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다라, 2~3세기 경, 스와트박물관, 파키스탄 출가를 결행한 싯다르타 태자는 부처님이 되기 위한 보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성을 떠날 때 동행했던 마부 찬나와 애마 깐타까와의 이별이 다가왔다. 그들과 이별하기 전에 보살은 태자로서의 위엄의 상징이었던 수염과 머리카락을 잘랐다. 보살은 수염과 머리칼은 깎았으나 몸에는 여전히 궁에서 입던 보배로 장식된 옷이 걸쳐져 있음을 깨달았다. “집을 떠난 이의 옷으로서는 적당하지 않구나.” 그때 마침 제석천은 가사를 입고 손에 활과 화살을 든 사냥꾼 모습으로 변해 보살 앞에 나타났다. 보살은 사냥꾼에게 “그대가 입은 옷은 옛날 모든 부처님들께서 입던 것인데, 무엇 때문에 이것을 입고
▲ 간다라, 2~3세기 경, 페샤와르박물관, 파키스탄 싯다르타 태자가 샤카족 청년들과 무예를 겨루기 위해 활쏘기와 씨름 등을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태자가 활쏘기 시합에 참가하는 도중에 일어난 사건이 바로 코끼리를 한 손으로 던졌다는 일화이다. 어느 날 숫도다나왕은 ‘나의 아들이 총명해 글과 산수를 잘한다는 것은 사방에서 모두 알겠지만, 활쏘기 재주만은 백성들이 아직 잘 모를 것이다’라고 생각하고는, 7일 후에 무예 시합을 개최한다고 온 나라에 알렸다. 7일째 되던 날 데와닷따는 많은 무리와 함께 맨 먼저 성을 나오는데, 큰 코끼리가 성문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그러자 그는 혼자 코끼리에게 다가가 손으로 코끼리
▲ 나가르주나꼰다, 3~4세기 경, 인도 국립뉴델리박물관 숫도다나왕이 아들 싯닷타 태자를 데리고 석가족들이 믿던 신을 모신 사당(祠堂)에 참배한 이야기는, 경전마다 순서가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방광대장엄경’은 관상을 본 이후에 일어난 사건으로 표현했다면, ‘수행본기경’을 비롯한 여러 경전은 관상을 보기 이전에 먼저 사당을 참배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태자의 탄생과 함께 태자에게 심부름 할 많은 남아, 여아, 말들도 태어났다고 한다. 여러 석가족 장자들이 와서 숫도다나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이제 태자를 모시고 사당에 가서 언제까지나 길(吉)하기를 기원드리고자 합니다. 왕은 허락하여 주십시오.” 태자가 사
▲나가르주나꼰다, 3~4세기 경, 인도 국립뉴델리박물관. 룸비니에서 태어난 후 7일 만에 어머니를 잃은 싯닷타 태자는, 아버지 숫도다나왕과 함께 까삘라왓투(Kapilathu, 迦毘羅國)로 돌아왔다. 그때 히말라야 산 속에 살고 있던 아시따(Asita) 선인은, 어느 날 도솔천의 신들로부터 중생의 안락과 이익을 위해 위대한 인물이 룸비니에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그는 신들이 찬탄하는 이를 보고 싶어 누이의 아들인 날라까(Nalaka)를 데리고 까삘라왓투에 도착했다. 숫도다나왕은 아시따 선인이 아들을 만나고 싶어 그곳에 왔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그를 정중이 맞아들였다. “거룩한 아드님을 뵙고 싶습니다.” 아시따 선인이 말하자, 숫도
▲나가르주나꼰다, 3~4세기 경, 국립뉴델리박물관 지난 호까지는 부처님의 과거생 이야기인 본생(本生)에 관한 미술을 주로 소개했다. 이번 호부터는 작년 한 해 동안 부처님의 일대기를 연재하면서, 한정된 시간 때문에 다루지 못했던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부처님의 탄생은 불전미술(佛傳美術)의 중심 소재가 되었고, 나라마다 시대마다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화창한 봄날 친정으로 향하던 마야 왕비는 룸비니 동산에서 산통(産痛)을 느끼고는, 나무 가지를 잡고 선 채로 아기를 낳았다. 부처님의 탄생은 중생의 모든 근심을 잠재울 것을 암시하기 때문에, 그 나무를 무우수(無憂樹)라고 불렀다. 남인도의 나가르주나꼰다 절터에서 발견된 ‘부처님의 탄생과 칠보(
▲ 바르후트 탑, 기원전 1세기 경, 국립뉴델리박물관 이 전생이야기는 부처님께서 죽림정사에 계실 때, 아난다 존자가 부처님을 위해 몸을 버린 것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Jātaka No. 389). 어느 날 아난다는 코끼리가 부처님을 해치려고 달려 왔을 때 부처님을 위해 몸을 바친 일이 있었다. 비구들이 이 일을 서로 이야기 하자, 부처님께서는 “아난다가 나를 위해 몸을 바친 것은 지금만이 아니고, 전생에도 그러했다”고 과거의 일을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옛날에 보살은 바라문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성장하자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아 많은 땅을 경작하게 되었다. 어느 날 논에 일하러 간 보살은, 금빛게가 살고 있는 연못가에서 세수를 했다
