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와 해군이 합동으로 실시한 황룡사(皇龍寺) 대종 탐색 작업이 한달 만에 지난 5월10일 일단 중단되었다. 경주 대왕암 주변 동해에서 진행된 작업이 성과없이 마무리되었다는 소식에 우리의 마음은 허탈하다. 그러나 이 작업에 참여해 바닷속을 헤집으며 한달 동안 고된 작업을 한 해군 장병들이야얼마나 허탈했겠는가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다. 그렇지만 해군 탐사반이 황룡사 대종을 발견해 내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 성과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고 나는 확신한다. 우리 선조들의 귀중 문화재를 찾기 위해 적어도 작은 정성은 기울였다는 것만도 뜻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업의 실패를 보면서 나는 적잖은 아쉬움도 갖지 않을 수 없다.이것이 어떤 의미에서 경주시와 해군이 앞장 서
편집자주---이 기고문은 420호에 실린 김호성씨의 글에 대한 저자 류제동씨의 의견과 반론을 담은 글입니다. 우선 언급하고 싶은 것이 `종교'라는 말에 대한 캔트웰 스미스의 태도이다.김호성 교수는 그 단어에 대한 캔트웰 스미스의 부정적 언급만을 인용하고있는데, 캔트웰 스미스의 저서 한국어판 제목이 《종교의 의미와 목적(TheMeaning & End of Religion)》이라고 되어 있음에 우리는 유의해야 한다.영어에서 `End'는 끝이라는 의미와 목적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캔트웰 스미스는 그 두 가지 의미를 다 살려서 저서의 제목을 정한 것이다. 종교(religion)라는 단어가 오늘날 분별심을 조장하는 식으로 쓰이고 있음을 개탄하며 원래의 의미는 그렇지 않고 우리의 무명에 가린 분별심을
법왕사(주지 실상스님)는 지난 7일 제4회 법화경백고좌 법회 51일째를 맞아 관내주민 1천여명을 초청한 가운데 제4회 경로잔치 한마당을 열었다. 이날 행사는 법왕사 사물놀이팀의 식전행사에 이어 1부 법회와 2부 범진스님의 회심곡, 한국예총대구광역시지회의 공연 순으로 진행됐다. 또 이날 경로잔치에서는 법왕사의 주선으로 박승한-박길순씨가 참석한 대중놀이의 환영속에 무료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이날 행사를 준비한 법왕사는 10년 계획으로 백고좌 법회를 개최하고 있는데 올해에는 법화경을 주제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법왕사 주지 실상스님은 "불자 모두가 백행의 근본이 효라는 이치를 깨달아 허물어져가는 사회의 등불이 되자는 취지"에서 이날 행사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청변논법 비판의 핵심은 이제(二諦)설" 주장 청변사상의 재조명---이현옥 "기존 '논리학 이용 공성 논증' 비판은 부당" 대립 지양 논의 미흡…밀교와의 상관성 규명기대 이현옥,
사이비(사이비)라 하면 비슷하기는 한데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는 일상에서참으로 숱하게 사이비를 겪는다. 하도 많이 겪기 때문에 대충 넘어가 주어야지만 이상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고 스스로도 온전한 정신을챙길 수 있다. 우리가 흔히 겪는 사이비를 생각나는 대로 나열해 보자. 식당에서는 가오리 회를 가지고 홍어 회라고 내놓는 일이 많다고 한다. 그 때 가오리는 홍어의 사이비이다. 뿐만 아니라 그 짓을 하는 요리사도 돈벌이라는 명분에 자기 일의 전문성을 팔아버린 사이비 요리사이다. 인력이 모자란다거나, 집에 들어가 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일에 혹사 당하고 있다거나 하는 등의 속사정이야 어떻든간에, 범법 현장을 그냥 지나치는 경찰관도 일단 사이비 경찰관이다. 관내에 성업 중인
경상북도 군위군에 있는 유서깊은 사찰, 인각사(麟角寺)가 군위댐 건설로 인하여 수몰될 위기에 처해 있다. 원효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는 인각사는 보각국사(普覺國師) 일연(一然)스님이 고려의 국존(國尊)이 된 77세 때(1283년. 충렬왕 9), 노구를 이끌고 들어가 중창불사를 하는 한편 삼국유사를 저술한 곳이다. 또한 일연스님은 이곳에서 구산선문(九山禪門)의 도회(都會)를 열고 총림법회(叢林法會)등대규모의 법회를 개최하여 한국불교를 크게 일으켰으며 총림법회는 조선 중기까지도 계속되었다고 한다. 이같은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인각사가우리 민족사의 시원을 기록한 최고(最古)의 사서(史書)인 삼국유사의 산실일뿐 아니라 한국불교사의 있어서도 그 위치가 매우 중요한 사찰임을 알 수가있다. 그러나
