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취산은 기사굴산의 별칭인데, 올라가 보니 바위산의 정상에 흡사 독수리를 닮은 듯한 큰 바위가 있었다. 너무나도 흡사해 저 바위에서 온 이름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정상은 집채덩이만한 바위 몇 개가 겹쳐 있었는데, 그 밑에 두, 세 사람이 들어가 앉을만한 암굴이 두 개 있었다. 위의 암굴에서는 사리불존자께서, 조금 아래의 암굴에서는 마하카샤파존자께서 각각 수행하셨다고 한다. 나는 그 속에 잠시 들어가 보았다. 그날의 산행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동행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점심을 들고 약 30분 휴식을 가진 다음, 우리는 바로 보드가
최근 들어 세상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는 두 가지 사물을 종종 떠올리곤 한다. 그것은 등잔과 거울이다. 미륵의 후예들은 이 세계의 어떤 비밀스런 본성을 나타내기 위해 그것을 자주 비유로 든다. 나 또한 같은 이유에서 그 사물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에 개인적 사연을 하나 덧붙이자면, 세상 곳곳에서 들려오는 흉흉한 소식들이 나로 하여금 내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보게 되는 이곳이 진정 어떤 곳인지 다시 사색해 보도록 만들었다고 하겠다. 그러니까 뿌리 깊은 우환 의식이 다시 고개를 드는 시절에는 마치 순진한 어린아이인 양 세상은
이 시각에도 세계 여러 곳에서는 크고 작은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국지전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 같다. 어떤 형태의 무장투쟁이든 민간인 살상과 난민 및 강제이동의 고통을 발생시킨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 만든 상처는 다시 인간이 아물게 할 도덕적 책임이 있다. 이 글은 크리스티나 A. 킬비(Christina A. Kilby)가 쓴 ‘강제이동과 책임에 대한 법률적 추론: 불교 승가의 규율과 국제 인도주의 법(IHL) 간의 대화(Legal Rea
티베트의 포탈라궁에 소장된 천수관음상은 정말 천 개 아닐까 싶을 만큼 빽빽하고 촘촘하게 새겨넣은 손들이 광배를 대신해 상 전체를 둥글게 감싸고 있다. 팔들은 크기를 달리하며 세 개의 층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렇게 팔들이 모여 만들어진 형상은 둥그런 원상이다. 얼굴도 그렇다. 정면의 얼굴과 합장한 두 손, 그리고 하나인 상체와 다리로 인해 우리는 이 상이 한 사람이라고 보게 되지만, 부가되고 중첩되는 얼굴과 손들은 한 사람의 신체라 할 수 없는 낯선 형상을 만든다. 하나이면서 다수인 다양체의 형상이다.사실 많은 수의 얼굴과 손을 가
감각과 생각 등 삶의 경험은 뇌를 자극하고, 뇌는 그러한 자극들에 대한 신경회로를 만들어 흔적을 남긴다. 마음도 그렇게 뇌에 흔적을 남기며 체화된다. 마음이 물질로 축적되는 것이다. 유식학에서는 훈습(薰習)된다고 했다. 흘러간 마음의 흔적이 뇌에 고스란히 쌓여 나의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은 곧 나의 이야기하는 자아(narrative ego)가 된다. 또한, 그 훈습된 흔적들은 마음의 씨앗[종자(種子)]이 된다. 경험하는 마음은 대상을 아는 인식이다. 인식 대상은 뇌의 마음거울에 상(image)을 맺고, 그 상을 뇌가 보아서 안다.
