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부정관 중 백골관. 집중명상의 주제로 『청정도론』에서는 초기불전을 바탕으로 하여 40가지 주제가 제시된다. 이 40가지 마음집중 명상의 주제는 7가지 범주로 분류된다. ①10 카시나 명상(十遍, dasa kasi ni) ②10 부정관 명상(十不淨, dasa asubh ) ③10 반복적 마음챙김 명상(十隨念, dasa-anussati) ④4 한계 없는 마음을 닦는 명상(四無量心, 四梵住, catasso apama a) ⑤ 4 순수한 정신세계의 명상(四無色, catt ro rupa) ⑥음식에 대해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명상(食厭想, h&nbs
태국의 한 스님이 삼매에 들어있다. 윤리적인 규범인 계(戒)와 생활의 욕심을 조절하는 두타행을 실천하여 청정한 계를 확립한 자는 더 미세한 마음의 더러움을 씻어내기 위해서 마음집중인 선정(禪定)을 닦아야 한다. 초기경전과 『청정도론』에서 선정을 닦는다는 말을 ‘마음(心)을 닦는다’고 한다. 마음을 닦는 다는 말을 사마타(samatha, 止), 삼매(samadhi, 定), 선정(jhana, 禪定)이라고도 하며, 집중 또는 마음집중 명상(concentration meditation)이라고도 한다. 『청정도론』에서 삼매를 〈하나의 대상에 마음이 집중된 좋은 상태(善心一境性)〉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에서 중요한 말은 ‘좋은 상태(善)’이다. ‘좋다’는 말은 불교
2300년 전부터 이어져온 스리랑카 스님들의 두타행 수행처.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몸과 목숨을 돌보지 않으며, 열반에 이르는 수행을 시작하고자 하는 출가 수행승들에게 제시된 13가지 두타행을 『청정도론』 2장에서 자세하게 설명한다. 『청정도론』에서는 두타행까지 계청정에 해당되는데, 출가생활의 소욕지족의 청빈한 삶속에서 재산의 상속자가 아니라 법의 상속자가 되라고 하신 부처님의 말씀을 다시 되새기게 하는 가르침이 바로 두타행이다. 13 가지 두타행은 다음과 같다. 1. 분소의(버려진 옷감으로 만든 옷)만을 입는 수행 2. 세 가지 옷(하의, 상의, 대가사)만을 수용하는 수행 3. 탁발한 음식만 수용하는 수행 4. 차례대로 탁발하는 수행 5. 한자리에서만
태국의 벽화, 수행승들이 탁발을 통해 재가불자들에게 음식을 보시받고 있다. 『청정도론』은 앙구따라 니까야를 인용하면서 계를 더럽히는 것은 이익과 명성 때문에 계를 범하는 것과 잘못된 음행에 관련된 것이 7가지가 있다고 한다. 음행에 관련된 7가지란 ①여성과 직접 음행을 하지는 않지만 몸을 만지게 하면서 즐기는 것 ②함께 즐기고 노는 것 ③바라보면서 즐기는 것 ④여인의 목소리를 엿들으며 즐기는 것 ⑤이전에 여인과 즐겼던 일을 회상하는 것 ⑥다른 남자들이 감각적 욕망에 빠져 지내는 것을 보고 즐기는 것 ⑦ 천상에 태어나기를 바라면서 청정한 계행을 지키는 것이다. 음행을 포함한 일반적인 감각적 욕망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자세히 제시해 주고 있는 이 가르침을 통해
무엇이 청정에 이르는 데 방해가 되고 도움이 되는가? 그 기준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부처님께서는 간단하게 말씀하셨다. 마음으로 짓거나, 말을 하거나, 행동을 했을 때 우리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있고, 반면에 불편해지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욕심을 부리면 마음이 불편해 지겠죠? 화나면 불편해지겠죠? 어리석음에 빠지면 불편해지겠죠?’ 부처님께서는 살다 보면 욕망에 눈이 가려 지내고, 원하는 바대로 되지 않는다고 화내고, 사물의 이치에 어두어 어리석음에 빠질 때가 있는데, 그때 마음이 불편해지고, 복잡해지고, 어려워지는 것을 스스로 안다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아야 된다고 말씀하신다. 불교에서 버리는 것과 받아들이는 기준이 분명하다. 바로 탐진치 삼독심이 기준이 된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은 버려야 되는 번
재가자들은 보시(布施), 지계(持戒), 수행(修行)의 세 가지 실천을 기회를 만들어 항상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보시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내가 가진 재물을 나눠 주는 것은 가장 쉽고 낮은 단계의 보시이다. 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을 무외시(無畏施)라고 한다. 즉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람의 입장에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이다. 이 무외시가 재물을 나눠 주는 것보다 더 큰 보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상의 보시는 법(法)보시이다. 부처님의 가르침, 진리를 나누는 것이다. 법보시는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나누는 것인데 재가자들은 법보시를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자신의 노력으로 애써 모은 재물을 승단에 보시하거나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주위
