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세 한국불교의 중흥조로 첫 손가락에 꼽히는 분이 바로 성우 경허(惺牛 鏡虛) 선사. 만일 경허 큰스님이 없었다면 우리 나라 근세불교는 그야말로 얼마나 적막강산이었을까 하고 걱정할 만큼, 경허 큰스님은 꺼져가던 우리불교의 불씨를 되살려 횃불로 활활 타오르게 해주신 큰 스승이었다. 그래서 어떤 이는 경허 큰스님을 ‘한국의 달마대사’라 칭송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제2의 원효대사’로 추앙하기도 한다. 만공(滿空), 혜월(慧月), 침운(枕雲), 수월(水月), 한암(漢岩) 등 실로 기라성 같은 거봉들을 문하에서 배출하여 한국불교를 화려하게 중흥시킨 경허 큰스님. 스님은 1849년 헌종 15년 8월 24일 전북 전주 자동리에서 여산 송씨(宋氏) 두옥(斗玉)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선방서 정진하며 불교 더 깊이 이해 경전강독-선어록 등도 함께 공부 나는 어린 나이로 할머니께서 돌아가실 때 아버님과 함께 임종을 지켜봤다. 할머니께서는 눈을 감으시고 조용히 주무시는 모습으로 아버님의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들으시면서 극락세계로 가셨다. 나는 이 때까지만 해도 죽음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따라서 나 자신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으로 착각했다. 그 뒤 죽음이란 무엇이며 죽은 후는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서 늘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와서는 불교가 이 문제해결을 위한 최상의 종교라는 것을 알았지만 어릴 때 어머니 손을 잡고 절에 간 일이 있으나 죽음이란 의문을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훗날 대학에 들어가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전공과목 시간에 신라의 향
이제는 낯설지 않은 위파사나라는 수행법이 우리에게 알려진지 15년 남짓 되었다. 위파사나 수행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한 방법으로 우리 시대에 함께 살았던 스승들의 삶과 가르침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19세기 후반까지 미얀마에서 수행은 일부의 수행승들에게 국한된 일이었다. 하지만 숲 속에서 수행에 전념하는 수행승에게 제한되어 있었던 위파사나 수행 전통은 민돈왕(1814~1878)에 의해 왕궁에서 실천되었다. 1910년대를 지나면서 출가자는 물론 재가자에게까지 위파사나 수행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일반 승려는 물론 재가자들에게까지 위파사나 수행이 보급된 것은 미얀마의 초대 수상 우 누의 역할이 컸다. 스님은 교학에 정통해야 불교의 진정하 가치에 고마움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수행의미-단계 자상하게 설명 “지극한 연민이 곧 대보리심” 불교를 수행의 종교라고 한다. 수행은 불교를 다른 종교와 구분 짓게 하는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정작 불교를 믿고 실천하겠다며 귀의한 불자들조차 수행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 현실이다. 분명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경전을 수지하고, 부처님이 행했던 좌선, 명상 등을 좇고 있는데도 정작 그 근본은 모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수행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다보니 자연 온갖 수행법이 난무한다. 한국불교의 대표 수행법으로 인정되는 참선 수행법은 보통의 불자들에게는 여전히 넘을 수 없는 큰 벽으로 남아 있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선지식들의 10년 또는 50년을 눕지 않았다는 놀라운 수행
300 한국불자 감동속 ‘입보리행론’ 강설 “이타행 실천할 때 보리심 얻는다” 강조 부처님이 수천의 제자를 위해 펼친 법석의 장엄함이 이와 같았을까. 여수 석천사(주지 진옥 스님)가 주관하고 『법보신문』이 협찬한 ‘달라이라마의 한국 대중을 위한 첫 법문’이 한국과 세계 30여 개 국의 불자 3500여명이 자리를 함께 한 가운데 지난해 12월 29일부터 31일까지 인도 북부의 오지인 다람살라의 남걀사원에서 장엄하게 봉행됐다. 세계 가톨릭의 총본부인 로마의 교황청은 물론 세계의 60여 개 국을 자유롭게 왕래하면서도 중국의 강압으로 유독 한국만은 올 수 없는 달라이라마는 한국인 불자들이 청해 성사된 이번 법석에서 한국에 갈 수 없는 서운함을 훌훌 털어내듯 세계 최고의 현자다운 가르침을 더
“속리산으로 가 길상초(吉祥草)가 많이 나 있는 곳을 찾아서 그곳에 절을 세우라”는 진표 스님의 당부를 그의 제자 영심 등이 그대로 따라 절을 지었고 절의 이름도 길상사로 정했다는 기록은 속리산 법주사의 창건 연기이다. 두루 알려진 것처럼 법주사는 금산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미륵신앙을 대표하는 으뜸성지이다. 흔적만 남은 성소가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미륵신앙의 중심지로 당당히 그 위상을 과시하고 있는 곳이니, 법주사를 빼놓고 우리나라 미륵신앙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법주사가 미륵성지임을 알려주는 으뜸 표식은 ‘마애여래의상’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상이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마애불로 부조(浮彫)로 높이가 5미터에 이르며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 제216호로 지정됐다. 두 다리를