불란서어에 `아장 쁘로바까떠에'라는 말이 있다. 국가의 첩보기관이나 경찰이 주로 노동자들의 파업이나 시위를 감시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분열시키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가거나, 과격한 행동 또는 불법적 행동을 해서 경찰의 개입과 탄압의 구실을 만들어 내게끔 경찰이 데모대 속에 투입하는 공작원이다. `아장 쁘로바까떠에'는 유럽과 미국의 오랜 노동 운동사를 장식하는 `필수불가결'의 존재였다. 지금도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을 `빨갱이'가 조종한다고생각(또는 그렇게 주장)하는 극우˙반공주의 독재국가의 자본가들과 그 협조자인 국가경찰이 애용하는 수법이고 그 공작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방 이후 노동운동은 물론, 주로 야당 활동 탄압의 수법으로 역대 정권의 각종 공안당국이 애용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무분별 복원…훼손 초래" 정확한 고증·엄격한 관리감독 절실 도굴과 풍수해 등 각종 인위적 자연적 재난으로부터 도괴의 우려가 높은 문화재에 대한 복원 및 보수 사업이 오히려 문화재의 원형을 훼손하고 있다는지적이 높게 일고 있다. 지난해 3월과 경주시 나원리 오층석탑과 4월 경주시 감은사터 동삼층석탑에대한 해체복원이후 지역 향토사학계에서는 이들 석탑의 복원에 문제가 있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이들이 제기한 석탑 복원의 문제점은 석탑을 보수하면서 본래 재질이 아닌시멘트로 석탑의 깨어진 부분을 마무리했다는 것이다. 이로인해 1천여년의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석탑이 시멘트로 곰보투성이가 됐다는 것이다. 특히 감은사 동삼층석탑의 경우 고대인들이 주술적 의미로 석탑 기단부에 표시해 놓은
1995년, 해남 대흥사에서 살 때이었다. 12월 초쯤 되었을까, 날씨가 추워지자 관광객도 끊어지고 산사는 정적에 쌓인듯 조용해졌다. 발심한 사람 같았으면 '때는 이때다'하고 더욱 열심히 공부를 했으련만 그 때에 나는 먹물 옷만 걸쳤지 아직 불교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때이었으므로 무료함을 이기지 못해 어딘가로 돌아다닐 궁리를 하고 있었다. 한번 천하의 선지식을 모두 다 만나 봐야지! 생각만 해도 신이 났다. 그때에 입승을 보신 묵언스님께서 아직 '시기상조'라고 못하게 하신 것을 말아픈 줄도 모르고 막무가내로 자칭 '구도의 길'을 떠났다. 그러나 떠나면서 묵언스님께 여쭈어 보았다. "스님께서 잘 아시다시피 저는 가짜 중입니다. 다른 절에 가서 가짜임이 발각되면 큰 망신입니다. 진짜처럼 보이려면 어
10월은 문화의 달이다. 그리고 20일은 문화의 날이다. 정부가 문화의 달과 날을 제정한 것은 두말한 나위 없이 민족문화를 기리고 이어받아 민족문화의 진흥과 창달을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민족문화의 진흥과 창달은 차치하고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문화의 보존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우울한 문화의 달이 되고 있다. 건설교통부가 고속전철의 경주도심관통을 고집하고 있어서 2천년을 간직해온 부지기수의 문화유산이 파괴될 위험에 직면해 있는가 하면, 민족의 혼이 숨쉬고 있는 독립기념관은 비가 새어 고히 받들어야 할 민족혼이 비에젖고 있다. 그 뿐인가. 11일은 책의 날이고 이 책의 날은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민족과 나라를 지키려는 호국정신이 담긴 세계적인 문화재 고려대장경이 판각될 날을
