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해외의 유명 작가나 디자이너의 전시도 많고, 박물관의 유물 전시도 마음만 먹으면 흔하게 볼 수 있다.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자극도 받고, 우리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시각예술에 있어 우리에게 서양미술의 유입이 100년 남짓하고 화가가 직업으로 인정받은 역사 또한 길지 않다. 수요자의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작품으로서 타인과의 교감을 추구하는 역사 또한 길지 않다. 역사적으로 근대화되면서 요즘 우리가 감상하는 그림과 작품과의 관계가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림
몇 년 전 서울 인사동 어느 전시장에서 열심히 작품을 설치하는 한 작가를 만났다. 작가는 철망과 철망을 케이블로 연결하는 설치작업을 한창 마무리 중이었다. 다른 작품들도 보니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거나 동대문시장에 나가면 쉽게 만날 수 있는 건축자재 중 하나인 다양한 굵기의 철망을 겹치거나 오려서 천장에 늘어뜨리는 작업과 종이 계란판을 재활용한 것들이었다.정열의 남미 작가가 보여준여백·선으로 이뤄진 동양미고착된 편견 깨뜨린 계기돼이날 만난 조니델 멘도사는 베네수엘라 태생의 작가다. 베네수엘라의 수도인 카라카스에서 꽤 인정받으면서
청색이 눈에 확 들어오는 그림이다. 김선형 작가는 유난히 푸른색을 전면에 내세운다. 모든 작품이 푸른색이다. 푸른색 안에서 농담과 번짐으로 붓의 힘과 청색을 녹인 물의 느낌이 함께 담는다. 한국미술에서 푸르름이란 무엇일까. 얼핏 떠오르는 것이 고려청자와 청화백자 같은 문화유산이다. 고려청자의 푸르름은 옥빛을 닮은 옅은 푸르름이다. 청화백자는 백자위에 푸른색의 안료로 그림을 그려 표현한 도자기다. 흰 백자의 유백색 바탕위에 과하지 않고 섬세하게 그려진 푸른색은 드러나는 화려함이 아닌 은은하고 유려한 호사를 느끼게 한다. 청색의 안료는
겨울이 되면 콧날이 쨍하고 볼이 얼얼하게 추운 날이 며칠씩 있다. 지구 온난화로 따뜻한 겨울이 이어지기도 하지만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겨울은 그렇게 콧날 쨍하게 추운 날들이다. 맑고 깨끗하지만 추운 날, 그래서 머리까지 얼얼한 날. 개인적으로 이렇게 정신이 번쩍 드는 겨울이 춥다 춥다 하면서도 좋다. 온몸의 신경이 추운 것에 곤두서 있고 아무 생각이 안 나서, 그래서 그 잠깐이나마 집중하니 머리까지 깨끗해지는 느낌이다. 드로잉으로 표현한 숲의 소재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 같아숲의 질감·느낌 더 크게 전달거기에 허윤희 작가의 그림처럼 메
나이는 ‘만’으로 하고, 해가 바뀌는 건 ‘설’이 지나야 한다고 말하는 요즘이다. 1월은 작년도 올해도 아닌 중간에 위치하며 무언가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달, 한껏 몸을 움츠렸다가 펼 준비를 하는 달로 여기고 마음의 평화를 찾고 싶다.물·먹이 닥종이에 스미는 모습생각과 물질이 하나 되는 과정사유의 결과물 그림에 담아내‘흐르는 島’라는 제목으로 최근 작업을 하고 있는 박은영 작가와의 인연은 1998년 ‘화화 畵畵’라는 한국화 전시를 통해서다. 이 전시는 당시에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한국화 양식과 내용면에서 동시대성을 담은 젊은 한국화
미술관에 들어서서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단번에 ‘아, 예쁘다’, 혹은 ‘징그럽다’ ‘따듯하다’ ‘무섭다’ 등등 짧은 인상을 받고는 쓱 스쳐 지나는 경우가 많다. 이나마도 어떤 느낌이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작품은 한 사람의 역사이고, 철학이다. 한 사람의 에너지를 담은 분신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모든 작품은 나와 교감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 나가는 감상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 과정이 명상의 과정과 닮아있다. 작품은 한 사람 역사·철학수묵화 작업과정 선종 닮아짙은 농묵으로 처리된 화면조용히 내면 보는 이 대조수묵화는 한번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