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청문회'가 한창이다. 나라의 경제를 망가뜨린 죄목으로 청문회장에불려나온 증인들은 너더분한 흰소리를 앙잘거리며 면죄의 구실 만들기에 혈안이고, 신문하는 국회의원들은 증인들의 요살스러운 임기응변술에 경악하며 말문이 막힌다. 허명무실 해서 우두망찰 혼줄이 빠지는 쪽은 오히려 신문하는 국회의원들이요, 증인들은 번주그레 야릇한 웃음끼마저 흘리면서 이죽이죽 느물거린다. 처지가 뒤바뀌어도 이쯤 맹랑할 수가 없다. 한 해 남짓만에 별안간 판을 바꾼 물정과 생소한 나라 사정 탓 일 것이다. 입 달린 사람이면 모두, 그리고 알 '식(識)'자를 어지간히 익힌 지식인들태반도, "언제부터 나라 꼴이 이렇게 됐지?" "세상이 어쩌다가 이 지경이됐담!" 하는 볼멘 투정들이다. 언뜻 들으면 당연하
한국 불교계, 이대론 안된다. 오래전부터 가져 온 생각이지만, 총무원장선출을 둘러싼 분규를 보고 새삼 다시 확인한다. 이유야 어떻든 승려가 주먹질 패싸움을 도심 한복판 법당에서 몇일을 두고 한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이 잘못된 일이다. 거기다 법집행에 대해서까지 '세속법'을 따를 수 없다고 거부하는 것은 또 무슨 일인가. 승려는 사회인이고 불사도 사회속에서의 일이다. 법률을 초월한 사회인이 어디있단 말인가. 한국 불교계, 아니 한국 종교계는 1945년 일제 패망 이후에도 친일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다. 친일파 종교인이 국회의원이 되고, 교육계 지도자가 되었으며, 종교계를 그대로 장악했다. 이승만 집권기의 '정화불사'란 개혁도 권력의 입김과 무법적 변칙이 통함으로써 업보가
한평생 복된 일과 성공이 있기만을 바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생각이다. 살아가면서 좋은 일, 괴로운 일, 슬픈 일, 화나는 일 등 많은 희노애락과만날 수밖에 없다. 모든 일은 과거의 원인에 의해 일어난다. 따라서 이러한것이 발생하게 되는 원인인 인과응보의 이치를 알아야 할 것이다. 인과응보의 원리를 깨달으면 세상에 대한 모든 욕심을 초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과응보는 네 가지로 구분해 설명할 수 있다. 첫째 모르게 선을 닦고 실현이 안되는 경우〔冥機冥應〕를 일컫는다. 이는 과거에 선업을 닦았더라도 현세에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경우로 과거에 선업을 쌓았지만 현실에 작용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다. 둘째는 모르게 선을 닦았지만 현재에 나타나는 경우〔冥機顯應〕이다. 과거에 많
△스승은 다섯 가지 일로 측은히 여기며 가르쳐야 한다. 다섯 가지란 학문을 배우게 하며, 지극한 기예(技藝)응 가르치며, 배움에민첩케 하며, 선도(善道)를 가지고 인도하며, 현명한 친구를 따르게 함이다.- 선생자경 △부모는 자식을 돌보는데 있어서 다섯 가지를 행해야 한다. 첫째는 악을 떠나 선에 나아가도록 함이요, 둘째는 글을 가르침이요, 셋째는 가르침과 계율을 받들게 함이요, 넷째는 일찍 아내를 얻게 함이요, 다섯째는 집안에 있는 재물을 급여함이다. -육방예경 △본의(本意)를 알고 있어야 남을 가르치기가 쉬워진다. 그러므로 남을 가르치려 하면 먼저 저를 가르쳐야 한다. -불치신경 △부모는 다음과 같이 자식을 사랑해야 한다. 자식을 타일러 그릇된 일을하지 못하게 하고 좋
님의 제안과 부처님의 땅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 등을 저버리지 못해 지난1월 인도 성지 순례를 다녀왔다. 책이나 인도 홍보용 여행지에서만 보았던세계 최초의 불교대학인 나란다 대학, 대나무가 많은 죽림사원 등을 둘러보면서 부처님이 이 땅에 전한 가르침을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이런, 저런 불서(佛書)를 읽다 보게 된 일곱부처님의 한결같은 가르침인 '칠불통계(七佛通戒)'가 떠 올랐다. 칠불통계는 '모든 악한 행동을 하지 않고 착한 일을 실천하며 스스로 참회하고 정진하는 것이 곧 불교'라는 뜻을 담고 있다. 어렵게만 느꼈던 불교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칠불통계가 떠오른 것은 부처님의 땅에서 부처님의 수행, 정진하는 모습을 마음으로나마 쉽게 접근할수 있었기 때문일게다. 죽림사원에서 기념
