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성이 인간 세상에 섞여 살기를 좋아할 뿐더러 꼬리를 진흙 가운데 끌고 다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다만 스스로 절룩거리며 44년의 세월을 보냈는데 우연히 해인정사에서 원개사(遠開士)를 만나게 되었다. 그의 성행(性行)은 진실하고 곧았으며 학문은 고명하였다. 서로 세상을 얻은 듯 추운 겨울을 함께 지냈는데 오늘 서로 이별을 하게 되니 아침저녁의 안개와 구름, 멀고 가까운 산과 바다가 실로 보내는 회포를 뒤흔들지 않는 것이 없다. 하물며 덧없는 인생은 늙기 쉽고 좋은 인연은 다시 만나기 어려운즉 이별의 쓸쓸한 마음이야 더 어떻다고 말할 수 있으랴. 옛 사람이 말하기를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하지만 진실로 내 마음을 아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되랴’하지 않았던가. 슬프도다. 한암이 아니면 내가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이 1월 13일 오후 5시 30분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내에 있는 총무원장 집무실에서 스리랑카를 비롯한 인도네시아, 인도, 태국 등 해일과 지진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남아시아 국가의 주한 대사들을 초청해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하고 4층 귀빈식당에서 만찬회를 갖는다. 법장 스님은 스리랑카와 인도네시아, 인도, 태국의 주한 대사들에게 현재 종단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구호 활동 및 모금 운동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면서 “해일과 지진으로 모든 것을 잃은 난민들이 희망을 회복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의지를 전달한다. 한편 1월 7일 해인사에서 전국 교구 본사 주지회의를 열고 남아시아 지진, 해일 피해민을 위한 자비의 탁발 모금 운동을 실행하기로 결의한 각 교구본
북녘 동포 지원을 위한 생활용품 2005년도 첫 지원분이 1월 11일 인천항에서 선적됐다. 조계종 11교구 본사 불국사(주지 종상 스님)는 3000여 만원 상당의 식용유 한 컨테이너 분량을 인천항에서 선적해 2005년도 남북 불교 교류의 첫 테잎을 끊었다. 12일 인천항을 떠나 북측 남포항에 하역되는 지원품은 조선불교도연맹 산하 대외무역기구인 조선불련무역회사로 지정 기탁돼 조불련의 주관 하에 북 주민에게 전달될 전망이다. 선적식에는 불국사 재무국장 정문 스님, 사서국장 신행 스님, 총무원 문화부국장 혜초 스님 등이 참석했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조계종 스리랑카 의료구호봉사단이 1월 14일 오전 11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과 4층 총무원장 스님 집무실에서 출정식을 갖고 스리랑카로 떠난다. 총무원장 법장 스님은 스리랑카의 재해 지역으로 떠나는 의료구호봉사단원들에게 해일과 지진으로 집과 가족, 삶의 터전을 모두 잃은 스리랑카 난민들이 희망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구호 활동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당부하면서 대원들을 격려하는 간담회를 갖는다. 스리랑카로 향하는 의료구호봉사단원은 28명이다. 한편, 의료봉사단 파견에 앞서 스리랑카 현지 상황 파악과 구호활동 준비를 위해 조계종 사회국장 인오 스님 등 9명으로 구성된 선발대가 11일 출국했다. 02)2011-1733 남배현 기자 nba7108@beopbo.com
