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학위 실력 기준으로 여기는 사회얼짱이 인생에 영향, 본질적으론 같아 한국인의 근본주의적(원리주의적) 심리의 양면성이 전에 언급되었다. 이 심리는 명분주의와 함께 간다. 근본주의는 어떤 정신의 근본원리를 중시하는 장점을 갖고 있는 반면에, 또한 구체적 내용이 없는 공허한 추상적 원리의 이념에만 매달리는 단점을 안고 있다. 마찬가지로 명분주의는 어떤 일의 이념적 정당성을 대의명분으로 중시하는 유교적 전통이겠다. 명분이 뚜렷하지 않으면, 하는 일에 대한 지지를 얻기 어렵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일의 정당성을 내세우기 위하여 사람들은 명분을 조작한다. 나는 우리가 이 명분적 정당성을 얻기 위하여 도처에 허위의식을 그럴싸하게 꾸며왔다고 생각한다. 단적인 예로 사리사욕 때문에 자신의 소속정당을 하루아침에
종교적 광신의 단세포적 작태는 유치의 극치참다운 전도는 인간의 신성 깨닫게 하는 것 한국인의 신바람 기질이 동시에 광기의 독을 분비한다는 것을 지난번에 말했다. 그 광기의 독이 우리 사회에 정치적 열광과 종교적 광신의 작태로 나타난다는 것도 지적되었다.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미쳐 날뛰는 단세포적 광신은 이미 고황(膏)에 깊이 든 한국병이다. 종교가 격정적으로 되어간다. 격정적 신앙이 바로 광신의 작태다. 종교가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종교의 해악이 인류사에서 종교의 선행 못지 않게 많다. 종교가 인간에게 편견과 증오심과 아집과 권력의 지배의지를 불러일으킨 사례가 너무 많다. 우리는 종교적 광신의 단세포적 작태를 유치의 극치라고 이제 인식하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사회가 한 단계 수준이
전 관장의 수련관 운영권 주장으로 운영에 진통을 겪고 있는 서울 파라미타청소년협회 강남구립 역삼청소년수련관(관장 진정순)이 7월 26일 기자회견을 갖고 수련관 운영 정상화 방안을 밝혔다. 역삼청소년수련관이 이날 밝힌 정상화 방안은 크게 세 가지로 △공정한 인사 △불교 청소년 지도자 육성 △재정 안정화 등이다. 먼저 법인에서 직원을 공채 채용 후 파견하거나 파라미타 중앙본부가 확보하고 있는 청소년 지도자를 발굴해 채용할 계획이다. 또 입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명상, 참선, 요가 교실과 선과 명상을 결합한 상담활동을 비롯해 인근 지역 학교와 연계한 방과후 학교를 운영해 저소득층 청소년들에게 무료로 배움의 길을 열어 줄 방침이다. 7월 25일 기준으로 미확인된 금액까지 1억여 원의 적자는 서울 파라미타
편가르기-증오심은 한국인 숙업흑백논리 극복 위한 화쟁사상 절실 이 글은 지난번 한국인의 대등적 평등병과 같은 맥락을 지니고 있다. 부처님이 설파하신 평등이 대등이 아니듯이, 부처님이 가르치신 동일성은 상호 상관성을 띤 차이의 개념인 상관적 차이를 뜻한다. 우리는 보통 부부싸움이 칼로 물 베기와 같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 부부는 동일한 생각과 감정을 향유하지 않는다. 모든 싸움은 다 상처를 남긴다. 친한 사이라고 말하는 이들의 행태를 보면, 이들은 입안에 들어간 것도 서로 나누어 먹을 만큼 지낸다. 그러다가 갑자기 사이가 뒤틀어져 서로 외면하고 원수처럼 지내는 것을 나는 수없이 목도했다. 같다고 너무 엉키고, 다르다고 너무 척 진다.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에게 이런 감정상의 동/이(同/異)가 너무 뚜
부처님은 차별 거부한 평등적 사유 첫 인물자기 직업에서 달인이 되는 게 불교적 평등 불교가 인도에서 내몰린 이유중의 하나가 불교가 지닌 평등사상 때문이라고 불교학자들은 말한다. 카스트로 제도화된 힌두이즘의 계급을 가장 먼저 타파하신 이가 석가모니다.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에서 지계제일로 평가돼 온 우바리 존자는 궁중이발사로 인도의 카스트 중에서 가장 천민인 수드라 계급출신이었다. 우바라 존자가 출가한 이후에 뒤에 출가한 왕족들이 그에게 경배한 것은 힌두이즘의 사회통념상 획기적인 일이다. 그는 불멸후에 마하 가섭 존자를 중심으로 오백여 제자들이 칠엽굴에 모여서 제일차로 부처님 말씀을 결집할 때에, 주로 율장을 엮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한다. 부처님은 이처럼 직위나 계급, 학식과 재산의 유무로
감정 절제보다 남발이 現 한국인 모습수행으로 흔들리지 않는 안목 갖추어야 한국인은 유달리 희로애락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민족인 것 같다. 내가 아는 벨지움의 어느 작고한 화가는 한국인과 일본인을 비교하면서 한국인은 일본인과 달라서 스파이행위를 거의 할 수 없는 체질을 타고 난 민족 같다고 지적한 바가 있다. 왜냐하면 한국인은 단번에 그의 감정을 얼굴에 100% 노출시키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슬퍼서 울어도 몸을 비틀고, 우스우면 기절할 정도로 명랑하다가, 화를 잘 내다못해 홧김에 엉뚱한 짓을 자행하고, 식당에서 여자들끼리도 악을 쓰면서 수다떤다. 감정을 절제하기 보다 오히려 감정을 폭발하는 쪽이 일반적인 한국인의 생활모습인 것처럼 보인다. 데모를 해도 아주 극렬하다. 그래야만 데모