요즈음 국내정세를 보고 있노라면 머리가 혼란스러워진다. 스포츠는 그런대로 국위선양을 하고 있고, 기술분야도 세계가 놀랄만큼 발전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정치분야는 경제와 더불어 여전히 침체와 후진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솝우화에서 개구리들이 왕을 원했다가 크게 후회한 것처럼 전세계 경제학자들은 `21세기' 경제의 난제를 해결하는 가장 큰 수단으로 작은 정부를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작은정부에 관한 경제사상이 여론화되고 있지 않지만 집권정당 스스로가 고비용 저효율 정치구조를 개혁해야겠다고 먼저 주장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것도 작은정부를 해야겠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외쳐대는 심정이야 이해는 가지만 언제는 제도가 불비하여 사고가 생겼던가? 사고가 생길 때마다 제도와 법률을
조계종의 정화불사를 상징해온 조계사내 정화회관이 헐렸다. 정화회관 철거는 9월말 헐릴 것으로 예정돼 교계내에서도 찬.반 양론으로나누어져 이목이 집중된 바 있다. 조계사는 이에대해 다각적인 의견수렴을 통해 철거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계사는 그러나 의견수렴의 방식은 물론 정화회관 철수일에 대해서도 일체의 공식발표 없이 지난 5일 정화회관을 헐었다. 조계사 단독불사인 정화회관 철거에 대해 굳이 철거일을 알려야만 하느냐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화회관'이라는 타이틀을 두고볼때 건물철거가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다. 조계종에서 볼때 정화회관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57년 승단정화와 정법수호를 다지며 세워졌던 정화회관은 조계종 존립의
최근 조계종단에서는 중앙신도회를 구성하고자 종단의 주선으로 몇번에 걸친 준비모임이 있었다. 그러나 이 신도회의 조직이 생각보다는 쉽게 구성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가장 큰 종단에 중앙신도회의 기구가 없다는 것도 대내외 적으로 그리 자랑스러운 일은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빠른 시일 내에 중앙신도회가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원천적인 문제와 또 현실적인 몇가지 문제가 도사리고있다. 현실적인 문제란, 이미 기성의 전국불교신도회가 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신도회가 그 기능과 활동을 제대로 하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그 기구자체가 없어진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물론 신도회장이 개인적인 유고로 부재중에 있었으며 또 기구가 그 활동이 중단되었던 것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 내 어린 시절의 서정이었던 사찰 통도사는 오늘도 거기 양산의 영축산에 있을 것이다. 웅자를 숙인 채. 진리의 상징인 부처님 앞에 무릎꿇고 나의 번민과 시름을 잠시 잊어보고자했으나 그도 내 몸이 맑지않으니 마음뿐으로 초파일이 저물고 있다. 부처님은 복을 비는 대상의 신이 아님은 익히 모두들 아는 일일 것이다. 업장소멸을 이루어주는 구원의 신은 더욱 아니다. 다만 그를 통하여 마음을 닦고 자기의 깨달음을 구하는 것이요, 그렇게 그가 그렇게 했듯이 탐(貪)진(瞋)치(癡) 삼독(三毒)에서 벗어난다면 우리는 저마다 성숙한 의지적 작용이 가능하여 선업을 남기게 될 것이다. 고뇌에서 벗어나는 마음이야말로 인간의 이상이며 부처의 마음일 것이다. 가끔은 고뇌의 무게를 주체할 수 없을 때
금선암은 행정상으로는 산북면 김용리 운달산 정상 근처있는 김용사의 부속암자로 되어있다. 그 절 자리는 뒷날 김용사로 이름을 바꾸게 되는 운봉사의 터로 같은 시기에 지어졌다 하는 대승사와 더불어 유서가 멀고도 깊다. 애초 이절은 금선암이 아닌 운봉사였다. 신라 진평왕 10년(588) 운달조사가 지을 때는 그렇게 명했으나 절 아래에 이보다 훨씬 큰 규모의 절을 지어 제금내면서 운봉사란 이름은 지워지고 금선암이란 이름이 대신 붙여진듯 하다. 차제에 또한 혼란을 피하기 위해 본래의 이름을 버리고 새 절은 김용사라고 따로 부르게 되지 않았나도 싶다. 운봉사의 개산조로 알려진 운달조사에 딸린 이야기는 확인되는게 없어 안타깝거니와 여기서는 운봉사가 김용사로 왜 바뀌게 되었는지 그 까닭을 일러주는 명칭연기만 살
