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방송에 출연할 일이 있었다. 사후세계가 주제였다. 익숙한 주제이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자료조사를 위해 검색을 하던 중 ‘헬조선 지옥불반도 지도’를 보게 되었다. 그 지도는 지금 한국에 태어나는 것이 곧 지옥에 태어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상징하는 지도였다. 백수의 웅덩이, 자영업소굴, 대기업 성채 등 위험한 곳들이 그려져 있었다. 사실 해외구호활동을 많이 다니다보니 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를 많이 가게 된다. 그래서인지 한국이 어려운 나라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상황에서 접한 그 지도는 충격으로 다가왔다.그럼 지금 한
독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는 인류의 정신발전에서 자양분이 될 만한 위대한 변화가 이루어진 시기를 ‘축의 시대(Axial Age)’라고 했다. 이 시기는 대략 기원전 900년부터 기원전 200년 사이의 시기를 말한다. 이 때 지상에 출현한 이들이 소크라테스, 붓다, 공자, 노자 등이다. 이들은 영적, 철학적 선구자들로 인류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거나 위대한 종교의 교조가 된 사람들이다. 물론 불자들은 축의 시대 성자들 가운데 석가모니 붓다의 가르침이 가장 높고 심오하고 고귀하다 여기며 신앙해
9월21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평화의 날’로 전 세계에 전쟁과 총성이 없는 하루를 보내자는 뜻으로 제정한 날이다. 세계 평화의 날을 맞아 9월19~21일 세계 평화주간으로 정해 전 세계 1000여 도시에서 평화명상을 진행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은 전쟁과 갈등, 분쟁이 없는 평화적 분위기를 조성해서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을 맑히고 고양시키는 명상을 전개한다. 이를 ‘오묘한 행동주의(Subtle Activism)’ 혹은 ‘영적 행동주의(Spiritual Activism)’라고도 한다. 특히 올해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 남북통일
기원전 1800~800년 동안 유목민 아리안 족이 남하하여 인도의 지배계급으로 등장한다. 육식을 워낙 탐닉하다 보니 넘쳐난 수요는 고기공급을 강제하고 토지를 비롯한 생태계는 급속히 황폐화된다.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반목축에서 집약농업으로 전환한다. 농민들의 분노가 들끓고 상대적으로 채식을 강조한 불교의 등장은 폭발적 인기를 얻는다. 이에 위협을 느낀 아리안 족은 힌두교에 아힘사(비폭력)를 삽입한다. 소를 도살하는 희생제를 포기하고 채식을 강조할 뿐 아니라 심지어 암소숭배 사상까지 출현한다.저명한 문화인류학자 마빈해리스의 주장이다.
며칠전 2050년까지의 종교인구 예측기사를 보았다. 각 종교별 출산율을 위주로 개종하는 사람까지 포함한 내용의 예측이었다.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최근 발표한 ‘세계 종교의 미래: 2010~ 2050 인구증가전망’ 보고서에 나타난 종교인구 변화를 보면, 세계적으로 이슬람인구가 기독교인구와 비슷한 수준에 이르고, 불교인구는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이렇게 예측된 이유는 지역별 출산율 격차와 그에 따른 인구분포 변화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보고서에 따르면 무슬림 지역은 가임기 여성 1인당 3.1명의 출산율을, 기독교 지역
시대에 따라 종교는 달라지지만 변하지 않는 원칙이 있다. 그 종교의 가르침을 따르고 추종하는 사람들이 교조의 가르침에 따라 정도(正道)를 지키는 시대에는 그 사회도 활기차고 융성해진다는 점이다. 이는 멀지 않은 우리의 역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불교가 전래된 삼국시대와 불교가 부패했던 고려 말기시대의 상황이 이를 말해준다. 불교가 전래되고 이를 국가의 이념으로 삼아 융성하던 삼국시대에는 훌륭한 수행자들이 많이 배출됐다. 통일신라 역시 불교와 함께 융성한 나라였다. 이 시대 불교는 ‘극락정토’라는 이상향을 제시했고 이는 곳 시대의
우리나라에서는 1년에 2,000여 스님들이 안거(安居, Vars . a-) 수행을 한다. 안거는 수행자들이 한 곳에 모여 바깥출입을 삼가고 수행과 연구, 정진에 힘쓰는 기간이다. 한국불교의 절기로 이제 하안거가 끝나고 해제가 시작되었다. 해제 기간 동안 수행자들은 자유롭게 유행하면서 사람들을 유익하고 행복하게 하는 법을 전하며 회향한다.붓다 당시 초기불교의 이상(理想)은 열반(涅槃, nirva-na)이었는데, 대승불교가 출현하면서 위없는 완전한 깨달음(無上正等正覺, anuttarasamyaksam . bodhi)에 대한 소망과 함께
