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저 세존께서 일대사인연으로 세상에 출현하시었으므로 그 뒤를 이어 승려가 되는 자도 또한 일대사인연으로써 속계(俗界)를 뛰어나서 진계(眞界)로 들어오게 되어 있으니, 그 일대사인연 상에서 각각 소장(所長)에 따라 그 목적을 달성하게 되면 보살이며 조사이며 선사이며 법사이며 화상이며 대사이며 비구라 하고, 속인으로부터 일컬을 때도 또한 도승, 고승, 종교인이라 하나니, 이렇게 여러 가지로 부르는 명칭이 세속 사람들의 부귀명예와 더불어 멀리 다른 것은 무슨 까닭인가? 고금천하에 출가하여 법을 구하려는 사람은 큰 대비원력으로 일대사인연을 계발하며 일대사인연을 이력하며 일대사인연을 구경하며 일대사인연을 응용하여 오직 일대사인연으로써 스스로 깨닫고 남도 깨우칠 뿐이고, 그 외에는 가히 구할 법도 없으며 가히 행
내가 먼저 실행한 뒤에 말을 하면 사람이 반드시 믿고, 내가 먼저 실행하지 아니하고 말을 하면 사람이 반드시 믿지 않나니, 믿지 않는 말을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범부의 말이요, 실답고 믿을 만한 말을 하는 것은 성현의 말입니다. 성현의 말을 듣고 실행하면 범부가 즉시 성현이요, 성현의 행을 행하여 성현의 언교(言敎)를 내리면 언교가 역시 성현이니, 그러므로 우리 범부는 성현의 언교를 힘써 배우고 본받아 행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성현의 언교가 방책(方冊)에 실려 있어 명백하게 지시하사 사람마다 보고, 듣고, 읽고, 외우지마는 실행하는 이가 드문 것은 어째서인가. 허물을 말하려면 하나 둘이 아니겠지만, 가장 큰 허물은 너무 널리 배우고 많이 듣는 것에 급급하여 마음과 뜻이 착란하여 요지를 체득하는데
사람마다 그 발밑에 하늘 뚫을 한 가닥 활로가 있는데, 여기 모인 대중은 과연 그 길을 밟고 있는가? 아직 밟지 못했다면 눈이 있으면서도 장님과 같아 가는 곳마다 걸릴 것이다. 보고 들음에 걸리고 소리와 빛깔에 걸리며 일과 이치에 걸리고 현묘한 뜻에도 걸릴 것이다. 그러나 한 번 그 길을 밟으면 이른바 칠통팔달이요 백천 가지를 모두 깨달아 밝히지 못할 것이 없고 통하지 못할 이치가 없을 것이다. 만일 그 길을 밟고자 하거든 이익이 있거나 없거나 시장(市場)을 떠나지 말라. 이제부터 대중을 위해 용심할 곳을 지시하리라. 보리달마 존자는 인도로부터 중국에 오셔서 오직 한 마음을 말씀하시고 한 법만을 전하셨다. 부처로써 부처를 전하신지라 다른 부처를 말하지 않으셨고, 법으로써 법을 전하신지라 다른 법을
도를 닦는다는 것이 무엇인고 허니, 마음을 모으는 거여. 별거 아녀. 이리 모으나 저리 모으나 무얼 혀서든지 마음만 모으면 되는 겨. 하늘천 따지를 하든지. 하나둘을 세든지, 주문을 외든지 워쩌튼 마음만 모으면 그만인겨. 나는 순전히 ‘천수대비주’로 달통한 사람이여. 꼭 ‘천수대비주’가 아니더라도 ‘옴 마니반메훔’을 혀서라도 마음 모으기를, 워찌깨나 아무리 생각을 안 하려고 혀도 생각을 안 할 수 없을 맨큼 되는 겨. 옛 세상에는 참선을 혀서 깨친 도인네가 많았는디, 요즘에는 참 드물어. 까닭이 무엇이여? 내가 그 까닭이 무엇이여? 내가 그 까닭을 말한 것인게 잘 들어봐. 옛날 스님들은 스스로 도를 통하지 못했으면 누가 와서 화두참선법을 물어도 “나는 모른다”며 끝까지 가르쳐주들 않았어. 꼭 도를
