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가 잊히고 있다. 매일같이 사람 사이에서 생긴 뉴스를 접하면서 든 생각이다.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친구와 동료, 스승과 제자, 고용주와 고용인, 성직자와 신도 등 인생에 동반되는 지중한 인연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개인의 만족과 가치관을 우선시하고 이미지를 중요시하는 시대에 여러 인간관계를 맺고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조절하고, 수평적 인간관계와 개성을 존중하는 마음가짐이어야 한다. 일찍이 부처님은 소중한 인연들과 행복할 수 있는 도리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인도 왕사성에 장
불기 2567년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부처님 가르침이 언제 이 땅에 전해졌는지 다시 생각해 본다. 전진의 승려 순도가 372년 고구려에 불교를 전하고,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384년 백제에 불교를 알렸다. 이어 고구려 승려 묵호자가 신라 눌지왕(417~458) 당시 구미 선산 지역 모례의 집에서 전법했다는 ‘삼국사기’에 근거하여, 우리는 “한국불교 1700년”이라는 표현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지만 이는 ‘삼국사기’가 가야불교에 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간과한 데서 발생한 오류가 아닐까 생각한다.금관가야 수로왕은 기
나는 종교를 최대한 일상의 자리에서 상식의 논리로 이해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종교는 일상을 극화하고 과장하고 확대해서 보여주는 매우 정밀한 장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을 보면서도 여기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의 절망과 희망, 치기와 우매, 슬픔과 증오를 일상의 자리에서 이해해 보고 싶었다.다큐멘터리의 제목인 ‘나는 신이다’는 신의 흔적을 찾아 헤매다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지우고 자기를 온통 신으로 채워 버린 사람들이 있음을 가리킨다. 부제인 ‘신이
출가 전의 일이다. 법정 스님의 인도 기행을 읽으면서 출가라는 결정에 앞서 인도로 향했다. 스님은 책 속에서 부처님께서 맨발로 걸으셨다는 내용을 기록해 주셨다.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이루시고 초전법륜지 녹야원까지 천릿길을 맨발로 걸어가 전법 하셨음을 잔잔하게 그려주셨다. 첫 순례길에 너무나 감동을 받아서 보드가야대탑에서 신발을 벗고 사르나트까지 맨발로 갔던 경험이 있다. 물론 차편을 이용하기는 했지만, 맨발로 부처님이 걸었던 대지를 걷는다는 감격이 아직도 가슴을 울린다.부처님께서는 길 위에서 수행하셨고, 길 위에서 전법하셨으며, 길
어느 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세상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바위에 새기는 사람, 흙에 새기는 사람, 물에 새기는 사람이다. 바위에 새기는 사람은 자주 화를 내고 화를 내면 오래 간다. 마치 바위에 새겨 바람이나 물에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흙에 새기는 사람은 자주 화를 내지만 오래 가지 않는다. 마치 바람이나 물에 쉽게 지워지는 것처럼. 물에 새기는 사람은 거칠고 날카롭게 말하고 불쾌하게 말하더라도, 곧바로 화해하고 친목하며 친절하게 대한다. 마치 물 위에 새기면 즉시 없어지는 것처럼.”사람이 화내는 것을 바위·흙·물에
어느 국회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정치적으로 두 패로 나뉘어 ‘불체포특권은 폐지되어야 한다’ ‘헌법에 보장된 권리로 포기할 수 없다’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대로 포기하라’는 등 각기 다른 주장으로 온 세상이 소란스럽다.모든 만물은 앞 모양, 뒷 모양, 옆 모양, 바깥 모양, 안 모양이 각기 다른데, 그 다른 면에만 집착하여 ‘이렇게 생겼다’ ‘저렇게 생겼다’고 다투어 본들 코끼리 다리만 만져 본 사람이 ‘코끼리는 기둥 같이 생겼다’고 말하는 것처럼 껍데기 논쟁에서 헤맬 뿐 실상에는 접근조차 하지 못한다. 각자가
올봄 나는 대학에서 ‘종교와 유튜브’라는 꽤 실험적인 제목의 강의를 시작했다. 유튜버도 아니고 유튜브 열혈 애청자도 아닌 나로서는 상당히 무모한 도전이다. 나는 문서나 책에 익숙한 세대에게 교육을 받았으므로 문자가 아닌 영상 매체는 여전히 내게 ‘주(主)’가 아닌 ‘부(副)’로 남아 있다. 나는 항상 글이 중심인 세상을 살았고, 글로 번역되지 않거나 그럴 가치가 없는 영상은 불신하고 내치는 데 익숙했다. 나는 글의 세계를 옹호하고 글의 세계에 속하기 위해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고 있다. 텔레비전, 영화, 유튜브는 그저 여가