우리사회에는 단세포적인 흑백논리 만연불교계도 단순가치 휘말릴 것 같아 아쉬워 근본주의는 본디 기독교의 신앙에서 성서에 적혀 있는 말씀 그대로 일점일획도 고침이 없이 사고하고 행동하려는 교리를 말한다. 근본주의는 불변의 신앙 원리를 위하여 시류에 아부하는 것을 싫어하는 점을 지니고 있으나, 일체의 창조적 유연성을 배격하는 어리석음에 빠질 우려가 더 크다. 한국의 전통문화에서 저 근본주의적 태도는 주로 명분주의적 집착과 상통하는 것 같다. 일종의 주자학적 근본주의가 우리의 정신문화를 상당히 긴 시간동안 지배해 온 것으로 보인다. 지금이 언제인데 주자학적 명분론이 우리의 일상생활의 사고방식에 아직도 영향을 미치는가 하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지금은 주자학 시대가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주자학적 근본주의가
한국인의 恨은 저력-모략 가능성 동시에 지녀기복 우습게 여기지 말고 긍정적으로 유도해야 한(恨)의 심리는 신바람이 일어나지 않는 마음의 허전한 결핍감이 마음에 남긴 어떤 심적 외상(外傷=traumatism)인 것으로 보인다. 신바람이 한국인의 적극적 심리상태를 반영한다면, 한은 한국인의 결핍적 심리상태로서 욕망의 좌절처럼 보인다. 한국인의 한은 일본인이나 중국인의 것과 좀 다르다. 일본인이나 중국인에게 한은 복수를 하지 않을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에 대한 증오감을 표현하는 것 같다. 그들은 한을 갚기 위해 적극적 복수를 결행하고, 복수극이 끝난 다음에 스스로 자결하는 그런 비극의 스토리를 갖고 있다. 한국인의 한풀이는 상대방에게 정면승부를 걸지 않고, 다분히 음성적인 면을 지닌다. 그래서 우회
‘신바람’은 한국문화의 특징이자 저력열정 지혜롭게 쓰도록 불교계 이끌어야 지난번부터 우리는 한국인의 역사적 업과 불교사상의 대응문제를 살펴보고 있다. 금주는 신바람의 업과 불교문화의 대응방안을 훑어보려 한다. 무의식에서는 이중적 성격이 한 묶음으로 작용하고 있듯이, 업도 그러하다. 좋게 보면 모든 업은 선업을 증장시키지만, 반대로 그것은 업장을 야기시키기도 한다. 신바람도 이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신바람의 업을 짙게 띠고 있는 것 같다. 무속적 샤먀니즘의 영향으로 그런 것 같다. 한말의 종교사학자인 이능화가 이 점을 이미 설파했다. 신바람 또는 신명(神明)은 무속적 제정(祭政) 일치시대인 고대 한국문화의 생리를 단적으로 표시한다. 부여의 영고, 동예의 무천, 고구려의 동맹, 마한
순수성도 지나치거나 모자라면 독약청정하되 으쓱대지 않는 연꽃 닮아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윤동주의 유명한 「서시」의 몇 구절이다. 사춘기의 소녀들이 가장 애송한다는 시다. 사춘기의 소녀들은 가장 순수하고 지순하다. 서정주의 유명한 시 「동천」을 옮긴다.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동지섣달 날으는 무서운 새가/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두 시는 다 순수의 해맑음을 노래하고 사랑한다. 윤동주의 시는 머나먼 거리에 인간의 손때가 묻을 수 없는 순수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세속의 바람에 상처
부처와 중생은 사고방식-태도 차이우리 민족성 선용은 한국불교 과제 ‘성격이 운명’이라고 고대 그리스의 비극 시인인 아이스퀼로스가 말했다. 확실히 인간의 성격이 그의 운명이고, 그의 미래적 기획이다. 운명은 받은 것이고, 기획은 자유로운 행동이다. 자유로운 행동도 백지에서 그려지는 것이 아니고, 성격의 틀을 통하여 빚어진다. 이 세상에 부처가 되기 전에 온전히 무염한 중생의 성격이 없고, 또 중생의 성격 속에 여래장이 깃들어 있기에 온전히 저주받은 중생의 성격도 없다. 중생의 성격을 두고 100% 시비와 선악으로 판단하는 것은 여법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그 성격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화신불로서 석가모니불이 이 땅에 오신 까닭은 중생들에게 어떻게 마음을 활용하여 부처
서구 종교-철학 한계로 불교 관심 급증생활불교-의식·경전 한글화 서둘러야 세계사가 친불교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지금 서구에서 교회에 나가는 신자가 거의 없다는 사실은 서구적 종교와 철학의 자기 한계를 서구인들이 의식했기 때문이다. 이 좋은 시절인연에 한국불교는 여전히 미적거리는 것 같다. 불교가 한국불교사에서 일대 큰 혁명을 이룩하지 않으면, 다가오는 시절인연을 외면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될 것이다. 불교사의 혁명을 기할 고승대덕의 출현이 그립다. 한국의 역사를 구원할 그런 종교로 불교가 거듭 나아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먼저 불교는 한국인의 사고방식을 바꿔야할 사명감을 의식해야 한다. 불교는 전지전능한 슈퍼파워를 믿는 종교가 아니고, 우리의 일상적 사고방식을 부처의 사고방식으로 되돌리게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