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다르마(法, dharma)란 사회적 규범이나 의무를 비롯한 진리와 가르침, 그리고 현상이나 존재요소 등 매우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용어상으로 다르마(dharma)는 산스크리트어이고, 어원적으로는 ‘유지․지탱하다(to hold)’ 등의 의미를 가지는 ‘동사어근 √dhṛ’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팔리어로는 담마(dhamma)이고, 한역에서는 달마(達磨) 등으로 음역되거나 법(法)으로 통용된다. 법은 불교적인 맥락에서는 주로 ①진리 ②가르침 ③현상 ④존재요소 ⑤사물 등의 의미로 쓰인다. 반면에 힌두교적인 맥락에서 법은 국가와
아비다르마(阿毘達磨, abhidharma)란 붓다의 가르침을 그의 사후 약 300~900년경의 학승들이 연구 해명하여 하나의 지적체계로 정리하고 조직화한 교학체계를 의미한다. 우선 용어상으로 살펴보면, 한자어로 ‘아비달마(阿毘達磨)’란 원어인 산스크리트어 ‘아비다르마(abhidharma)’의 음역어(음사)인데, 팔리어로는 ‘아비담마(abhidhamma)’로 불린다. 아비다르마는 산스크리트어 ①‘아비(abhi)’와 ②‘다르마(dharma)’의 합성어인데, ①접두어 ‘아비(abhi)’란 ‘~에 대하여’나 ‘뛰어난 혹은 승의’의 의미로
초기불교에서 열반(涅槃, nirvāṇa)은 탐욕․성냄․어리석음이라는 3독심, 즉 번뇌의 불길이 완전히 소멸된 상태를 의미한다. 오늘날에는 열반의 개념이 승려나 재가자의 죽음에 대한 높임말로 수행을 통한 해탈을 의미하는 입적이나 원적 등과 일맥상통하는 개념으로 변용되어 널리 쓰인다. 하지만 붓다의 열반은 승려나 재가자의 일반적인 죽음과는 대별되는 위대한 죽음, 즉 이는 본질적으로 완전한 해탈을 의미하는 반열반(槃涅槃, parinirvāṇa) 혹은 대반열반(大槃涅槃, mahāparinirvāṇa)이라고 한다.붓다의 열반을 상세히 전하는
싯다르타 부처님의 탄생게(誕生偈)는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서 오직 나 홀로 존귀하고 삼계는 모두 괴로움인데, 내가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라는 4구로 이루어져 있다. 일반적으로 이는 붓다의 위대함을 찬탄하는 것과 중생구제를 위한 붓다의 서원을 표현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서는 다양한 버전이 있고, 이해방식도 스님들이나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예컨대 탄생게는 한문버전과 팔리어 버전이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즉 이는 ‘수행본기경(修行本起經)’에서는 ‘천상천하 유아위
우리사회는 동서양의 문화와 종교, 철학과 과학 등의 만남을 넘어 전・방위적으로 융합과 통섭을 강조하는 사상적 패러다임의 격변기를 맞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20세기 서구적 문화와 과학문명의 콤플렉스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서구에서도 한때 세기말적 현상으로 풍미했던 사회적 불안이나 경제적 위기 등으로 인한 인간소외와 자아상실 등의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이런 현상은 OECD국 가운데 우리나라의 자살률이나 출산율 등이 부정적으로 드러나는 양상을 통해서도 방증된다. 우리사회가 사람과 공동체의 가치보다는 물질만능과 배금주의의 풍조에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소유적 삶의 양식’보다 자신의 실존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여 그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는 ‘존재적 삶의 양식’이 매우 소중함을 강조했다. 이러한 삶의 양식은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 속 두 마리 애벌레의 여행담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예컨대 끝없는 생존경쟁의 대열보다는 나뭇가지에 고치를 짓고 자유로운 나비의 삶을 꿈꾸는 두 마리 애벌레의 최후의 결단은 인간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네 삶의 좌표와 예지를 엿보게 한다.하지만 현대사회에서 경쟁에 뛰어들기보다 내적이고 평화로
기본적으로 초기불교의 교학체계는 깨달음의 세계나 궁극적인 열반을 지향하는 출가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즉 초기불교의 주요 교리와 수행론은 번뇌와 욕망의 굴레에서 살아가는 범부들의 세간적인 삶을 벗어나 번뇌와 욕망의 굴레를 완전하게 여읜 깨달음의 세계를 추구하는 출세간적인 삶을 최고의 목표로 제시한다. 이러한 삶의 유형은 실질적으로는 범부들의 ‘세속적인 삶’과 전문적인 수행자나 출가자들의 ‘탈세속적인 삶’이라는 두 가지 형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때 세간과 출세간의 긴밀한 관계는 재가와 출가의 관계와도 일맥상통한다.그런데 현대사회
