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통찰하여 그 근원에 있는 부처를 본다는 말이다. 선불교 초기에 남종선을 특징짓는 교의였다. 경전이나 누구에게 들은 말로 배우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보아 깨달음을 얻는, 당시로선 아주 특이한 득도의 방법을 요약하는 말이다. ‘불립문자’를 주장하며 팔만 경전을 내동댕이친 채 오직 마음을 보는 것만으로 깨달음을 얻으리라는 이런 주장이 많은 이들을 당황하게 했으리란 건 불을 보듯 뻔하다. 덕산 선감(德山宣鑑)이 특히 그랬다. ‘금강경’에 통달하여 속명의 성을 따
홍인과 혜능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시작된 선의 새로운 궤적은 흔히 말하듯 여래장 사상과 연속성을 이루는 것이라기보다는 여래장 개념과 거리를 두고 멀어지는 과정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단적으로 소의경전이 여래장 사상의 ‘능가경’에서 여래장 이전 경전인 ‘금강경’으로 바뀐 것이 그렇다. 이미 불교의 가르침이 많이 확산되어 ‘무아’의 가르침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고 보았던 것일까? 물론 이후의 선 역시 모든 중생들이 본래부처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것을 말하기 위해 ‘여러분 각자마다 여래의 씨를 감추고 있다’는 식으로 직접 말해주기보다
여래장 사상에 대해선 적지 않은 논란이 있다. 일본의 불교학자 마츠모토 시로(松本史朗)는 ‘여래장 사상은 불교가 아니다’라는 자극적인 명제로 유명한데, 이는 그의 저서 ‘연기와 공’에 붙인 부제이기도 하다. 주장의 요체는 “일체중생이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열반경’의 명제나 그것을 기반으로 나온 여래장이란 개념은 개개의 중생들 안에 불변의 실체인 아트만이 있다는 인도의 전통 브라만교의 주장이며, 모든 실체를 부정하는 불교와 상충된다는 것이다(‘연기와 공’, 운주사, 1998). 이런 관점에서 그는 ‘능가경’의 여래장 사상에 기반한
어디든 무언가가 새로운 게 시작되는 지점을 표시하는 사건이 있게 마련이다. 선(禪)이 시작되는 사건은 어디일까? 양무제(梁武帝)를 만나 법을 펴 보려다 ‘모른다’는 말만 남기곤 소림사에 들어가 누군가 말려들 때를 기다렸던 달마대사의 9년간의 면벽(面壁)? 아니면 그 면벽의 소문에서 어떤 냄새를 맡고 말려 들어가 눈 내리는 어느날 밤 팔을 하나 잘라 바치며 도를 구했다는 혜가의 구도(求道)? 그렇다고 할만하다.달마대사는 중국 선종의 1대 조사고, 그 제자인 혜가는 달마의 법을 이은 2대 조사니, 어쩌면 가장 쉽게 동의를 구할 법한 선
아상이란 사실 얼마나 강고한가? 사라졌다고 믿는 순간에도 의연히 살아남아 우리의 신체와 정신을 사로잡고 있는 게 아상이다. 그러니 아무리 세심하게 설득하고, 아무리 진심으로 수긍해도 사라지지 않고 부서지지 않는다. 선사들의 언행이 파격적일 뿐 아니라 저리 ‘과격한’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감각기관을, 신체 전체를 강한 당혹 속으로, 절벽 밑의 심연으로 밀어 넣는 강밀함 없이는 결코 깨부수어줄 수 없는 것이 아상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그래서 임제나 정상좌뿐 아니라 많은 선사들이 말 대신 할이나 방을 구사하고 뺨을 때리고 때론 손가락
학인의 전제, 자신이 속한 집단이 옳다고 믿고 있는 전제를 깨주는 선사들의 이 과격한 방법은 사실 불교의 근본에 충실한 것이다. 그들이 깨주려는 것, 자신이 옳다고 믿고 있는 전제란 바로 ‘아상(我相)’이기 때문이다. 아상을 내려놓는 것, 그것이 불교의 핵심적인 가르침 중 하나 아닌가! 그러나 그 말을 백번 옳다고 수긍해도 그것을 내려놓는 것은 극히 어렵다. 반대로 내려놓았다는 생각 뒤에까지 숨어서 어느새 세상일을 분별하게 한다. 모든 판단의 전제가 되어 매순간의 언행을 만들어낸다. 어느새 자신이 전제하고 있는 것으로 상대방을 설득
선어록, 다는 아니라 해도 이해할 수 없는 문답으로 가득 찬 책들이다. 불법을 전하기 위해, 도를 깨쳐주기 위해 선사들은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사용했다. 왜 그랬을까? 그뿐 아니다. 그들이 주고받는 언행은 대단히 과격하고 파격적이며 극단적이다. 소리를 지르고 몽둥이질을 하는 건 아주 흔한 일이다. 그래서 자비를 설파하는 불교의 가르침과는 아주 달라서, 종종 사람을 당혹하게 하기도 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등은봉(鄧隱峯)이 하루는 흙 나르는 수레를 밀고 가는데 스승인 마조도일(馬祖道一)이 다리를 쭉 펴고 길바닥에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