연전에 대구 파계사에 들렸더니 지월 스님이라는 젊은 학승이 컴퓨터앞에 앉아 열심히 무엇인가를 두드리고 있어서 묘한 감명을 받은 일이 있다. 이스님이 하는 것은 단순히 워드 프로세서를 이용해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절에 찾아오는 신도들의 명단을 정리하여 절살림을 능률적으로 처리하는 작업도 아니었다. 물론 지월스님은 이 절의 총무일도 맡고 있기는 했지만 그가 요 몇해째 특별히 정력을 기울여하고 있는 일은 아함경의 CD롬화 작업이었다. 부처님의 말씀을 원형에 가장 가깝게 전하는 원시 경전중의 하나인 아함경을 한문원전과 한글번역을 모두 CD에 실어서 누구나 쉽게 컴퓨터를 통해서 아함경 공부를 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게 하는 일이었다. 그의 설명을 들으며 내가 감명을 받은 것은 이런 첨
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정부의 각료는 말할 것도 없고 정권의 힘이나 영향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미치는 사회 각계의 지도층에 특정종교의 인사가 다수 자리를 가지게 되어 왔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이 정권의 집권초기 각료가 정부 청사에서 예배를 보는가 하면 대통령의 공관인 청와대에서 특정종교의 인사들과 예배를 보는 사례가있어 말썽이 일었던 일이 엊그제 같이 기억된다. 그동안 전국 도처의 훼불사건은 이루 다 열거하기조차 민망할 정도이다. 다른 데는 그만두고라도 북악산 기슭을 지나노라면 민족문화재이기도 한 불상들에 붉은 페인트로 자신이 신봉하는 특정종교의 상징을 마구 그려놓기까지 하고 있는 형편이며, 이러한 사태는 현 정권에서 그렇게 하라고 사주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분명히 현
서늘한 바람과 높은 가을하늘이 왠지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을 한껏 충동질하는 요즈음, 논산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은건 24일 오전 6시. 말로만 듣던 논산훈련소로 향하는 기자의 마음은 그저 설레임뿐이었다. 우리나라 육군인력 배출에 있어 70%를 차지한다는 논산훈련소는 요즈음 한 방송사에서 준비중인 드라마의 촬영무대가 되면서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곳이기도 했기에 혹시나 좋아하는 탤런트를 볼 수도 있겠다는 부푼 꿈은 그 설레임을 더하게 했다. 버스가 훈련소로 들어서자 훈련병티가 완연한 젊은이들의 모습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고 잠시뒤 목적지인 호국 연무사 앞뜰에 나란히 줄맞춰 앉은 그날의 주인공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논산훈련소내 호국 연무사에서는 매달 수계법회를 갖고
재료 송이 2백g, 쌀 3컵, 애호박 ½개, 간장. 만들기 ①쌀은 30분전에 씻어서 건져 놓는다. ②송이는 흐르는 물에 재빨리 씻어서 칼로 뿌리부분의 흙을 잘라내고 밑에서 위로 껍질을 얇게 벗긴다. (싱싱한 것은 잘 벗겨지나, 시간이 많이 지난것은 껍질을 벗길때 살이 붙어 나오므로 조심해서 벗겨야 한다.) ③작은것은 송이 모양대로 썰고 큰것은 손으로 먹기 좋은 크기로 찢는다. ④애호박은 반으로 잘라 은행잎모양으로 썬다. ⑤솥에 쌀을 넣고 밥을 앉혀서 끓인다. 물이 잦아들기 시작할 때 손질한 송이와 애호박을 넣어 뜸을 들인다. ⑥뜸이 다 들면 그릇에 담고 양념하지 않은 집간장으로 비벼 먹는다. ※식성에 따라
◇9대단장:이지행 법사 79년 군법사로는 최초로 중령으로 진급한 이지행법사가 12월에 다시 단장을 맡은 이후 80년 1월 3일 군법사제도창설과 후원에 아낌이 없었던 홍도스님(일명 방울스님)이 세수 43세로 입적했다. 이때엔 불교신자관리개선 문제가 제기돼 군신자카드를 통일시켜 전부대에서 이를 활용키로 하고 80년 7월각 법사들에게 배포했다. 전근.전역시 타부대법당 또는 거주지 사찰에 카드를 이관시켜 지속적인 신앙생활을 유도한다는 의도에서였다. 그러나 불교계 전반적인 여건의 미성숙등이 원인이 돼 정착되진 못했다. 한편 당시 신군부에 의해 80년 10월 27일부터 시작된 이른바 '불교정화'(10.27법난)에 의해 군법사들은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됐다. 당시 군부는 '불교정화'의 수습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