“문득 봄이 우리 곁에 왔다.” 사람들은 꼭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봄은 어느 날 문득 우리 곁에 나타나지 않는다. 매일 매일 온 대지 곳곳을 들추며 언 땅을 녹이며 새싹을 일구고, 들과 계곡의 찬기를 조금씩 밀어내며 한 걸음 한 걸음 우리 곁으로 다가온 것이다. 단지 우리들이 무언가 자신의 일상에 함몰되어 다가오는 봄을 자각하지 못했을 뿐이다.살아가면서 관심사 밖의 일들에 대해서 정말 너무 무관심하다. 자신과 밀접하다고 여기는 친지들의 일도 마찬가지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을 보면 언제나 누구나 “너 이렇게 많이 자랐구나!” 한다
아주 먼 옛날, 인도에서는 “어떤 것이 행복인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저마다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것, 달콤한 소리를 듣는 것, 좋은 냄새를 맡는 것, 맛있는 음식을 맛보는 것, 부드러운 촉감을 느끼는 것에 행복이 있다, 혹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 쟁론은 격렬해져 천상까지 알려졌고, 무려 12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급기야 도리천의 제석천왕이 부처님께 천신들을 보내 무엇이 최상의 행복인지를 물었다.부처님은 “어리석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말고, 지혜로운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며, 존경할 만한 사람들을 공경하는 것이 더없는 행복이다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 박물관에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 유물 또는 고대 그리이스 유적 잔해가 전시되어 있다. 모두가 식민지 시대 야만적인 노략질로 가져온 침략의 흔적이다. 문화재에는 만든 사람들의 정신과 문화가 담겨있다. 그 문화재와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야만적 방법으로 절취․수탈해 이를 호화스런 박물관에 전시해 놓은들, 약탈당한 민족의 후손들과 제3자가 이를 어떻게 느낄까. 빼앗은 문화재를 마치 처음부터 문명국가였던 것처럼 버젓이 전시하는 것은 야만성과 비문화성을 고백하는 것과 다름없다. 다행히 최근 들어 독일, 프랑스,
2022년 6월에 흥천사 종이 사찰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기사가 법보신문에 실린 적이 있다. 그런데 나는 이것을 종의 ‘소유권’ 문제가 아니라 ‘위치’의 문제로 치환해 보고 싶다. 종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아니 불교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이 글을 읽고 독자들이 종의 적합한 위치에 대해 잠시 고민해 보면 좋겠다.조선의 왕 가운데 태조, 태종, 세조는 종을 만드는 데 꽤 집착했던 인물이다. 태조는 1395년에 경복궁 광화문 2층 문루에 종을 매달고, 1398년에는 운종가 종루에도 백금 50냥으로 주조한 대종(大鐘)을 매단다.
초유의 북극 한파도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따사로운 마음의 열기는 넘어서지 못하는 것 같다. 며칠 전 백설이 만곤건하던 제주의 폭설이 하룻낮에 다 녹아버렸다. 눈이 하늘 가득 내릴 때 많은 사람들이 헤어나지 못할 것 같이 눈 걱정 했다. 하지만 한나절 시간에 이렇게 눈도 다 녹아나고, 사람들의 번뇌도 말끔히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작금의 우리 불교 현실도 눈과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불경에 “보살은 인(因)을 두려워하고 중생은 과(果)를 두려워한다.(菩薩畏因 衆生畏果)”고 했다. 보살은 큰 지혜로 살펴서 나쁜 원인을 미리 끊
토끼 한 마리가 숲 속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토끼는 어린 야자수 아래서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만약 이 지상이 파괴된다면,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바로 그 순간, 잘 익은 나무 열매가 떨어져 큰 소리를 내며 야자수잎을 때렸다. 그 요란한 소리에 깜짝 놀란 토끼는 온 힘을 다해 달리며 소리쳤다. “땅이 무너지고 있다.” 토끼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달아났다. 다른 토끼가 있는 힘을 다해 달리는 토끼를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으며 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토끼는 숨을 헐떡거리며 묻지 말라고 대꾸했다. 거듭