통도사 불이문은 대웅전과 함께 잘 생긴 건물로 손꼽힙니다. 초창은 고려 충렬왕 31년(1305)이나 현 건물은 언제 중건 되었는지 기록이 없습니다. 세부 수법으로 보아 조선 중기 이후에 중건된 것으로 보입니다. 중앙의 대들보를 코끼리와 호랑이가 이마로 떠받치고 있으며, 대들보 위에 두터운 솟을 합장재를 삼각형으로 짜서 그 위에 장혀를 걸치고 도리를 얹어 서까래를 받치도록 하였습니다. 보기 드문 건축양식입니다. ‘불이문’ 편액은 송나라 미불의 글씨이며 ‘원종제일대가람’은 일주문에 걸렸던 것입니다. 불이문은 통도사 중심 통로 중 가장 경사가 심한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나 불이문 기단을 기막히게 조정하여 경사가 적게 보이게 하였습니다. 그대로 지었다면 현재 건물보다 50cm는 더 높았을 것입
"스리랑카 고아원 짓는데 써 주세요" 총무원장 법장 스님에 약정서 전달 “장기적인 경기 불황 여파와 조계사의 불사로 상황이 어렵기는 하지만 불자들의 작은 정성이 부모를 잃은 남아시아의 고아들이 사회의 일꾼으로 바르게 자라는 데 보탬이 됐으면 합니다.” 조계사 주지 원담 스님과 신도회 불자들은 1월 11일 오전 10시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에게 남아시아 구호 기금 1억원의 약정서를 보시했다. 해일과 지진이 남아시아 일대를 삼켜버린 직후인 지난해 12월 말부터 신도회가 주축이 돼 성금 모금 활동을 펼쳐 왔다. 경내에 “남아시아 해일-지진 피해 난민을 돕자”는 문구를 적은 모금함 3개를 설치했으며 1월 9일부터 오는 12일까지 대웅전 옆 마당에서 불자들이 자발적으로 보시한 생필품이나 옷 등을
부모는 7생이지만 은사는 누겁(累劫)이어서 의(義)가 깊고 은혜가 지중하다는 것을 어리석은 자는 알지 못한다. 너는 불도에 들어와 얼마 되지 않아 스승과 헤어졌느니. 아침저녁으로 나는 너를 생각하는데 너는 나를 생각하느뇨?요즘 말법 중생은 마음이 엷어서 은혜와 절의(節義)를 쉬이 배반하고, 쉽게 은사를 싫어해 홀로 지내고 노는 것을 좋아하며, 정(情)을 따라 마음대로 하여 여법하지 못하니 악도에 떨어질까 염려된다. 어찌할 수 없어 네가 늘 가까이 해야 할 계(誡)를 지어 전하며 안부를 대신한다. 잊지 말지니, 바로 너의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 오히려 천 마디의 좋은 말을 초월하는 것임을….스승으로서 마음먹고 간절히 마음에 있는 말을 보내서 마주 앉아 이야기하듯 말하노니, 네가 도를 이루어 이미 스스로 알았
초의산인 아무개는 삼가 재배하고 해거도인(海居道人)께 글을 올립니다.몸은 두루 편안하신지요. 산 바다의 먼 길이라 뵙기를 고대해도 인연이 없고 문안드리려 해도 통하기 어렵습니다. 옛말에 “정이 어긋나면 한 방에 있어도 서로 거슬리고 도가 합하면 천리를 떨어져 있어도 더욱 가깝다”고 했습니다. 찾기 어려운 말과 모습에 서글퍼하기보다는 차라리 도리(道理)의 돈독함에 맡겨 두는 것만 하겠습니까.얼마 전 북산도인 편에 다도를 물어 오셨기에 마침내 옛 분들이 전하는 뜻에 따라 삼가 동다행(東茶行) 한편을 서술해 올립니다. 말이 분명하지 못한 곳은 별도로 본문을 뽑아내어 뜻을 밝히려 했습니다. 그러나 제 글재주가 변변치 않아 보시기에 번거로울 것입니다. 혹 잘못된 구절이 있으면 비판해 주시는 수고를 아끼지 말았으면 합
