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에서 세운 첫 사찰인 초문사(肖門寺)와 이불란사(伊弗蘭寺)가 정확히 어디에 세워졌던 것인지는 기록이 없으나 아마도 당시 수도였던 국내성 안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구려에 불교를 전한 중국 전진(前秦)의 부견(符堅, 337~385)이 그가 존경하던 도안(道安, 312~385) 스님을 장안에 모셔 오고 나서 오중사(五重寺)를 세워 그곳에서 경전을 번역하게 했던 것을 보면 그러한 예를 따랐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고구려의 경우는 국내성이 평지성과 산성의 이중 체제를 구성했던 것으로 보고 있는 만큼, 산성 안에도 절이 세
지금은 도심 포교당이나 시민 선원이란 이름으로 한국의 도시에도 절이 하나둘 들어서고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절은 심산유곡에 있다. 처음부터 이렇게 한국불교와 도시가 소원한 관계였던 것일까? 그건 아니다. 신라 시대에는 황룡사가 수도인 경주 한복판에 위치하였을 정도로 불교와 도시는 밀접한 관계였다. 하지만 이후 선종의 도래, 풍수도참설(風水圖讖說)의 유포, 조선왕조의 숭유억불정책 등의 이유로 절은 도시와 멀어졌다.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불교가 사회와 물리적·정신적으로 단절된 은둔의 종교, 반사회적 종교, 염세주의적 종교라는 인상을 심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룬 뒤, 바라나시 녹야원에서 처음 법륜을 굴리기 시작한 이래 불교는 도시를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전파되었다. 인도의 전통 종교인 브라만교(婆羅門敎)는 주로 농촌에 탄탄한 기반을 이루고 있었다. 반면 불교는 무역과 상업이 발달한 도시를 중심으로 교세를 확장해 나갔다.붓다 시대의 고대 인도는 16대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중에서 2대 강국은 마가다(Magadha)와 꼬살라(Kosala)였다. 부처님은 주로 열여섯 나라의 수도와 중요한 도시를 왕래하면서 그의 가르침을 펼쳤다. 붓다 시대의 6대 도시는 마가다국의 수
인도문명사의 미스터리는 여러 가지를 손꼽을 수 있겠지만, 도시의 등장에 관한 의문도 그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대략 기원전 1500년경 인더스 문명기의 여러 도시가 사라져버린 이후, 도시의 흔적은 뒤이어 바로 나타나지 않는다. 다시 인도의 역사 속에 도시들이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천년이 흐른 뒤이기 때문이다. 그 비어버린 천년을 우리는 여전히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 기원전 500년 혹은 600년경 전후 불교가 등장할 무렵에야 수십여개 도시의 흔적들이 역사적 유물과 문헌을 통해 다시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 무렵의 신흥종교였던
“어휴, 관세음보살···.”‘미스트롯2’ 팀미션 최종결과가 발표되던 순간, 가수 은가은(35)씨는 자신도 모르게 관세음보살을 찾고 있었다.“당연히 편집될 줄 알았죠. 그런데 그대로 방송에 나갔더라고요. 그날 아마도 전국의 모든 스님들께 응원 메시지를 받은 것 같아요. 지금은 사찰행사마다 불러주셔서 ‘절통령’으로 등극했습니다. 하하하.”‘미스트롯2’에서 뛰어난 가창력과 비주얼로 단박에 ‘스타’의 반열에 오른 은가은씨. 하지만 그에게도 길고 긴 무명의 세월이 있었다. 무려 16년이었다.“5년 전, 그러니까 2018년이었어요. 활동을 해
올해 5월4일부터 개정된 문화재보호법이 시행되면서 전국 65개 문화재사찰의 무료입장이 가능하게 됐다. 문화재사찰 무료입장은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시행된 이후 61년 만이다. 조계종은 이날 전국 65개 사찰의 매표소 현판을 ‘불교문화유산 안내소’로 교체했다. 이에 따라 사찰과 탐방객들 간 갈등의 상징이 됐던 사찰 문화재관람료 매표소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58, 서울 마포을)은 문화재관람료 논란을 해소하는 데 앞장선 인물이다. 2021년 11월 “국가지정문화재의 유지관리 비용은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면
“나마스떼!” 이마에 붉은 빈디(Bindi)를 찍은 스리프리야 란가나탄(52) 주한인도대사가 환하게 인사했다. 강렬한 ‘원색’이 돋보이는 사리(Saree·인도 전통의상)를 둘렀지만 그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목에 길게 늘어뜨린 하얀색 ‘108염주’. 합장한 그의 손목에도 갈색 ‘단주’가 반질거렸다.란가나탄 대사는 “이건 통도사에서, 또 이건 송광사에서 스님들이 주신 것”이라며 “부처님 가피가 깃들어 제겐 아주 특별한 선물들”이라고 소개했다. 델리대학에서 역사학으로 학·석사를 취득한 란가나탄 대사는 1994년 인도 외무부에 들어갔다