스토니부룩에서 한국의 유교를 가르치는 마크 쎄튼(Mark Se-tton)교수는 대한민국 교육부가 편찬한 국민윤리 교과서의 내용에 큰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쎄튼박사의 조사에 의하면 문제의 국정교과서는 제1장에서 인간의 특성을 설명하면서 거의 전적으로 서양사상에 의존하고 있을 뿐, 동양의 심오한 인간관을 제대로 소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공부한 바로는 동양의 전통적인 인간관이야 말로 오늘날 현대인의 윤리의식을 바로 잡을수 있는 중요한 원리를 간직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이를 무시하고 있으니 안타깝다고 한다. 근대에 이르러 사람들이 인간의 중요성에 눈을 뜨면서 휴머니즘(humanism)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말의 뜻이 동서간에 크게다르다. 동양에서는
조계종 중앙신도회와 전국신도회는 과연 통합될 수 있을까? 최근 조계종 전국신도회 제18대 회장에 추대된 선진규씨가 통합 가능성을시사해 이 문제가 수면위로 급부상하고 있다. 조계종은 그동안 '한 종단 두 신도회'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었다. 1955년11월 창립된 전국신도회와 개혁 종단 출범 이후 97년 3월 창립된 중앙신도회를 놓고 교계는 왜 한 종단에 두 신도회가 존립해야만 하느냐는 지적을해왔다. 당시 중앙신도회는 전국신도회를 흡수 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었지만 전국신도회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신도회의 40여년의 역사를 버릴 수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양 신도회의 의견이 조율되지 않은 가운데 중앙신도회는 송재건 회장을주축으로 조직 구성에 들어갔고, 전국신도회
한국불교의 대표적 종단인 조계종의 신도회 조직이 지연되고 있는 때에 범불교재가연대회의가 구성되고 이 모임에서 오는 6월 10일, `변화의 시대-재가불자의 역할 모색을 위한 대토론회'를 개최하기로 해서 교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이 토론회가 조계종의 개혁평가를 비롯해서 출가.재가의 올바른 위상과 역할모색,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전국재가조직 건설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조계종이 추진하고 있는 신도회 조직과는 어떠한 관계를 갖게 될 것인지 궁금하게 하고 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 동안 신도회의 조직을 위해서 조계종 총무원과 가졌던 협의를 중단하고 종단을 초월한 전국적인 재가신도조직을 건설하겠다는 의도에서 범불교재가연대회의가 결성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번 토론회에
노스님의 권위 상실, 직위·학번 우선 풍토초발심·수행공동체 정신 회복해야"유신이란 무엇인가? 파괴의 자손이다. 파괴란 무엇인가? 유신의 어머니이다. 대개 파괴란 것은 무너져 없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없애고 끊는 것이다. 그러나 파괴라고 해서 모두를 무너뜨려 없애 버리는 것을 의미하지는않는다. 다만 구습(舊習) 중에서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을 고쳐서 이를 새로운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이다."《조선불교유신론》서구문화와 자본주의의 유입은 농경문화에서 산업사회로의 변화를 가져왔다. 만해 스님은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불교의 포교방식이나 수
