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해결되는 과정에서 희한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밑바닥까지 떨어졌던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50%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반등된 것이다. 이 사태를 보면서 정말 문제가 심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북 갈등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우리는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근본적인 불안상황에 놓여 있으며, 정신적으로도 결코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통감했다.이런 이야기를 하면 통칭 ‘좌빨’로 몰릴 위험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어느 쪽 편을 들고
내가 참여하고 있는 작은 인문공동체가 있다. 책상 위의 인문학을 이웃과 사회와 나누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이 모임은 매년 방학 기간에는 지역에 가서 그곳 시민들과 함께 시민인문학교를 연다. 올여름에 찾아간 곳은 한반도 최남단 땅끝마을 해남·강진이었다.해남·강진이 어떤 곳이던가. 어떤 유명한 여행기의 저자는 이곳을 ‘남도답사 일번지’라고 했지만, 옛날 관의 입장에서 보면 이 동네는 도성인 한양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곳, 그러므로 조선의 변방이었으며 유배지였다. 그런데 ‘남도답사 일번지’는 역설적으로 그런 이유로 가능하게 됐다. 한
장마철이 지난 후 찜통더위로 견디기 힘든 여름이 지속되고 있다. 낮의 더위는 그럭저럭 견딜 수 있다 해도 밤의 열대야는 정말로 힘들다. 온실가스 방출에 의한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우리나라가 사계절 뚜렷한 온대기후에서 점차 아열대기후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는 12월 파리에서 ‘제 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열리는데 2020년 종료되는 ‘교토 의정서’를 대체할 새로운 기후변화 대응체제를 마련할 예정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196개 모든 회원국이 2020년 이후의 온실가스감축안(INDC)을 9월까지 제출하기로
언론에서 진실은 생명이다. 그럼에도 무엇이 진실인지는 쉽지 않다. 오랜 논란 끝에 미국 언론학계에서 내린 결론이 있다. ‘진실은 과정’이라는 명제가 그것이다. 언론이 다루는 사안은 이해관계가 얽혔거니와 당사자들 개개인의 언술이 언제나 정직하다고 가정할 수도 없다. 따라서 진실은 단숨에 드러나지 않는다. 진실을 과정으로 정의한 언론학에서 가장 중요한 미덕은 그래서 ‘수정 가능성’이다. 언론인이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관계 당사자들을 폭넓게 취재하고 자신의 판단을 수정하는 데 열려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진실은 단편적 사실의 취재가
“나를 위한 헤어 스타일, 나라를 위한 헤어스타일. 나를 위한 저금, 나라를 위한 저금~”공익광고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FM 음악방송이었기에 화면이 없어 ‘나라를 위한 헤어스타일’이란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 TV를 보면서 나라를 위한 헤어스타일이란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게 그것이 좀처럼 이해되지는 않았다. 군인의 헤어스타일이란 것이 나라를 위한 것인가?여기에서 ‘위한’ 이라는 말이 정말 이상하게 쓰이고 있었다. 나의 헤어스타일이란 말은 자연스럽지만, 나를 위한
최근에 집중적인 여론 비판의 대상이 된 두 가지 사안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얘기하려는 것은 그 대상들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이때 나타난 ‘여론 현상’에 관한 것이다. 이 둘을 묶어 이야기 하는 것은 이 여론 현상에서 지금 한국사회 상황과 관련한 공통된 특질을 읽었기 때문이다.우선 소위 ‘잔혹 동시’ 관련한 여론 현상이다. 이 사건에 관해 SNS(인터넷 사회관계망 서비스) 여론의 절대다수는 ‘잔혹 동시’를 쓴 초등학생 아이를 ‘미친 애’ ‘끔찍한 아이’라는 식으로 몰아붙였다. 아이의 ‘시’는 아예 ‘시’로 분류될 수 없는 ‘이상한
