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27대 선덕여왕대(632~647)에 이르러 국가의 총체적인 위기를 맞게 되었다. 바로 앞선 진평왕대(579~632)는 대내적으로 왕권의 강화와 지배체제의 정비를 서두르는 한편, 대외적으로 고구려와 백제의 침입을 방어하는데 성공하여 정치적 안정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진평왕은 54년간의 장기집권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없이 세상을 떠남으로서 왕위계승 문제로 정치적 분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왕실과 귀족세력의 타협으로 가까스로 맏딸인 덕만이 즉위하여 선덕여왕이 되었으나, 실제 국정은 여왕을 대신하여 종실의 원로대신 을제(乙祭)가
막말이 뉴스가 되고 있다. 자주 듣다 보니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지만 단연 눈에 띄는 것은 ‘GSGG’라는 국적을 알 수 없는 영어단어다. 누가 봐도 ‘ㄱㅅㄲ’라는 소리로 들리지만 정작 당사자는 ‘국민의 일반의지…’를 운운하면서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같은 정당 출신의 국회의장을 향해 차마 ‘ㄱㅅㄲ’라는, 육두문자는 사용할 수 없으니까 ‘GSGG’라는 아무 말이나 불쑥 내뱉은 것이 아닐까 싶다. 악구(惡口)라는 불교 용어가 떠올랐다. 더럽거나 나쁜 입이라는 뜻이다. 이 이상 적확한 표현을 찾을 수 없다.거짓말은 더욱 심각
병역의무 중인 조카에게 전화가 왔다. 전역 100일을 남겨두고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고 한다. 조카의 시계는 올겨울 전역일에 맞춰져 있다. 태양이 뜨고 지는 시간에 맞춰 인류가 정한 시계는 하루 24시간이지만, 사람마다 가진 시계는 다르다. 기자들의 시간은 원고 마감시간에 맞춰 흐르고, 사업가의 시계는 직원들 급여일에 맞춰져 있다. 대선을 꿈꾸는 분들의 시계는 내년 3월9일에 맞춰져 있고,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시계는 내년 6월1일이 데드라인이다. 코로나19로 집합금지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방역당국의 시계는 전 국민의 70%가
Q. 아내가 1년 전부터 기억을 잘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과 시비가 잦아지는 등 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일 때가 많아졌습니다. 손주에게 몇 학년이냐고 반복적으로 물어보기도 하고, 그 동안 잘해왔던 행동을 서툴러하거나 불안해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70이 훌쩍 넘었기에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병원에가서 검사를 받아보자고 했지만, 아내는 고집을 부리고 거부만 합니다. 젊은 시절에도 외고집에 자존심이 세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사람이다 보니 자신은 아무 이상 없다며 누구의 얘기도 듣지 않으려 합니다. 변해가는 아내를 지켜만 볼 수
잃어버리는 것은 우리의 운명이다. 물건을 잃어버리고, 시간을 잃어버리고, 기억을 잃어버리고, 사랑하는 고양이를 잃어버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다.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죽기 마련. 생겨난 것은 언젠가 사라지기 마련.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잃는 것에 단련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잃는 고통이 단련한다고 쉽게 사라질 수 있는 것이던가. 부처님의 신신당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새롭게 고통스럽고 새롭게 슬프다.이 책을 쓴 브룩 노엘과 패멀라 D 블레어는 둘 다 아주 가까운 이를 급작스럽게 잃은 경험이 있다. 그들은 기나긴 슬픔
승이 백장에게 물었다. “기특한 수행이란 어떤 것입니까.” 백장이 말했다. “대웅봉에서 홀로 좌선하는 것이다.”백장은 백장회해(百丈懷海, 749~814)이다. 기특(奇特)이란 기묘특별(奇妙特別) 내지 기특현묘(奇特玄妙)의 줄임말이다. 대단히 드물고 뛰어난 모습이다. 그래서 기특한 수행[奇特事]이란 불가사의하고 심원하며 미묘한 수행의 모습을 의미한다. 본 문답에서 승이 질문한 기특한 수행이란 바로 어떻게 해야 그와 같은 수행을 성취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승이 생각하고 있는 기특이란 보통을 초월한 불가사의한 신통력을 지니고 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한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다. 다른 사람에 대해 말할 때는 좋은 소리 보다는 그렇지 않은 이야기가 많다. 