스님들이 경전을 배우고 있다. 영국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중앙아시아의 9~10C 벽화. 계와 율의 차이점 율속에는 계(戒)가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계는 무엇일까? 계란 자율적으로 지켜야 하는 도덕적 규범을 말한다. 부처님의 재가제자들에게는 율은 없고 계만 있다. 반면에 스님들은 율 속에 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본적인 계는 오계[五戒 : 살생, 도둑질, 잘못된 음행, 거짓말, 음주를 삼가는 것]라고 되어 있어 항상 지켜야 하는 규범[常戒]이다. 계는 마음으로 지킨다. 설령 길을 지나가다 모르고 개미를 죽일 수 있지만, 이것은 고의적으로 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계를 깬 것이 아니다. 동기와 의지에 따라서 계를 지키고 계를 파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스리랑카 콜롬보 근처의 켈라니야 절에 그려진 붓다고사 벽화 사진(18세기), 붓다고사가 청정도론을 지어서 대사(大寺·마하위하라)의 스님께 올리는 모습. 『청정도론(淸淨道論)』(Visuddhimagga)은 기원5세기, 지금부터 1500년 전 인도 출신의 붓다고사(Buddhaghosa)라는 스님이 스리랑카로 건너와서 지은 논서이다. 붓다고사라는 법명의 유래는 스님이 말씀하시면 마치 부처님의 음성과 같다고 해서 지어졌다한다. 붓다고사는 ‘불음’(佛音, 부처님의 목소리) 또는 깨달음의 소리라고 해서 각음(覺音)이라고 한다. 이 책은 팔리어로 되어 있는데, 팔리어는 2300년 전 스리랑카에 불교가 정착되면서 사용된 초기불교 언어이다. 팔리어로 전승된 남방상좌불교 전통(스리
이제 쌍윳따니까야 산책을 끝마친다. 쌍윳따니까야의 일년간에 걸친 개정작업도 끝나간다. 초간본의 여러 가지 편집상의 오류나 오역을 바로 잡고 원문의 복원, 용어의 일관성과 주석을 더욱 충실한 새로운 쌍윳따니까야가 조만간에 출간될 것이다. 그 동안 독자여러분이 궁금해 하시던 것들에 대해서는 신문의 지면상 한계 때문에 더 이상 연재가 불가능하므로 이 새로 출간되는 쌍윳따니까야를 참고하면 될 것이다. 쌍윳따니까야는 마지막으로 네 가지 거룩한 진리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 사성제는 여전히 가장 초보적인 불교의 진리이지만 가장 위대하고 심오한 명상수행의 진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쌍윳따니까야는 그 대단원의 마지막에서 사성제를 설하고 있다. 사성제는 알다시피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 괴로움의 원인의 거룩한 진리, 괴
뭇삶을 중생이라고 하는데 그 중생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다. 그런데 가장 심오하고 재미있는 비유는 쌍윳따니까야의 뭇삶의 경에 있다. 부처님은 여기서 뭇삶을 모래성을 쌓는 아이에 비유한다. 대화의 상대자는 수행승 라다이다. 라다는 부처님의 제자 수행승 가운데 ‘변재가 있는 자 가운데 제일’이었다. 그는 라자가하의 바라문이었는데 만년에 자식들에게 천대를 받아 출가를 결심했는데 수행승들이 나이가 많은 관계로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부처님을 직접 찾아뵙고 그의 확신을 보여 주자 부처님은 싸리뿟따를 시켜 그를 승단에 출가시켰다. 쌍윳따니까야는 라다의 품이 따로 있을 정도로 부처님과 그와의 많은 대화를 기록하고 있다. 라다는 심오하고 섬세한 문제에 대하여 토론하기를 좋아했다. 특히 존재의 다발인 오온에
『쌍윳따니까야』의 「존재의 탐욕에 대한 경」은 삶의 자양분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앞에서도 소개했듯이 물질적 자양분과 접촉의 자양분, 의도의 자양분과 의식의 자양분을 다루고 있는데, 이 경에서 특수한 것은 그러한 자양분에 대한 탐욕과 환희와 갈애가 생겨나면 의식이 그곳에 머물러 성장하면서 윤회를 전개시킨다는 내용이다. 윤회하면서 생노병사를 경험하는 우리는 슬픔과 불행과 근심에 휩싸이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윤회하는 우리의 모습은 부처님에 의하면 “어떤 디자이너나 화가가 염료나 도료나 울금이나 인디고나 꼭두서니로 잘 닦여진 널빤지나 벽이나 흰 천에 여자의 모습과 남자의 모든 몸뚱이와 팔다리를 합하여 그리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물론 여기서 디자이너나 화가는 창조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쌍윳따니까야의 수행녀 쎌라의 경이 있다. 쎌라는 알라비 왕국의 공주로 태어났으므로 알라비까라고도 불렸다. 그녀가 아직 처녀였을 때에 부처님께서 알라비 왕국을 방문했다. 그 때 쎌라는 부왕과 함께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신도가 되었으나 나중에 발심하여 출가해서 아라한이 되었고 주로 싸밧티 시에 살았다. 어느 날 싸밧티 시에서 탁발을 하고 식사를 마친 뒤, 탁발에서 돌아와 대낮을 보내려고 안다 숲으로 갔다. 안다 숲의 숲속 깊이 들어가 대낮을 보내려고 한 나무 밑에 앉았다. 과거불인 깟싸빠 붓다가 열반에 든 직후였다. 이곳에 500명의 도둑이 살고 있었다. 재가신자이자 전법사인 야쏘다라는 탑묘를 세울 돈을 모아서 가져오다가 그들의 습격을 받아 눈이 멀게 되었다. 이 도둑들은 야쏘다라를 맹인으로 만든 과보로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