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실상사의 가을은 아름다웠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세월이 더 흘러 다시 찾은 실상사는 여전히 아무런 꾸밈이 없었고 의연했다. 실상사 경내의 넓은 마당에선 ‘민회’가 열렸다. 2012생명평화대행진(대행진)이 주최한 자리였다. 대행진은 ‘개천절’ 바로 다음날 제주에서 출발했다. 개천절은 두루 알다시피 ‘하늘이 열린 날’이다. 대행진은 쌍용자동차 해고자, 제주강정마을 주민, 용산참사 유족들과 관련된 대책기구들이 각각 영문 앞 문자(쌍용의 S, 강정의K, 용산의 Y)를 따와 출범한 ‘SKY 공동행동’을 중심으로 기획됐다. 억울하고 쫓겨나며 고통 받는 사람들을 스카이(SKY) 곧 ‘하늘’로 섬기자는 ‘깃발’을 내걸었다. 대행진은 제주 강정마을을 원점으로 영남과 호남 곳곳에서 생존권 투쟁을 벌이고 있는
역사가란 까놓고 말하면 과거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필자 또한 역사가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언저리에서 다소 송구스럽게 생계를 꾀하고 있는 축이다. 그런데 과거를 통해 먹고 사는 부류가 또 있다. 노인세대들이다. 황혼을 맞은 이분들은 앞으로 살아갈 일보다는 지나간 날들이 많기에, 인생의 새로운 설계보다 과거의 삶을 갈무리하는 데 오히려 더 많은 신경을 쓰기 마련이다. 지나온 삶이 길었고 남은 삶이 짧다는 것은 앞으로 지어야 할 과보의 업보다 이미 쌓인 과보의 업이 더 많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기에 노년에 들면 자신의 과보를 헤아려 보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미래에 내가 쌓을 공덕보다 과거에 쌓은 공덕의 비중이 너무 크기에. 역사가가 과거를 캔다면 노인은 과거를 되새김질 한다고 하겠다. 그런데 과거
길거리를 지나다보면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는 사진이나 학대받은 아동, 또 아프리카 난민들의 처참한 모습의 사진을 접하곤 한다. 대부분 모금을 위한 전시다. 고통스런 사진을 보면 안타깝고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편치 않다. 인권이 무참히 짓밟힌 현장을 알게 되는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사진 속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가 공개된 장소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눈앞에 보여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이렇게 알려지는 것에 대해 동의했을까?’,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쳐 모아진 도움을 흔쾌하게 받아들일까?’하는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인권침해를 나타내는 현장의 사진이나 동영상이 반전이나 인권에 대한 의식을 고취시키는데 효과적이라 하더라도 무분별하게 게재되고 전시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인권침해가 나
추석 무렵 지인의 아파트를 방문했다. 오랜만에 차를 마시며 향기로운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저녁 공양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공양을 하려는데 아파트 경비실에서 보내는 안내 방송이 들렸다. ‘오늘 밤 7시부터 10분간 모든 아파트 단지의 실내 전등을 끄고 대신 촛불을 켜는 날이니 협조해달라’는 것이었다. 지인에게 그 연유를 물었더니 이곳에서는 매달 한 번씩 하는 행사라고 한다. 한 달에 한 번 눈부신 문명의 불빛을 잠시 쉬게 하고, 은은한 촛불 앞에서 가족이 함께하는 모습은 참 운치가 곁들여진 정겨운 시간이었다. 그날 나는 지인에게 한 가지 아이디어를 주었다. 마치 민방위 훈련 안내 방송처럼 하지 말고 다른 방식으로 했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명상 음악과 함께 여는 말씀을 낭송한다. “우리 마을의 좋은
“사방을 둘러봐도 사람이 없다” 한국불교의 중흥조로 추앙받는 경허 스님의 ‘오도가’ 첫 대목이자 마지막 말이다. ‘사고무인’(四顧無人), 문자 그대로다.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노니, 한 번 사람 몸 잃으면 만겁토록 다시 만나기 어렵나니, 하물며 허망한 목숨 아침에 붙어 있다고 한들 어찌 저녁을 기약할 수 있으리오”에는 자신의 깨달음을 전하고 싶은 강렬한 의지가 드러난다. 하지만 경허는 “저 사람도 같고 이 사람도 같네”라고 개탄한다. 경허의 고독, 그 깊이를 절감할 수 있다. 새삼 경허의 오도가를 꺼낸 까닭은 승단의 살풍경 때문이다. 보라. 국내 유일의 불교전문 평론지 ‘불교평론’이 폐간 당했다. 