쉽게 말하면 불교를 담아낸 그림이지. 그러나 단순한 그림에서 끝나는 것은 아니야. 그 속에는 종교적인 장엄함이 담겨있어. 혼이 담겨있는 것이지.그래서 불화를 그린 사람이 누구냐가 중요한게야. 작가 자신은 작품을 통해자신이 표출하고 싶은 부처를 그려내는 것이지. 그래서 불로(佛母)라고 하는것이지. 불화만이 갖는 독특한 특성은 바로 이 불모라고 하는 언어에 이미내재돼 있어. 부처를 그려내는 사람을 쉽게 말해 작가라고 한다면 작가가부처를 형성해 내는 거지. 여기에 종교성과 예술성이 있어. 작가가 그려낸부처를 보고 사람들은 신심을 가질 수 있는게야. ▲한국의 불화는 곧 한국적인 불교의식을 담아냈다고 할 수 있겠군요. 그렇지.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이 지녀 왔던 종교관과 우주관,
대통령선거의 계절이 되니 세상이 온통 시끄럽다. 그 속에서 또다시 ‘용공', ‘빨갱이'의 유령이 횡행하기 시작한 것이 이번 선거의 앞날을 걱정케한다. 건국 50년사에서 ‘민주공화국'이라는 번지레한 간판을 세워놓고, 그 뒤에서 영세집권의 ‘황제'를 꿈꾼 야심가들이 수없이 대통령선거를 악용했었다.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배반하여 황제가 되려했던 문민정치가 리승만씨가 그랬고, 가장 깨끗했던 선거로 선출된 문민정부를 탱크로 몰아내고 권좌에 앉은 군인출신의 박정희씨가 그랬다. 그 뒤에 또하나의 섯부른 ‘황제지망생'이 있어, 그의 정적의 고향에서 양민 대학살까지 저질렀으나 추악한 이름만 남기고 실패작으로 끝난 군인도 있다. 문민대통령 리승만씨와 군인대통령 박정희씨에게는 출신성분은 다르지
농촌·공단 지역 어린이 포교 선두 눈높이 포교, 다양한 프로그램 실시 인재 불사에 궁색한 불교계 풍토에도 불구하고 동심(童心)을 끌어 안기위해 진력하고 있는 곳이 있다. 경북 구미 원각사(주지 대혜 스님) 대웅전은매주 일요일 오전 10시가 되면 어린이들의 재잘 거리는 소리로 가득하다.지난 해 8월 어린이 법회가 처음 만들어진 이후 법당 안은 어린이들이 마음놓고 찾을 수 있는 놀이터로 변해 버렸다. 원각사 어린이 법회는 경북 구미지역에서 운영되고 있는 두 개의 사찰 어린이 법회 중 한 곳. 새싹 포교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모두 공감하고 있지만 실제 활동에 있어선 너무도 열악한 것이 교계의 현실. 50여 개의 사찰이 있지만 어린이 법회가 열리고 있는 곳은 구미불교포
행자님이 깨우는 소리에 새벽같이 옷을 가다듬고 세면대로 향했다. 심금당에서 가리개 사이로 처음보는 우바이 우바새들이 갈라져 자보는 것도 불국사 수련회의 진미인 것 같다. 아침은 법공양인 발우공양을 했다. 조심스레 정성을 다해 청수로 발우를깨끗이 비웠다. 평소 음식을 남기고 버렸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런데 왠일인가. 저녁공양때는 3,4조가 청수를 다시 나누어 마셨다. 스님께서 하시는 발우공양대로 속세인도하면 쓰레기 물걱정을 안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속세에서 이런 고요한 아침을 반기기는 정말 어렵다.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를 보고싶어 아침 7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짬을 내 경내를 걸었다. 범종을 지나 백운교를 바라보고 있는데 아! 이럴수가. 나무가지 사이로 햇살이비
유가(儒家) 聞人過失 如聞父母之名 耳可聞而口不可言 是非終日有 不聽自然無 來說是非者 便是是非人 待左右 當嚴而惠 左右之言 不可輕信 必審其實 親愛之言 亦不可偏聽 若聽一面設 便見相離別 남을 비방하는 말을 듣거든 마치 부모의 이름을 듣는 것처럼 여겨 귀로듣기만 하고 입으로 말해서는 안된다. 누가 종일 시비가 있더라도 듣지 않으면 자연히 사라진다. 누가 와서 옳다 그르다 하고 말하는 사람, 그가 곧시비하는 사람이다. 좌우의 사람을 대할 때는 엄격하면서도 인자하여야 한다. 좌우의 말을 경솔하게 믿지 말고 반드시 그 진실을 살펴야 한다. 친애하는 사람의 말도 역시 편견되게 들어서는 안된다. 만약 한 쪽 말만 듣게 되면 서로 갈라서게 된다. 輕言輕動之人 不可與沈計 易喜易怒者
