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교학 개론 우보익생만허공 중생수기득이익(雨寶益生滿虛空 衆生隨器得利益) 법성게의 한 구절이다. 허공 가운데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보배가 한없이 가득 차 쏟아지고 있는데 중생들은 자신의 그릇 밖에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뜻이다. 허공은 부처님 마음이고 몸이며 부처님나라지만, 중생들은 눈이 어두워 그 사실을 제대로 깨닫고 있지 못하다. 부처님나라는 무량한 보배로 가득 차 있으나 그릇의 크기만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부처님 문중을 그릇 키우는 문중이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남땅에 들어와 포교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신도들도 별로 많지 않아 어려움이 많을 때였다. 몇 명 안 되는 신도들의 기도금을 서랍 속에 넣어두었는데 다른 일을 하다
▲포교학 개론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변화가 불측해서 그렇게 잘해주고 친절히 해주는데도 멀어지는 사람이 있고, 전혀 냉정히 대하는데도 한없는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있다. 모두가 전생사 인연인가? 어떤 알 수 없는 인연이 작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몸과 마음을 다해 최선을 다하지만 사람과 사람사이의 만남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란 얘기가 떠오른다. 모두가 인연 따라 만나고 인연 따라 흩어지는 게 인생이라는데 포교를 하다보면 무엇을 잘못해서 그 사람들이 나오지 않는지, 무엇 때문에 저들이 저다지도 비난을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인생사가 그렇고 법당사가 그렇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또 떠나가기도
▲포교학 개론 포교에 관해 전문가들이 좋은 얘기들을 많이 하고 있다. 그러나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포교의 미래도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앞으로의 불교 포교가 절망적이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지금 이 상태로 결코 긍정적일 수 없다. 지난 20여년 간 내로라하는 큰스님들이 강남땅에 들어와 포교당을 만들고 힘을 기울이시다 모두 떠나셨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가. 포교를 숙명으로 아는 원력보살들에게 당부 드리고픈 말씀이 있다. 무엇보다 준비를 철저히 한 다음 시작하라는 것이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시작이 반이란 말을 즐겨 쓴다. 그러나 시작 두 번하면 끝이 나고 마는 것이 우리의
포교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포교하는 사람의 능력이 중요하다. 포교는 하나도 사람, 둘도 사람, 끝도 사람의 문제다. 때문에 제대로 된 사람이 포교를 해야 한다. 포교를 하려는 사람은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이다. 앵무새처럼 청산유수로 부처님 말씀을 전한다고 포교가 제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 가운데 부처님이 계셔야 한다. 내 마음 가운데 부처님 계심을 확연히 깨닫고, 부처님 마음이 되어 얘기해야한다. 부처님 말씀을 실천하고 체험한 바가 있어야 부처님 말씀을 제대로 전할 수 있다. 종교체험이 없는 포교는 제대로 설 수 없다. 전달된다 하더라도 수박 겉핥기에 지나지 않으리라. 부처님 세계를 체험하지 않고 부처님 말씀을 전할 때 무슨 힘이 있겠는가? 생각해 보라. 백두산을 그림으로만 본 사람, 얘기
선이 중요하지만 포교에 대한 인식도 바꾸어야만 한다. 산 생활을 하다 서울에 오면 들르던 신도님이 계셨다. 참으로 신심이 장하고 부처님과 스님들을 공양하는데 정성스러운 분이셨다. 어느날 ‘천수경’, ‘반야심경’ 등을 줄줄이 외우시면서 기도하시기에 그 내용을 알고 계신가 여쭤봤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무슨 뜻인지 물으니 머뭇머뭇하셨다. 천수경의 ‘도량청정무하예 삼보천룡강차지’가 무슨 뜻인가 여쭤보니 마찬가지였다. 불교신도로 생활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불자들도 개신교나 가톨릭 신자처럼 교리공부가 어느 정도 돼 있는 줄 알았다. 가톨릭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반드시 신도들을 모아 신부님, 수녀님이 교리강론을 한다. 일요일은 물론이고 교리공부 시간이 다양하게 전개된다. 이웃종교 신자들은 대부분 성경을 가슴에
▲포교학 개론 포교하겠다고 승려가 된 사람이 있을까? 모두가 하나 같이 ‘도인’이 되겠다고 먹물 옷을 입는다. 포교에 관한한 불교는 여타 종교와 사정이 다르다. 불교는 성불을 지고의 목표로 한다. 포교는 그 다음이다. 다른 종교인들은 하나님 되려고 종교를 갖지는 않는다. 성불을 지향하는 불교이기에 대부분의 신도들도 포교에 관한한 관심이 별로이다. 절에 다니는 불자들 가운데 절에 가자고 권하는 신도를 봤는가. 나는 승려가 되기 전 단 하루도 불자였던 적이 없다. 도피생활을 하다 산 속으로 스며들어 부처님 법이 좋아 승려가 됐다.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면서 ‘왜 이 같이 훌륭한 가르침이 펼쳐지지 않고 있는가?’ 참으로 이상했다. 아마도 내가 산속에 살던 도망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