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다는 것은 놀이와 다른 개념몸과 마음이 함께 쉬어야 휴식템플스테이 참여도 고려할만 호흡관찰로 삶을 반조해 보길 지루한 장마가 끝나니, 햇볕이 뜨겁다. 따가운 햇볕의 가시를 피해 도심을 떠난 거대한 행렬이 도로로 쏟아지고 있다. 휴가행렬이다. 8월은 여름휴가의 절정이다. 전국의 해수욕장과 계곡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넓고 넉넉했던 바다와 산이 사람으로 빼곡하다.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를 찾기 어렵다. 여름 더위보다 몰려든 사람들의 체온으로 덥고 지친다. 휴식을 위해 떠난 휴가가 노동보다 힘겹다. 이런 휴가 뒤의 후유증은 대단하다. 휴가에 지친 사람들이 한동안 피로와 무기력을 호소하고 방송은 연례행사처럼 이를 보도한다. 쉰다는 의미는 놀이나 여흥과는 다르다. 휴가(休暇)의 뜻을 살펴보면 쉴 휴(休)에 겨
소중한 생명들의 비참한 죽음인간의 편의위한 탐욕이 원인생태통로 전국에 고작 62개뿐방생일환으로 교계 관심 갖길 운전하는 일이 끔찍할 때가 있다. 도로에서 차량에 치어 죽어가는 동물들 때문이다. 피와 가죽으로 흔적만을 남긴 처참한 장면을 보노라면 마치 지옥을 보는 느낌이다. 절로 ‘지장보살님’을 염송하게 된다. 지난해 고속도로에서는 2360건의 로드킬(Road kill)이 발생했다. 한국도로공사의 통계다. 일반도로까지 포함하면 연간 1만건 정도라고 한다. 엄청난 숫자의 동물들이 알게 모르게 도로에서 억울한 죽음을 맞고 있다. 고속도로 길이가 매년 100km씩 늘어나고 있다고 하니 동물들의 목숨이 더욱 위협받게 될 것이다. 숲속에 살아야 할 동물들이 길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 이유는 인간의 탐욕 때문이다
장주스님 파계했단 고백속엔참회·자숙 없고 사적주장만더 이상 폭로 발생치 않도록종단 자정의 기회로 삼아야 불교계가 불미스런 일로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장주 스님의 폭로 때문이다. 종단 중진스님들이 도박을 했다며 기자회견과 동시에 검찰에 고발했다. 자신이 수년간 도박을 한 파계승이며 그때 함께한 사람들을 처벌해 달라고 밝혔다. “종단 개혁을 위한 결단”이라고도 했다. 종회부의장까지 했던 중진스님의 폭로이니 당연히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장주 스님은 “종단 내 도박세력을 뿌리 뽑기 위해 대규모 집회를 비롯해 지방강연 등에 나설 계획”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스스로 파계승이라고 밝히면서도 이에 대한 참회나 자숙의 모습은 없고 오히려 개혁을 자처하는 모습에서 조계종의 암담한 현실이 느껴진다. 불자들
김택근 고문의 ‘강아지 똥별’못난 종교인들에 내리는 죽비고 권정생선생의 따뜻한 삶서참다운 종교인의 모습 배워야 종교(宗敎)는 ‘으뜸이 되는 가르침’이다. 어떤 것이 으뜸 되는 가르침일까. 자비와 사랑일 것이다. 요즘 종교에서 사랑과 자비가 사라지고 있다. 오히려 시대를 불화하게 만들고 있다. 전쟁을 성전(聖戰)이라 미화하고, 테러를 순교(殉敎)라 말한다. 우리사회 또한 폐해가 심상치 않다. 종교의 이름으로 편을 가르고,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저주를 퍼붓는다. 성철 스님의 삶이, 김수환 추기경의 생애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폄하되는 사회는 불우하다. 종교간 불화가 깊어가는 이 시대에 본지 김택근 고문이 ‘강아지똥별’을 펴냈다. 교회 종지기로 평생을 보냈던 권정생 선생의 삶을 아름다운 동화로 풀어냈다. ‘강
장로·전도 등 불교고유 용어기독교계 적잖게 차용해 사용용어는 시대와 소통하는 방편역경승 고뇌 쉼없이 이어져야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용어들 중에 불교용어가 적지 않다. 야단법석, 이판사판, 자유, 인연, 자업자득 등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화두, 삼매와 같은 전문적인 수행용어도 일상어로 편입된 지 오래다. 그러나 불교용어가 일상생활에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불교보다 전래역사가 짧은 다양한 종교에서 적지 않게 사용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기독교가 가장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불교용어 중에는 아예 자신들의 용어로 탈바꿈시킨 성공적인 사례들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장로(長老)와 전도(傳道)일 것이다. 장로는 본래 수행이 높고 나이가 지긋한 스님들을 이르는 존칭어였다. 그러나
사찰음식 관련 대중적 관심건강 관심·고향 향수가 원인화려한 색·다양한 맛 보다는음식 속 생명존중 뜻 전해야 사찰음식이 인기다. 육류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자연의 풍미를 최대한 살린 채식 위주의 정갈한 맛이 세간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사찰음식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우리의 사회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니 이제 잘 사는 것이 화두가 됐다. 스님들의 전유물이라며 거들떠도 안 보던 명상에 심취하고 유기농무공해 음식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과거엔 영양실조가 문제였다면 이제는 비만이 걱정이다. 한때 없어서 못 먹던 육류를 기피하고 채식위주의 식단에 관심을 갖는다. 이런 흐름이 사찰음식에 대한 지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지고 있다.부처님 당시는 탁발을 했기에 별다른 사찰음식이 없었다. 그러나 스님