나는 최근 들어 부쩍 나이가 들어감을 느낀다. 몇 차례 반복해서 어떤 당혹스런 경험을 하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나의 가까운 지인이 나의 과거에 관한 것인데 내가 처음 들어보는 사실 하나를 무심코 말한다. 다행히 내게는 판단력이 조금 남아 있기에 그 말이 진실임을 눈치챈다. 그러나 곧장 의문에 휩싸인다. 그때 그곳에 있었을 리 없는 그 지인이 어떻게 나도 모르는 나의 과거를 알고 있는 것일까. 그의 대답은 예전에 내게서 들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증언으로 다시 옛 기억을 떠올린 것이 아니라 낯설음 속에서 그것을 받아들인다. 말하자
내가 인도 땅에 발을 처음 디딘 것은 1990년대 말엽으로 생각된다. 그해 가을, 뉴델리에서 개최되는 환태평양변호사회 이사회(Council Meeting)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여행 일정이 촉박하게 짜여진 탓으로 회의참석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인도까지 가서 세계 7대 불가사의라는 아그라(Agra)의 타지마할(Taji Mahal)을 찾아가 둘러보는 것 외에는 다른 여정(旅程)을 잡을 수 없었다. 내가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인도를 방문하여 성지순례를 한 것은 2003년 2월의 일로써, 그때 뉴델리에서 환태평양변호사회의
청소년들이 화합의 하모니로 선사하는 다양한 합창의 무대가 부산에서 열렸다. 부산파라미타청소년협회(총재 정오 스님, 회장 백명숙)는 11월5일 부산문화회관 대강당에서 ‘부산파라미타청소년협회 창립 27주년 기념 제14회 대한민국 청소년 합창제’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본선 5팀이 무대에 올라 합창곡을 선사했다. 이 자리에는 부산파라미타청소년협회 부총재 원타 스님(부산 선암사 주지), 지도위원 탄준 스님(법해사) 등 스님들과 백명숙 부산파라미타청소년협회장, 김석조 전 부산시의회 의장을 비롯해 내빈들과 본선 출전팀 및 출전팀을 응원하기
달라이라마 방한 추진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불교광장 총재(상월결사 회주) 자승 스님이 11월9일 서울 구룡사에서 티베트하우스재팬의 아리야 체왕 걀뽀 대표와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조계종 중앙종회 종책모임 불교광장 회동에서 ‘달라이라마 초청 법회’를 제안한 지 일주일 만이다. 이 자리에는 총무부장 성화, 사회부장 도심, 전 해외특별교구장 정우 스님(구룡사 회주), 티베트하우스코리아 원장 텐진 남카 스님이 배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무 차원에서 달라이라마 방한을 어떻게 추진할 지 구체화하기 위한 만남으로 관측된다. 정우 스님은 “종
안사의 난 이후 당은 급격한 쇠퇴기에 접어든다. 이때 서쪽 고원지대에 자리하던 토번이 세력을 확장하고, 돈황 일대(과주, 사주)는 약 60년의 토번 통치 시기(中唐. 781~848)를 맞이한다. 과주(瓜州)에 자리한 유림석굴 중 제25굴은 이러한 환경에서 조영된 석굴로서(822년 전후), 한문화와 토번문화가 공존하는 기념비적 석굴이다. 주실의 남북벽에는 각각 성당 시기(盛唐. 705~781)의 화풍을 계승한 무량수경변과 미륵하생경변이 아름답게 장엄되었다. 그런데, 주존상 뒤에 자리한 동벽의 벽화는 양식과 내용에서 모두 기존과 다른
불교사찰은 동물들로 가득하다. 한국의 사찰 대들보나 거기 걸쳐놓은 보, 기둥과 방이 만나는 곳 등에는 호랑이나 코끼리, 사자, 용, 물고기 등이 새겨져 있다. 태국의 수코타이에 있는 왓 창럼이나 왓 소라삭은 불탑 하단을 빙 둘러 코끼리가 받치고 있다. 미얀마의 아난다 사원에서는 입구나 모퉁이, 지붕이나 건물 상단 곳곳에서도 포효하듯 고개를 쳐든 사자를 볼 수 있다. 티베트의 조캉 사원 불전들의 벽 모서리에는 사자가, 지붕의 모서리에는 용이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불전이나 불단 주위에 모여들어 불보살의 설법을 듣고 있는 중생의 존재를
서울 홍제동 안산 자락 아래에 자리한 비로자나국제선원. 부처님의 가르침을 세계에 알리는 허브 역할을 자청한 이 선원을 세운 건 자우(慈禹) 스님이다. 강원과 선원, 스리랑카 유학 등으로 이어진 경학과 수행을 거친 후 인도네시아 해인사포교원 주지를 맡아 현지 포교에 매진했다. 스리랑카와 인도네시아에 머무르며 ‘한국불교의 세계화’와 ‘불교 인재양성’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2006년 10월 서울 무악재에 비로자나국제선원을 열었다. 어린이 영어 담마스쿨, 영어 담마캠프, 외국인 참선 등의 프로그램을 개발‧운영해 서울 도심 포교의 지평을 넓힌
자동차 운전을 하다 보면 보행자가 눈에 거슬리고, 반대로 내가 보행자가 되면 자동차가 거슬린다. 때로는 함께 달리고 있는 다른 자동차가 거슬리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는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한다. 내가 상대방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바로 그때 아마도 상대방도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할 것이다. 왜 우리는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볼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마음 깊은 곳에는 나를 기준으로 사실을 왜곡시키는 마음이 있다. 이 마음의 자기중심적인 활동은 아주 미세하게, 드러나지 않게, 그러나 집요하게 항상 일어나기 때문에 자기 자신도 모르게
