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正義)는 사회와 인간, 인간과 인간 간에 발생한 다양한 문제를 어떻게 바르게 해결할 수 있는가라는 차원에서 제기된 것이다. 오랜 농업이나 유목 생활에서 점차 도시화와 국가체제를 만들어 오는 과정에서 정의의 문제는 더욱 첨예하게 대두되었다. 관계에서 발생한 도덕이 윤리로 승격되고, 윤리가 법으로 강화되면서 삶은 더욱 더 자율과 타율이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이제는 사소한 시빗거리도 법에 의지하는 시대가 되었다.새 정부는 이러한 법을 다루던 사람들의 독무대가 되었다.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정부의 요직에 검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 꾀꼬리처럼 울지도 못 할 / 기찬 사랑을 혼자서 가졌어라!’젊은 시설 흥얼거렸던 서정주의 시 구절이다. 처음 이 구절만 보고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로 알고 있다가 한참 후에 시 전체를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제목부터 ‘신록(新祿)’이니 사랑 타령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고 보니 좋아하는 연초록의 색감으로 물든 5월의 산하를 보면 시인의 사무침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곤 한다.우리는 다양한 감각기관을 가지고 있지만, 항상 보고 듣고 생각하라고 배운다. 듣는 것보다 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듣고 이
‘청와대 미남불’ 경주 이전 논란이 2017년에 이어 또다시 불거졌다. 문화재제자리찾기를 중심으로 한 경주 지역 단체들은 “하루빨리 고향인 경주로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조계종은 “보존 정책·환경 마련이 우선”이라며 신중론을 펴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경주로 가기엔 아직 이르다.2018년 확인된 사료 ‘신라사적고’를 통해 ‘청와대 미남불’이 본래 경주 이거사에 봉안돼 있었다는 사실은 확인됐다. 그러나 현재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사지가 이거사터인지는 증명되지 않았다. 더욱이 현재 이 사지는 사유지이다. 이에 따라 발굴
얼마 전 공직을 퇴직하고 귀향한 옛 동료를 만나러 경북 영주에 다녀왔다. 그와 함께 부석사와 소수서원을 돌아본 뒤, 불현 듯 풍기읍내에 있는 작은 절 영전사 주지스님을 뵙고 싶다는 생각이 났다. 왜 갑자기 이 생각이 났을까.1994년 이른바 개혁불사 이후 조계종 포교원이 의욕을 갖고 1996년을 ‘불교청소년의 해’로 선언한 뒤 다양한 프로그램을 계획하여 실행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파라미타청소년협회 출범이었다. 많은 분들이 전폭 지원해준 덕분에 파라미타는 빠르게 성장‧발전하였다. ‘캠프가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하고 1996
4월 중순, 가평 살인사건의 피의자 이은해와 조현수가 검거됐다. 올해 초, 가평 살인사건의 내막이 밝혀지면서 얼마나 많은 대중들이 치를 떨었는지 기억하는가? 전문가들은 피해자가 생전에 가스라이팅(Gaslighting)을 당했다고 지적한다.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조작해 피해자가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어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이다. 현실감각과 판단력이 심하게 약해진 피해자는 자신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도 학대를 받으면서도 이에 저항할 수 없거나 심지어 정당하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피해자는 결국 가해자의 통제에
지리산 화엄사와 동국대 불교학술원이 화엄사의 기록유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디지털 화엄사지’를 제작한다. 유수 사찰의 기록유산이 디지털 플랫폼으로 구축되는 건 화엄사가 처음이다. 화엄사는 우주의 만물이 홀로 있지 않고 서로의 원인이 되며 대립을 초월하여 하나로 융합한다는 화엄사상이 깃든 도량이다. 각황전, 화엄석경, 석등, 동·서오층석탑, 사사자삼층석탑 등의 보물과 천연기념물 제1040호로 지정된 올벚나무 등 불교문화의 정수가 집약된 찬란한 유산을 올곧이 간직해 온 천년 고찰이다. 수많은 고승대덕도 배출했다. 신라에서 고려에 걸쳐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9호 ‘부산 영산재’ 의식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사단법인 부산영산재보존회 이사 성림 스님(부산 사상구 관음사 주지)은 얼마 전 무척 당혹스러운 일을 겪었다. 부산시 무형문화재 보유자 심사에서 탈락 사실을 통보받았기 때문이다. 부산 영산재의 전통을 이어 누구보다 앞장서 의식을 집전하고 교육해 온 스님이 정작 보유자 심사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은 스님은 물론 부산영산재보존회 모든 스님에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었다.부산 영산재는 영남범패를 기본으로 바라, 나비, 장엄 등 네 분야가 어우러진 불교 전통의 종합 예술 의식이
