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인 등 개화승 활동-승려 도성 출입 계기억불로 침체됐던 국내 불교계에 기폭제 역할 우리 근현대불교사는 시련과 좌절을 딛고 선 아픈 기억을 가진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 까닭은 억불정책으로 일관하였던 조선왕조가 무너지고 근대사회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여 주체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고, 그 후유증으로 현대 사회에 들어와서도 많은 혼란을 겪었기 때문이다. 우리 불교 근현대사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 조명은 이제 시작 단계에 있다. 필자는 많은 분들의 질책을 달게 받을 각오로 광복 60주년을 한 해 지난 현 시점에서 개항기부터 20세기를 마감하는 시기까지의 근현대불교사를 정리 해 보려는 만용을 부려 보고자 한다. 많은 가르침을 부탁드리면서 이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중생의 고통 대신하려는 마음이 회향남 위한 마음이 본인 돕는 결과 낳아 어렸을 때 처음 불교를 배우고 나서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처님 가르침 중에 하나가 회향(廻向)이었다. 내가 열심히 공덕을 쌓아 그 공덕을 나 본인에게 돌리는 것이 아니라 온 중생계로 돌려야 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잘 이해가 안 되고 또 나를 불안하게 했다. 그 이유는 나의 공덕을 다른 이들에게 다 돌려 버리고 나면 나에게는 아무런 공덕이 남지 않으므로 복을 쌓아 불국 정토에 왕생하려는 소망도 이루어 질 수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에게 다 돌리고 나면 나에게는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을 것이라는 어린 학생의 단순한 사고에서 나온 걱정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마음을 내어 다른 사람을 조금이라도 도와
사람과 사람 사이엔 사랑보다 존경이 우선 부부는 서로에게 존경받을 만한 사람 돼야 몇일전 어렸을 때 참으로 친하게 지냈던 속가 사촌 동생으로부터 결혼을 한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방학 때마다 외할머니가 계신 외갓집에서 모여 어깨동무하면서 재미있게 놀던 때가 바로 어제 같은데 벌써 결혼을 한단다. 지금은 미국에 있는데다 또 출가한 몸이라 직접 결혼식장에 가서 축하는 못 해 주지만 멀리에서나마 그 동생을 위해 그리고 올 봄에 결혼하는 많은 젊은 부부들을 위해 도움이 되는 말이라도 한마디 해주고 싶다. 결혼하는 부부들에게 사람들이 해주는 말들은 대체로 사랑이라는 명제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다.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사랑하고 아껴주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부부 사이를 포함해서 사람과 사람사이에 사랑 이
자면서도 논문 생각 ‘삼매’ 버금 힘든 기도라도 노력하면 재미붙어 요번 여름이 끝나기 전까지 박사 논문을 마쳐야 되는 상황이다 보니 도서관에서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아침 9시 도서관 문이 열리면 바로 들어가 컴퓨터를 켜 놓고 공부를 시작해 보통 저녁 9시까지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낸다. 시간상으로는 하루에 12시간 정도를 도서관에서 보내지만 정작 정말로 집중해서 공부하는 시간은 8시간 정도 될까 말까다. 나머지 4시간은 공양하는 시간과 중간 중간에 도서관 주위를 돌면서 경행하는 시간, 화장실 다녀오고 인터넷 체크하는 시간이다. 어쩌면 이번 8월말까지 내게 150일 간의 기도시간이 주어진 것 같다. 사람들이 많이 있는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거의 모든 시간을 혼자 보내게 된다. 도서관 안에서
100대 1 경쟁률 뚫고 교수 임용 돼 두달 간 전전긍긍했던 번뇌 떨구어 조금은 한심스러웠다. 스님이 되어가지고 속인이랑 똑같이 대학교수 임용을 받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는 지난 두달간의 내 모습이 좀 그랬다. 한편으로는 지금 이런 모습이 좀 우스워도 또 한편으로는 미국 대학교에서 정교수가 되어 교편을 잡으면 미국 대학생들에게 불법(佛法)을 전할 수 있으므로 그것도 스님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막상 1차 서류 심사와 2차 면접을 통과 했다는 소식을 받으니 기분이 참 좋았다. 미국 박사 학위생들과 당당히 경쟁하여 100대 1이 넘는 경쟁을 뚫고 마지막 4명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스스로가 대견스러웠다. 그런데 그런 기분 좋은 소식이 하나 둘씩 더 들리