인도사원이나 불교사찰에 가면 쌍어문양을 발견한다. 쌍어는 변하는 가운데서 변하지 않는 것을 찾는 과정을 상징한다. 컵의 물이나 대양의 물은 다르지 않다. 단지 컵, 즉 몸과 마음이란 조건이 무한의식을 제한할 뿐이다. 고대 탄트라체계에 따르면 쌍어는 무한의식과 합일하는 내면의 에너지 통로를 말한다. 그 통로를 통해 생명에 의한, 생명을 위한, 생명의 약동이 솟구쳐 오른다.우리 사회가 요즘처럼 매 이슈마다 보수 진보의 시각이 극명하게 갈린 적이 있을까 싶다. 사람은 비슷한데 무엇이 보수이고 진보인지 가늠하는 기준도 모호하다. 나라마다
며칠 전 절에서 대학입시 100일기도를 입재하며 강남 유명 강사를 초빙해 참가한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입시설명회를 했다. 그날 함께 강의를 들으며 느낀 점은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얻기 위한 노력들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지금은 힐링시대이다. 템플스테이에 참가자들은 대부분 힐링을 위해서 왔다고 한다. 절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 받고자 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 일상 속에서 행복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5년 전 한 인터넷신문사를 운영했던 때가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덜 받지만 중요한
얼마 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서 열린 세계 최대 한류컨벤션 행사 ‘케이콘(KCON) 2015’에 참석한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정보통신기술(ICT)과 문화콘텐츠를 융합해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 발언에는 향후 한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정보통신기술(ICT)’과 ‘사물인터넷(IoT)’ 시장을 선제 공략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미 독일, 영국, 중국, 미국, 일본, EU와 같은 국가들이나 글로벌 기업들은 앞으로 다가올 IoT시대를 선점하기 위해 분주히 노력하고 있다는
틱낫한 스님은 “모든 불교는 참여불교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붓다의 삶이 그랬고, 지금까지 내려온 승가의 모든 스승들이 인류의 행복과 그 길을 가르치면서 사람들과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한국불교는 대승불교를 표방하고 있다. 대승(大乘, mahayana)은 많은 이들을 싣고 갈 수 있는 큰 수레로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불교이다. 즉 모든 이가 행복하고, 고통을 여의기를 바라며, 내면의 완전한 기쁨을 발견하고, 행복의 원인인 이타심과 집착 없는 평온한 마음으로 불성(佛性)을 깨닫길 바라는 가르침이다.대승의 맥을 잇는 한국 불교가 가
동물이건 식물이건 다른 생명을 죽여 먹이로 삼는 것은 잔혹한 일이다. 그러나 이는 피할 수 없는 삶의 전제조건이다. 힌두사원이나 불교사찰에 가보면 영광의 얼굴이란 뜻의 키르티무카를 발견한다. 배가 고파 자신을 차례로 먹어 올라가 얼굴 하나만 덩그렇게 남은 이 이미지는 남의 생명을 먹고 사는 생명을 상징한다. 이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신이나 부처를 예배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먼 옛날에도 생명을 죽여 먹이로 삼아야 하는 엄정한 현실을 의식하는 인간의 마음이 크게 불편하고 두려웠나 보다. 현대의 대표적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이러한 인
며칠 전 가뭄에 단비가 내려, 땅을 적시니 고개 숙이고 허리까지 숙였던 풀들도 허리를 꼿꼿이 펴고 섰다. 숲이 기뻐하는 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온다. 웃음의 전염성 때문인지 숲이 기뻐하고 벼와 과수가 기뻐하니 농부의 입가에도 웃음이 머문다. 단비에는 그저 환한 웃음으로 반겨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그날의 신문기사에는 기상청이 제공한 정보를 토대로 비의 가치가 돈으로 환산하면 2500억원의 가치가 있다는 식의 기사가 났다. 그날 내린 비는 비가 아니라 돈이었던 것이였나?오랜만에 해외서 봉사활동을 할 때 도움을 준분을 만나 반가움에 그때의