사람의 뇌구조 그림이 유행이다. 특정 연예인이나 직업, 또는 연령에 따른 사람들의 뇌를 그려놓고 그들이 가진 관심분야가 뇌에서 차지하는 크기를 그림으로 그리는 놀이다. 놀이라고는 하지만 뇌구조 그림을 보면 시대의 고뇌와 흐름을 읽는 놀라운 혜안이 담겨있다. 최근 기대를 모았던 남북회담이 결국 결렬됐다. 북한의 회담 제의에서 결렬까지 걸린 기간은 불과 8일. 일주일 남짓 기간 동안 국민들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이명박 정부 5년간의 첨예한 대결국면을 마감하고 화해의 장으로 물꼬가 트이는 듯하더니, 불과 8일 만에 대화가 단절됐다. 오히려 상황은 더 꼬여 연일 남북한이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추태마저 보이고 있다. 애타게 기다리던 이산가족상봉도, 개성공단 정상화도, 민족화해 상
내년 도로명주소 전면 시행우리 도로 실정에는 부적절지명 속에는 지역특성 담겨국민 불편 고려해 재고돼야 벼농사가 잘 된다는 화곡동(禾谷洞), 소나무로 둘러싸인 송내동(松內洞), 도선국사의 전설이 깃든 도선동(道詵洞), 이성계에 쫓긴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이 피난 도중 절에서 몰래 올린 식사를 했다고 해서 붙은 식사동(食寺洞). 나라 어디를 가도 그 땅엔 반드시 이름이 있다. 지명(地名)이다. 지명 속에는 지역의 특성이 담겨 있다. 가지 않아도 지명만 들으면 그 마을을 알 수 있다. 역사와 문화, 전설을 알 수 있고 지리적인 특성과 땅의 성질까지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지명은 그냥 땅의 이름이 아니라 오랜 세월 조상들이 그 땅과 함께 일궈내 지혜의 산물이다. 그러나 내년부터 국토의 아름다운 지명 상
일제잔재 드리운 건축물 화재로 문화재 가치 손실 국보1호는 우리나라의 얼굴 교체논의 다시 시작해야 국보1호 숭례문이 복구됐다. 정확히 5년3개월 만이다. 복구의 과정은 국민 모두가 참여한 대역사(大役事)였다. 이제 숭례문의 웅장한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게 됐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그러나 숭례문을 바라보는 마음이 마냥 개운치만은 않다. 우리 역사와 예술혼을 대표하는 국보1호로서 합당한지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숭례문은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됐다. 급기야 1996년에 정부가 설문을 하기도 하고, 2005년에는 감사원이 조사끝에 국보1호 변경을 문화재청에 권고하기도 했다. 국회 차원에서도 수차례 논의가 잇따랐다. 국보1호로서 숭례문에 심각한 하자가 있었던 것이다. 숭례문의 국보1호 지정에는 일제의 잔재
조계종 표방 종단만 80여 곳종정·총무원장 법명도 차용종명 의존해 이익보려는 의도참 불자 늘어나면 폐단 줄 것 학창시절 ‘메이커’라고 불리던 신발이 유행한 적이 있다. 이들 유명상표의 신발들은 일반 신발에 비해 가격이 월등히 비쌌다. 그래서 ‘짝퉁’도 등장했다. 속아 사는 경우도 있지만 알면서도 구입했다. 그것으로 대리만족을 했다. 남들 눈에 진품으로 보이면 그것으로 족했다. 깊이 묵혀져 있던 과거의 기억들이 최근 불현듯 떠올랐다. 일부 교계 신문에 실린 각종 조계종 지도자들의 메시지와 축하 광고때문이다. 지면에는 불교계 장자 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 외에도 십수 개의 조계종이 넘치게 등장했다. 언제 이렇게 많은 조계종이 생겨난 것인지. 인터넷을 뒤져보니 조계종을 표방하는 종단은 70여개. 알지 못하는 것
우리 민족의 자부심인 하느님 기독교, ‘야훼’ 번역하며 차용 번역의 핵심은 이질감 최소화 한글 경전, 불교 대중화 시발 애국가를 들을 때마다 불쾌감을 느끼는 불자들이 많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는 구절 때문이다. 하느님이 우리나라를 보호한다고 해서 크게 기분 나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신인 야훼를 하느님으로 표현하면서 불자들이 묘한 박탈감을 느끼게 됐다. ‘삼국유사’에는 우리 민족의 시원인 한웅이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애국가에 하느님이 담긴 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의 표현일 것이다. 기독교 신의 이름은 야훼다. 기독교인들이 야훼를 우리말로 옮기면서 하느님이라는 전통적인 명칭에 주목했고 그
음력중심 법회 고수한 사이불교는 늙고 기복만이 가득참여 길 막아놓고 포교걱정일요법회 활성화 최선 방편 갈수록 불자라고 밝히는 청소년이나 지식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자신의 종교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없다. 사찰에 가면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눈에 띄게 줄었다. 절을 찾는 지식인도 드물다. 사찰이 할머니들만 남은 시골 고향처럼 늙어가고 있다. 지식인이 사라진 절엔 기복만이 넘쳐난다. 수행자의 자리에서 이탈한 스님. 개인의 복만을 빌고 있는 이기적인 불자들. 기독교의 공격적인 선교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사찰이 스스로 대중들을 밀어낸 결과일 것이다. 일정한 일을 하거나 직장을 가진 사람들은 법회에 참석하기가 힘들다. 사찰들이 아직도 음력에 맞춰 법회를 열기 때문이다. 법회는 평일과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