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눈부시고 신록은 싱그러운 5월이다. 불자들에게 5월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은 부처님께서 오신 달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오신날이면 사찰에서 아기부처님을 목욕시키는 관불의식을 진행하고 모든 봉축행사는 아기부처님의 탄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룸비니 동산의 탄생이 부처님께서 처음 오신 순간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의례들이다. 하지만 이는 한 편으로 보면 맞지만 또 한 편으로 보면 틀린 것이다.부처님의 일생을 그린 팔상도에 따르면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시는 과정은 룸비니 동산의 탄생이 아니라 도솔천에서 사바세계로 내려오시는 장면으로부터
요즘 아침마다 광화문 광장에 나간다. 겨우 커피 한잔 들고 진실규명을 가로 막는 특별법 시행령 철폐를 주장하며 농성중인 이석태 세월호 특별 조사위원장을 보러간다. 광화문에 가면 4.16참사 이후 가장 많은 인원인 250여명의 유가족들이 상복을 입고 삭발한 모습으로 1박2일 걸어서 광화문에 왔던 지난 4월 초의 슬픈 모습이 겹쳐진다. 유족들이 영정을 들고 광화문 광장에 모인 뒤편의 정부 종합청사에 걸린 ‘국민행복,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플래카드는 바람에 반쯤 찢어져 너덜거리고 있었다.세월호 가족들을 지원하기 위한 배보상이 확정되었지
‘세계일화(世界一花)’라는 말은 성당(盛唐)시인 왕유(王維)가 쓴 ‘육조혜능선사비명’의 ‘세계일화 조종육엽(世界一花 祖宗六葉)’이라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세계는 하나의 꽃이며 조사의 종풍은 여섯 잎이라는 의미로 초조달마에서 육조혜능까지 내려온 중국 선종(禪宗)의 전등(傳燈)을 절묘하게 표현한 말이다. 근세에 이 세계일화라는 말을 세상에 널리 알린 장본인은 만공선사였다. 선사는 무학대사가 달을 보고 견성한 간월암을 중창하여 조국독립을 발원하며 천일기도를 올렸다. 훗날 덕숭총림 방장이 된 스님의 마지막 제자 원담선사가 천일기도를 회향한
온갖 꽃들이 지천으로 피기 시작하는 아름다운 시간, 세월호 엄마들은 소복을 입고 삭발을 했다. 그리고 아직 시신도 건지지 못한 자식의 영정사진을 품에 안고는 1박2일간 안산에서 광화문까지 눈물의 행진을 했다. 아이들이 죽은 이유를 밝힐 수 없게 하는 것과 싸우고 다시 한 번 진상규명을 촉구하기 위해서다.세상 어디에 이보다 더 슬픈 행진이 있을까. 아이를 잃은 여인이 삭발을 하고 추모의 행진을 하는 예는 일찍이 없었다.생떼 같은 자식이 하루 아침에 바닷물 속에 침몰되어 나올 수 없게 된 이 비참하고 끔찍한 참사(慘事)를 겪은 어미들이
봄이 왔음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것 중에 하나가 산수유다. 아직은 쌀쌀한 3월이면 산수유는 입술을 앙다물고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겨우내 갈색이던 숲에서 피어나는 노란 산수유는 보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매섭던 바람도 산수유가 피고나면 하루하루 훈훈한 봄바람으로 변한다. 그래서일까 ‘삼국유사’에는 산수유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신라 48대 경문왕이 임금으로 즉위하자 갑자기 귀가 당나귀 귀처럼 길어졌다.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지만 두건을 만드는 장인(匠人)만은 알고 있었다. 그는 평생 비밀을 잘 지키다가 죽을 때가
세월호 참사 1년이 다 돼 가는데 실종자 아홉 사람은 여전히 바다 속에 있다. 세월호 선체 인양은 진상규명을 위해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실종자 아홉 사람이다. 두고 온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도, 떠나간 가족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도 원초적인 본능이다. 이 본능이 좌절될 때, 상처입은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를 발굴하는 미군들의 부대 휘장엔 “그들이 집으로 돌아 올 때까지”라고 써있다. 그들은 최후의 한 구까지 최선을 다해서 찾겠다고 다짐한다. 전사한 군인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