“법보신문의 신행수기 공모 기사를 접하고 지난 신행생활을 되돌아보고 재발심의 기회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받게 돼 얼떨떨해요. 지금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모두 부처님의 가피입니다. 제가 그러했듯 많은 분들이 다른 이들의 신행수기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부처님께서 항상 함께하심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제9회 대한불교조계종 신행수기 공모에서 대상인 총무원장상을 수상한 김도연(지심화·44) 불자는 현재 조계종 불교음악원 사무장 소임을 맡아 불교음악의 발전과 대중화를 위해 정진하고 있다. 그는
“일에만 몰두해 살다보니 몸도 마음도 지쳐갔습니다. 말 그대로 고통의 나날이었죠. 그러다 아내의 권유로 조계사에 갔는데 요동치던 마음이 이내 편안해졌고, 환희심이 솟았습니다. 부처님을 만나 긍정적으로 변화한 제 경험이 많은 이들에 전해져 불연을 맺고 행복해지길 바랍니다.” 포교원장상을 수상한 이동엽(법연·64) 불자는 수기 ‘한쪽으로만 기우는 삶이 아니라 늘 그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그 마음’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통해 삶의 고난과 역경을 지혜롭게 이겨내며 불법의 소중함을 깨닫는 과정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부처님 가르침을 혼자만 알
“교직에 계실 때나 퇴임 후에도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는 데 누구보다 열정적이었고, 매주 가족법회를 열 만큼 신심 깊은 불자셨습니다.”올해 중앙신도회장상을 수상한 박종근(보각·73) 불자는 신행수기 심사 이틀 전인 4월17일 별세했다. 고인은 신심 돈독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심지 곧은 불자로 성장했고, 평생 도반인 아내를 만나 함께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데 앞장섰다. 고인의 장남 박재범씨는 “3월부터 중환자실에 계셨다”며 “잠시 의식을 회복한 후 처음 하신 당부가 컴퓨터에 저장된 신행수기를 제출해 달라는 말씀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부처님 법음을 전하는 포교사로서 품수 받았을 때, 그때의 마음을 잃지 않고 항상 노력하겠습니다.”법보신문 사장상을 수상한 송병화(반야행·61) 불자의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옷’은 포교사로 활동하며 느낀 감사함, 그리고 코로나19로 마주하게 된 어려움 등을 부처님 가르침으로 극복한 이야기다. 특히 ‘전법 ON’이라는 강령을 내걸고 봉은사에서 미타사까지 이어지는 순례와 승려대회에서 느낀 환희로움은 불자로서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송병화 불자는 “포교사로서의 초발심을 다른 불자들도 공유하고 전법의 길에 동참했으면 하는 마음에
“내 삶의 주체로 성장할 수 있게 도움을 준 여러 큰스님과 국제포교사로 제2의 삶을 열어주신 부산 홍법사 주지 심산 스님께도 존경의 삼배를 올립니다.”‘나의 신행 연대기’로 불교방송 사장상을 수상한 송희윤(자성지·64) 불자는 36년간의 교직생활을 마친 후 불법을 만나 국제포교사로 거듭난 제2의 인생을 수기로 풀어냈다. 불교용어를 능숙하게 영어로 설명하기까지 어려움도 많았지만 외국인 스님들의 법문을 들으며 꾸준히 공부한 결과다. 그는 “불자로서 아상을 가지면 안 되지만 수상 소식을 듣자마자 잠시 마음이 들떴다”며 “아상이 ‘하얀 거
“저처럼 남들보다 뒤처졌다고 생각하는 청년들에게 글로써 위로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통해 부처님 가르침을 접하고, 믿고, 따르는 과정이 얼마나 삶의 큰 힘이 되는지 깨닫길 바랍니다.”김승희(묘산·29) 불자는 대학 자퇴 이후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한 후 전법과 포교의 원력을 다지며 불자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풀어낸 수기로 동국대 총장상을 수상했다. 부처님 가르침에서 위로를 받고 고통을 마주하는 용기를 얻었으며, 전남대 불교동아리를 활성화시킨 과정, 나아가 대불련 광주지부장으로 활동하게 된 이야기는 한편의 성장 드라마를 보