올바른 질문이 바른 답변 유도 제대로 묻고 사는 한 해 됐으면 어떤 화가가, 그림을 그려 대중 앞에 선보이는 화가들의 작업을 두고, ‘옷을 홀딱 벗은 채 백주 대낮에 거리를 달리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표현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림 대신 글로써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기자들의 본체는, 인터뷰 기사에서 가장 극명하게 읽힌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거나 약간의 살을 붙여가며 작성하는 해설성 기사는 옷으로 치면 때와 장소를 고려한 정장을 입은 것과 마찬가지로 본래 모습 가운데에 단점은 적당히 가리고 장점은 그런대로 잘 드러낸 경우와 비슷하지만, 어떤 한 사람을 콕 집어 낱낱이 해부한 후 작성해야 하는 인터뷰 기사 만큼은 아무리 노련한 선수라도 자신의 살림살이가 날것으로 드러나기 십상이다
“오늘 다람살라의 날씨가 유달리 춥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의 스님들께서 한국의 추위를 고스란히 이 곳으로 몰고 온 것 같습니다.” 달라이라마는 법회 중 농담을 잘 해 청중들이 보다 법문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부처님의 11대 제자가 ‘유머 제일’이었다면 달라이라마는 그 맥을 이었을 게 분명하다. 한국 스님들이 추위를 몰고 왔다며 법상에서 코를 닦고 있는 달라이라마. 한국 불자를 위한 대중 법회 첫 날인 29일 추위에 떨고 있는 대중들을 향해 달라이라마는 ‘추위’를 주제로 말문을 열며 다소 긴장한 한국의 불자들을 편안하게 했다. 내용인 즉 “갑자기 다람살라의 날씨가 추워진 걸 보면 아마도 이 추위를 한국의 스님들이 가져왔으며 추위 속에서 한국인 스님들의 머리가 유난히 빛이 난다”는 것이었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달라이라마 존자님의 말씀을 제대로 통역하지 못한 것 같아요. 아마 한 3년 정도 더 통역을 연습하고 티베트 불교를 공부한다면 성하의 가르침을 보다 완벽하게 한국의 불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달라이라마의 한국 불자를 위한 첫 대중 법회의 통역을 담당했던 박은정(30·법명 뗀진 된메 ; ‘법을 밝히는 등불’이란 뜻) 씨의 안타까움이 담긴 소감이다. 남걀사원의 강원인 체니 롭다의 사범학교에 해당되는 ‘사라학교’에서 만 3년째 티베트 불교를 공부해 온 그녀는 “준비가 충분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성하의 첫 법문을 무사히 마쳐 다행”이라고 말하면서 “그 동안 우리 한국 불교는 같은 대승 불교이면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은 ‘불교 경전’이 초기 결집 때의 내용을 가장 충실하게 간직
“당초 한국인 불자들을 위한 법문이 한 번으로 끝나는 줄 알았는데 한국의 불자들이 다시 법을 청하니 당연히 법을 설해야겠지요. 올핸 5일간 공부합시다.” 지난해 12월 3일간 한국의 불자들을 위해 첫 대중 법문을 한 달라이라마가 올 10월경 다시 한 번 한국의 불자들을 위한 대중 법석의 법상에 오른다. 달라이라마는 12월 29일 오전 한국 대중 법문단의 대표자를 만난 자리에서 “한 번의 법회로는『입보리행론』을 마칠 수 없으니 2004년에 다시 법문을 해 달라”는 대표단의 청을 쾌히 받아 들였다. 이에 따라 달라이라마의 한국인을 위한 대중 법문은『입보리행론』을 마칠 때까지 해마다 정기적으로 계속될 전망이다. 구체적인 일정이나 기간은 여수 석천사와 달라이라마 비서진이 추후 협의해 최종 결정하
법문 기간 내내 매일 오전 9시 시작돼 매일 오후 4시 하루의 법회 일정이 마무리되는 달라이라마의 한국 불자를 위한 대중 법석은 한국의 불자만을 위한 법석이 아니라 ‘세계의 불자를 위한 법석’이었다. 15년 째 달라이라마의 공식 영어 통역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롭상 조르덴 스님이 성하의 법문을 동시 통역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대만 불자들의 지난해 8월 대중 법회와 마찬가지로 한국인을 위한 대중 법석에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비롯한 이탈리아, 이스라엘, 스페인, 미국, 폴란드, 브라질, 일본, 대만, 호주 등 세계 30여개국의 불자 3500여명이 자리를 함께 해 ‘인종 시장’을 방불케 했다. 그렇다면 세계 각국의 불자들은 어떻게 성하의 법문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 해마다 적게는 2-3회
범국민 명상 운동을 기획하고 있는 강북삼성병원의 이시형 박사〈사진〉가 지난해 12월 29일부터 31일까지 열린 달라이라마의 한국 불자를 위한 첫 대중 법문에 동참해 성하를 친견했다. “당신의 존체를 불교와 명상, 선의 홍포를 위해 선뜻 실험의 대상으로 보시해 특히 성하를 존경한다”는 이 박사는 “직접 성하를 친견하고 나니 명성에 비해 그 성격이 대단히 소탈한 분이었고 명상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항상 명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티베트와 달라이라마께선 현재 중국의 압력으로 망명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법회에서 설법을 하시는 성하의 얼굴에선 ‘망명의 그늘’도, 또 그로 인한 긴장감도 도대체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국민 명상 운동을 펼치기 전 세계적인 명상 수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