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인도, 강대국이었던 코살라국 비유리왕은 군사를 일으켜 카필라국을 향했다. 부처님은 그 소식을 듣고, 국경 지역의 앙상한 나무 밑에 앉아 계셨다. 멀리서 부처님을 본 비유리왕은 수레에서 내려 부처님께 공손히 예배했다. 왕은 부처님께 가지와 잎이 무성한 좋은 나무들도 많은데, 하필이면 이 메마른 나무 밑에 앉아 계시냐고 물었다. 부처님은 “친족의 그늘이 그래도 바깥사람보다 낫다”고 답했다. 석가종족을 지키기 위한 부처님의 뜻을 알고 비유리왕은 카필라국 정벌을 포기하고 되돌아갔다. 본국의 멸망을 두고만 볼 수 없었던 부처님은 이렇게
‘종(宗)’은 본디 천자(天子)가 산꼭대기에 올라 하늘을 향해 올리는 제사의식을 가리키는데, 거기에 교리의 가르침까지 확장하면 ‘종교’가 된다. 중국의 도교, 인도의 브라만교, 우리 민족의 하느님, 일본의 신도(神道), 이집트와 인디언의 태양신 등이 ‘신을 향한 숭배 의식’이라는 점에서 종교의 범주에 속한다. 절대자를 숭배하는 제사의식을 통하여 인간이 간구하는 것은 국태민안 및 지배자의 권력과 개인의 행복 등 기복이다.그런 동아시아에 서양에서 릴리전(Religion)이 들어왔다. 릴리전은 라틴어 ‘다시’라는 뜻의 리(Re)와 ‘연결
수십 년째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보존하고 있는 경구가 있다. 진리는 유행하지 않는다. 참 억울한 말이다. 진리가 거짓의 뿌리를 단박에 잘라낼 수 있는 마법의 칼날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진리는 결코 유행 따위는 하지 않는다. 유행하는 모든 것은 진리일 수 없다. 진리는 절대 유행할 수 없다. 다만 유행하는 상상의 세상을 그리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진리 없는 세상에서 지지치 않고 진리를 상상하는 힘, 이것이 진리의 존재 방식이다. 그래서 우리는 유행하는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정반대가 아닌가? 우리는 세
‘모든 것이 변화하고 우리는 괴로워한다. 변화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 아니라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해서.’‘화엄경’에 나오는 구절이다. 언젠가 ‘여자의 변심은 무죄’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변화가 무죄인 것이 어찌 여자만이겠는가. 아무래도 여자보다는 감성이 무딘 남성들의 변화 속도가 더뎌서 마치 변화 없는 것 같지만 잘 살펴보면 남자들도 늘 변화를 모색하며 변화하고 있다.변화가 문제가 아니라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가 문제라고 벌써 2500년 전 세존께서 가르쳐 주셨는데 지금도 그 명제적 진리를 수용하지 못하는 우리는 변화에
“나를 현대과학의 아버지라고 하지만, 과학의 진짜 아버지는 석가모니 부처님이다. 내가 아는 한 진짜 허공을 본 사람은 석가모니밖에 없다. 미래의 종교는 우주적인 종교가 되어야 한다. 그동안 종교는 자연계를 부정해왔다. 모두 절대자가 만든 것이라고만 해 왔다. 그러나 미래의 종교는 자연 세계와 영적인 세계를 똑같이 존중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통합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게 현대 과학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종교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불교라고 말하고 싶다.” 인류 역사상 천재로 추앙받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상대성이론
우리 헌법 제20조에 ‘①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②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모든 국민은 어떤 종교든지 선택할 자유가 있고, 종교를 선택하지 않을 자유도 보장된다. 또, 제11조 제1항에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되어 있으므로 종교가 있든 없든, 어떤 종교를 선택하든 국가적으로는 물론 사회적, 개인적으로 어떤 차별도 있어서는 안된