홀연히 생각하니 도시몽중이로다/ 천만고 영웅호걸 북망산 무덤이요/ 부귀문장 쓸데없다 황천객을 면할소냐/ 오호라 나의몸이 풀끝에 이슬이요/ 바람속에 등불이라 삼계대사 부처님이/ 정령히 이르사대 마음깨쳐 성불하여/ 생사윤회 영단하고 불생불멸 저국토에/ 상낙아정 무위도를 사람마다 다할줄로/ 팔만장교 유전이라 사람되어 못닦으면/ 다시공부 어려우니 나도어서 닦아보세/ 닦는길을 말하려면 허다히 많건마는 대강추려 적어보세./ 앉고서고 보고듣고 착의긱반 대인접화 일체처 일체시에/ 소소영영 지각하는 이것이 무엇인고/ 몸둥이는 송장이요 망상번뇌 본공하고/ 천진면목 나의부처 보고듣고 앉고눕고/ 잠도자고 일도하고 눈한번 깜짝할세/ 천리만리 다녀오고 허다한 신통묘용/ 분명한 나의마음 어떻게 생겼는고/ 의심하고 의심하되 고양이
우리들이 생사의 중요한 중대한 갈림길에 놓여있을 때 오직 두 가지 힘에 좌우됩니다. 하나는 마음의 실마리가 여러 갈래로 복잡하게 엉클어진 가우데 무거운 쪽으로 치우쳐 떨어지게 되니 이것이 곧 심력(心力)입니다. 다른 하나는 마치 사람이 남한테 빚을 많이 진 것과 같으니, 이것이 바로 업력(業力)입니다. 업력이 가장 크지만, 심력은 더욱 큽니다. 업장은 본디 자기성품이 없어 온전히 마음에 의지하지만 마음은 업을 지을 수도 있거니와 업을 뒤바꿀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심력은 오직 묵직하고 업력은 오직 강하여 중생을 끌어갈 수 있습니다. 만약 묵직한 마음으로 정토수행을 닦는다면 청정한 업이 강해질 것이며 마음이 묵직하고 청정한 업이 강하니 오직 서방정토를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중
1. 청나라에 이어 손문이 세운 중화민국 시기의 불교에 대한 설명으로 타당하지 않은 것은? ① 청조의 붕괴는 이들의 정치이념인 유교주의 붕괴와 쇠퇴로 이어진다. ② 청말 동란기 불교가 심한 압박을 당하자 천동사 경안은 불교보호운동을 일으키며 ‘중국불교총회’를 결성한다. ③ 중화민국 시기에 중국공산당이 결성돼 종교는 아편으로 매도된다. ④ 신독수, 호적수 등은 중국 불교회를 조직해 ‘사묘관리조례’를 촉구했다. 2. 손문의 중화민국 시대에 태상추의 ‘묘산흥학운동’이 배불의 직접적인 근거가 된다. 당시의 사회적 여파에 맞불려 발생했던 주장이 아닌 것은? ① 구문화 부흥운동 ② 종교부정의 공산사상 ③ 국가재정과 교단타락 ④ 미신타파운동 3. 중화민국의 사회적 배불운동에 불교도들은
법의 성품은 원융하여 두 가지 모양이 없나니 모든 법이 움직임이 없어 본래부터 고요하다 이름 없고 모양도 없어 온갖 경계 끊겼으니 깨달은 지혜로만 알 뿐 다른 경계 아니로다 참된 성품 깊고 깊어 지극히 미묘하나 자기 성품 지키잖고 인연따라 이루더라 하나 중에 일체 있고 일체 중에 하나 있으니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라 한 티끌 그 가운데 시방세계 담겨있고 일체의 티끌 속도 또한 다시 그러해라 끝이 없는 무량 겁이 곧 일념이요 일념이 곧 끝이 없는 겁이어라 구세 십세가 서로서로 섞였으되 잡란 없이 따로따로 이뤘어라 처음 발심 하온 때가 정각을 이룬 때요 생사와 열반이 서로 서로 함께 했고 이와 사가 그윽히 조화하여 분별할 것 없으니 열 부처님
오호라. 불법이 점점 쇠약해지는데 부처님 가신 지는 더욱 멀어지는구나. 비록 머리 깎고 먹물 옷 입은 사람은 많으나 도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더욱 희귀하구나. 명예와 이익 다투는 것을 본분으로 삼고 불법을 유통하는 데는 아이들 장난으로 삼으니 마침내 법문의 문을 여는 이는 드물고 교법이 쇠퇴해지는구나. 진실로 뒷사람에게 힘을 주고자 하면 이 도를 굳게 걸머져야 한다. 너희들은 마음을 비우고 법문을 듣고 몸을 깨끗이 하고 스승을 의지해서, 가깝게는 자신의 이름을 떨치고 멀리는 성인이 되기를 기약하여라. 그러므로 몸을 닦고 말을 행동으로 실천하되 처음과 끝을 한결 같이 하라. 학문을 부지런히 하고, 행동을 삼가해 악한 벗을 보거든 호랑이를 피하듯이 하고, 어진 벗을 만나거든 부모를 섬기듯이 하라.