순행(巡行) 후 서로 있는 곳이 멀어지니 직접 목소리를 듣고 인사드리는 일도 이제 아득해졌습니다. 나라에 일이 많고 번거로움도 많다보니 제 몸의 조화가 깨지고 일도 늦어집니다. 그렇다고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항상 부처님께 기도를 해주시고 사람을 보내어 자주 안부를 물어주시니 다만 황감할 뿐입니다. 행여 이로 인해 제가 멀리서 수행에 전념하고 계신 스님에게 폐를 끼치고 승가의 화합을 깨뜨리는 것은 아닐까 두렵습니다. 원각사의 일은 널리 들으신 바와 같고 끝까지 서술하기는 곤란합니다. 저의 지극한 정성에 부흥해 스스로 편안하게 머무르시기를 바라옵니다.금을 보내드리오니 좋은 곳에 쓰시기를 바라며, 불개(佛盖)와 전액(殿額) 그리고 향촉 등 물건을 아울러 받들어 올립니다.심신의 병 치유해 준스승으로 섬기며불교 외호
지난번 제가 오대산에 머물 때 스승께서 찾아오셔서 큰 자비심으로 저를 이끌어주셨습니다. 그 후 스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갈수록 커졌습니다. 제가 오대산을 떠나 남쪽으로 만행을 떠났을 때 스님을 뵙고자 했으나 저의 업력이 동쪽 바닷가로 이끄는 바람에 부득이 찾아뵙지 못했습니다.이곳(광동)에서 10년 세월을 보냈습니다. 지난날 제 도력이 약해 마구니에 크게 흔들리고 귀향까지 간 것은 지혜로운 사람에게 꾸짖음을 받을만 합니다. 그럼에도 아직 그곳에 연연하고 있으니 아마도 숙세의 업인 듯싶습니다.정법이 쇠퇴하고 올바른 종지(宗旨)가 갈수록 흐려진다지만 우리 스님 법의 깃발 높이 들고 계율 지키며 염불에 진력하신다 들었습니다. 저희 같은 중생들이 이와 같은 큰스님을 만나게 됐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가는 편에 향을 보
부처님께서는 내 안의 보배창고를 보이기 위해 50년 가까이 법문하셨으니 자비스런 구름은 널리 퍼지고 법의 비는 멀리까지 쏟아졌습니다. 그러자 수많은 중생들이 그 은혜를 입게되니 이른바 말을 받들어 뜻을 이해하는 것이 교문(敎門)입니다. 하지만 조사들은 교문과는 달리 입을 열기 전에 곧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이런 탓에 한창 동안 말이 없기도 하고, 혹은 눈썹을 치켜 뜨기도 하며, 주장자를 세우기도 합니다. 이것은 최상의 근기를 가진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선문(禪門)입니다.또 부처님은 말세 중생으로서 법음을 직접 듣지 못하는 이들이 아미타불을 정성껏 염해 연화정토에 왕생할 수 있도록하니 이것은 곧 염불문입니다.이렇듯 깨달음에 이르는 문은 크게 3가지로 분류할 수 있으나 그 법은 결국 하나입니다. 참
승려끼리 싸우는 꼴 통탄상소로 불교계 탄압하는조정의 잘못 세세히 지적(요즘 불교계는) 자신이 무조건 옳고 상대는 무조건 그르다 하여 업신여기면서 나아가 패거리를 모아 서로 다투다가 점차 쇠퇴해 가는 꼴이다. 아아, 삿된 말로 눈을 흐리게 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자들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이런 때) 내 도반이 서울로 간다니 안타까운 마음에 만류코저 한다. 스님은 쑥옷을 입고 나물을 먹으면서 조금도 우울한 기색이 없고, 나무를 져 나르고 쌀을 찧으면서도 조금도 꺼려하는 모습이 없으며, 물을 건너고 산을 건너면서도 고달파하는 기색이 없으니 이이가 바로 도를 구하는 사람이라 할만하다.그대는 반드시 전해지지 않은 마음을 전해지지 않는 뒷날에 전할 수 있고, 행해지지 않는 도를 행해지지 않는 뒷세상에 행하도록