처음 ‘폐간’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마침내 재정적 어려움이 닥쳐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는 9월24일 추석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통해 5·16과 유신, 인혁당 사건 등에 대해 평가하고 사과 입장을 밝혔다. 그는 5·16과 유신 그리고 인혁당 사건에 대해 “헌법 가치를 훼손하고 대한민국 정치발전을 지연시킨 결과를 가져왔다. 상처와 피해를 입은 분과 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불과 기자회견 2주 전까지도 5·16과 유신은 조국근대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하고 국민들도 당시 투표를 통해 찬성했다고 강조하던 그였다. 오늘날 ‘선진’ 대한민국의 토대가 된 게 5·16과 유신이요 아버지 박정희 덕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누가 박정희 시대의 그늘을 거론하면, “왜 자꾸 과거를 들추나요, 미래를 얘기 해야죠”라고 발끈하던 그 모습에서 변해도 많이 변했다. 그 정도면
‘인간이라면 도저히 이럴 수 없다’는 생각이 들만큼 잔인하고 극악한 아동성폭력사건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성범죄자의 가혹한 행위에 대한 기사를 자주 접하다보니 사형제, 물리적 거세, 전자발찌 소급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한 법과 제도가 있다면 무엇이든 채택해야 할 것처럼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고통스럽다. 그런데 집요하리만치 상세하게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나 정치권의 경쟁적인 처벌법 제안, 대통령까지 나서서 직접 해결을 지시하는 일련의 일들을 접하면서 언론은 왜 성폭력사건을 마치 중계방송 하듯이 보도하는지, 예방과 대안을 모색하지 않고 또 다른 왜곡된 통념을 양산하고 있는 건지 의심도 되고 우려가 생긴다. 잔혹한 성폭력 사건이 점점 더 증가하고 있는 것 같고 실제 통계자료에서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
지금 조계종은 겹겹이 괴로움에 쌓여있다. 몇 달 전 바깥세상에까지 크게 알려진 도박 문제·일부 본사 주지 선출과정에서 불거진 돈 봉투 사건 등으로 종단과 불교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이 곱지 않다. 세속인들이 불교 집안을 걱정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럴 때 일부에서는 모든 책임을 종단 집행부에 돌리고 자신은 이런 상황과 관계가 없다고 우긴다. 또 다른 쪽에서는 이 혼란 상황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양쪽이 아주 다른 것 같아 보이지만 ‘나는 책임이 없다’며 발뺌을 하거나 방관자가 되어 자기위안에 머문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문제 해결을 원한다면, 사성제의 가르침대로 ‘우리 종단이 혼돈상황에 놓여있음(苦)’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 원인(集)을 찾아 잘못을 없애는(滅) 대안(道)을 마련해야
소통이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너도 나도 소통을 부르댄다. 그럼에도 어떤가. 통하였다는 감탄은 잘 들리지 않는다. 되레 소통이 무장 어렵다는 한탄만 들린다. 불통이니 먹통이니 개탄이 줄을 잇는다. 생게망게한 일이다. 하지만 조금만 톺아보아도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소통을 구두선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정작 소통을 외면하고 있으니 화두가 풀릴 길이 없다. 대표적 보기가 ‘국민대통합’이다. 2012년 9월3일 새누리당의 대통령후보가 조계종 총무원장을 찾았다. 박근혜 후보는 자승 스님을 만나 불교계에 도움을 청했다. 언론에 보도된 박 후보의 발언들에선 사뭇 불교적 색깔이 묻어난다. 이를테면 “불교에서도 소중한 덕목으로 화합을 꼽는다. 국민대통합의 길에 스님들께서 역할을 해 주시길 바란다”라거나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국치일을 하루 앞둔 8월28일 국방부는 백선엽 장군을 주인공으로 하는 군 창작 뮤지컬 ‘더 프로미스(The promise, 약속)’의 배우와 제작진 모집 공고를 냈다. 국방부는 6·25전쟁 당시 실제인물인 백선엽 당시 제1사단장과 마가렛 히긴스 종군기자, 월튼 해리스 워커 미8군사령관 등 활동상을 뮤지컬로 만들어 군 홍보자료로 쓰겠다는 것이다. 정말 가당찮은 일이다. 백선엽은 1930년대 후반 간도협조회, 신선대 등과 함께 만주에서 가장 악랄하게 조선인 항일세력을 탄압한 악질조직 중의 하나인 간도특설대 장교로 복무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간도특설대는 일제가 당시 간도지역의 조선인 항일유격부대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조선인으로 조선인을 다스린다’는 정책에 의해 설립한 만주국 최강의 특