나라별 전공자 모집에도 한국은 ‘열외’ 미국 내 한국학 관련 교수 있는 곳 적어 작년 중국에 있으면서 2006년 미국 대학 종교학과 내의 불교학 전공 교수 채용 광고를 알아보니 대략 20군데 정도가 있었다. 돌아오는 해 가을 학기부터 가르칠 교수를 1년 전부터 북미 종교학 학회와 아시아 학회 웹사이트를 통해서 광고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20군데 대학들이 모두 같은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각 대학마다 원하는 점이 조금씩 다르다. 먼저 많은 대학이 종교별로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최근 들어 나라나 지역별로 전공자를 뽑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중국 종교 전공자 아니면 일본 종교 전공자와 같은 식으로 나뉘어져 한사람이 불교 말고도 그 나라의 도교나 유교, 신도 (神道) 와 같은 다른 종교까
이력서-교육 철학 등 서류 거쳐 면접 100명 중 한 명 뽑는 치열한 임용시장 미국 대학 인문계열에서 박사 학위 받는데 필요한 기간이 평균 7년이란다. 프린스턴대학교 (Princeton University) 같은 경우는 보통 2∼3년 동안의 코스 워크를 마치고 나면 종합 시험을 3학년말 정도에 치른다. 그 시험 준비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2학년 때부터 줄곧 시험 준비에 매달리게 된다. 종합 시험을 통과하면 박사 논문계획서를 30∼50쪽 가량 준비해서 제출한 후 교수님들 앞에서 일차 심사를 받는다. 그 심사에 통과를 하면 보통 1∼2년 정도를 바로 일본이나 중국, 대만으로 가서 논문 관련 조사 탐방 혹은 그 분야 제일의 전문가를 찾아가 공부를 한다. 공부를 마치게 되면 보통 마지막 일년을 미국으
명상 관련 베스트셀러 대부분이 번역서 서양인의 동양에 대한 환상 추종하는 꼴 오래간만에 승려가 아닌 학계에 몸을 담고 있는 학자적 시각에서 몇 자 적어보려 한다.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많이 읽힌 종교, 명상, 정신 세계 관련 책들을 쭉 둘러보면 한가지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베스트 셀러가 된 많은 책들이 한국 저자가 쓴 글이 아니고 외국어(특히 영어나 불어)로 먼저 쓰여진 글들을 한국어로 번역한 책들이 많다는 것이다. 국내 저자가 쓴 책들도 앞에서 말한 책들을 번역하는 일을 역임하면서 본인들의 시나 에세이 책을 쓰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외국에서 많이 팔리는 명상 서적들을 많이 보거나 그러한 출판물들의 영향권 안에 있는 국내 작가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에서
남의 흉 볼때 내 안엔 똑같은 흉 있기 마련 염불·진언은 부처의 진동 따라하는 수행 피아노나 기타와 같은 악기를 연주하다 보면 가끔씩 재미있는 현상을 목격할 때가 있다. 피아노의 어떤 건반을 누르고 나서 그 피아노 소리와 비슷한 음정을 사람 목소리로 내고 있으면 건반에서 손을 떼어도 피아노의 현이 계속해서 울리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 기타를 마주 보면서 둘이 연주하다가 한 기타가 연주를 멈춘 상태에서 맞은편 기타가 기타줄 5개중 하나를 세게 치면 맞은편 기타의 똑같은 줄이 진동하면서 울리는 현상을 볼 수가 있다. 이러한 현상을 과학자들은 공명(共鳴)이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같이 울리는 현상’이라는 뜻이다. 공명 현상은 이 세상 모든 물체가 일정한 진동수로 진동한다는 법칙에
부처님 생각할 때 부처님도 중생 생각 부처님은 늘 숨소리보다 가까이 있어 노는 입에 염불한다는 옛말이 있던가. 몇일전 북경 지하철을 타고 북서쪽 끝에서 남동쪽 끝까지 가야 될 일이 생겼다. 평일 낮 시간이라서 그런지 지하철 안에 빈자리가 꽤 있었다. 앞으로도 25분 정도는 더 가야 되는데, 가방 안에 있는 책을 꺼내 보자니 조금 피곤하고 그렇다고 25분을 그냥 낭비할 수도 없어 눈을 감고 조용히 속으로 염불을 시작했다. 나의 염불은 ‘약사 유리광 여래 부처님’이나 ‘문수사리 보살님’이 주를 이룬다. 특히 약사 부처님과는 어려서부터 좋은 인연이 많았던 데다 은사 스님이 계시는 절 주불(主佛) 또한 약사 부처님이라 그 인연이 더 깊어진 것 같다. 철 모르던 10대 때는 약사 부처님이 환자의 병만