1. 명대의 불교를 설명한 것이다. 그 내용이 틀린 것은? ① 명대의 불교는 교학적으로 당송 이후의 사상을 계승하고 제종융합의 통합불교가 된다. ② 명대의 불교는 원나라시대에 라마교에 억눌린 종전의 불교가 재차 부흥하게 된다. ③ 명대의 지식계급은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연구하고 신앙하였다. 또 불교가 쉽게 민중들에게 이해되어 참다운 중국불교가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④ 명의 역대 황제들의 단속으로 교단의 고정화를 가져 왔다. 2. 명대의 불교학자로서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명말의 사대고승을 들 수 있다. 이에 대한 스님으로 맞지 않는 것은? ① 운서주굉 ② 초석범기 ③ 감산덕청 ④ 우익지욱 3. 명대의 사대고승의 한사람인 감산덕청은 불교사상의 입장에서 유교, 도교의 전적을
‘삶을 성숙시킨다’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처음 수행에 입문할 때 우리는 삶의 비밀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지도 못하면서 그것을 말하며 얼마만큼 삶을 성숙시킬 수 있는지도 거의 모른다.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궁극의 차원으로 이끌어줄 삶의 비밀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다. 당신은 어느 정도 차원까지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는지 이해한 다음 그 계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삶을 성숙시키는 행위가 인생을 최상으로 이끈다는 감을 잡고 있기만 해도 수행이 좀 수월할 것이다. 그것은 모든 문제와 고통을 넘어선다는 것, 즉 모든 의미와 차원을 초월한다는 뜻이다. 이전에 ‘고(苦)’란 낱말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고를 고통, 근심, 걱정, 갈등, 절망 등 삶을 방해
사랑이 끈끈하지 않으면 사바고해에 태어나지 않으며, 생각이 한결같지 않으면 극락세계에 왕생하지 못한다. 사바세계는 더러운 땅이며 극락세계는 깨끗한 곳이다. 사바세계의 수명은 유한하며 저곳의 수명은 무한하다. 사바세계에는 모든 고통이 두루 갖춰져 있지만 저 곳에서는 어떠한 고통도 없다. 사바세계에서는 업장에 따라 생사고해를 윤회하지만, 저곳은 한번 왕생하면 영원히 무생법인을 증득하며 만약 중생을 제도하길 원하면 어떠한 업장에도 얽매임 없이 뜻대로 자유자재롭게 할 수 있다. 두 곳의 깨끗함과 더러움, 수명의 장단, 괴로움과 즐거움, 생사윤회 등이 이처럼 천양지차로 판연히 다르다. 그런데도 중생들이 까마득히 모르고 있으니 이 어찌 슬프지 아니하리요? 아미타부처님께서는 극락정토에서 중생들을 거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