이러저러한 가짜 상품에 대한 경각심과 이를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