돈-명예-권력, 가져갈 수 없는 것 ‘숨쉴때 수행하라’ 가르침 새겨야 아는 지인(知人)이 교통 사고로 갑자기 죽었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 공부를 하던 이였는데, 난데 없이 날아온 불운의 비보를 받고 나니 놀랍고 안타까웠다. 그와 그렇게 친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간혹가다 학교에서 보면 인사정도 하면서 가벼운 대화를 나누던 사이였다. 박사 논문을 마치고 가을 학기부터 미국 중부의 어느 대학에서 교수 임용 결정이 났었는데, 강단에 제대로 서 보지도 못하고 30대 초 젊은 나이에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을 알려 준 이메일에는 그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 했는지 상세히 적혀 있었다. 그가 운전하는 차가 한 밤에 큰 트럭과 부딪쳤다는 이야기, 긴 신체적 고통 없이
대만은 어느 나라 보다 작은 나라 그러나 불교 영향력은 세계 ‘으뜸’ 산중 불교 탈피 인간 중심 불교로 9월에 들어섰는데도 대만에는 아직 여름의 기운이 많이 남아 있다. 중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대륙에서는 구할 수 없는 논문 자료를 구하러 대만에 잠시 들렀다. 요번이 벌써 3번째 대만 방문이다 보니 제법 길이 눈에 많이 익다. 대만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대만 사람들은 중국 본토인에 비해 온화하고 여유가 있다. 문화 대혁명을 겪지 않아서 그런지 전통을 아끼고 종교를 존중하는 문화가 잘 정착돼 있다. 국토의 면적이나 인구의 수 만을 놓고 보면 대만은 아시아의 어느 불교국가 보다 왜소한 나라이지만 대만 불교가 가지고 있는 세계적 영향력을 생각해보면 전세계 그 어느 나라도 감히 무시하지 못한
자금성 순례하다 만난 北 어린이 반가움과 긴장감이 함께 밀려온다 베이징(北京)시 산리툰(三里屯)이라는 지역에는 많은 외국 대사관들이 위치하고 있다. 저번 주에 택시를 타고 그 지역에 있는 캐나다 대사관 옆을 우연히 지나갈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택시 창을 통해 본 캐나다 대사관의 외부 벽은 거의 요새를 방불케 할 정도로 아주 높고, 뾰족하고, 층층으로 둘러 싸여 있는 것이다. 왜 이리 요새처럼 만들어 놓았는지 궁금해서 중국 택시 기사한테 물어 보니 몰래 캐나다 대사관으로 들어가려는 ‘조선’ 사람들을 막기 위해 그렇단다. 조선 사람… 이 말을 택시 기사한테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해 지면서 알 수 없는 애잔한 감정이 들었다. 저 대사관의 담벽을 저렇게 높이 올려 만든 이유가 바로 내 민족
중국 남서쪽의 사천성 (四川省)에서 북서쪽 감수 지역(甘據省)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해발 3000m가 넘는 이 지역은 한 여름에도 눈 덮인 설산을 볼 수가 있고 그 높은 산을 어렵사리 넘으면 끝도 없이 펼쳐진 대초원과 마주치게 된다. 그 초원의 한 가운데를 중국 문명의 시작인 황하강 상류 물줄기가 좌로 우로 돌면서 흐르고 있고 간간히 말을 타고 양이나 야크떼를 몰고 다니는 티베트인들을 만나게 된다. 바로 이 곳이 중화 문명권의 마지막 서쪽 변경 지역이자 티베트 문화와 회족(이슬람교를 믿는 중국인 소수 민족) 문화가 시작되는 동쪽 가장 자리 지역이기도 하다. 티베트 불교를 전공하는 도반의 도움을 받아 나는 티베트 암도 지역에서 가장
6세기 선배 스님들은 걸어서 참배 버스타고 순례해도 그 감격은 여전해 나는 어려서부터 중국 절강성(浙江省)에 있는 천태산에 꼭 가보고 싶었다. 6세기 수나라때 지의 스님에 의해 개산(開山)된 이래 천태산은 수많은 중국 큰스님들과 한국· 일본 스님들의 참배가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중국 천태종의 모태가 되는 국청사(國淸寺)가 바로 천태산에 있으며 동아시아 오백 나한 신앙이 바로 천태산에서 비롯되었다. 언제쯤 가봐야 할텐데 하고 마음만 조리고 있다가 천태산에서 학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이때다 싶어 나는 지난주 항주를 거쳐 천태산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안에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천태산을 가기 위해 선배 스님들은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어 아주 어렵게 천태산에 가셨을 것이라는 생
부자 거지에게 보시하면 어떠랴 보살의 마음 낼 수만 있다면 족해 십 년전쯤 인도로 만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인도에 가서 보니 많은 성자(聖者)의 수만큼이나 거지들의 수도 참으로 많았다. 여행 내내 나처럼 외국인이다 싶은 사람들 뒤로는 어디를 가나 구걸하는 거지들이 따라 다녔고 특히 사원이나 절 입구에는 어김없이 그들이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워낙 거지가 많다 보니 처음엔 구걸하는 이들에게 돈 몇 푼이라도 도움을 주었던 너그러운 마음이 한 1주일이 지나니 나도 모르게 시들해져 점점 야박하게 변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도와주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고, 또 한 명 도와주면 어디선가 다른 거지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와 자신들도 달라고 떼를 쓰니 처음부터 아예 모르는 척하는 것