지난 5월 평택성모병원에서 시작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국내 최고 의료기관의 하나인 삼성의료원에서 확대 재생산되어 전국으로 파급되었다. 이 사태로 우리가 입은 피해는 엄청나다. 35명의 귀중한 인명을 잃었고 관광업계와 서비스업계 등의 불황에 따른 경제적 손실은 수 조원에 이른다. 정부는 이를 보전하기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뿐만 아니라 열악한 국내 의료 환경이 노출되어 세계적 수준이라고 자부하던 우리나라 의료기술의 대외적 이미지도 곤두박질했다.이 엄청난 재난을 당하게 된 데에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그리스를 보라. 한국 사회에서 정치가 경제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신자유주의들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 살천스레 부르대온 말이다. 그들은 그리스가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 정치로 ‘퍼주기 복지’를 했기에 나라가 거덜날 위기에 몰렸다고 주장해왔다. 2010년대부터 ‘복지’가 한국 사회에서 주요 의제로 설정되어 왔을 때, 그 반대론자들이 즐겨 인용했던 나라도 그리스였다.가랑비에 옷 젖는다 했던가. 그리스 경제 위기가 다시 쟁점이 되고 있는 오늘, 적잖은 사람들이 그 말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아니다. 시각 차이는 있게 마련이므로,
메르스 사태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자칫 장기화될 경우 한국적 풍토병으로 주저 앉는 게 아니냐는 의학적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여러 원인 진단이 있지만, ‘정부’가 이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점에는 별 이견이 없는 듯하다. ‘인문학’이라기보다는 ‘인문정신’이라는 차원을 강조하는 활동을 많이 하다 보니 한 언론사로부터 좀 특이한 전화인터뷰를 받게 되었다. 이 사태에서 정부의 대응 문제를 ‘인문정신’의 차원에서 얘기해 줄 수 있겠냐는 거다. 그때 충분히 전달하지 못했던 얘기를 이 지면을 통해 전해 보고자 한다.누구나 지
최근 조계종의 재정에 관한 두 사건이 중앙 일간지의 조명을 받았다. 첫째는 조계종이 ‘사찰재정 공개 의무화’를 천명한 것이다. 지난 4월27일 자승 총무원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종단이 갖고 있는 문제를 그대로 드러내고 근원적으로 치유해 삶과 수행, 생활의 공동체를 회복하려 한다.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의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사찰재정 투명화를 추진키로 했다”고 말했다.조계종은 우선 조계사, 봉은사 등 직영사찰 4개와 도선사, 연주암 등 특별분담금사찰 7개, 불국사, 해인사 등 예산 30억원 이상인 4등급 사찰 50여 곳에 대
재난은 언제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가능하면 엉뚱한 재난에 휘말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재난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비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재난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우리 인간사가 그렇듯 피할 수 없는 재난이 있기 마련이기에 ‘고해’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오죽하면 장자는 “사람의 삶이란 태양을 쏘아 떨어뜨렸던 명궁인 예(羿)가 활을 겨누는 앞을 오락가락 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을까? 화살에 안 맞는 것이 이상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환란과 재앙을 당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것이다.우
주관적 부르대기가 지천일 때 통계는 사뭇 신선하다. 객관적 수치로 실상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통계 또한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지만, 기초적 사실 관계에 국한된 통계는 언어의 누더기를 벗기고 현실을 증언해준다.얼마 전 통계청이 발표한 ‘4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 실업률이 월별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9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면에 2014년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는 1970년 이후 역대 최저다. 젊은 세대가 결혼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몇몇 언론은 오늘의 20대가 ‘달관 세대’임이 입증됐다고 무람없이 보도
초등학생이 쓴 ‘학원가기 싫은 날’이라는 시가 ‘잔혹동시’라는 이름으로 인터넷 검색어 상위에 계속 오르내리고 있다. ‘학원가기 싫은 날’의 아이 심리가 ‘엄마를 죽이고 싶다’는 말로 표현된 것이 세상에 큰 충격을 준 모양이다. 시는 아이가 썼으나, 시를 둘러싼 논란은 ‘어른들’에 의해 촉발되고 파문을 확산시키는 이들도 어른들이다. 이 반응은 대체로 아이의 ‘정신 상태’, ‘언어폭력’ 수준에 대한 어른들의 격렬한 우려로 모아진다.그런데 세간의 반응에만 집중한다면 내게는 놀라운 점이 없지 않다. 건강한 사회였다면 이런 우려에 앞서 아이
