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너는 커서 나랏일을 하거나 재력 있는 집의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 그래서 평생 남편을 봉양하며 살아야 해. 알겠느냐?”“아빠, 나랏일이 뭐고 재력이 뭐야? 봉양?”“차차 일러주도록 하마. 지금은 이 아비 말을 명심하기만 하면 된다.”옹알이를 끝내고 말을 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파타차라는 결혼 이야기를 들었다. 결혼에 대해선 남자와 여자가 한집에서 같이 사는 것이라고 얼핏 알긴 했다. 하지만 나랏일이니, 재력이니 하는 말은 어린 파타차라에겐 어렵기만 했다. ‘그래도 아빠 말이니 꼭 그렇게 할 거야.’ 가물거리는 파타차라의 옛
“이보게. 저것 보이는가. 벌써 열흘을 넘긴 것 같은데. 백주대낮에 무슨 추태인가 그래.”“그러게 말일세. 가만히 앉아라도 있다면 모를까 하루 종일 똥 마려운 개처럼 돌아다니니 어딜가도 눈에 띄는구먼. 오늘도 재수 옴붙었네. 퉤.”시장통서 돌팔매질 당하면서모두들 미친여자 취급했지만붓다만은 그녀를 거두어들여두 노인이 거리 한복판 시커먼 물체를 손가락질했다. 못 볼 것이라도 본양 불쾌한 표정이었다. 그들만이 아니다. 사위성 시장통을 오가는 모든 사람이 얼굴을 찌푸리고 쳐다보았다. 고약한 악취에 더러는 코를 막았고 더러는 고개 돌렸다.
맛자가 승원에 당도한 건 어스름 내릴 무렵이었다. 쉼 없이 내달렸던 하인들은 승원이 보이자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미련한 것들.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당장 일어나지 못하겠느냐.”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하인들의 안색이 공포에 사로잡힌 듯 창백해졌다. 주인의 얼굴이 사람의 그것보다 짐승의 몰골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실핏줄 터진 눈에서 분노 서린 안광이 사방으로 튀어나왔고, 피부는 열에 들떠 붉으락푸르락했다.미소로 자신 맞는 딸에게서평화롭게 빛나는 별빛 만나딸 향한 욕망과 집착 벗어나“딸아. 나오너라. 나와서 보
‘따님께서는 집을 나선 뒤 쉬지 않고 걸어 동이 틀 무렵 승원에 도착하였고, 붓다라는 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먼발치에 있었기에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하였으나 따님의 표정이 점점 밝아지는 것만은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러곤 단도를 꺼내 스스로 머리카락을 잘랐는데, 한 올도 남김이 없어 민머리가 드러났습니다. 그때부터 태양이 중천에 오른 지금껏 눈을 감고 그 자리에 앉아있습니다. 하명을 기다립니다.’깊은 명상에 잠긴 아노파마감촉도 소리도 형상도 없어소식들은 맛자, 딸에게 향해아노파마가 집을 나선 이튿날 밤, 딸의 소식을 담은
“아노파마여. 네가 살아온 나날들을 보았다. 그리고 밤새 어둠을 밟는 소리를 들었다. 참으로 갸륵한 여정이었구나. 이제 마땅히 당도하여야 할 곳에 이르렀으니, 너를 옭아맸던 첫 번째 족쇄는 끊어졌다. 더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고 더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드디어 붓다 만난 아노파마자신 인도한 무엇 궁금해져머리카락 자르고 수행 정진 기쁨에 휩싸인 아노파마가 붓다의 두 발에 입을 맞추었다. 아득해졌던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이며 둥글게 모여들었다. 영겁과도 같던 직전 순간이 영원불변의 흐름
문을 열자 별빛이 바싹 다가왔다. 조심스레 손을 뻗어 별의 감촉을 어루만졌다. 시작도 없었고 끝도 없을 진리의 빛이 손끝에서 반짝였다. 목걸이와 팔찌를 빼고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흙으로 얼굴을 문질러 화장을 털어냈다. 덧입혀진 것들 벗겨져 헐거워진 육신이 바람 따라 한들거렸다. 다시 한 번 손을 뻗었다. 별빛이 반짝였다. 이제 더 이상의 망설임은 없을 것이다. 아노파마는 붓다가 계시는 곳을 향해 첫 번째 발걸음을 내디뎠다.속세 물건과 화장 털어내고붓다 향해 첫발걸음 내딛어벅차오르는 기쁨 온몸 흡수한참을 흐느끼던 맛자가
“아버님, 온갖 금은보화에 감싸여 손끝에 먼지 하나 닿지 않던 세월이었습니다. 산해진미에 입을 놀리며 진귀한 보석들로 몸을 치장하였고 하인들의 달콤한 말에 귀 기울였습니다. 그 무엇이든 가지 아니한 채 끌어올 수 있었으니, 저에게 부족함을 어디서 찾아볼 수 있었겠습니까.”풍족함 뒤 찾아오는 공허함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커져아버지 만류에도 구도 다짐“네 말이 맞고 또 맞다. 너는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풍족함을 누렸다. 이제는 공주가 되고 왕비가 되어 세상의 우러름까지 받게 될 터인데, 그와 같은 삶은 나조차 들어본 적 없구나.
“내 너를 키운 이야기를 하려면 7일 낮밤도 부족할 것이다. 혹여 바스러질까 행여 무너질까 안고 어르고 달래며 보낸 세월이 저 하늘 별빛처럼 선명하다. 네가 조금이라도 이 애비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고집을 꺾고 왕자와의 혼사를 받아들이거라.”세계 최고 거부 딸로 탄생눈부신 아름다움까지 갖춰높은 경지 위해 출가 결심맛자의 말투에 노기와 회한이 함께 서려 있었다. 그의 말대로 애지중지 키운 딸이었다. 딸 아노파마의 용모는 그 아름다움으로 날 때부터 온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희고 고운 살결, 우뚝 솟은 이마, 깊고 그윽한 눈빛, 베일 듯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수행자들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깊은 감동과 함께 불자로서의 원력을 발견한다. 고난과 역경을 씨앗 삼아 피워냈던 정진의 꽃송이가 수백 혹은 수천 년 지난 지금껏 향기를 퍼뜨리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으로부터 시작됐던 그 향기를 따라 오늘도 많은 이들이 깨달음으로 화현하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의 원력 또한 짙고 그윽한 꽃내음 되어 후대에 영감을 선사하게 될 터이니, 쉼 없이 정진하여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여성출가자 삶·수행 소개모진 시대에 얻은 깨달음섬세한 언어들로 가득해세대 뛰어넘는 영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