불심 담겨야 출가자의 시후학 혼란 경계코저 비판한 평생 수행자 삶 지켜스님의 나이 이제 칠십 고개에 이르렀습니다. 남은 날이 저녁 해가 뽕나무에 걸려 있듯 한 상황에서 힘써야 할 이치에는 힘쓰지 않고 힘쓰지 않을 일에는 힘쓰는 것을 부디 그치기 바랍니다. 시로써 음풍농월을 읊는 것은 일없는 사람의 힘쓸 일이요, 사립문을 걸어 닫은 납자나 구름을 짝하는 출가자의 힘쓸 바가 아닙니다.스님은 옛날 염불노래를 지어 염불하는 이들에게 권하기에 염불하는 참 도인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한량처럼 맑은 바람과 밝은 달에 취해 시만 읊으니 그것은 도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시는 성정(性情)을 근본으로 하고 도는 몸과 마음에 있습니다. 만일 깨달음이나 신묘한 이해를 노래한다면 시도 옳고 도도 옳을 수 있습니
하늘이 내린 성인따로 없으니오직 힘쓰고 힘써라『시경』에 이르기를 “시작은 많지만 능히 끝이 있는 일이 드물다”고 했다. 대체로 사람의 배움은 자주 변하여 일정함이 없다. 봄에 배우다가 겨울에 게으른 자도 있고, 아침에 배우다가 저녁에 게으른 자도 있는 까닭이다.내 문하에 있은 지 이미 여러 해이나 배움이 들린 바가 없으니 아마도 스승이 밝지 못해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아! 촌음을 아껴 책 끈이 끊어지도록 부지런히 책을 탐독하는 것은 성인(聖人)의 부지런함이요, 글을 읽다가 말리던 보리가 폭우에 휩쓸려 간 것도 모르고, 졸음을 쫓기 위해 상투를 풀어 천장에 붙들어 매고, 개똥벌레를 주머니에 넣어 그 빛으로 글을 읽었던 것은 현인(賢人)의 부지런함이다. 어찌 하늘이 내린 성인이 있겠으며, 저절로 생긴 현인이 있
소식 뜸한 바다 옆 산간벽지, 가을 깊어가니 보고 싶은 생각 간절했는데 뜻밖에 편지를 받게되니 기쁘기 한량없습니다.일찍이 듣기로 사형이 보다굴(普多窟)에 머물러 계시자 배우는 사람이 구름처럼 모이고 섭화(攝化)에 막힘이 없다 하더이다. 아마도 가르침의 방편이 뛰어나고 사람을 대함에 자상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그러나 이 아우는 기교가 없고 덕조차 부족하니 누가 나와 더불어 하려 하겠습니까. 또 요즘은 배우는 이들 중에 함께 할 만한 사람이 드뭅니다. 혹 배우는 사람이 있더라도 겉치레만 하고, 도심(道心)에 깊게 침잠하려 하지 않습니다. 슬프고 슬픕니다. 그럴수록 스승 설로 화상과 사형이 그리운 것은 어인 연유일까요.세상에 우리 사형이 없었다면 이 구구한 생각을 누구에게 털어놓겠습니까? 말이 많이 길어졌지만
청정한 출리(出離), 즉 세속적인 욕망의 포기 이외에는 어리석음을 종식시켜 윤회라는 고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수단은 없네. 중생이라는 존재는 집착으로 결박되기 때문에 먼저 출리를 구하지 않으면 안된다네. 이 은혜 받은 경지 얻기 어렵기에 남은 수명 얼마 되지 않음을 마음 속에 늘 새겨야 할 것이네. 그리하여 밤낮으로 해탈을 구하는 마음을 잃지 않아야 비로소 참된 출리라 할 수 있으리오.하지만 출리를 했더라도 청정한 발심이 없으면 깨달음의 완성은 있을 수 없다네. 수행자들이 최고의 보리심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네. 고통으로 떠도는 윤회계의 모든 중생, 이들이 결국 당신의 어머니가 될 수밖에 없음을 깊이 알아 그들을 구제하기 위해 최고의 보리심을 일으키게나.법의 진실, 즉 공성(空性)을 이해