다른 사람을 평가함에 있어 자신의 이익이나 감정에 따르지 않고 근거를 갖고 올바른 목적을 위해 말한다면, 이는 공적으로 볼 때 이익이 더 클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비판’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즉 근거가 없이 자신의 이익이나 질투, 앙갚음을 위해 상대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우리는 ‘비난’이라고 한다. 비판이 비난보다 많은 사회는 건강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상의리 442-6에 위치한 대전사(大典寺)에서 불화 3점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영산회상도’와 ‘신중도’는 2000년 9월4일 저녁 9시부터 새벽 4시 사이에 도난됐고, ‘지장보살도’는 다음날인 9월5일 도난됐다. 그중 가장 먼저 회수한 것은 ‘신중도’로 2014년 5월29일이며 ‘영산회상도’는 2016년 10월, ‘지장보살도’는 2020년 7월에 서울의 한 개인박물관장의 은닉처에서 각각 발견돼 도난문화재임을 확인했다.청송 대전사는 672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설과 919년에 주왕의 아들이 창건했다는 설
若人欲識佛境界 當淨其意如虛空약인욕식불경계 당정기의여허공 速離妄想及諸趣 令心所向皆無碍속리망상급제취 영심소향개무애만약 누구라도 부처님의 경계를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그 뜻을 허공과 같이 맑게 하여서/ 망상과 모든 집착을 멀리 여의고/ 마음이 향하는 곳 걸림이 없도록 하라.이 주련은 ‘화엄경’ 여래출현품에서 보현보살이 설한 게송이다. 그러나 몇 군데 원문과 다르게 변형한 글자가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게송의 원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若有欲知佛境界 當淨其意如虛空약유욕지불경계 당정기의여허공 遠離妄想及諸取 令心所向皆無礙원리망상급제취
사람은 끊임없이 행동한다. 가만히 앉아 있거나 잠들어 있더라도 심장이 박동하고 호흡이 지속되는 등 많은 생리적 현상이 진행된다. 넓은 의미에서 이런 움직임도 팔다리를 움직이는 것과 같은 행동(behavior)이다. 그런데 인간은 단순한 행동을 넘어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행위한다. 의도나 목적을 통해 이루어지는 행동이 행위(action)다. 전통적으로 인간의 행위는 생명체의 행동범위 너머의 차원에서 이루어진다고 여겨져 왔다. 그런데 만약 의도나 목적이 뇌세포의 물리화학 작용에 의해 생겨나는 현상이라면, 인간의 행동이 동물의 행동과는
서울 출생 시인이 남편과 의논해서 딱 2년 작정하고, 제주도로 생활터를 옮겼단다. 우선 아이 남매가 자연을 보고 자라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남편의 직업이 거주지 제한을 받지 않아서 가능했던 것이다. 화산섬 제주도는 신비한 자연의 세계였다. 우선 ‘제주특별자치도’라는 재미나는 이름이 그러했고, 어디에서나 보이는 우리나라 제2의 산 높이, 한라산이 그러했단다. 고‧부‧량, 탐라의 시조 3형제가 솟아났다는 삼성혈 땅 구멍이 그러했고, 탐라국 옛 전설이 모두 그러했단다. 시인 부부는 한라산이 펑펑, 불을 뿜었을 몇 억년 옛날을 오늘의 눈으
대부분의 종교 교리에는 악마나 마귀가 등장한다. 이들은 세상을 창조한 신의 뜻을 배반하고 세상에 악을 뿌리며 인간들을 자신들의 세력 하에 두려는 존재들이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에서는 악마와 마귀의 우두머리로 사탄 혹은 샤이탄을 드는데 이들 둘은 동일한 존재이다. 사탄, 샤이탄은 ‘대적자’라는 의미를 지닌다. 창조주 하나님을 적으로 삼는 자이기 때문이다.사탄의 기원은 신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 먼저 창조한 천사들 중 루시퍼라는 이름을 지닌 천사이다. 신은 이 루시퍼를 얼마나 총애하였던지 자신을 대신해서 하늘의 운행과 땅의 일부를 다스릴
승가 내부에서는 크고 작은 다툼이 일어난다. 승가 내부에서 일어나는 다툼을 ‘승가쟁사(僧伽諍事)’라고 한다. 줄여서 ‘승쟁(僧諍, saṅgha-adhikaraṇa)’이라고 부른다. 승쟁에는 크게 네 가지 종류가 있다. 이른바 언쟁(言諍), 멱쟁(覓諍), 범쟁(犯諍), 사쟁(事諍)이 그것이다. 언쟁이란 말다툼으로 인한 쟁사이고, 멱쟁은 교계(敎誡)로 인한 쟁사이며, 범쟁은 범계(犯戒)로 인한 쟁사이고, 사쟁은 잘못된 갈마(羯磨)로 인한 쟁사이다.승가 내부에서 다툼이 일어났을 때 재가신자는 어떻게 대처해야하는가? 그 해답을 율장 구섬미
가을이 왔다. 가을이 왔다고 한다. 창 너머로 가을 풀벌레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정말 가을이 온 것일까? 바닷가에 살면서 바닷물에 발 한번 담가보지 못하고 보내야만 했던 여름의 야속함이 못내 아쉬움을 더 한다. 여름의 무더위와 새로운 질병으로 인해 갇힌 생활을 하면서 지쳐가는 사회에 스님들의 훈훈한 미담이 들려온다. 종단에서 추진 중인 여러 사회적활동에 스님들이 많은 관심을 가질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금액을 그야말로 쾌척한다는 소식이다.얼마 전 청년불자와 대화를 나누는데 대뜸 ‘스님은 돈이 얼마 있어요?’라고 물었다. 좀 의아해하