일반적으로 초기불교에서 세간과 출세간이란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을 번뇌와 욕망의 속박여부에 따라 둘로 나눈 것이다. 즉 세간이란 번뇌와 욕망에 속박된 미망의 세계를 말하며, 반면에 출세간이란 번뇌와 욕망으로부터 벗어난 깨달음의 세계를 지칭한다. 예컨대 세간은 중생들의 정신적인 단계나 수행의 정도에 따라 생사윤회를 거듭하면서 살아가는 세계를 의미하는 3계(욕계․색계․무색계)와도 일맥상통한다. 아울러 출세간은 생사윤회의 세간을 뛰어넘은 경지를 말한다. 이런 점에서 세간과 출세간은 물질적인 세계가 아닌 정신적인 세계나 그 경계를 의미하는
초기불교에서 무기(無記, avyākṛta)란 붓다가 어떤 질문들에 대해 답변이나 언급을 회피한 채 침묵을 지키는 것을 말한다. 즉 무기란 주로 ‘세계의 무한성과 유한성’ ‘영혼 혹은 생명과 신체의 동일성 여부’ ‘수행의 완성자인 여래(如來)의 사후의 존속 여부’ 등 본질적인 수행과 그다지 관계가 없거나 실존적인 괴로움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질문들에 대해 침묵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러한 무기설(無記說)은 질문의 종류에 따라 10무기나 14무기, 혹은 16무기 등으로 불린다.현대사회에서도 세계의 창조나 종말, 사후
초기불교에서 열반(涅槃, nirvāṇa)은 깨달음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가지며, 인간의 내면에 잠복하고 있는 탐욕․성냄․어리석음(3독심)이라는 부정적 심리경향으로 인한 실존적 괴로움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상태, 즉 완전한 행복이나 궁극적인 깨달음을 의미한다. 사실 열반은 불교만의 독특한 관념으로 4법인의 열반적정(涅槃寂靜)이나 4성제 중 멸성제 등에서 확인되는데, 초기경전의 기술에 따르면 ‘갈애나 번뇌의 소멸’ 혹은 ‘윤회로부터의 완전한 해방’ 등 그 의미는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된다.우선 용어상으로 보면, 초기불교에서 '
일반적으로 인도철학이나 불교는 실존적 괴로움으로부터의 해방이나 해탈을 궁극적 목적으로 한다. 초기불교에서 해탈이란 번뇌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미망(迷妄)의 세계, 즉 윤회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 행복한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해탈의 개념은 수행론적인 맥락에서는 인간의 잠재적인 부정적 심리작용인 3독심이나 수행의 장애요소인 10가지 족쇄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가지게 된다. 이때 '해탈(解脫, mokṣa)'이란 고대의 우파니샤드 사상이나 자이나교 등에서 쓰이던 관념이 인도철학 일반이나 불교적으로
초기불교의 사상 가운데 가장 큰 특징은 무아(無我)를 표방하는 데 있다. 무아란 욕망이나 행위의 주체로서 ‘나’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실체적으로 없다는 말이다. ‘나’라고 하는 것은 관념일 뿐이고, 실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요컨대 무아사상은 붓다의 깊은 수행체험에 근거한 위대한 가르침이자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무아사상은 현대사회의 부패구조나 인간소외 등의 사회적 문제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이처럼 ‘나’라는 생각이나 관념을 제거해주는 붓다의 가르침을 5온설이라 한다. 5온설은 일반적으로 색(色)·수(受)·
초기불교에서 인간의 부류는 크게 범부와 성자로 구분되는데, 탐욕․성냄․어리석음 등의 잠재적인 부정적 심리작용인 3독심이나 수행의 장애요소인 10가지 족쇄(結, saṃyojana) 등을 어떻게 해결하고 끊었는가에 따라 세부적으로 구분된다. 사실 3독심이나 10가지 족쇄는 내용적으로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가지는데, 일반적으로 3독심이나 10가지 족쇄 등을 아직 해결하거나 끊지 못했으면 범부로 불리며, 3독심이나 10가지 족쇄 등을 어느 정도 해결하거나 끊었으면 성자로 불린다. 이때 성자는 10가지 족쇄를 해결하거나 끊은 정도에 따라 4단