1988년 5월 16일 창간한 본지가 이번호로 지령 500호를 맞았다. 숫자적 개념으로만 따지면 500은 큰 수는 아니나 주간전문지로서 볼 때 지령 500호는 각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감회가 새롭다. 주지하다시피 주간 전문지가 지령 500호를 맞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옛말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어느덧 본지가 지령 500호를 맞게 됨은 강산이 변하고도 남는 11년의 세월이 흘렀으며본지를 성원하고 애독하는 독자들이 탄탄하게 조직화돼 있음을 의미한다. 하나의지령을 더할 때마다 경영진과 편집진 등 종사자 모두가 기울인 각고의 노력과 정성이 보태졌고 매회 새롭게 독자들에게 다가서기 위해 정보를 발굴하고 가공하기위한 `땀과 아이디어'는 매번 숨막히는 연속이었다. 본지는
우리가 일산으로 최근 이사온 후로는 출퇴근시간에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가 사는 곳에서 학교까지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세번이나 갈아타야 하고 또 한번은 전철을 타야 하기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두 시간 정도를 길에서 보내고 나서야 학교에 도착한다. 자연히 집에서 좀 더 일찍 떠나야 하고 또한 전철에서는 옆의 사람이 하는 얘기를 우연히 듣게 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다음에 옮기는 얘기는 이렇게 해서 우연히 엿듣게 된 얘기중의 하나이다. 어느 날 퇴근 길의 전철에는 내 곁에 두 사람의 중년 부인이 앉게 되었다. 그 중의 한 부인은 아들이 군복무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 부인은 남편과 함께 가능하면 자주 아들을 면회 간다. 그런데, 아들의 부대에는 집에서한번도 면회오지 않는 군인이 있다는
성낙주의 소설 의 문학성은 고타마 싯다르타와 코살라국의 비유리왕의 갈등 구조 미학이나 당대의 불교 설화 구조를 재구했다는 점에서 찾기 보다는 말라국 파바성 출신의 대장장이 춘다와 그의 아들 나무크시아, 그리고 카라카인 야수비등의 주변인물의 서사 구조와 미학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정신적인 차크라바르틴인 붓다와 정치적인 차크라바르틴인 비유리왕의 이야기는 춘다와 나무크시아를 둘러싸고 있는 이야기를 돕기 위한 시대적 배경과 인물 창조의 보조 장치 또는 메세지 전언의 효과적 전달을 위한 소설적 장치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 소설이 단순히 석가시대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소설이 아니며 그 당대의 서민적인 삶의 모습을 통해 정신 부재의 이 시대의 삶을 환기시켜 주기위한 픽션이라 할 때 더욱 그러하
언젠가 신문의 해외토픽에서 기막힌 이야기를 읽었다. 가끔 배가 아픈 증세를 보인 사람이 병원에 찾아갔더니 뱃속에 수술하고 남은 수술칼이며 거즈 같은 것이 그득해 새로 수술을 하고 핀세트며 수술 가위 등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최근에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우리 병원들의 문제가 정말 간단치만은 않다는 것을 실감케 되었다. 우선 가장 심각한 것은 의무진의 실수 가능성이 의외로 높다는 것이다. 새삼스런 이야기는 아니지만 의사들의 솔직한 고백으로도 병원진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와 과실, 그리고 뜻밖의 사고가 만만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내가 그런 일을 당하고 나서 환자들이 정말 편안하게 병원을 신뢰하면서 진료를 받기는 힘들게 되었다는 것을 실감케 되었다.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