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밀선원이 벌써 개원 1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곳 경남 김해라는 도시와 아무런 연고가 없었습니다. 인연 있는 사람도 없이, 특별히 정해둔 장소도 없이 이곳에 왔습니다. 포교당을 열고서야 부산이나 울산에서 포교당을 시작하면 조금 더 나았을 수 있었다는 주위의 말씀이 절실하게 와 닿았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인연 없는 김해에 온 덕분에 온몸 가득 배우고 가슴 깊이 체득하며 한 발, 한 발 천천히 포교의 길을 밟아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저는 법회 때마다 마지막에 항상 이 말씀을 꼭 드립니다. “간절히 기도합시다.
제가 본사 소임을 보면서 고운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템플스테이에 참가하신 분들과 아침에 차담을 하면서 이런저런 질문을 받는데, 3∼4개월 전 서울에서 오신 60대 후반 부부가 “스님, 종교가 뭐예요”라고 질문을 하셨습니다. 자신들은 교회에 다니다가 지금은 안 간다면서 그렇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들에게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지역에 있는 사람, 작은 벌레들 또 지옥에 있는 중생들, 축생들, 천상의 신 등 모든 존재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방법을 제공하는 것이 종교”라고 하면서
허름한 대문이 바람에 흔들리는 요란한 소리가 이른 봄밤을 더욱 깊은 사유(思惟)속으로 몰고 갑니다. 산골의 봄바람은 때에 따라 유난히 거세어서 느끼는 체감 역시도 무척 차갑습니다. 분별의 오르내림이 다소 혼란스러웠던 어제, 마음속으로 종일토록 달궈낸 구차스런 열기는 밤을 새워 뒤척인 오늘 아침에야 부담스러운 입술 끝으로 또 작은 산 하나를 키워냈습니다.지난 밤 분별심으로 혼란했던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들었던 생각입니다. 너와 내가 다르지 않고, 너와 내가 따로 없거늘 우리는 늘 분별심을 일으켜 시비하고 갈등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오늘은 출가재일입니다. 옛 어른 스님들께서는 몸이 떠난 것을 출가라 하지 않고, 머리 깎은 것을 출가라 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출가인가. 몸과 마음이 번뇌로부터 떠난 것을 참된 출가라 한다고 하셨습니다. 스님들은 머리를 삭발하고 의복도 세속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한국불교의 전통을 몸으로 지켜오고 유지해오고 계속 지켜나가는 사람들이 스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스님들이 올바른 길로 잘 수행하고 정진해 나아갈 수 있어야 한국불교도 한국문화도 올바르게 발전한다고 믿습니다.전 세계에 한류가 유행입니다. 그런데 드라마와
오늘은 조계총림 송광사 부산분원 관음사의 ‘지계염불만일결사’ 기도 중 3000일 회향의 날입니다. 3000일 동안 계율을 지키며 염불하시고 정진해 주신 관음사 사부대중께 감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관음사 신도님들은 행복한 분들입니다. 관음사 회주 지현 스님께서는 조계총림 송광사 율주 소임을 맡고 계십니다. 율주는 ‘율’의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부처님을 대신해서 계율을 지키며 모든 스님에게 모범이 되시고, 계율을 강의하며 부처님의 율법대로 사는 수행자의 길을 가르치시는 분입니다.지계(持戒), ‘계율을 지키며 산다’는 것은 다시 말해 부
오늘 홍법사에서는 열반에 드신 대만 불광산사 개산종장 성운대사의 가르침을 새기는 추모법회를 봉행하고 있습니다. 불광산사는 가보신 분과 가보지 않은 분이 이해하시는 것에 큰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을 통해 소개되는 것은 불광산사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불광산사에 가서 예불을 올리고, 또 절의 규모를 보고, 돌아가는 시스템을 마주하게 되면 이것이 우리 한국불교가 나아가야 할 미래의 모습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바로 아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홍법사 창건주 하도명화 보살님께서는 1970년대 초 대만
싯다르타라는 한 사람이 부처가 됨으로써 비로소 불교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제 개인적인 경험도 그렇고 불교를 공부하고 수행하는 과정들을 보면 항상 복잡하고 어려워서 허덕거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불교를 조금 더 단순하고 명료하게,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조금만 노력하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화두처럼 붙잡고 있습니다. ‘21세기 발보리심경’도 그런 문제의식으로 만들어진 내용입니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좋도록 해 보려 애쓴 결과물입니다. 오늘은 ‘21세기 발보리심경
오늘은 ‘나의 본래면목’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우리 중생은 환(幻)으로 왔다가 환을 따라 모두 가버립니다. 가고 오는 것이 다 환 가운데의 일입니다. 그럼에도 환 속에 환 아닌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나의 본래면목’이요, ‘본래의 몸’입니다.많은 사람들이 미물이라 생각하는 벌레를 도와주는 것이 나무토막이나 돌멩이‧쇠를 녹여서 만든 법당의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공덕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말을 믿지 않고법당의 부처님 앞에서는 겁을 내고 죄지을 마음을 안 내는데, 벌레는 보잘 것 없고 부처님이
계묘년 한 해가 시작됐습니다. 우리 화엄사가 화엄 도량으로, 행복 도량으로 화엄사상이 넘쳐나는 세상을 만드신 분들은 여러분입니다. 그리고 화엄사 본말사 교역직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해 동안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신년하례를 겸해 신년 법회를 하게 됐는데 늘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행복하게 사세요.’ ‘자비하세요.’ ‘참으세요.’ 지난해 1년 동안의 삶 중에서 이런 부분들을 얼마만큼 우리가 실천했는지 살펴보시고, 새해를 시작하는 마음가짐을 다지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새해가 밝아서
부처님의 말씀 중에 ‘중생 본래 성불’이라는 표현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 말을 믿으십니까? 중생 본래 성불, 우리 모두 처음부터 부처님이었다, 이 말을 믿는지 묻는 것입니다.저는 새해 93세가 됩니다. 출가는 18세에 했습니다. 절에 와서 처음 ‘중생 본래 성불’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는 이 말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아직 공부도 하지 않았고 수행도 하지 않아서 지금 중생으로 있는데 중생이 본래 성불이라니,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출가해서 또다시 성불하려고 애를 써야 하는가? 옛날에 본래 성불이었는데 지금은 중생이니까
반갑습니다. 울산 신흥사(新興寺)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신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본사 통도사의 말사로 신라시대 창건된 천년고찰입니다. 신흥사는 신라 명랑 법사와 인연이 깊습니다. 명랑 법사는 밀교 계통에서 아주 신비한 재주를 지닌 분이셨다고 합니다. 신라 국통이시고 통도사를 창건하신 자장 법사는 명랑 법사의 외삼촌이시기도 합니다. 당시 선덕여왕께서도 명랑 법사를 옆에 두고 국사를 논했다고 합니다. 신흥사는 초기에 건흥사(建興寺)라는 사명으로 불렸습니다. 세월이 흘러 1592년 임진왜란 때 민초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의병
오늘 한국 불자들에게 법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기쁩니다.제가 느끼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항상 누구를 만나건 어디에 있건 간에 선한 마음을 가지고 남들을 이롭게 하고 배려하는 것입니다. 저는 부처님의 제자로서 비구로서 모든 종교를 존중합니다. 그래서 다양한 종교인들을 알고 만남을 가졌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종교가 선한 마음을 지니고 모든 이들에게 배려하고 돕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종교의 근본 가르침을 공유합니다. 모든 종교의 근본 가르침은 서로 돕고 서로 배려하고 서로 존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