나는 편도나무에게 말했노라.편도나무야 나에게 신에 대해 이야기해다오.편도나무야 나에게 신에 대해 이야기해다오.그러자 편도나무가 꽃을 활짝 피웠다.‘ 편도나무에게 ’- 니코스 카잔차키스우정사업본부는 4월 ‘과학의 달’을 맞아 한국을 빛낸 과학자들을 소재로 한 우표 3종, 104만4000장을 발행했다. 우리나라에서 과학자가 우표에 실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나라 첫 과학자 우표에 실린 과학자는 국립과천과학관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31명의 과학자 중 고 이휘소(1935~1977), 석주명(1908~1950), 한만춘(
성완종 파문으로 정치계를 비롯한 우리 사회 전반의 건전성과 정직성이 근본적으로 의심받고 있다. 끓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국민 전체가 분노, 좌절하고 있다.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 한편으로는 과연 이러한 일이 지금 뿐이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고, 이러한 사태도 또 일과성으로 지나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생기기도 한다.요즘 우리 사회를 경악하게 하는 사건들이 얼마나 자주 일어났는가? 그리고 그 사건들은 우리에게 정말 충분한 교훈을 주고, 우리는 그 교훈을 철저한 반성과 개선을 이룩했는가? 우리 국민들은 과연 이러한 물음에 얼마
“우리 정치 지도자들은 고통분담을 요구하면서도 저와 제 부자 친구들은 늘 제외해줬다. 저희들은 의회의 사랑을 충분히 받았다. 이제 정부가 고통분담을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누구의 말일까, 새삼 묻고 싶은 오늘이다. 두루 알다시피 ‘부자 증세’를 요구하는 들머리 발언은 미국의 세계적 부호 워런 버핏의 말이다. 그는 과거 조지 부시 정부가 부자 감세를 추진할 때도 반대했다.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자는 버핏의 공개적 주장에 미국 국민의 95%가 찬성했고, 대선 과정에서 부자증세를 공약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환영했다. 실제로
다시, 어느새, 4월이다. 현대시의 한 장을 열었으며, 매우 난해하지만, 한국에서는 상투적이고 손쉬운 방식으로 일반에게 알려지고 소비되는 엘리엇의 한 시를 적는다.‘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기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메마른 뿌리를 흔든다/ 겨울은 따뜻했다/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작은 목숨을 마른 뿌리로 부지시키면서’(T.S 엘리엇 ‘황무지’ 중에서)‘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란 이 유명한 시구는 이 단락의 결론이다. 이 결론은 그 뒤를 따르는 몇 개의 시구들이 지시하는 정황에 따라 중층의
필자는 기라성 같은 프로야구 스타들을 배출한 지방고 출신이다. 대학에 있을 때 학생들과 조크를 즐겼었다. 코리안 시리즈가 한창 달아오를 때면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선동열이가 어느 고 출신인가?” “K고입니다” “이종범은?” “K고이죠”. “그럼 나는 어느 고 출신인가?” 학생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또 전공이 지구물리학이라 가끔 북아메리카대륙을 흑판에 그릴 때가 있었다. 미국 중동부에 한 지점에 작은 원을 그리고 그 밑에 피츠버그라고 쓴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질문한다. “내가 유학한 곳은 어디인가?” 학생들이
“술 마시지 말라”는 계가 확고히 서지 못함으로써 계 전체의 권위가 떨어진다. 지금 여기의 삶에서 이 계를 지키기는 너무도 어렵다는 것을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너무 잘 알기에, 계를 받고도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없다. 하나의 계가 흐리멍텅해지면 나머지 계도 마찬가지가 되고, “술 마시되 취하지 말라” “술 팔지 말라” 등등 어떤 변화를 꾀해 보려는 것도 권위가 수반되지 않아 결국 계율 전체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만다.계율의 권위가 서지 않는다는 것은 종교가 현실적인 삶을 건강하게 이끌어가는 원리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 된
출가. 가지 않은 길이다.삭발염의에 맑은 스님을 만날 때마다 그 길에 미련은 무장 커진다. 고백하거니와 출가를 진지하게 고심할 때가 있었다. 송광사로 구산 방장스님을 아무런 예고도 없이 한밤중에 불쑥 찾아갔던 기억도 새롭다. 대학 새내기인 내게 구산 스님은 자정이 다가옴에도 마다하지 않고 시간을 내주셨다. 당돌한 물음에 벼락같은 외마디를 지르거나 방망이로 치는 따위 없이 다사롭게 응대하셨다. 방장실을 나설 때 받아온 ‘법문’은 세 글자, ‘동사섭’이었다. 그 뜻을 늘 헤아려보라는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다.동사섭. 사섭의 하나로, 고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