동국대 전 이사장 법산 스님이 5월14일 서울 진관사 향적당에서 열린 고 조명렬 중앙승가대 명예교수의 49재를 맞아 직접 지은 추모시 ‘백련화 향기 되어’를 낭송해 고인의 극락왕생을 발원했다. 올해 3월28일 별세한 고인은 불교아동학 정립에 크게 기여한 학자로 고 연사 홍윤식 동국대 명예교수의 아내이기도 하다. 한편 이날 진관사에서는 고 조명렬 교수의 49재에 앞서 2020년 5월28일 세연을 접은 홍윤식 교수 추모집(간행위원장 한상길)인 '연사회상의 인연 그 참다운 동행'(집옥재) 봉정식이 있었다.백련화 향기 되어백련화처럼 고요한
부처님께서 인간의 해방과 대자유, 영원한 행복을 근간으로 삼고, 사바세계에 나투신지 2566년째를 맞았다. 룸비니동산에서의 탄생 일성인 “하늘 위 하늘 아래 모든 생명은 존귀하다. 세계의 고통받는 중생들을 내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라는 말씀은 사회적 약자 소외 등 오늘날 불평등한 현실을 꾸짖는 말씀같기도 하여 올해 부처님 오신 봄날은 무척 남다르다.연등회는 인간으로 말미암은 기후위기와 감염병으로 수년간 중단됐었다. 그러다 3년 만에 동국대 운동장에 형형색색의 등과 각국 불자들의 미소가 다시 모였다. 흥인지문(동대문)을 거쳐 조계사까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여러 가지 공약(公約)들이 공약(空約)으로 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그것을 사납게 비난하는 여론이 일고, 또 안 지킨다는 것이 아니라는 변명이 이어지는 진부한 정치적 행태가 일어나고 있다. 정치인의 말, 그것은 어느 누구의 말보다도 무거워야 할 것이다. 여러 사람의 앞에 나서서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겠다는 정치인의 말이 가벼우면 나머지는 볼 것이 없다고 말해도 좋지 않을까? 그런데 어떤 말보다 믿지 못할 것이 정치인의 말이라는 것이 우리 국민의 일반적인 정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 행태들의 연장선에서 대통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차기 정부에서 추진할 핵심 과제를 담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윤석열 당선인이 후보 시절 불교계에 약속한 15개 공약 가운데 국정과제에 반영한 것은 고작 5개(33%)뿐이다. 특히 여야 후보 공통공약이었던 ‘문화재관람료 제도 개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의 공동지지 사항이었던 ‘사찰 전기요금체계 개선’에 이어 ‘오대산 조선왕조실록 의궤 환지본처’마저도 포함되지 않았다. 법보신문 ‘2022 신년특집 대선후보에게 듣는다’에서 문화재관람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당시 윤석열 후보는 이렇게
사단법인 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도명 스님이 김수로왕의 비 허왕후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허황옥3일-잃어버린 2천년의 기억’과 관련해 기고문을 보내왔다. 도명 스님은 허왕후 도래의 사실적 규명을 통해 한국불교의 역사와 문화가 풍부해지길 희망했다. 편집자지난 4월23일 경남 김해의 롯데시네마에서 지역불교계와 가락종친들이 참석한 가운데 ‘허황옥 3일–잃어버린 2천년의 기억’이라는 영화 시사회가 있었다. 이어 25일 부산 오투 롯데시네마에서는 조계종 종정 성파 대종사,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 스님, 통도사 승가대학장 인해 스님, 안국선원 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무력침공으로 수많은 희생자와 난민이 발생한 가운데 고담선원 주지이자 더프라미스 이사인 혜민 스님이 4월24일 출국해 독일 베를린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불교계 국제구호단체 더프라미스, 현지 구호 단체 ‘아사달’과 함께 긴급 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혜민 스님은 5월4일 폴란드에서 난민지원 현장 활동기를 담은 기고 '힘내라 우크라이나!'를 법보신문으로 보내와 이를 전문 게재한다. 편집자주 베를린 중앙역 3번 플랫폼. 우리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봉사자들의 연락책이 되는 단체 메신저 대화방에 따르면