동남아, 중국, 일본의 불교사찰에도 조각과 그림이 있기는 하지만 한국과 같이 벽과 천정에 온통 그림을 그려놓지는 않는다. 한국 사찰의 수많은 벽화와 조각들 중에는 주악도가 많다. 그 가운데 인도계열 주악도는 온갖 이야기들이 얽혀있다. 사찰 입구에서 비파를 타고 있는 간다르바가 석굴암에서는 소마가 담긴 물병을 들고 있다. 천상의 영약인 ‘소마’로 사람들의 병을 낫게 하는 그에게는 연신(戀神) 압사르바가 있다. 인도에는 “여자아이들이 16살이 되면 압사라와 같이 예뻐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압사르바는 미(美)의 상징이다. 간다르바는
불보살이라는 이상적 인물의 형상이 여성적이라는 점은 다른 종교와 대비되는 불교만이 특이성인 듯하다. 그리스에서는 신의 세계에서조차 최고신은 남성이다. 기독교의 신은 형상을 갖지 않지만 성부(聖父)로서 존재하며, ‘아버지’의 호칭을 가지며 남성으로 그려진다. 콧수염을 달고 칼을 든 이슬람 예언자의 모습 또한 그렇다. 이렇게 신이나 예언자가 남성적 형상을 갖는 것은, 세상을 만들고 그 세상을 지배하는 초월자에게 어울리는 형상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수많은 문화와 종교를 관찰했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불보살상의 여성적 형상을
대한불교진각종이 종조 회당 대종사를 기리는 자리를 마련했다.진각종(통리원장 도진 정사)은 종조 회당 대종사 열반 60주년을 맞아 10월16일 서울 진각문화전승원 무진설법전에서 ‘회당대종사 추념불사’를 열어 종조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서울 총인원 내 탑주심인당과 진각성존 회당대종사 열반지인 불승심인당, 탄생지인 울릉도 금강원, LA 불광심인당 등 국내·외 각 심인당에서도 60주기 열반절 불사를 일제히 봉행했다.추념불사에는 경정 총인예하를 비롯해 기로스승 혜정 정사, 수성 정사, 인의회 의원 덕일 정사, 통리원장 도진 정사, 현정원장
불교미술과 서양회화를 접목시킨 추상적 작품 세계를 펼쳐온 정윤영 작가가 열 번째 개인전을 연다.10월18일부터 11월7일까지 서울 갤러리채율에서 ‘레이어드 컬러(Layered Colors)’를 주제로 30여작품을 선보인다. 대학에서 불교미술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10년여간 일관되게 ‘식물을 통해 바라보는 생명력’을 작업의 주요한 주제로 탐색해왔다. 석·박사 과정서 서양회화를 전공하며 한국의 전통적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기 위한 고민을 깊이 있게 녹여내기 위해 조형 실험을 거듭했다.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업은 비단의 겉면에 동
범부들의 마음은 번뇌로 물들어 있다. 아직 깨닫지 못한 중생의 마음이다. 반면에 깨달음을 얻은 마음은 고요하고 평온하다. 번뇌에 물들기 전 우리 본래의 마음이다. 기원후 2세기 인도의 마명[馬鳴, 아슈바고샤(Asvaghosa)] 보살은 그의 저서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서 우리에게는 진여심(眞如心)과 생멸심(生滅心)이 있다고 했다. 진여심이란 맑고 청정하다고 해서 청정심, 부처님의 성품과 같다고 하여 불성, 여래의 씨앗을 간직하고 있다고 해서 여래장이라 한다. 반면에 생멸심이란 파도와 같은 산란하고 혼탁한 마음, 번뇌 망상으로
사방에서 명상(선)수행이란 말이 들린다. 젊은이들 사이에선 불멍, 물멍, 잠멍의 유사 명상이 유행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전국 규모의 멍 때리기 대회까지 열린다. 실로 온갖 형태의 마음 수행 열풍이 불고 있는 듯하다. 어떤 사람은 불교의 명상이 너무 진지해서 부담스럽고, 다른 어떤 사람은 각종 멍 놀이가 너무 장난 같아서 가볍다고 고개를 돌린다. 어디에나 그렇듯이 명상의 유행에도 빛과 그림자가 있을 것 같다. 이 글은 선불교에서 말하는 ‘선병(禪病)’의 역사적 맥락과 지식을 통해 지금 서구에서 불고 있는 명상 붐에 대해 주의를 당부하는
태국 불교사의 초기를 주도했던 수코타이 시대의 중요한 사원인 왓 마하탓은 사원 중앙의 좌불이 주불이지만, 그 뒤에 있는 수코타이 양식의 체디(불탑) 좌우에 사각평면의 두 몬돕을 세우고 그 안에 입불을 안치했다. 주불과 마찬가지로 흰색이 칠해진 두 입불은, 주불의 은은한 미소에 비해 좀 더 완연한 미소를 짓고 있다. 두 입불의 자세로 인해 허리에서 다리로 이어지는 선과 아래로 펴서 늘어진 팔의 곡선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런데 신체 전체의 형상을 조성하는 이 윤곽선은 대단히 유려한 여성적 곡선이다. 가슴에서 허리로 좁아들었다 골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