▲ 바르후트 탑, 기원전 1세기 경, 꼴까타 소재 인도박물관 이 전생이야기는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어리석은 구가리(Kakalika)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Jātaka No. 272). 어느 날 구가리는 기원정사로 가서 사리불(Sāriputta)과 목건련(Moggalanna)에게 함께 구가리국으로 가자고 청했으나, 그들에게 거절당했다. 이 사건을 전해들은 부처님은 구가리가 그들에게 거절당한 일은, 지금 뿐 아니라 과거에도 있었음을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옛날 보살은 어떤 숲 속의 나무신으로 있었다. 그 가까운 숲 속에도 큰 나무에 어리석은 나무신이 살고 있었다. 나무신들이 살고 있는 숲속에는 사자와
▲ 바르후트 탑, 기원전 1세기 경, 꼴까타 소재 인도박물관 이 전생이야기는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꼬살라국 국왕의 칼 상(相)을 보는 코를 베인 어떤 바라문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Jātaka No. 126). 옛날 바라나시에 왕의 칼 상을 보는 어떤 바라문이 있었다. 어느 날 칼집에 후추가루를 넣은 칼의 상을 보던 바라문은, 후추가루 때문에 재치기를 하다가 코를 베이고 말았다. 코를 다친 바라문을 위해 왕은 의사를 보내 납으로 코를 만들고, 그를 시자로 삼았다. 아들이 없던 왕에게는 딸과 남자 조카가 있었는데, 성인이 되자 둘은 사모하는 사이가 되었다. 왕은 처음에는 둘을 결혼시켜 조카에게 왕위를 물려줄
▲ 바르후트 탑, 기원전 1세기 경, 꼴까타 소재 인도박물관 이 전생이야기는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여자 때문에 고민하는 어떤 비구를 깨우치기 위해 말씀하신 것이다(Jātaka No. 436). 부처님께서는 전생에 어떤 아수라가 여자를 상자에 넣은 채 배 속에 넣어 보호했지만, 결코 보호할 수 없었던 과거의 사건을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옛날에 보살은 선인(仙人)으로 태어났다. 애욕을 멀리하고 깊은 산 속에 들어가 수행한 선인은 신통력을 얻게 되었다. 선인이 살고 있던 곳 근처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아수라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가끔 보살에게 와서 법을 듣곤 했다. 어느 날 아수라는 친정에 갔다 돌아오는 미모가 뛰어난 한 여
▲바르후트 탑, 기원전1세기 경, 꼴까타 소재 인도박물관 이 전생이야기는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어떤 나이든 수행자를 일깨우기 위해 말씀하신 것이다.(Jātaka No. 372). 그 수행승은 어떤 아이를 출가시켰고, 사미승은 그를 존경하며 몹시 따랐다. 그런데 어느 날 사미승은 병이 들어 그만 죽고 말았다. 슬픔에 잠겨 이곳저곳을 헤매는 노승(老僧)을 보고 부처님은, 노승의 그러한 행동은 지금 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그러했다고 하시면서, 옛날의 사건을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옛날에 보살은 제석천으로 태어났다. 그때 히말라야 산 속에 한 선인이 나무 열매를 먹으며 수행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산 속에서 어미를 잃
▲바르후트 탑, 기원전1세기 경, 꼴까타 소재 인도박물관 이 전생이야기는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아들을 잃은 어떤 거사에게 삶의 무상함에 대해 설한 것이다(Jātaka No. 354). 옛날 보살은 바라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아내, 아들, 딸, 며느리 그리고 하녀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보살은 항상 가족들에게 “보시를 행하고, 계율을 지키고, 생명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가족들은 보살의 가르침대로 생활하며 지냈다. 어느 날, 보살은 아들을 데리고 밭을 갈러 갔다. 아들은 잡초를 모아 불을 지폈는데, 연기가 그 근처의 개미집에 살고 있던 독사를 자극했다. 연기 때문에 밖으
▲ 바르후트 탑, 기원전1세기 경, 꼴까타 인도박물관 이 전생이야기는 마호사다 자따까 안에 있는 여러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Jātaka No. 546)로,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부처님의 지혜에 놀라는 비구들에게 설한 것이다. 옛날 위데하 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을 때, 보살은 야와맛쟈까(Yavamajjhaka)에 살고 있던 장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보살은 태어날 때부터 손에 약그릇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한역 경전에서는 대약(大藥)이라 했고, 자라면서 지혜로운 행동을 했기 때문에 마호사다 빤디따(Mahosadha Paṇḍita)라고 불렀다. 당시 왕에게는 정치 조언자로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