고인(故人)이 된 어느 대통령이 ‘갱제’를 살리기 위해 ‘강간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가 시중의 놀림감이 된 적이 있다. 복모음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대통령이 ‘경제’를 ‘갱제’로 ‘관광’을 ‘강간’으로 발음하는 바람에 일어난 웃지 못할 해프닝이었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나도 몇 가지 발음은 여전히 잘 안 된다. ‘ㄱ’과 ‘ㄲ’, ‘ㄷ’과 ‘ㄸ’, ‘ㅓ’ 와 ‘ㅡ’, ‘ㅅ’과 ‘ㅆ’ 등을 분간하지 못한다. 그래서 ‘고추장’은 ‘꼬추장’이고 먹는 ‘밤’은 ‘빰’이며, ‘성공’은 언제나 ‘승공’이고 ‘쌀’은 죽으나 사
‘아기네들이 손을 꼽고 기다리던 사월팔일의 명절이 돌아왔다.··· 도미국에 배를 불리고 때때옷으로 파일빔한 도련님, 적은 아씨들이 딴 세상에 난듯하다.··· 견디는 집 아이들은 윤이 흐르는 색비단으로 내리 감았지만, 그렇지못한 바깥방 그네들까지 넝마를 빨아서라도 고웁게 물을 들여입고 동무끼리 손목을 이끌고 명일이 한 때라고 벙글벙글 돌아다닌다.’이 글은 1917년 5월29일 ‘매일신보’에 실린 기사로 당시 부처님오신날의 풍경을 설명한 것이다. 이 기사에서 필자의 눈을 사로잡은 두 단어가 있다. 하나는 ‘명절’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
국가중요무형문화재이자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연등회가 3년 만에 재개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2019년 이후 중단됐던 연등행렬을 비롯해 서울 조계사와 우정국로, 인사동 일대에서도 전통문화마당이 펼쳐졌다. 불자로서는 손꼽아 기다려 온 연등축제다. 지난해에 이어 이번에도 무산되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였지만 다행스럽게도 ‘코로나19 거리두기’가 해제됐다. 전 국민이 정부의 방역 정책에 힘을 싣고 방역 수칙을 철저하게 지킨 결과다.불자들과 시민, 외국인이 함께 어우러지며 자비 넘치는 세상, 세계평화를 소망했다. 조계사 앞
20년 전 나는 환경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그렇다고 어떤 행동을 취하진 않았다. ‘지구환경’이라는 거대한 일은 당장 나의 일이라기보다 누군가가 대신하는 사회운동쯤으로 여겼다. 다급하지 않았고 취사선택을 해도 되는 일 중에 하나였다. 지율 스님이 안동댐 지류인 내성천에서 환경운동을 할 때였다. 솔직히 나는 환경운동을 하는 스님이 궁금하기도 했고, 그냥 있기도 염치가 없어 방문한 적이 있다. 강가에서 사계절을 비닐 움막 하나로 추위와 더위, 해충, 그리고 반대하는 사람들의 협박 속에서도 굳건한 스님의 모습에 참 미안하기도 했고, 꼭 저
서열과 학번을 강조하는 우리나라에서 헷갈리는 문화가 하나 있다. 나이, 띠 등이 혼합된 서열 매기기다. 이는 단일민족 국가의 보편적 특징이기도 하며, 해방 후 군사문화의 병폐이기도 하지만 문화적 특수성을 담은 부분도 적지 않다. 일례로 필자는 음력으로 1971년 12월생이다. 돼지띠이면서, 1990년에 대학에 입학했다. 그런데 양력으로는 1월생이 된다. 그렇다고 쥐띠는 아니다. 12지신으로 구분하는 띠는 음력으로 계산하는 까닭이다. 양력이 보편화 된 요즘 새해 1월1일을 호랑이띠 첫 출생이니 하는 등의 언론도 있지만, 이는 동양철학
북악산 법흥사터 연화문 초석을 깔고 앉아 인증사진을 찍는 탐방객이 급증했다고 한다. 종교 성역에 대한 작은 배려심만 가져도 이러한 행동은 서슴지 않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절터의 훼손을 우려한 문화재청이 법흥사터 출입을 통제했다고 한다. 법흥사터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속출하고 있다. 문화재청이 세운 안내판에는 ‘이곳은 신라 진평왕 때 나옹 스님이 창건한 법흥사라고 전해지던 곳으로, 조선 세조가 호랑이를 사냥한 연굴사 터로도 추정된다. 또 절터 주변에서 15세기 상감분청사기 조각들이 발견돼 조선 전기부터 건물이 있었음을 추정하고 있다
4월은 만물이 겨울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날이다. 개나리, 진달래에 이어 목련과 벚꽃이 화려함을 더하고, 메말랐던 가지에선 연초록 잎이 앞다퉈 솟아난다. 신기할 뿐이다. 그러나 딱 100년 전 토머스 엘리엇은 그 유명한 ‘황무지’에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라고 읊었다. 인류의 지옥문이 열린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문명 파탄의 원인을 욕망에서 찾는다. 자본, 과학, 국가가 한패가 되어 지구를 황폐화하고, 절망의 비가 대지를 적시던 때다. 결국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