초기불교에서 자비관(慈悲觀, mettā-karunā-bhāvanā)이란 5정심관(五停心觀) 중 분노의 성향이 강한 사람에게 적합하고, 모든 존재들의 행복과 이익을 바라는 자애로운 마음을 길러 분노나 악의를 제어하기 위한 수행법을 말한다. 이때 자(慈, mettā)는 자애의 마음으로 즐거움을 함께 하는 것이고, 비(悲, karuṇā)는 연민의 마음으로 슬픔을 함께 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자애관(慈愛觀, mettā-bhāvanā)으로도 불린다. 요컨대 초기불교에서 자비관은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괴로움을 벗어나 행복한 삶을 얻기를
초기불교에서 수식관(數息觀)이란 수식관(隨息觀) 혹은 안반염(安般念)이나 입출식념(入出息念, ānāpānasati)으로도 불리며, 5정심관(五停心觀) 가운데 산란심의 성향이 강한 사람에게 적합한 호흡수행법이다. 이 수식관은 부정관 수행이 초래할 수 있는 극심한 자기혐오 등의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 대체되는 수행법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하지만 ‘입출식념경’이나 ‘대념처경’의 기술들을 고려하면, 수식관은 사념처와도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가지며 해탈이나 아라한과를 증득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수행적인 기반으로 설명된다.이러한 수식관은
초기불교에서 부정관(不淨觀)은 5정심관(五停心觀) 중 하나로 시체가 부패하는 과정이나 신체의 부정함을 관찰하여 몸에 대한 애착이나 감각적 욕망 등을 끊는 수행법을 말한다. 즉 부정관은 무덤가에서 시체가 부패해가는 과정을 직접 관찰한 후, 시체가 없는 곳에서도 마치 시체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명료하게 떠올려 그 부정한 모습을 관상하거나, 혹은 자신의 몸 안에 있는 똥․오줌․가래․고름 등 몸의 36가지 부정한 실상을 관찰하여 자신이나 타인의 몸에 대한 애착이나 감각적 욕망을 끊는 수행법이다.이러한 부정관은 붓다 당시에 수행의 일환으로
5정심관(五停心觀)이란 5가지 번뇌의 장애, 즉 탐욕․성냄․어리석음․아만․산란 등을 다스리기 위한 수행법으로 4념처 수행의 준비단계로 설명된다. 즉 5정심관 중 ①부정관(不淨觀)은 탐욕이 강한 사람에게 적합하고 ②자비관(慈悲觀)은 분노가 많은 사람 ③인연관(因緣觀)은 어리석은 사람 ④계분별관(界分別觀)은 아만이 강한 사람 ⑤수식관(數息觀)은 산란심이 강한 사람에게 적합한 5가지 수행법을 말한다. 이를 5도문(五度門), 5종심관(五種心觀)으로도 부른다.하지만 초기경전에서는 5정심관이라는 용어 자체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초기경전에서는
초기불교에서 4섭법(四攝法, cattāri saṅgahavatthūni)이란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4가지 덕목을 말한다. 이 4섭법은 ①자신이 지니고 있는 법이나 재물 등을 남에게 베푸는 보시(布施, dāna) ②타인에 대한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愛語, peyyavajja) ③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행위(利行, atthacariyā) ④타인과 고락을 함께 하며 실천하는 동등한 배려(同事, samānattatāya ) 등을 말한다.사실 4섭법은 4무량심을 기반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타인이나 중생들을 위해 행동으로
초기불교에서 4무량심(四無量心, catvāri apramāṇya)이란 수행자가 타인을 대할 때 지녀야할 4가지 덕목이나 바른 마음가짐을 말한다.4무량심은 ①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자애심(慈, maitrī) ②모든 존재가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연민심(悲, karuṇā) ③남의 즐거움을 함께 기뻐하는 마음(喜, muditā) ④모든 사람을 친소관계를 떠나 평등하게 대하는 평정한 마음(捨, upekṣā) 등이 한량없이 베풀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4범주(梵住, brahmavihārāḥ) 혹은 4범행(梵行, brahmacā
초기불교에서 유루와 무루란 일체법이나 제법을 번뇌의 유무에 따라 분류하는 방식을 말한다. 유루(有漏, āsrava)란 마음이 다양한 번뇌에 오염되거나 물든 것을 총칭하는 표현으로 넓은 의미로는 번뇌와 동의어이다.대체로 ‘누(漏, āsrava)’란 어원적으로 ‘누설(漏泄)’이나 ‘누출(漏出)’의 의미로 해석되는데, 즉 오염이나 번뇌는 6근에서 흘러나와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한편 초기경전에서는 맥락에 따라 누(漏)가 ‘새들어 옴’이라는 의미로 ‘누입(漏入)’이나 ‘유입’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여하튼 유루란 마음이 오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