지난 6월23~30일 인도네시아 욕자카르타에서는 제14회 샤카디타(Sakyadhita)국제컨퍼런스가 열렸다. ‘자비와 사회적 정의’를 주제로 열린 이 대회에는 전 세계 40개국 1000여 명의 여성불자들이 참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50여 명의 비구니 스님과 여성불자들이 이 대회에 참석해 세계 여성불자들과의 교류에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 대한 불교계의 관심은 전무하다해도 과언이 아닌듯해 안타까운 심정을 감출 수 없다.오늘날 여성불자나 수행자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단체의 활동은 다방면에 걸쳐 다양한 목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법구경’에는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폭력과 죽음을 두려워한다. 내가 두려워하듯 남도 그러하니, 그 누구도 괴롭히거나 해치지 말라는 게송(129~130)이 나온다. 또한 붓다께서는 '상윳따니까야'에서 “마음으로 사방을 찾아보건만 자신보다 사랑스러운 자 볼 수 없네, 이처럼 자신이 사랑스러운 법, 그러므로 자기를 사랑하는 자 남을 해치지 말라”고 가르치신다.생명은 누구에게나 너무나 귀하고 소중하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은 생명이 안타깝고 허망하게 죽어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해 4월 세월호 사건
무섭다. 연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중동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보다 더 두렵다. 바이러스를 잘 극복하면 면역 항체가 형성되어 다음에 이길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선택하는 극단적인 사건은 지속적으로 확산되지만, 개선의 방법은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듯 하다.바로 자신이 낳은 아기를 살해하여 유기한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며칠 전 보도되었던 소위 영아시신 택배사건도 그 중 하나이다. 한 아기의 시신이 택배로 보내져서 경찰에 신고되었는데, 알고 보니 그 아기는 수취인의 딸이 낳은 아기였던 것이다.피의자 이모씨는
햇살 따가운 6월이면 녹음은 싱그러움을 더해가고, 산사는 고즈넉한 정적 속으로 빠져든다. 이맘때쯤이면 1년 중 가장 바쁘고 할 일도 많은 봉축행사가 마무리 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올해도 예외 없이 전국의 모든 사찰은 분주했고, 종무원은 물론 불자들도 구슬땀을 흘리며 봉축행사를 성대히 치러냈다.특히 올해는 광복70주년 한반도 통일과 세계평화를 위한 기원대회가 개최되어 분주함이 더했다. 그런 점에서 어느 때보다 특별한 봉축행사였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특별한 행사와 분주함 속에 놓치지 말아야할 것을 놓친 것도 있다. 바로
“원한를 은덕으로 갚으면 어떻습니까?(以德報怨)” 어떤 이가 공자에게 물었다. 공자가 답했다. “그렇다면 은덕은 무엇으로 갚겠느냐. 정의로써 원한를 갚으며, 은덕으로서 은덕을 갚아야 하느니라.(以直報怨, 以德報德)” 논어 ‘헌문’에 나오는 이야기다.1991년 강기훈씨가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의 분신을 사주하고 유서를 대신 써줬다는 ‘유서대필 사건’을 아시는지. 부패와 부정, 3당 합당으로 위기에 몰린 노태우 정권이 위기타개책으로 조작한 사건이다. 6월 민주항쟁 등을 통해 자유, 평등, 인간애, 생명, 권리, 여성 등 ‘사람다운 가
광화문 광장에서 세계평화와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간화선 대법회가 열리기 일주일 전, 나는 서울 도성의 사신사(四神砂)인 북악산, 인왕산, 낙산, 남산을 차례로 돌며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1700년 한국불교 역사에 유례가 없는 광화문 광장의 대법석이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치러지길 간절히 발원했다. 인왕산의 경우엔 선바위에서 기도를 올렸는데 ‘선바위’라 하면 흔히들 입석(立石)을 떠올리겠지만 선석(禪石)의 의미로 스님이 장삼을 입고 서 있는 모습에서 유래했다. 조선왕조가 개국하면서 이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는데 무학대사는 도성 안에
‘아빠’의 시대가 된 것일까? 방송, 영화, 출판계에서 모두 아빠가 대세다. 먼저 아빠 열풍을 일으킨 대표 프로그램으로는 ‘아빠, 어디가?’가 있었다. 아빠들은 집이 아닌 여행지에서 아이들을 보살피는 ‘미션’을 수행한다. 서툴고 엉성한 아빠들이 때론 경쟁하고 때론 협력하면서 자식들을 챙기는데, 아이와 아빠들이 함께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재미와 감동의 포인트였다.그런데 이 프로그램의 성황에 이어 더 강한 것이 등장했는데, 이번에는 더 어린 아기를 ‘집’에서 ‘혼자’ 돌봐야 하는 아빠들의 고군분투기이다. 제목하여 ‘슈퍼맨이 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