“치료방법조차 없었던 폐암 말기 환자, 시한부 인생이었죠. 어리석은 중생은 못난 마음에 부처님과 불보살님들을 원망했어요. 하지만 마음을 바로잡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니 아픔보다는 즐거움과 행복함으로 가득 차더군요. 제 인생을 통해 불자라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할지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부처님 가피 덕분이니까요.”‘부처님께서 주신 두 번째 생명, 오롯이 회향하면서 살겠습니다’로 발원문 부문 교육원장상을 수상한 김정자(보련화·63) 불자는 “스님을 모시고 살면서 인생을 대하는 자세가 많이 달라졌다”며 “힘든 모습은
“막내아들 성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신행수기를 썼어요. 내세울 것도 없는데 당선됐다니 부끄럽습니다.”박현주(금강성·87) 불자의 원고는 특별하다. 그가 마음 속 얘기를 꺼내면 옆에 앉은 막내아들이 키보드로 한 글자씩 담아냈기 때문이다. 6개월 전 떠난 남편이 떠오르면 너나 할 것 없이 눈물 닦기 일쑤였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글을 써내려가는 모든 시간이 모자에겐 잊지 못할 순간이 됐다고 한다. 수기를 쓰겠다고 결심한 것은 코로나 시대로 사라져 가는 ‘온기’ 때문이었다. 그는 “마주하지 않아도 일상이 가능한 코로나시대가 되면서 아
“당선 전화를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너무 놀라 생각마저 멈추더라고요.”이상용(정도·65) 불자는 2010년 조계종 포교사고시에 합격한 뒤 12년째 어린이포교에 진력하고 있다. 1997년 외환 위기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불교를 찾게 됐다는 그는 “어린이들에게 불교적인 감수성을 심어주면 청년이 되고 위기가 왔을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어린이포교를 시작한 계기를 전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어린이법회가 취소되면서 그의 아쉬움은 짙어져 갔다. 그때 눈에 띤 ‘신행수기 공모’ 소식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더 열심히 정진하라는 격려로 삼겠습니다. 원력과 신심을 갖춘 참된 불자가 되어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는 데 더 강한 책임감을 갖겠습니다.”(사)자비명상 이사장상을 수상한 정효숙(진여정·60) 불자는 포교사단 대전충남지단 동부총괄팀장으로 활동하는 포교사다. 수기 ‘나의 간절한 기도가 꽃으로 피어날 때’는 11년째 새벽기도를 이어오면서 이웃을 위한 기도를 시작해 주변인과 소외이웃을 보살피기 위해 포교사가 된 과정을 풀어낸 이야기다. 정효숙 불자는 “불자들이 혼자서 불규칙적으로 수행하기보다 법향 가득한 도량에서 함께 수행하고 기도하길 바
“일상생활을 공개하는 것에 많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제 수기를 통해 불법을 접하고 자기 자신을 찾길 바라는 마음으로 동참했습니다.”포교사단 단장상을 수상한 양일옥(관음행·55) 불자의 ‘시방세계 부처님께 귀명합니다’는 일상에서 쌓여오던 마음의 상처들이 불교를 만나 치유되고, 가족과 이웃을 위해 전법에 나서게 된 내용이다. 양일옥 불자는 최근 불교를 심도 있게 공부하기 위해 동국대 불교학부에도 진학했다. 그는 “개인의 복만 바라며 기도한다면 불교를 제대로 알 수 없다”며 “공부를 통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거동이 불편한 여든다섯의 어머니가 용천사에 데려가 달라고 했습니다. 도량에 들어선 후 어머니 얼굴에 피어나던 환한 미소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자주 모시고 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이젠 이루지 못할 꿈이 되었습니다. 어머님을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발원문에 담아냈습니다.” 발원문 부문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김병찬 불자(무현·63)는 작고한 어머니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고 있다. 그는 “어머니는 자신보다 우리 모두를 생각해야 함을 강조하셨고, 손에 들어온 것은 무엇이든 나누었던 분”이라며 “이 상은 돌아가신 후에도 항상
제9회 조계종 신행수기 및 발원문 공모전의 신행수기 분야에는 일반 부문 60편과 교정교화 부문 54편 등 총 114편이 접수됐다. 이들 중 공동주관사인 법보신문사의 1차 심사를 통과한 일반 부문 22편과 교정교화 부문 26편에 대한 신행수기 본선 심사를 진행해 최종 수상작을 선정했다. 심사기준은 글 속에 담긴 감동, 바람직한 신행담, 작품의 진실성 등으로 정했다. 또한 기복적이거나 영험적인 내용의 응모작들을 선정 대상에서는 가급적 제외하기로 했다. 대상인 총무원장상은 김도연 불자의 ‘무아로써 ‘진아’를 꽃피우리’가 선정됐다. 이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