2500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이 인도 전역에 퍼졌다. 부처님 열반 후에도 아소카대왕의 불전결집을 통해 아시아는 물론 유럽에까지 포교됐다. 그러나 히브리와 아랍에서 일어난 새로운 사상과 충돌하면서 페르시아, 아랍, 그리이스, 로마로 건너간 불교가 소멸되더니 드디어 불교의 본거지인 인도에서마저 불교는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교가 전래된 이래 1700년 동안 중국의 유교, 도교, 우리 전통의 선가 사상 등과 함께 동거했지만, 서로 이질적인 사상이 아니기 때문에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나는 가끔 종교란 아무도 끝까지 읽은 적 없는 책, 아니 아무도 읽을 엄두를 낼 수 없을 만큼 두꺼운 책 같다는 인상을 받곤 한다. 종교는 완전한 독서를 거부하기 위해 쓴 기묘한 책, 즉 책 너머의 책 같다. 그래서 종교에 대한 나의 독해는 항상 미완이나 실패로 끝을 맺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쩌면 바로 이 점이 종교만의 매력일지도 모른다. 이런 종교로 인해 그만큼 나도 세상도 두꺼워지기 때문이다.사람은 나이가 들면 과거를 먹고 산다. 더 이상 미래가 맛있는 시간의 먹이가 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 속에서 발걸음은 더뎌지고
사나운 호랑이가 물러나고 모두가 좋아하는 귀여운 토끼해가 돌아왔다. 토끼는 실물도 귀엽고 정겹지만, 우리에게는 더 정겨운 전설 속 주인공으로 다가온다. 아쉽게도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달나라 계수나무 아래 방아를 찧는 토끼의 이야기보다 달을 정복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문명의 발달로 인해 사람들은 토끼의 신비감을 잃어버렸을지 모를 일이다.토끼해를 맞아 되돌아보면 문명 발달이 우리에게서 앗아간 것이 보름달에서 방아 찧는 토끼만이 아니다. 전기의 발견은 우리에게 엄청난 문명을 선사했다고 하지만 그 대가로 잃어버린 것들 또한 적지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는 말이 있다. 안 좋은 일이 생겼는데 연속해서 더 큰 일이 생기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엎친 데 덮친다”는 말로 주로 사용한다. 우리의 일상에서 어쩌면 작거나 크게 이런 현상을 가끔 마주치고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외국에서 이민자로 25년 넘게 살아온 어느 한 가정에서 생긴 거익태산(去益泰山)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 가족은 코로나19로 인하여 4년이 넘도록 여행 한 번 못한 채 집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 최근 두 달 동안의 한국과 유럽 여행을 계획했다. 이렇게 전 가족이 여행의 기쁨으
올해 내게 화두는 ‘죽음’이었다. 첫 시작은 이랬다. “참 희한합니다. 의학적으로 볼때 선생님은 벌써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아요. 참 운이 좋네요.” 올해가 막 시작하자마자 의사에게 들은 말이다. 당시 심장 혈관 곳곳이 막혀 심장의 기능이 10%도 작동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한 해가 어느새 저물어간다. 11월 달력을 뜯어낼 때면 올 한 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개인적으로도, 우리 사회도, 국제사회도 참 다사다난했다. 그 가운데 죽음의 기운이 세계를 뒤덮은 우울한 해였다.우선 우리나라의 다사다난한 일부터 꼽으면 대
북극 한파가 심술을 부린다. 입동과 소설이 지난 날씨가 너무 따스하다고 생각할 즈음, 갑자기 한파가 찾아왔다. 일기예보가 너무나 세세히 지구본을 돌리면서 알려주는 덕분에 짐작으로도 훤히 기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예전에는 정말 갑자기 찾아오는 북풍한설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너무나 정확한 예측을 전해 듣고 나름 준비를 하고 나니 추위로 고생스럽지는 않지만 한켠에서는 뭔가 허전한 기분도 든다. 삶의 여운이 사라져 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인류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본능적 공포심이 있다. 유사 이래로
“배송 시간이 지연됐으니, 회수해 가라.”엘리베이터 고장으로 29층까지 걸어 올라간 배달 기사가 고객에게 들은 말이다. 게다가 고객은 별점 1개와 부정적인 리뷰를 남겼다. 이후 관련 내용이 방송을 통해 퍼지자, “늦어진 아이들 끼니 때문에 예민해진 탓에 너무 제 입장만 고수한 것 같다”며 사과했다. 고객의 갑질이었을까, 정당한 권리였을까, 아니면 복잡한 조건이 초래한 모두가 불행한 상황이었을까.|최근에는 개인화, 더 나아가 초(超)개인화로 인하여 사회정의 기준이 자기 자신이 되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갑질의 이면에선 기존의 사회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