날씨가 화창합니다. 어떻게 지내시는지요?지난 달 법식(法識) 스님이 와서 당신께서 본국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 전에 당신께서 여러 경전을 번역하셨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곧바로 자문을 구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떠난다는 소식을 들으니 한스럽고 슬플 따름입니다. 갑작스럽지만 수십 개의 질문을 드리오니 바라옵건대 시간이 난다면 하나하나 해석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 질문들은 비록 경전에 나오는 큰 논란거리는 아니지만 스님께서 판가름해 주실 것으로 기대합니다. 세월이 유유히 흘러갑니다. 연말 쯤 한번 뵙기를 간절히 기약해봅니다.격동의 세월 살았던중국불교의 두 스승서신으로 사상교류여산 혜원(慧遠, 334~416)은 중국 정토종의 개조이며 결사운동의 효시라 일컬어지는 여산 백련결사를 이끌었던 장본
서늘한 바람이 부는 계절입니다. 요즘 일상은 어떠하신지요. 서로 있는 곳이 아득히 멀어도 마음이 하나면 바로 이웃입니다. 혜원 법사께서 건강하시다는 말씀 들으니 큰 위로가 됩니다. 비록 곁에서 모시지는 못했지만 높으신 뜻과 가르침 마음속에 간직한지 오래입니다.이곳 대중들도 변함없이 잘 지내고 있으며 구마라집 법사께서도 여여하십니다. 스승께서는 요즘 근본율장의 번역에 힘쓰고 계십니다. 소승은 외람되게도 이런 아름다운 운수에 참예하고 성대한 교화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그대와 함께 이 법회에 함께하지 못한다는 것이겠지요.(여산으로) 가는 편에 『유마경』 주해 한 본 보냅니다. 스승의 말씀을 제가 기록한 것입니다. 비록 표현은 매끄럽지 못할지라도 그 의미는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말과 자취가 끊긴
梵字-티베트어에 능통…불경 간행 주도 세종이‘존자’칭호…‘집현전 참여’ 기록도 억불 정책으로 공헌가려져…재조명 있어야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로 손꼽히는 한글. 세종대왕이 한글창제를 주도적으로 이끈 것은 분명하지만 한글의 기원이나 문자를 만드는데 기여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상당부분 의문점이 남아있다. 본지가 한글날 558돌을 기념한 특별취재에 따르면 훈민정음 보급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혜각존자 신미(信眉, 1405?~1480?)대사가 훈민정음 창제에도 깊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밝혀졌다. 신미대사는 세종과 문종의 여러 불사를 도왔을 뿐 아니라 세조가 간경도감을 설치하고 불전을 번역, 간행했을 때 이를 주관하는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특히 『석보상절』의 편집을 실질적으
저는 요즘 손님 접대가 빈번한 까닭에 아침저녁으로 분주하고 피곤하답니다. 문득 역참의 말단 관리와 같은 생활을 하다보니 스스로도 가련할 뿐입니다. 이름을 버리고 오대산 깊은 곳으로 떠나야 이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왕필의 『주역약례(周易略例)』는 삼가 읽어보아 마쳤습니다. 또 『주역발미』는 두세 번 읽으며 음미했습니다. 『주역』의 그윽한 말은 알면 알수록 그 깊이를 헤아리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편지에서 시율(詩律)에 관심을 가져 벗들의 요구에 응하라 하셨지요. 가르치신바 지당하나 시를 짓는 것보다 차라리 사색이나 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저는 물병 하나와 발우 하나로 늙은 두타행자가 되고자 합니다. 저의 생각이 어떠한지요.선과 교 모두 정통정약용 등과 교우중국 대학자도 詩극찬이 글은 아암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