조선 중기 조광조의 스승이었던 한훤당 김굉필 선생은 20대 10년 동안 ‘소학(小學)’ 1권만을 집중적으로 공부하여 별명이 ‘소학동자’였다고 한다. 8세의 어린이들이 공부를 시작하면서 배우는 내용을 이처럼 지독하게 공부하였다는 것은 기본에 충실하고 근본을 바로 잡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몸소 실천해 보여주었던 좋은 예가 된다 하겠다. 탄허 스님은 사미과 초학자들이 배우는 ‘치문(緇門)’을 번역하고 나서 쓴 서문에서 이 일화를 소개하면서 초심자 때의 발심을 영원히 잊지 말라고 간절히 당부하고 있다.최근 탄허 스님의 법문과 강연 자료
길 위의 인문학이 시대의 한 조류가 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길 위로 나와서 함께 무언가를 듣고 찾아다닌다. 무슨 무슨 아카데미, 학교, 답사회, 여행 등등. 봄이 되니 더 많은 프로그램들이 쏟아진다.먹고 사는 문제 외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우리사회가 어느 날 갑자기 달라진 듯하다. 물론 아직도 대중문화는 무얼 먹을까, 어디에 맛있는 것이 있을까 하는 욕망을 채워주기 더 바쁘지만, 한편에서는 어디에서 새로운 것을 배울까, 무엇을 느낄까 하는 대중의 욕구도 커지고 있어, 이에 부응하여 이와 같은 인문학 대중화가 하나의 문화로서
지난 달 말 ‘종교를 걱정하는 불자와 그리스도인의 대화’라는 포럼에 참석했다. 불교, 천주교, 개신교를 대표하는 학자가 한국의 종교가 안고 있는 문제를 입체적으로 점검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첫째 마당은 포럼의 대표인 조성택 고려대 교수님이 열었다. 논자는 한국불교가 직면하고 있는 난맥상의 중심에는 깨달음지상주의가 있다고 했다. ‘깨달음은 사람이 사는 일에 답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한국불교는 깨달음지상주의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불교의 사회적 실천이 약화되고, 은둔적 도인불교가 되었다는 분석이다. 종교에 대한 진지
“스스로 악을 행하면 스스로 더러워지고, 스스로 선을 행하면 스스로 깨끗해진다“ ‘법구경’“잊지 않겠습니다.” 햇빛 찬란한 4월이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된다. 많은 시민들이 세월호 희생자들을 가슴에 담고 고통과 아픔을 함께 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일베 회원들이 세월호 희생자들을 ‘오뎅’으로 비하, 유족들에게 상처를 입혔다. 진상 규명을 위해 만든 세월호 특위는 ‘세금도둑’이라는 억지에 발목 잡혀 한걸음도 나가지 못했다.트라우마의 ‘기념일 반응(Anniversary reaction)’이란 게 있다. 미국의 9·11이나
지금 한국불교계가 다소 시끄럽다. 동국대 총장 선출문제, 해인사 방장 추대문제, 비구니계의 내홍, 태고종 사태 등으로 한국불교 위기론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사부대중들은 걱정과 우려 속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고 교단 안팎에서는 이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허나 이 일련의 일들도 호사가들의 나름 심도 있는 분석들과는 달리 사실상 그다지 호들갑 떨 차원의 문제들은 아니다. 한국불교의 역사 전체를 한번 돌이켜보면 위기 아니었던 적이 어디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이 정도의 위기에 한국불교가 흔들린다면 우리 불교는 벌써 예전에 그 종적
건강정보를 전해주는 프로그램에서 최근 확연히 달라진 점이 있다. 전문가의 의학적인 설명이 중심을 이루었던 것에서 체험자의 사례소개가 주류로 변화한 것이다. ‘어떻게 해서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나’ 하는 생생한 이야기가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일상 속에서 간편하게 실천할 수 있는 각자의 비법들 또한 폭발적으로 소개되고 있다.가히 정보화시대의 질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할 만 하다. 엘리트층이 정보를 통제할 때는 보편화할 수 없는 개별사례가 꺼려졌던 것에 반해, 수용자 대중들이 직접 연결되는 시스템에서는 다양한 경험과 구체적인 내용이
얼마 전 한 연구모임에서 비교적 역사가 짧은 교단에 속하는 원불교에 대한 발표를 들었다. 원불교는 신도 수가 인구대비 0.5%밖에 되지 않는 작은 교단이다. 하지만 원불교는 종립학교, 대학, 병원, 방송, 군종, 사회봉사 등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종교가 하는 사업을 대부분 해내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4대 종교라는 이름으로 기성 교단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사회참여 활동까지 펼치고 있다.규모도 작고 역사도 짧은 종단에서 어떻게 그렇게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뜻밖이었다. 발표를 맡은 교무님은 외부로부터 받게