사랑은 희생이란 음계와 조화 이뤄 소유물 됐을땐 고유한 향기 잃게 돼 뜬금없이 평소에 알고 지내는 속인 도반 한 명이 갑자기 나에게 이메일로 물어 왔다. 도대체 사랑이 무엇이냐고. 부인과 결혼해서 3년째 잘 살고 있는 그이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으니 그 둘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가 싶어 조심스러웠는데 그 도반 말로는 아무런 일도 없다고 한다. 단지 평소에 부인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많이 하는데 그렇게 그 말을 많이 하면서도 도대체 무엇을 사랑이라고 하는지 본인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 그냥 단순히 좋아하는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대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인지. 출가승에게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어 오니 처음에는 난감해서 그냥 모르는 체 넘어가려 했더니 꼭 내 의견을 듣
내 주위에 도반들이 있는 것에 감사 나의 공부 도와주는 이에게 또 감사 봄이다. 길에 흐드러지게 핀 바닐라색의 목련꽃이 봄의 서막을 알리고, 겨우내 무표정해 보이던 무채색의 나뭇가지에서는 기적 같은 연녹색의 희망이 보인다. 오늘은 시간을 내어 꽃과 봄나무들로 가득한 교정을 홀로 걸어보았다. 항상 시간에 맞추어 이곳 저곳을 쫓아다니던 습관에서 벗어나 오늘은 왠지 나 스스로에게 ‘여유’라는 선물을 주고 싶었다. 화창한 날씨에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걷고 있노라니 나도 모르게 김춘수 님의 ‘꽃’이라는 시가 입 속에 맴돌았다. 학창시절 국어선생님에 의해 반강제로 외워야 했던 그 시가 지금은 가슴에 남아 언제 어느 때고 꽃의 향을 음미할 수 있게 됐으니 그때 국어 선생님께 고마울 따름이다. 누군가 나의
마음속 민감한 버튼들이 외부작용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들여다 보아라 미국 사람들이 생활 중에서 흔히 하는 말 가운데 “버튼을 누르다”(push the button) 라는 표현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버튼은 단순히 초인종 같이 외부로 나온 단추를 누른다는 뜻 말고도, ‘심리적으로 매우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다’ 라는 뜻이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우리 나라에서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독도에 관한 일본과의 갈등이 미국 사람들이 말하는 한국인들의 심리적 버튼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버튼의 내용이 민감하면 민감할수록 그에 대한 반응 또한 격렬하게 나오는데 독도 문제로 일본 대사관 앞에서 닭의 목을 비틀고, 손가락을 자르고, 심지어 자해까지 하려 했다 하니 분명 이 문제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버튼을 누르는 일
중생은 내마음이 만든 인생 꿈을 꾸듯 연극하며 살아간다 나는 어렸을 때 만화 영화를 참 좋아했다. 특히 일요일 아침에 텔레비전을 통해서 방영되는 만화 영화를 손꼽아 기다리면서 즐겨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 중에서도 지금까지 뇌리에 남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는데 바로 ‘천년 여왕’ 이라는 제목을 가진 만화 영화다. 어른이 되어 버린 지금은 그 만화 영화가 가진 자세한 이야기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만화 영화가 가진 특유의 설정 만큼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만화 영화 주인공은 평범하게 보이는 젊은 여성인데 사실은 그 여주인공이 평범한 외모와는 달리 지구를 일반 사람들 몰래 천년 동안 지배하는 여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젊은 여주인공은 본인이 천년 여왕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