제주독립운동가 서훈추천위원회는 2월28일 일제강점기에 사교(邪敎)로 내몰려 탄압 받은 무극대도교 사건 피해자의 독립 운동가 서훈 심사를 공정히 해달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무극대도교는 독립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조선총독부로부터 가혹한 탄압을 받았고, 따라서 2021년 2월 독립유공자 공적 조사서를 보훈청에 접수했지만 “활동 내역의 독립 운동 성격 불분명”이라는 회신을 받았다는 것이다. 1938년 8월에 발생한 무극대도교 사건은 백백교 이후 가장 큰 종교 사건이라 불리기도 했다. 당시에 교주 강승태 이하 67명이 광주지방법원 검사국으
오랜 세월 전에 넘어진 경주 남산 열암곡의 마애부처님을 바로 세우자는 원력을 중심으로 한국불교의 중흥을 꿈꾸는 ‘천년을 세우다’ 추진위원회 출범식이 있었다. 모든 불자들에게 종책 방향을 명확히 전하고 함께 나아가자는 다짐의 시간이었다. 행사를 마치고 영상으로 내용을 접한 불자를 만났다. 대뜸 “십년, 백년도 아니고 천년을 꿈꾸고 준비하는 불교의 모습에 사람들이 너무 충격적이라고 한다”며 자신도 “묘한 자긍심을 느꼈다”고 말했다.시간은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시시각각 흘러 밤과 낮을 만들고, 일일이 흘러 계절을 만들어 우리들에게 선사
예의가 잊히고 있다. 매일같이 사람 사이에서 생긴 뉴스를 접하면서 든 생각이다.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친구와 동료, 스승과 제자, 고용주와 고용인, 성직자와 신도 등 인생에 동반되는 지중한 인연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개인의 만족과 가치관을 우선시하고 이미지를 중요시하는 시대에 여러 인간관계를 맺고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조절하고, 수평적 인간관계와 개성을 존중하는 마음가짐이어야 한다. 일찍이 부처님은 소중한 인연들과 행복할 수 있는 도리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인도 왕사성에 장
불기 2567년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부처님 가르침이 언제 이 땅에 전해졌는지 다시 생각해 본다. 전진의 승려 순도가 372년 고구려에 불교를 전하고,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384년 백제에 불교를 알렸다. 이어 고구려 승려 묵호자가 신라 눌지왕(417~458) 당시 구미 선산 지역 모례의 집에서 전법했다는 ‘삼국사기’에 근거하여, 우리는 “한국불교 1700년”이라는 표현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지만 이는 ‘삼국사기’가 가야불교에 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간과한 데서 발생한 오류가 아닐까 생각한다.금관가야 수로왕은 기
나는 종교를 최대한 일상의 자리에서 상식의 논리로 이해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종교는 일상을 극화하고 과장하고 확대해서 보여주는 매우 정밀한 장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을 보면서도 여기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의 절망과 희망, 치기와 우매, 슬픔과 증오를 일상의 자리에서 이해해 보고 싶었다.다큐멘터리의 제목인 ‘나는 신이다’는 신의 흔적을 찾아 헤매다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지우고 자기를 온통 신으로 채워 버린 사람들이 있음을 가리킨다. 부제인 ‘신이
출가 전의 일이다. 법정 스님의 인도 기행을 읽으면서 출가라는 결정에 앞서 인도로 향했다. 스님은 책 속에서 부처님께서 맨발로 걸으셨다는 내용을 기록해 주셨다.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이루시고 초전법륜지 녹야원까지 천릿길을 맨발로 걸어가 전법 하셨음을 잔잔하게 그려주셨다. 첫 순례길에 너무나 감동을 받아서 보드가야대탑에서 신발을 벗고 사르나트까지 맨발로 갔던 경험이 있다. 물론 차편을 이용하기는 했지만, 맨발로 부처님이 걸었던 대지를 걷는다는 감격이 아직도 가슴을 울린다.부처님께서는 길 위에서 수행하셨고, 길 위에서 전법하셨으며, 길