‘쇠에서 나온 녹이/ 쇠를 먹어 들어가듯/ 자신이 저지른 악업이/ 자신을 나쁜 세계로 끌고 간다.’(법구경)지난 1월7일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테러가 일어났다. 테러범들은 프랑스 국적 이민 2세 청년으로, ‘샤를리’ 만평이 이슬람교를 모독했다며 테러를 자행했다. 이슬람에서는 성자 무함마드의 형상을 그리거나 조각하는 것조차 신성모독으로 여긴다. 무함마드가 누드화 같은 성적인 내용으로 풍자된 사실에 대다수 무슬림들은 마치 영적인 살인을 당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그런 모욕감을 느낀 일부 무슬림 청년이 이 같은 야만적인 테러를 벌인
나옹선사의 토굴가에는 ‘무슨 일이 세간에 가장 귀한고[最貴]?’라는 구절이 있다. 한평생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운데 과연 어떤 일이 가장 귀할까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출가 전 속가 선친의 서재에는 ‘독서최귀(讀書最貴)’라는 편액이 걸려있었다. 독서가 세상에서 가장 귀하다는 뜻으로 평생 학문을 가장 귀하게 여기며 살다간 선비의 좌우명다운 문구라 할만하다.출가한 뒤 앞의 의문에 대한 답의 의미로 ‘연공최귀(連功最貴)’라는 말을 만들어 평생 좌우명으로 삼고 실천하면서 인연되는 사람들에게 권하게 되었다. 뜻인즉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행
‘나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떠들썩한 사람들 속을 빠져 나오면 혼자 사는 집으로 각각 돌아가 혼자 밥을 먹고 혼자 TV를 보고 혼자 잠을 간다. 젊은 세대는 물론이고 40~50대 독신자, 그리고 돌싱으로 불리는 이혼 남녀, 자녀교육 때문에 기러기가 된 중년남성, 그리고 독거노인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혼자 사는 1인 가구가 우리 사회에 급증하게 된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이들 1인 가구 수의 비율은 2000년에 15.5%였던 것이 2012년에는 25%가 넘었으며, 그 비율은 향후 지속적으로 높아질 것이라 한다.
무상신속이라고 했던가? 새해를 맞이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주가 후딱 흘러갔다. 낙하하는 물체에 가속도가 붙는 것처럼 사람도 나이가 들수록 시간에 가속도가 붙는다. 시간이 빠르게 느껴질수록 새해가 되면 더 열심히 살겠다고 이런 저런 계획을 세우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무리 각오를 다져도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아지면 계획을 세우는 것만으로 불안이 가시지는 않는다. 삶을 돌아보면 남들에 비해서 내가 이룩한 것은 부족하기 이를 데 없기 때문이다.게다가 30대에 해야 할 일, 40대에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50대에 당장
“분노하는 뭇 삶들은 분노로 인해 나쁜 곳으로 간다. 그 분노를 올바로 알아서 통찰하는 자는 끊어버린다.”(이티부타카)우리 사회도 ‘증오범죄’가 일반화되기 시작한 걸까? 얼마 전 재미동포 신은미씨와 황선씨의 토크콘서트가 열리던 전북 익산의 한 성당에서 사제폭탄이 터졌다. 2명이 화상을 입었고 청중 200여명이 긴급 대피를 했다고 한다. 범인은 10대 고교생 오모군이었다.“북한이 지상낙원이라고 했습니까?”그 고교생은 신은미씨가 하지도 않은 말을 물은 뒤, 폭탄을 던졌다. ‘증오범죄’라 할 만하다. ‘증오범죄’란 범죄의 동기가 인종·종
조계종 제11대와 12대 종정을 지내셨고 해인사 방장으로 계시던 도림 법전(道林 法傳) 대종사가 입적하셨다. 평생 108배와 참선정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관해 오셨던 종단의 큰 어른 한 분을 또 이렇게 떠나보내게 되다니 갑자기 싸늘해진 겨울날씨가 더욱 시리게만 느껴진다.성철, 청담, 향곡을 비롯한 근현대 한국불교의 기라성과도 같은 대선사들이 함께 동참했던 봉암사 결사의 막내스님이 바로 법전 스님이셨다. 당시 나이 24세. 바로 위의 선배스님이 제10대 종정을 지내셨던 혜암 성관(慧菴 性觀) 대종사였으니 법전과 혜암, 이 두 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