올여름 기록적인 폭염·열대야가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일대에는 열섬현상까지 나타났다.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더운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지만, 올 여름엔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전년에 비해 2배 이상 높아졌다고 하니 가히 재앙의 수준이다. 여름마다 나타나는 기상이변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것이며 생태계의 파괴 및 환경 문제는 이제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전지구적이며 상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공해, 각종 동식물의 멸종, 유전자 변형 옥수수는 물론 핵전쟁과 지역 분쟁의 위험은 이제 우리 개개인의 삶 속으로 들어와 있는 문제이다. 생태위기를 유발한 원인을 근본적으로 규명하고자 다양한 접근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이제 자연은 더 이상 인
지난 8월8일 아침에 접한 한겨레신문(인터넷판) 머리기사는 분노보다는 서글픔과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이었다. 강남구 대치동의 은마아파트 주민들이 우유와 신문 등 배달원들의 승강기 이용을 금지시켰는데, 배달사원들이 각 층마다 승강기버튼을 누르기에 주민들의 생활이 불편하고 전기료가 상승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 어찌 보면 소소하다 싶은 이런 이유로 무더운 여름에 육체적 고통을 감내하고 계단을 사용하라니…. 한편으로는 주민들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그 근처에 사는 몇 분의 지인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그러자 자기들이 봐도 ‘좀 너무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인터넷판에 게재된 댓글도 살펴보았지만, 대부분이 비난이었다. ‘돈 있는 사람들이 너무한다’. ‘당신들도 직접
대치동. 흔히 ‘대치동 사람들’이라는 유행어가 돌만큼 서울 강남구에 자리한 그 동네는 대한민국 고소득층이 밀집해 사는 곳이다. 특히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하다. 대치동에 살고 있는 한 중학생은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를 “학원천국”이라며 “(학원을) 안 다니고 싶어도 엄마들끼리 정보 다 주고받고, 일등이 다니는 학원 우르르 몰려다니고, 시험 끝나서 성적 잘 안 나왔으면 바로 끊어버린다”고 증언했다. 인터넷에 올린 글에서 그 중학생은 대치동 아이들이 “거의 다 정말 유학 갔다 오고 살다 와서 영어 장난 아니게 잘 한다”며 집안이 “진짜 다 빵빵”하다고 말했다. 친구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부모 모두 서울대를 나온 아이들이 많고 직업도 의사, 변호사, 검사와 같은 전문직이 많다며 그 결과 아이들이 “우월한 유전자를
최근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예비후보의 발언이 온갖 논쟁을 낳고 있다. 7월15일 신문방송편집인협회 토론에서 “5·16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며 “5·16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초석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또 “전 국민의 50퍼센트 이상이 5·16이 구국의 혁명이라고 지지하고 있으며, 유신헌법을 제정할 때에도 유권자의 80퍼센트 이상이 지지했다”고 말해 쿠데타와 유신독재를 사실상 정당화했다. 박근혜 후보는 독재와 인권유린으로 얼룩진 박정희 시대를 대한민국의 영광의 시기로 보고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18년 6개월, 6738일. 1961년 5월16일부터 1979년 10월26일까지 박정희가 집권한 기간이다. 집권 6738일 가운데 군정이 945일이었고, 긴급조치 제9호는 그 기간이 무려
사람들은 왜 종교의 담장 안으로 들어오면 순종적으로 변할까? 상식이 왜곡되거나 침해받을 때 시정을 요구하는 것이 왜 종교적으로는 ‘아름답지 못한’ 행동으로 배척받는 것일까? 여성을 배려해야 한다는 말에는 동조하면서, “원래 여성이 가져야 할 당연한 권리”라고 말하면 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일까? 종교의 틀 속에서는 때론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으로 인정되지 않는 듯하다. ‘여성의 권리는 인권이다’라는 말이 선포된 것은 고작 20년도 안된 1995년이었다. 남녀평등이 보편화된 요즘도 여성들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본인의 권리를 인식하거나 주장하는 것이 어색한 이유는 아마 오랫동안 순종적인 삶을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여성 불자들이 사찰문화나 예법, 법문 등에서 성차별적인 관습이나 규범을 당연하게 여기