‘가버나움(Capernaum)’은 레바논 빈민가를 배경으로 만들어져 2018년 개봉한 영화이다. 수많은 전쟁 영화들은 전쟁터에서 일어나는 비극과 휴먼을 동시에 담고 있다. 그러나 ‘가버나움’은 전쟁터에 남아 있는 가난하고 힘이 없는 사람들의 생지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주인공인 ‘자인’은 실제 시리아 난민 출신 생존자다. 여기서 생존자란 그저 살아남은 자가 아니라 겪을 수 있는 모든 비극 속에서 살아남은 자를 말한다. 자인이 법정에서 “나를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라고 외치며 시작하는 영화는 기적 같은 유엔난민기구의
요즘 언론중재법 개정안, 일명 ‘언론징벌법'을 놓고 정국이 뜨겁다. 밀어붙이는 쪽에선 이번에 반드시 ‘가짜뉴스'를 잡아야 한다고 국회 통과를 벼르고 있고, 막는 쪽에서는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라며 ‘진짜뉴스'까지 잡을 것이라고 적극 반대하고 있다.국민 여론도 두 쪽으로 갈라졌다. 찬성하는 쪽에서는 언론으로부터 일반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고, 반대하는 쪽에서는 피해자 보호라는 명목하에 언론의 자유와 기능을 제약한다고 비판하고 있다.언론자유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절대가치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헌법 제21조에 4개항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마하판타카 존자가 그의 동생 출라판타카를 불러 “만일 계율을 지키지 못하면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출라판타카는 형 마하판타카의 권유로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지만, 그는 현명하고 똑똑한 형에 비하여 머리가 좋지 못해 몇 달 동안 시 한 줄 외우지 못할 정도였다. 부처님을 만나고 깨달음의 세계를 알게 된 형 마하판타카는 동생에게도 훌륭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싶어 그에게 출가를 권했지만, 무능함 때문에 그가 주위 사람들에게 점점 무시를 당하자 안타까움을 느낀 것이다. 형
달의 외형과 표면을 탐구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연구를 월면학(月面學, selenography)이라고 한다. 월면학을 통해 달의 앞면은 수많은 운석 충돌구(crater)로 덮여있고, 뒷면은 어두운 현무암과 용암대지인 넓고 편평한 지대로 이루어져 있음이 밝혀졌다. 특히 달의 뒷면은 검고 짙은 회색을 띠고 있어서 마치 얼룩무늬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를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는 ‘달의 바다(lunar maria)’라고 불렀다. 우리가 보름달을 보고 토끼가 절구방아를 찧는다고 말하는 그 얼룩무늬가 바로 달의 바다
우리가 반야바라밀다로 지혜의 완성에 이르러 깨달음을 얻게 되면 온갖 괴로움을 없애게 되고(除一切苦),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게 된다(眞實不虛). 제일체고는 ‘반야심경’ 들머리의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 온갖 괴로움과 재앙을 건넘)과 같은 것이다.‘반야심경’의 두괄적 말씀을 총결적으로 재론한 것이라 하겠다. 총결분이다 보니까 하나를 더 부가하였는데, 그것이 진실불허이다. ‘진실불허’ 이 네 글자가 어느 날 큰 울림이 되어 자신에게 다가와야 지혜공부가 진척된 것이라 할 수 있다.같은 반야부 경전인 ‘금강경’의 이상적멸분과 구경무아분에는 무
대양명안 화상이 양산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무상도량(無相道場)입니까.” 양산이 관음보살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은 오처사(吳處士)가 그린 것이다.” 대양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양산이 갑자기 입막음을 하고 말했다. “저것은 형상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형상이 없는 것은 어떤 것인가.” 대양이 언하에 깨쳤다. 이에 예배를 드리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거기에 서 있으니, 양산이 물었다. “어째서 일구도 말하지 않는가.” 대양이 말했다. “말씀드리는 것은 사양하지 않겠지만, 그 말이 지묵에 오를까 저어됩니다.” 양산이 껄껄 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