솔직히 털어놓자. 최근 조계종단을 둘러싸고 불거진 사건들은 암담했다. ‘폭로’가 줄을 이을 것처럼 보이면서 자칫 종단이 무너지지 않을까 우려마저 들었다. 스님들의 청정무구한 이미지가 크게 훼손됐다는 안타까움은 비단 나만의 걱정은 아니었을 터다. 하지만 보라. 절망스럽던 조계종에 희망의 근거가 보이고 있다. 조계종 교육원이 7월1일에서 9일까지 땅끝마을 미황사에서 연 청년출가학교에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젊은이들이 몰렸다. 청년출가학교 법인 교장은 “홍보 기간이 짧아 지원 청년들이 많아도 100여명에 그칠거라 생각했는데 많이 지원했다”고 밝혔다. 스님이 말하기 어려웠겠지만 모집기간 내내 종단을 둘러싼 폭로가 불거졌기에 과연 얼마나 신청할까 내심 긴장했을 법하다. 주최 쪽의 예상보다 3배 가까운 사람들이 몰린
중국고사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초나라 왕은 제나라에서 사신으로 온 안자에게 초나라는 군자의 나라이고, 제나라는 미개한 나라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하나의 연극을 준비했다. 초나라 왕과 안자가 대좌한 중에 갑자기 무사 몇 사람이 한 죄인을 끌고 왕 앞에 나타났다. 초나라 왕은 큰 소리로 물었다. “이 죄인은 어느 나라 사람이며 무슨 죄를 지었느냐?” 무사가 말했다. “ 이 놈은 제나라 사람이온데 약탈 죄를 졌습니다.” 이에 초나라 왕은 안자를 쏘아보며 말했다. “당신네 제나라 사람들은 왜 좋은 일은 하지 않고 흉악한 강도질만 한단 말이오?” 안자도 초나라 왕을 똑바로 쳐다보며 한 마디 했다. “대왕님, 대왕님도 아시겠지만 강남에서 난 귤은 달고 크지만 그것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되어 맛이 시고 작습
한마디로 조계종단이 이전투구식 야단법석의 혼란에 빠져 있다. 불교적 참회, 화쟁의 태도는 실종되었다. 어느 곳을 보아도 믿을 만한 구석은 아무데도 없다. 재속 불교 신행자로서는 난감하다. 내 눈 앞에 펼쳐진 잘못들을 지적하는 승보비방의 파계를 저질러야 할지, 아니면 입 다물고 방관해야 할지 곤혹스럽다. 가히 승보의 위기라 할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불자가 설 땅이 없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승보란 무엇이고 그것은 어떻게 유지되어야 하는 것일까? 원론적인 해석은 제쳐두자. 존경으로 떠받들어야 하는 스님들의 위상은 무엇이었나? 혼자 수행은 힘들고 함께 수행하는 일이 현실적이기 때문에 만든 것이 원래의 승단이었다. 그것은 공동체적 삶의 틀이었다. 한 개인의 결함은 서로를 지켜주는 집단생활 속에서 극복된다. 부
인류역사상 사람답게 살다간 사람들의 자취를 살펴보면 한결같이 자기와의 싸움에서 물러선 사람은 없다. 하지만 물질사회의 구조는 그 싸움이 자신이 아니라 상대를 은밀히 겨냥하고 있다. 이러한 행위의 가장 비굴한 싸움판이 정치집단이 아닌가 싶다. MB정부에서의 민간인 사찰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정치사기극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불교계까지 불법 사찰을 자행하여 조계종 전 총무원장인 고 지관 스님과 종회의장 보선 스님 등을 겨냥한 의혹이 제기된 상황이다. 임기 말에도 검찰의 충정은 유효한 것인지 3개월여 재수사는 몸통 찾기가 아니라 몸통 감추기였다. 아마도 이러한 수사를 신뢰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그간에 발표한 수사경위는 지면상 생략하지만 광범위하게 얼버무린 수사에는 몸통을 위협하는 해답이 숨어있다. 검
‘종북’의 담론이 봇물을 이룬다. 통합진보당에서 불거진 ‘사건’의 본질은 비례대표 후보선출 과정에서 빚어진 ‘부정 또는 부실 선거’임에도 뜬금없는 종북 논란이 정국을 강타하고 있다. 상황이 여기까지 이른 데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 종북으로 지면을 도배질해왔기 때문이다. 그들이 종북의 잣대를 들이대는 근거는 통합진보당의 몇몇 국회의원들이 과거에 공안사건으로 구속됐다는 데 있다. 그 때의 ‘사상’에서 지금은 ‘전향’했는지 밝히라고 다그친다. 하지만 과거의 행적으로 오늘을 따지겠다면, 군부 내 사조직으로 군사반란을 주도해 민주주의 헌정을 유린한 ‘하나회’ 출신이 국회의장으로 나서는 행태는 어떤가. 종북을 부르대는 그 어떤 언론도 하나회 출신에게 과거 행적에 명백한 태도를 밝히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더 큰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